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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무서운. '거울' -上下-
게시물ID : panic_805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xpiation
추천 : 12
조회수 : 112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6/09 19: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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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上-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거울에 비친 내가 내 움직임을 따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라는 훌륭한 사전적 정의가 있음에도, 나를 따라하고 있다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아마 일주일 전 부터 였을 것이다. 밤새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누군가에 말에 빗대어 말하자면.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알코올에 흠뻑 취했었다. 이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씻고 자야한다는 강한 압박감에 눈에 힘을 주고 욕실로 들어섰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빨갛게 충혈되고 살짝 상기되어 흐물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힘껏 뺨을 내리치고는 옷을 벗어 옆에다 두었다. 그리고 샤워기 호스를 들어 물을 틀었다.


 보았다.


 고개를 숙인 내 머리 위로 나를 내려보고 있는 내 모습. 타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흠칫 하고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얼빠진 모습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정신 나간 남자의 모습만 보였다.


 "너무 많이 마셨나?"


 뜨거운 물을 촤악- 틀고 열기에 몸을 맡겼다. 술에 취한 나머지 헛 것을 본 것이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살짝 올라오는 듯 했다. 하지만 알코올과 뜨거운 물의 케미는 얼른 가서 자라고 내 뇌에게 강한 명령을 내렸다. 다행히도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 까지, 거울 속의 나는 조용히 내 모습을 비출 뿐이었다.



 다음 날, 정겹게 찾아온 두통에 시름거리며 욕실 문을 열었다. 거울 속 상대도 퀭한 눈으로 나를 마주하여 보고 있었다. 영락없는 내 모습이었다. 어젯밤 느꼈던 그 시선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알코올로 빚어낸 괴상한 착각이라는 판단이 들고나서야 씨익- 하고 웃고 물을 틀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그렇게 이성적인 동물은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고 세수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머리를 들어올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물론 당연히 거울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세수를 마치고 옆에 널어둔 수건으로 가볍게 닦아냈다. 안도와 긴장감이 적절히 몸 곳곳에 쑤셔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 참. 이게 뭐라고...'


 스스로를 격려해주었다. 빼꼼- 하고 나오려는 무서움을 싸그리 밟아주었다. 어렸을 적, 학교 화장실에 귀신이 나온다며 1주일동안 울고불고 화장실을 참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겁이 많은건 여전하구나 싶었다.
 닦아낸 수건을 옆에다 두고 조용히 욕실 밖을 나왔다. 욕실 문을 닫으려는 찰나의 순간, 문틈 사이로 거울이 내 눈에 들어왔다. 거울 속의 나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거울은 평소와 같이 내 모습을 반사시켜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두려움이라는 세글자가 호기심이라는 글자로 바뀌어 자꾸만 내 귀에 속삭였다.
 욕실 안에서 거울을 보던 나는 가만히 손을 내렸다가 잽싸게 올려보았다. 그래도 상대는 놓치지 않고 똑같이 따라했다. 이번에는 고개를 숙였다가 황급히 들어올렸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흐음...'


 바보같이 움직여대던 나는 가만히 서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나는 태연한 척 옆에 샴푸를 꺼내들고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걸렸다.


 "샴푸 거품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네~ 들 수가 없어~"


 누가보면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작전(?)이었다.


 '계속해서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흥얼거리다가 바로 고개를 든다.'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만약 이번에도 똑같이 거울 속 내 모습이 반응한다면 그간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단지 두려움으로 끝날 것이다. 혼자서만 간직하고픈, 아니 무덤까지 가지고갈 이불킥 썰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 드러난다면...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단지 거울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지워 내기 위한 하나의 주술이었으리라.
 차분히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바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걸렸다...!'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이 고개를 들어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같이 멍한 표정. 거품으로 뒤덮인 얼굴. 그리고 머리를 타고 내려오는 물방울. 하지만 한 가지 다른게 있었다.  거품 때문에 굳게 닫힌 내 입과는 달리. 거울 속의 나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

그 때 이후로, 매일같이 난 거울을 마주서서 상대를 노려보았다. 입을 벌린 상태로 나를 마주했던 그 날의 거울속의 나는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두려움도 50그램 정도 첨가되있다. 재미있다. 지금의 내 감정은 그렇다. 두려움과 호기심은 참으로 재미있는 말이다. 두려움이 곧 호기심이고 호기심이 곧 두려움이니.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나의 의지로 넘어오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이 너무나 재밌게만 느껴진다.

