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취(屍臭) - 上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8)
날 때부터 무당은 없고, 선무당 아니었던 큰무당도 없다.
남궁아주머니가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무당은 신을 받거나, 영기가 있는사람이 공부와 수련을 통해서 되는 것이다.
나는 후자였고, 군대를 갔다가 복학했을 때 조짐이 나타났다.
다른 친척들은 늦어도 고등학교쯤에 징조가 나타났는데, 덕분에 나는 비교적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나름 총명했기 때문에 독학으로 끝낼 수 있는 부분-주역이나 관상, 사주, 신화같은 것-은 마칠 수 있었지만 혼자서 공부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굿, 부적술, 퇴마나 제령의 요령...등등...
무당의 공부는 생각보다 방대하고 깊었다.
얼치기로 공부하면 죽거나 미친다.
간신히 사람의 기운을 분간하고, 사람이 아닌 것들을 볼 수있는 나에게는 아직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집안 어르신에게 이것을 말했더니 유명한 무당을 소개시켜준다고 하셨고, 그것이 남궁아주머니였다.
남궁아주머니는 '바리보살'이라는 신명(神名)을 가지고 계셨는데, 전국에서도 바리보살이라고 하면 모르는 무당이 없다고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남궁아주머니의 애동으로 들어가 남궁아주머니의 집에서 신당으로 출근하며 일을 도우며 공부했다.
남궁아주머니의 집에서는 시취가 풍겼는데, 바리데기의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거부감이 있었다. 부적으로 코를 막고 잤으니 말 다했지.
그나마 오랜 기간동안 거기서 먹고자면서 냄새에 익숙해지니 그럭저력 견딜만했다.
남궁아주머니께서는 다른 무당들과 비교되는 특징이 있으셨는데, 바로 부적을 파란 물감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가끔 먹으로 그리는 부적도 있지만 부적은 기본적으로 경면주사(鏡面朱砂)를 갈아서 적기 때문에 붉은 물감을 쓴다.
부적에서 노란 종이는 빛, 붉은 물감은 불이다. 악한 것들을 퇴치하는 대표적인 둘을 상징한다.
아주머니의 부적은 흰색 종이에 파란색 물감으로 그리셨다.
아주머니께선 흰색과 푸른색은 혼과 백을 상징하며 영혼을 부르는 색이라고 하셨다.
귀신은 퇴치하기보다는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라는 것이 아주머니의 지론이셨다.
이것도 그녀가 모시는 신, 영혼을 인도하고 불러오는 바리데기의 특색같은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부적도 그리실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쪽을 공부하게 됐다.
영혼을 제어할 신도 없는 내가 영혼을 불러모으는 부적을 썼다가는 어떻게 될지 불보듯 뻔했으니까.
남궁아주머니에게는 향단이라는 딸이 한명 있었다.
아버지가 없어 특이하게도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아 이름이 남궁향단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심성이 곱고 착했다.
나는 향단이를 여동생이나 조카처럼 아끼고 귀여워해줬다.
향단이는 아주머니와 내가 신당으로 가면 집에 혼자 남아있게 됐는데, 가끔 내가 같이 있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향기 향(香)자를 쓰는 아이답게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는데, 냄새가 독했던 집에서 활력소같은 존재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향기는 자기 엄마의 향수를 몰래 조금씩 뿌렸다고 한다. 그 뒤로도 향수를 좋아해서 사모으기도 했다.
어쨋든 나도 그 아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숙제를 도와주기도 했고 같이 놀러다니기도 했다.
또 내가 부적이나 고서를 공부하고 있으면 쪼르르 와서 신기하게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삼촌은 왜 빨간물감으로 그려요?"
"응, 실력이 없어서요."
"이걸로 뭐해요?"
"나쁜 귀신들을 물리쳐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나중에 무당되면 할 수 있어요."
"저도 무당돼서 삼촌처럼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어요."
나는 귀엽고 기특한 마음에 향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아마 그 시절부터 향단이가 무당이 되는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데, 수행을 끝내고 그 집에서 나갈 때는 향단이가 가지 말라고 울면서 메달렸던 기억도 있다.
그 뒤로 나도 돈벌겠다고 굿하러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지인의 소개로, 지인의 지인의 소개로 퇴마를 하러 다니고...
가끔 선무당짓을 하다가 내가 씌이기도 해서 굿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었다.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래서 향단이랑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향단이가 고등학생이 됐을때는 나도 꽤 유명하고 영한 무당이 돼어있었다.
사무소를 차리고 나서는 벌이도 쏠쏠했기 때문에 생활적으로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향단이를 볼때마다 용돈을 줘어주곤 했는데, 이게 술버릇이 돼버린건 좀 웃기기도 하다.
추억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 향단이는 분명히 반년전에 죽었다.
