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타이틀을 달고 올리는 마지막 글이 될것 같습니다.
인디고고에 마지막 자금 정리한것 스샷을 갤러리에 올렸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캠페인 페이지 갤러리 탭을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그동안 모금에 동참했는데 이메일을 못받으셨다고 하신 분들은 이메일을 입력하셨을때 오타가 났다거나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올린 글은 Update 란에 있으니 가시면 보실 수 있고요, 거기에 올린 글들이 다 이메일로 발송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100 모금하셨다가 환불요구 하신 분은 미씨분이 아니라 어느 남성분이셨는데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습니다. 이곳에서 그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것을 보았는데 이분께서 몇번이나 사과를 하신 점을 미루어봐서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 싶습니다. 너무 매도하시진 마셨으면 합니다.
양심언론 후원금에 대해서는 페이팔 규정상 페이먼트를 보낼때 한번에 만불이상 보낼수 없답니다. 그래서 나누어서 만불씩 먼저 보내고 나머지 금액들을 보냈구요.. 마지막으로 이틀전 들어온 성금이 수수료떼고 $43.25 였는데 그걸 은행으로 트랜스퍼 해야지만 딱 맞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고발뉴스, 팩트티비, 뉴스타파, 국민티비에는 1/5 으로 나눈 금액 ($10,258.61)을 두번에 걸쳐 보냈는데 신문고에는 일단 만불을 먼저 보냈구요 나머지는 $43.25 가 은행으로 입금되는 즉시 나머지 금액을 페이팔로 보내겠습니다.
그럼 자금 정리는 다 된것 같습니다...
글을 끝마치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글이니 그냥 사무적인 내용만 말하고 인사드리기엔 좀 매정한것 같아 조금 제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글이 길어질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이 광고진행 일을 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분들께서 저희를 칭찬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칭찬 받고자 하는 일은 아니였지만 하면서 힘이 들때마다 미씨님들의 위로와 응원이 정말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능력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아이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솔직히 한국 정치에 관심도 없는 교포였고 사고가 일어났던 날 조차도 오보를 듣고는 "아, 다들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하면서 그날도 연예방에 올라오는 연예기사들만 읽던 미씨였습니다.
실종학생들 부모님들이 겪고 계시는 그 말도 안되는 지옥같은 상황을 반드시 알려서 이분들의 목소리가 되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외신에 알리는 일, 그것 밖에 없기에 그거라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답장을 받은것이 계기가 되어 광고 아이디어를 내신 분께서 연락을 해달라고 글에 올리셔서 정말이지 얼떨결에 동참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분이 신상공개 문제로 빠지시면서 광고일이 중단되었을때도, 제가 바로 나서서 총대매고 진행하겠다고 하지 못한 전, 어떻게 보면 한낱 겁쟁이에 불과했습니다.
저희 광고팀과 뒤에서 도와주신 분들 한분한분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하신 분들입니다. 저희 모두 다 얼굴한번 본적 없는 사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목표만을 위해 모여서 자신의 고집이나 이익보다 대의에 촛점을 맞추시고 서로 조율하고 화합할 줄 아시는 성숙하고 따듯한 분들이셨기에 일이 일사천리로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저희 팀원분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고 너무나도 감사했고 지금도 이분들을 알게되고 같이 일 할 수 있었다는것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이며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엮어주신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많은 일이 있던 지난 한달인데요...
뉴욕타임즈와 네고를 하면서 광고비용을 파격적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던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제가 신나서 글을 올렸죠...그리고 곧 캠페인을 런칭했습니다.
저희 캠페인을 런칭했던 날 밤, 어쩌면 급히 만드느라 어설펐던 컨텐츠를 열어놓고는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만불이 넘어있을까요...' 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저희에게 단 두시간만에 만불을 훌쩍 넘기는 놀라움을 안겨주신건 바로 미씨님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불과 13시간만에 저희는 목표금액인 5만 8천불을 달성했고, 그날 들어온 금액만 10만불이 넘어갔습니다. 진정 기적이 아닐래야 아닐수가 없는 일이지요. 지금생각해도 그날의 쇼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캠페인을 주도했지만 기적을 만들어 내신 분들은 바로 미씨님들과 세계 곳곳에 한국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얼굴도 못본 저희를 믿어주시고 기적을 만들어주시고 저희에게 너무나도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캠페인이 끝나는 날까지, 페이지가 넘어가면 또 끌어다가 저희 캠페인 링크를 걸어주시고 조금만 힘내자고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번씩 글을 올려주셨던 익명의 미씨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뉴욕타임즈 측에서 썬데이 페이퍼에 저희 광고를 내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보던 날, 저희 광고팀 모두 정말 그럴수만 있다면 너무나도 좋겠다고 하며 기대했을때 썬데이 페이퍼, 그것도 마더스데이 날 나가게 해주겠다고 확인을 했던 순간... 그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 모두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 후 한국에서는 기자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금액으로 워싱턴 포스트의 적극적인 도움에 2차 광고가 나갔지요... 전 사실 뉴욕타임즈 광고가 나가는 날 신문을 보면 울 줄 알았는데 그날은 눈물이 안났지만 워싱턴 포스트 광고를 보고는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그 후에도 매일같이 참으로 드라마틱한 하루하루였던것 같습니다.
