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말, 한나라 초, 한신은 큰 뜻을 이루고자.... 시정잡배의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치욕을
감수하였다.
크나큰 슬픔을 당하였지만....
문재인 역시, 훗날을 위해, 치욕을 감수한다.
이성이 저토록 차가운 것인가?
분노가 저토록 뜨거운 것인가?
이것은 훗날 문재인의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그"와 "그가 꿈꾸던 사회"를 잃은 슬픔에,
또 "그"와 "그가 추구하던 정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괴로워 해왔던 우리들은
가슴 속에 문재인이 바로 "그"이기를 소망한다.
어쨌든, 문재인은 선택했다. 아니 뛰어들었다.
나는 믿는다. 문재인의 그토록 "공손한 예우"가 단순히 "처절한 예의"가 아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무섭도록 "차가운 분노" 였음을....
문재인은.... 비록 아프고, 슬프지만 잊으려할 지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이 바로 "그"라면, 나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우리시대의 매트릭스들을 정리해주길.....
그가 편히 잠드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