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면 기본이 10분이다. 시작은 빨리 끝내고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일단 앉으면 부르륵! 우지직! 후룩, 후루륵! 하지만 이렇게 한번 쏟아내고는 시를 쓸 때처럼 주기적으로 집중해서 남은 찌꺼기들을 빼낸다. 이게 대략 10분이다. 용변을 본 후, 내 자식들을 바라보면 이놈들이 어떤 놈인지 대번 알 수 있다. 내 자식의 90% 이상은 처음에 떡을 뽑아내듯 쏟아낸 녀석들이다. 이놈들은 떡 뽑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처럼 활기찬 강한 놈들이라 그런지 안색이 밝다. 하지만 나중에 7~8분에 걸쳐 조금씩 천천히 걸음마까지 배워서 나온 녀석들은 공기와 반응해 색이 변해버린 바나나처럼 거무스름하다. 뱃속에서 익을 대로 익어서 나오려니 팍삭 늙어버렸겠지. 비록 소수지만 이놈들이 나에게 두고두고 근심을 주었던 녀석들임에 틀림없으렷다! 가끔은 아직 나올 때도 되지 않은 녀석들이 일찍 나오겠다고 아우성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놈들은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라 해도 참지 못하고, 기어코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고 만다. 결국 이놈들은 이제 막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마냥 물을 질질 흘리고, 결국 물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고야 만다. 또 어떤 놈들은 나오라고 할 때 나오지 않고 버틴다. 이놈들은 평상시 익어서 나오는 놈들보다 더해서, 이놈들의 청개구리 같은 짓은 부모인 나에게 상당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뱃속부터 기가 드셌던 이놈들은 나와서도 제 고집을 세워 뻣뻣한 자세로 있는다. 이놈들을 자기들의 생활 터전이 될 정화조로 보내려고 해도 끈질기게 버티지만, 결국 반항의 생채기만 남긴 채 질질 끌려가고야 만다. 이 흔적 때문에 산고(産苦)를 치르고 나온 나는 언제나 어머니께 맛있는 욕을 얻어먹고야 만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이놈들만 이런 것이 아니라, 나도 이러한 역사가 있더라. 지금으로부터 28여 년 전에, 세상은 내가 나와 활약할 바탕이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어머니 뱃속에 들어앉아 가난한 부모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남들 다 대학가고, 군대 갈 때 나는 나만의 꿈을 이루겠노라며 버티다가, 대입도 늦고, 군입도 늦어 머리가 가을의 목화밭처럼 새하얗게 변해가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동기들, 후배들과 똑같이 철없는 행동을 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아! 나의 인생, 나의 자식들과 무엇이 다르리오! '이게 나만 그런가?'하고 생각해 보니,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니더라.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 자신의 때에 맞게 살아가는데, '빨리' 혹은 '천천히'라고 고집을 세워 인생을 살아가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도 수많은 상처를 남기면서 살아간다. 혹은 사라져간다. 나아감과 물러남의 때를 아는 것은 수많은 성현들에게도 어려운 문제였다는 것을 내가 모르지는 바는 아니지만, 고집을 세워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채서 나아감과 물러감의 때를 잘 파악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아주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10분을 앉아 있다가 나왔다. 이놈들은 여전하구나. 나도 여전하다. 자식의 허물은 부모의 허물이라는데… 이 말은 부모가 바뀌어야 자식이 바뀐다는 말이렷다? 지금부터라도 때를 정확히 판단해서 조용히 살금살금 강의실로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