사실 일을 하면서 정말 힘들때도 있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을때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세월호 방에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가족을 다 잃은 8살 남자아이... 5살 여자아이...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내리쳤습니다.
단원고 남자 아이들 반 단체사진이 올라오고 그 많은 아이들 중 두명만 살았다는 글귀를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일베들이나 국정충이나 그냥 단순히 저희가 하는일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 잃어버린 아이들과 유가족분들을 생각하면 서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 분들께서 저희 광고를 보시고 굉장히 좋아하시고 고마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날은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날이였습니다. 열심히 일한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곳에도 댓글로 올라왓지만 뭔가 정치적인 목적이 있으니 이런짓을 하는걸꺼라며 저희 배후를 알아내려 하던 사람들이 있었죠.
또 일베에 가보니 저희 신상을 캐내려고 참 쓸잘데없는 정성을 들여 분석을 한 사람이 있더군요. 저희보고 일하고 가정있고 자식있는 여자들 3명이 캠페인을 주도한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면서 분명 구원파던지 종북단체이던지 할것이라고 장담을 합디다. 그것보고 웃었습니다.
여자는 약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합니다.
제가 자식이 없는 여자였다면 어쩌면 이만큼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매일 밤 옆에서 자고 있는 내 새끼 손발에 입맞추면서 하루아침에 꽃같은 자식들을 잃은 그분들 생각에 지난 한달동안 쪽잠 자면서 본업과 캠페인모금과 광고추진과 가정생활을 병행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엄마"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괴력이였던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캠페인에 동참하신 많은 분들은 아이가 없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세월호 참사에대한 저희의 대응은 정치적인 이슈도, 부모만으로써의 이슈도 아닌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써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불의에 대항할 줄 알고, 약한자의 편에 설 줄 아는 용기있는 분들께서 하신 거대한 싸움의 시작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긍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들은 진심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시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약한자의 편에 설 줄 아는 따듯한 분들이시며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용기있는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엄마가 무엇을 했고 어떤 변화에 동참을 했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주역들이고 그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저희 할머니께서는 처녀시절 일제감정기를 지내시며 일제의 압박을 벗어나고자 만주로 이주해가신 한국인들중 한분이셨습니다. 그곳에서 식당을 하셨는데요, 하루는 일본순사 두명이 사복을 입고 밥을 먹으러 왔답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는 당당하게 돈도 안내고 그냥 가더랍니다. 그것을 보고 할머니는 그들앞에 가서 막으시고는 당당하게 "먹었으면 돈을 내고 가라"고 하셨답니다. 물론 그 일본순사들은 어이없어 하면서 "이런 버릇없는 조센징!!" 하며 할머니 뺨을 때렸고 할머니는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것을 양손에 받아 당신을 때린 순사의 옷에 마구 묻히시며 "날 죽일테면 죽여라!!!" 하며 소리소리를 지르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둘중 하나가 나머지 한명을 말리고 끌고 나가 할머니는 더 큰 변을 당하시진 않으셨지만, 이 이야기를 저는 자라면서 한 백번은 들었거든요. 그때는 참 했던 이야기 또 하시는 할머니가 살짝 지겨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광고 일을 진행하는동안 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이 많이 났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할머니는 저에게 불의에 참지말고 대항하라는 것을 가르치시고자 한신 것 같습니다.
전 저희 할머니 이야기와 저희 아버지의 젊은시절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제 아이에게도 계속 해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4000명이 넘는 많은 분들과 함께 만들어낸 기적의 이야기도 많이 많이 해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미씨님들도 그러시길 바랍니다.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고..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자라지만 커서도 조국을 사랑하고 약한자들의 편에 서고 불의에 맞설 수 있게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생활이 있지만 아직도 팩목항에는 자식의 시신을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세월호 진상규명이 되고 유가족분들이 모두 정당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고 정부의 비리가 털리고 조국이 바로서는 그날까지 저희 모두 이곳에서라도 잊지 말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동안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다시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리고 동참해주신 미씨님들 모두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Micah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