 거울 속의 나는 정확히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한다. 자그마한 움직임도. 작은 눈썹의 떨림도.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나의 허리도. 여기까지는 사전적 의미로의 거울 그 자체다. 하지만 내 움직임과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면서 잽싸게 움직이면.


 변한다. 아주 정말 미세하게 조금씩. 그 움직임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 범위는 정말 국한되어 있다. 바로 눈과 입.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울을 바라보는 나와는 다른 느낌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매 번 이같은 주술(?)을 행할수록 눈빛과 입모양은 조금씩 달라진다.


 여기까지가 내가 거울을 바라보면서 알아낸 정보들이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를 따라하고 있다. 도대체 왜. 어떤 연유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단지 자꾸만 커져가는 궁금증을 풀고싶다는 대찬 야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 야망을 실현할 때가 오게 되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대게 꿈이란게 그런 것처럼 어디서부터가 처음인지 모르게 꿈이 시작되버린다.


 작은 창틀을 통해 바라본 너머는, 문이 하나 보였다. 왼쪽에는 흰색 서랍통이 보이고 샴프와 수건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에는 샤워타올과 수건걸이가 걸어져 있었다. 그리고 창틀 바로 밑에는 세면대와 변기가 놓여져 있었다. 놀라울 만큼 익숙한 공간이었다. 아니 그냥 내가 아는 공간 그 자체였다.


 나는 내 욕실 안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지금 거울 속에서 이 공간을 들여다 보고 있다.








-下-



꿈에서는 내 자신이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했다. 내 움직임, 내 의식, 생각 모두. 살아있었다. 꿈이라고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순간순간들이라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욕실 안의 거울 속에 있다는 사실에 확신이 들자 흥미로웠다.
 
 철컥-


 욕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오는 나를 마주했다.


 세상에. 거울 속에서 실제의 나를 마주하다니. 아무리 꿈일지언정 기괴한 순간이었다. 욕실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거울 속 공간이 욕실로 가득 채워졌다. 내가 바라보는 욕실과 좌우가 반대된 형태로. 그리고 내 몸은 거울 밖의 나를 따라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움직임대로 인형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놀라웠다. 내가 거울 속 모습이 되다니. 가위에 눌린 것 마냥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의식은 살아있었다. 나는 조용히 거울 밖의 나를 주시했다. 욕실에 씻으러 왔는지 옷을 하나씩 벗고있었다.


 '몸 참... 더럽다.'


 평소 거울에 비춰보던 몸과는 달리 더욱 생생한 몸뚱아리를 보고나니 기가찼다. 거울 밖의 나는, 아니 그는 샤워기를 꺼내 물을 틀었다. 그를 따라 나 역시 물을 틀었다.


 요상한 기분이다. 내 의지대로 씻는게 아니라 그의 모습에 맞춰 씻어대는 꼴이란.


 그는 온 몸에 거품질을 마쳤다. 그리고 물로 행궈낼 준비를 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나를 죄어오는 압박감이 순간 풀렸다. 팔과 다리를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미세하게나마 내 의지가 닿는 곳이 있었다. 눈과 입.


 '으윽-'


 좀 더 그를 가까이 보기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눈알 굴리기가 이리도 힘이 들었었나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조금씩 눈길을 내려가서야 고개를 숙인 그의 뒷통수가 보였다.


 "으음?!"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빤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뭔가 석연찮았는지 거울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서로의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호흡하고 있는 상대의 가벼운 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을 통해서 서로를 보고있으니까.


