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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과거] 산문 - 꿈이었던 사람
게시물ID : readers_80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함아
추천 : 1
조회수 : 2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30 20:54:43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그와 처음 만난 날 찍었던 사진이었다. 조금은 어색했던, 하지만 설레었던 감정이 사진 속에도 묻어있는 것 같았다.
 
어느 가울, 여행 중 친구와 갔던 게스트 하우스 속에서 그녀는 그를 처음 만났다. 적은 대화 속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았고, 표정만 보아도 서로의 감정을 모두 알 것 같았다. 잠깐 잠깐 머무르고 가는 침묵이 그들은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 그녀의 친구와 그의 친구는 함께 데이트를 했다. 각각 이인용 자전거를 빌려 강가를 돌았다. 그와 강가를 돌며 그녀는 생각했다.
 
꿈에 그리던 사람을 만났다.
 
꿈으로, 기억으로 간직한 채 서로는 곧 헤어졌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한 계절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다시 나타났다. 꿈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꿈과 같지 않았다. 사실은 서로가 완전히 맞는 사람이 아님을 그들은 결국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또 몇 번의 계절이 지나 다시 가을이 왔을 때 그들은 헤어졌다.
 
이별은 순간이 아니다. 그들이 헤어진 후에도 이별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계속되었다. 깊은 밤, 그녀는 불현 듯 그와 함께했던 모든 사진을 꺼내 놀이터로가 한 장식 태우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그와 완전히 이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억과는 다르게 한 장, 한 장이 너무나 쉽게 사라져 갈 때 한 사진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와 처음 만나 함께 찍었던 그 사진.
왜 그 사진에서 그녀의 시선은 멈췄을까. 단순히 처음 만난 날 사진이어서?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위화감이 사진에 있었다. 마치, 뭐랄까.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 그녀에게 걸렸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후 그 위화감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건 전화 임에도 안부인사 없이 곧바로 하고 싶은 말부터 내뱉었다.
 
-당신, 누구야.
 
 
그녀의 질문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오랜만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에 잠시 그는 전화기를 들고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걸려온 전화일까. 잘못 건 건 아닐까. 받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이런 저런 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누구야.
무슨 소리하는 거지? 그는 잠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답변을 하려고 했지만 곧이어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모두 알아차린 것이다. 사실 그녀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이 그가 아니었음을. 그의 쌍둥이 형이었음을.
 
작년 가을, 그는 그의 형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를 기억했다. 한껏 들뜬 얼굴로 꿈에 그리던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 날을 뒤로 거의 매일을 그렇게 그 여성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정작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나보라고 부추길 때마다 오랜 시간 뒤의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그의 형은 불안해했다. 자신이 실망할까봐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에게 실망할까봐 그게 두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간 연락을 할 거라고 다짐을 했다. 그는 그런 그의 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형은 끝내 영영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그냥 스쳐가듯 안부라도 물어보지. 교통사고로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거였으면.
형의 상을 치르고 그는 형이 줄곧 말하던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형의 소식을 전할 게 있다고,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가 카페에서 앉아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머리는 하얘졌다. 그녀가 다가와 왜 동생이 온다고 거짓말했냐는 말에도 그는 아무대답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하나였다. 꿈에 그리던 사람을 만났어. 그의 형의 꿈과 그의 꿈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형의 이야기는 그 뒤로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가 형인 척 하는 건 간단했다. 귀가 아프도록 그녀와의 추억이야기를 들었으니,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꿈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꿈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모르는 그의 형의 그림자에 그는 점점 가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그리던 자신의 수묵화에 결국 그는 사라져야만 했다.
 
 
-미안해.
 
어렵게 그는 대답을 했다. 그녀는 무겁게 침묵했다. 그는 그 무게를 느끼며 그녀가 원할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 전화로 말했다시피, 나는 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의 동생이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형의 꿈이 나의 꿈과 같았다는 걸 깨달은 것뿐이야.
-그럼 그 사람은?
-죽었어. 교통사고로.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그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전화는 끊어졌다. 휴대폰에서 상대방의 부재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 공허한 리듬 속에 그는 형을 떠올렸다. 형은 그녀가 꿈에 그리던 사람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는 앞으로 영원히 형을 이길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의 동생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처음 만난 날 느꼈던 감정, 보았던 풍경, 속삭였던 이야기. 동생은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출처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동생에게 이야기 해주는 그 모습이 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그의 동생의 반응은 신경도 안 쓰고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마치 그녀는 모든 걸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정말 만났었구나. 현실이 아니었던 꿈에 그리던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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