9)
"그러니까, 네 친구라는 남궁향단이는 일주일전부터 결석하고 있었다고?"
"그렇다니까요. 상태가 좀 안좋기는 했는데 죽은지 반년이나 됐을리가 없어요.
같이 수업도 듣고 얘기도 하고 그랬다니까요?"
나는 인영이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아까 생각하던 것의 일환으로 얘가 우울증에 빠져서 자기 친구가 살아있다는 환상에 빠진건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했다.
"엄마 성을 물려받아서 남궁향단이라고?"
"네. 아빠는 태어났을 때 부터 없다고 그러던데요."
애초에 남궁이라는 성은 흔하지 않다. 거기다가 부친이 없어서 모친의 성을 물려받는 케이스도 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는 향단이는 반년전에 죽었고, 이 아이가 말하는 향단이는 일주일전까지 학교를 다녔다.
"참. 아까 문자도 받았는데."
"문자까지?"
"'오지마'라고... 분명히...여기...어? 없네?"
핸드폰을 확인하던 인영이가 당황한다. 그럼 그렇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아니에요! 진짜 문자 받았다니까요! 실수로 지웠나? 에엥? 뭐지?"
향단이가 죽었단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가 없다.
숨이 끊어진걸 직접 내가 봤으니까.
명색이 무당이 산사람과 죽은사람을 구별 못한다고? 시취까지 쏟아졌는데?
...시취?
그러고보니 향단이의 시체는 어떻게 됐지?
장례식도 치른 적이 없는데?
예로부터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고했고, 그 굿에 참가했던 무당들은 그 일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빠르게 잊혀지고 묻혀졌기 때문에 나도 아무런 이야기도 못들었다.
정확히는 애써 무시한거지만.
설마 그렇게 아끼던 딸을 전통대로 노장(路葬)했을리는 없겠고, 무당인 아주머니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하고 넘어갔다.
오늘 아주머니를 뵙고 그것에 대해서 여쭤볼 생각이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더이상의 대질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지.
"아주머니! 저 왔어요!"
쿵쿵쿵
대문을 두드렸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집전화로도 걸었지만 안쪽에서는 벨도 울리지 않았다.
문을 돌려봤지만 잠겨있어 철컥철컥거리며 돌아가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인영이가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
"소용 없어요. 제가 여기서 한시간동안 서있다가. 아까 놀이터로 돌아간거에요."
문에 가까히 다가가니 시취가 풍겼다. 어째서인지 전보다 강해진 것 같다.
"음... 그냥 문따고 들어가야 겠는데."
"엥? 어떻게요?"
나는 집 옆으로 돌아가서 말라죽은 정원수의 옹이구멍에 손을 넣어서 열쇠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보고 인영이가 깜짝 놀란다.
"헐. 열쇠 거기있는거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여기서 3년을 살았어 임마."
열쇠를 문고리에 꽂고나서 깜빡 잊은것이 기억났다.
나는 가방에서 코마개를 꺼냈다.
"왠 코마개에요?"
"코마개에 부적감은거. 이 집이 냄새가 좀 나."
"전 안줘요?"
"넌 못맡는 냄새야."
시기에서 느껴지는 시취는 무당만 맡을 수 있다. 실제로 향단이는 이걸 못맡았다.
인영이에게 줘봤자 코맹맹이 소리만 내겠지.
"그러고보니 향단이한테서 냄새가 엄청 나던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그게...지네..."
인영이가 말을 할까말까 하고 생각하다가 입을 다문다.
나는 문고리에서 열쇠를 빼고 인영이를 재촉했다.
"뭔데? 왜 말을 하다말아?"
"아니...애가 오랜만에 학교에 왔는데 몸에서 향수냄새랑 뭐 썩는냄새가 나더라고요."
짐작가는 냄새는 시취밖에 없다.
"...언제?"
"한달 좀 안된 것 같은데."
죽은지 반년이 된 아이가 한 달전부터 일주일 전까지 학교를 다녔다.
몸에서는 시취로 추정되는 썩은내가 났다.
조각들이 연결 되려다가 흩어진다.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직접 보면 알겠지.
열쇠를 넣고 돌렸더니 갑자기 문이 제 혼자서 벌컥 열렸다.
"우에에엑"
문이 열리자마자 인영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부적까지 붙인 코마개까지 하고있던 나도 헛구역질이 났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쪽에서 진한 시취가 쏟아진 것이다.
이건 시기(屍氣)에서 느껴지는 시취가 아니었다. 진짜 시체가 썩는 냄새가 대부분이다!
냄새를 맡자마자 그냥 온 몸의 세포가 쭈뼛 곤두서는 것 같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여기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집에서 뭘 하고 계시는거지? 문을 열어주신걸 보면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긴한데.