 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샤워를 시작했다. 무사히 샤워를 마치고 욕실 문을 나설 때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가 욕실을 나서고 나서야 몸을 감싸던 압박감이 풀렸다. 그리고 주변은 다시 어둠속으로 감췄다.


 그러자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은 그저 헝클어진 머리로 멍하니 바라보는 내 모습을 비출 뿐이었다.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악몽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1시간정도 거울속 삶이 시작되었지만 2시간, 3시간, 8시간. 점차 삶이 길어졌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멍하니 욕실안에 서 있는 것은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차라리 꿈처럼 내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꿈속의 그, 그러니까 꿈속에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거울 속의 내가 자기를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울을 바라보며 휙 고개를 돌아본다거나, 갑자기 팔을 휘젓거나. 마치 거울을 바라보며 의구심을 가지던 내 모습과 비슷했다.


 그리고 끝내는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으며 중얼거리더니 휙-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때의 나는 그가 눈을 감고 있는 틈을 틈타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입을 벌린 채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눈이 휘둥그레 지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느꼈던 그 순간을 그가 느끼고 있으니까.


 
 


 악몽이 내 하루의 절반이 넘어가고 나서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삶은 현실과 거울에서의 삶 2가지가 반복되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라.


 12시간동안 거울 속에서 하염없이 욕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온 나를 따라하며 인형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잠에서 꺤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나를 따라하고 있는 거울 속의 내모습을 본다. 밤이 되면 잠이 들고 또 다시 거울 속 삶이 시작된다.



 미쳐가기 시작했다. 잠에 들기 무서울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를 충족시켜주었기에, 이 괴이한 꿈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거울 속 삶이 점차 현실의 시간을 잡아먹어가며 내 자신도 잡아먹고 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도 하루종일 정신이 멍했다. 항상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가 거울을 보고나서야 현실로 돌아옴을 인지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 악몽이 계속될지 생각에 잠기자 가슴이 먹먹해옴을 느꼈다.


 '이, 이건 아니야...'


 내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분명했다. 뭔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정신병원에 가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신이상자라는 굴레를 씌게 될까봐 겁이 났다. 30년을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살아왔다. 이 평범함을 최근의 기이한 일로 색 바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거울을 노려보았다. 잡생각에 빠지며 눈을 감았다 뜰 때 마다 거울 속 나는 오묘한 눈빛을 지으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심신이 지친 탓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거울 속 삶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해야만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기에는 정신이상이라는 거짓된 병명을 붙일 수 없었다.


 욕실로 들어온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내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공포와 호기심이 섞여있는 그 퀭한 눈을.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눈을 주시했다. 그리고 조금씩 입을 벌리며 말을 걸었다.


-살. 려. 줘.


 소리도 거센 움직임도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오로지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미칠듯이 이어지는 거울 속 삶에 피폐해져 가는 내 눈빛을 전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마다 움직이는 입모양으로 내 메세지를 전했다.



 "사, 살..."



 몇 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알 수 있었다. 거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예전과는 조금씩 달라졌으니까.



 "려..."



 그는 더 이상 흥미롭게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공포와 연민이 적당히 섞여있는 눈빛이었다.



 "줘..."



 1주일이 지나고서야 그의 눈빛이 변했다. 슬픔의 눈빛. 내가 그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도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거울 속에서의 악몽의 시간이 현실의 하루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미쳐버릴 대로 미쳐버린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에 의지를 잃었다. 식물인간이 된 것처럼. 몸에 양분을 흡수하고 생리활동을 하기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잠을 자고나서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꺠어있는 동한 소비한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댄 뇌와 모든 기관들의 휴식을 위해. 잠을 자고나서 다가오는 내일을 위해.


 하지만 나는 어느새 거울 속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잠에서 깨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이 순환에 어느새 내 몸은 적응해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악몽이 시작됐다. 여느때처럼 그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메세지를 전했다.


 -살. 려. 줘.


 욕실로 들어온 그는 평소와 달라보였다. 들어오자마자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를 따라하는 내 모습을 캐치하고 자연스럽게 샤워를 하고. 욕실문을 나서는 패턴이 깨졌다.


 그는 유심히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조금씩 입을 벌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그의 깜박임을 따라 내 입도 조금씩 움직였다.


 -살. 려. 줘.


 절실했다. 그가 내 메세지를 알아야만 했다. 의미없이 거울속에 갇혀서. 이젠 현실의 내가 나인지. 거울속의 내가 나인지 모를정도로 미쳐가고 있는 나를 구원해야만 했다. 그의 눈빛이 바뀐 것도. 샤워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모두 나의 메세지임을 알아채야만 했다. 거짓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현실의 나였을지도 모를 그.


 거울 가까이 몸을 대고 눈을 깜박이던 그는 조용히 몸을뗐다.


 '안돼!'


 이대로 악몽이 계속되게 할 수는 없었다. 다시 입을 벌려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눈을 감지 않았다.


'안돼... 제발...!'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욕실 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 아, 안돼...'


 텅빈 욕실을 바라보며 나는 절망에 빠졌다.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를 거울 속 삶인걸까. 이대로 나의 삶은 거울속으로 침식되버리는 걸까.
 희망의 끈을 놓쳐버리자 더 이상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현실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 아니 이제는 이 거울 속 삶에 적응하며 살아가야하는걸까.


 거울 속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자 헛웃음이 나왔다. 나를 잃어버려야 한다는 그 불순한 생각이 가볍게 나온 것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욕실 바깥에서 그의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조금씩 욕실을 향해 가까워졌다.


 욕실 문이 열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망치가 들려있었다. 씩-씩- 새어나오는 그의 호흡속에서 가벼운 울음도 섞여 나왔다.


 그가 드디어 내 메세지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이 기괴한 일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공포감을 느꼈던 것일까.


 더 이상의 생각에 잠길 겨를도 없이 그는 거울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이 오고갔다.



 "오래... 걸렸어."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리고는 나를 향해 망치를 내려쳤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
 침대가 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오랫동안 잠이 들었었는지 온 몸이 쑤셨다. 무거운 눈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바라본 천장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멍했다. 악몽을 꾸고 난 아침 때 처럼 그저 멍했다. 나는 양 손에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자연스럽게  두 팔 모두 올라갔다.


 허우적대는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내가 현실로 돌아왔다는 신호를 확인해야만 했다.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욕실 바닥은 거울 조각들이 흐트러져 놓여있었다. 거울이 놓여있던 벽에는 미처 자유를 얻지 못한 몇몇의 거울 조각들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급히 욕실 밖으로 나와 탁자에 놓인 손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보였다. 창백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떠보았다. 거울 속 나도 똑같이 내 모습을 비추었다. 이번에는 욕실에서 하던 주술을 따라해보았다. 거울 속 나는 입을 벌리지도, 알 수 없는 눈빛을 하지도 않고 그저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었다.


 흐느낌을 적신 웃음이 그제서야 터져나왔다. 악몽이 끝났다는 생각에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

 여기까지가 내가 겪었던 기이한 일이다. 그 이후로 욕실에 새 거울을 달아놓았지만 나를 따라하던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피폐해져가던 내 심신도 조금씩 회복해서 이제는 예전처럼 돌아왔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친구들에게 이 거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모두들 나를 미친놈 취급하기 일쑤였다. 누구도 내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주지 않았다.


 가끔씩 샤워를 하다 거울을 바라볼 때면 그 날의 악몽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 때 꿈 속의 그가 거울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아니 현실의 내가 거울을 깨뜨렸다면 어땠을까. 거울은 대체 누가 깨뜨린 걸까. 거울 속에서 나를 따라하던 그는 대체 누굴까


 문득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라고 말했던 그 누군가가 떠올랐다. 물론 그에게는 그 꿈이 행복하고 아름다웠겠지. 참으로 팔자좋은 말 하는구나.


 어쨌든 더 이상의 악몽은 내게 없을 것이다.


 거울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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