나는 일단 내가 하려던 코마개를 인영이에게 건네줬다.
"옹, 이거 효과 종네용"
코마개를 끼니 역시 코맹맹이소리를 낸다.
코마개를 줘버린 나는 일단 임시방편으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냄새가 나긴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일단 확인을 해야한다.
그나마 문을 열고 기다리니 냄새가 빠져나가고 나도 적응해서 버틸만해졌다.
"넌 여기있어."
나는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인영이가 따라들어왔다.
"가치가요!"
"왜 따라와!"
"향당이 칭구라니까요!"
"니 친구 아니라니까!"
"망따니까요!"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맡는거랑 비교 안될정도의 냄새가 난다.
냄새때문에 머리가 아파오는걸 억지로 참으며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딸깍
몇번 껐다켰다 했지만 불은 켜지지 않았다.
뭐지? 고장났나? 하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10)
문이 닫히자 인영이가 패닉상태에 빠져서 문을 열려고 발버둥쳤다. 문은 잠긴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버둥거리는 인영이를 붙잡아서 진정시켰다.
퇴마하러 다니면서 이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낼 정도의 여유가 있다.
"침착해. 이런 일 한두번 겪어?"
"처음 경꺼등요!"
하긴. 여고생이 퇴마하러 다닐리는 없겠지. 무당이 사는 집에서 퇴마를 하는것도 웃기지만.
문을 열어보려고 시도를 했으나 열리지 않는다.
문의 안쪽에 부적이 잔뜩 붙어있고 문지방 사이까지 꾸역꾸역 막고있다.
일부러 문틈을 막으려고 해놓은 듯 한데 이건 아주머니가 열지 않으면 열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쫄지 마. 이 집 무당이랑 나랑 친하니..."
손전등으로 집안을 비춰보다가 놀라서 말이 끊킨다.
현관부터 시작해서 집에 벽과 천장에 흰색 바탕에 푸른 물감으로 그린 부적이 빼곡히 붙어있다.
원래 이 집은 벽에 탱화를 많이 걸어놨는데 전부 떼어져있었고 그 자리를 부적들이 차지하고 있다.
부적을 붙이는 것만으로 모자랐는지 아예 벽지에 주문을 써놓기도 했다.
주문은 모두 같은 문구였는데, 특정한 영혼을 부르고, 영혼들을 가두는 봉인같은 것이다.
부적에 써있는 글자를 해석하면 이런 뜻이 된다.
-남궁향단을 부른다. 들어온 영혼을 못나가게 막는다.-
그 부적이 수백장이 벽에 붙어있는 것이다.
편집을 넘어서 광기까지 느껴진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일단 창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에 가득한 냄새부터 어떻게 해야 뭘 하던가 하지.
창문을 향해서 움직이자 인영이가 어둠속에 혼자 있기 무서웠는지 허리춤을 붙잡고 따라온다.
겨우겨우 창문으로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열리지 않는다.
부적이 더덕더덕 떡처럼 엉겨붙어있다. 심지어 창문과 창틀사이의 빈틈까지 전부 메꿔져있다.
이거 낭패다.
이런 시기,시취가 넘쳐흐르는 공간에 장시간 있으면 시독(屍毒)이 오를 수도 있고 시체가 썩으면서 나오는 메탄에 질식할 수도 있다.
나야 무당이고, 훈련까지 해서 비교적 강한 편이지만 가뜩이나 인영이에게는 시기가 껴있다.
괜히 사지로 끌어들인게 아닌가 싶어서 뒤를 힐끔 돌아봤다.
인영이는 나보다 더 쌩쌩한 안색으로 응? 하면서 쳐다본다.
"응? 웨영?"
뭐야 왜 이렇게 멀쩡해.
나도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고 속이 메슥거리는데.
거기다가 아까까지 보였던 시기까지 싹 사라져있다.
"너 혹시 훈련같은거 받았냐?"
"평소에 이렁 냉새 마니 마타써요."
"아까 향단이에게서 썩은내가 났다고 했던거?"
"넹. 그리고 이거덕분 아닝까요?"
아까 내가 줬던 수호부를 꺼내든다.
수호부가 액운을 막아준다는 것은 잡귀가 들러붙기 힘들게 하는 것이지 이런 화학적인 작용을 방지해주는 것이 아니다.
코마개의 부적도 마찬가지다. 그냥 무당이 느끼는 시기를 둔하게 하는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가스와 시독까지 해결해줄 수 없다.
더군다나 몸에 붙어있던 시기를 한번에 몰아내는 것도 좀 이상하다. 해독까진 하겠지만 이건 너무 급격하다.
"수호부가 무슨 방독면같은건줄 알아?"
"방께보다 아네 드러오니까 더 평해졍는데. 향기같은게 나능 거 강끼도 하고."
"난 안에 들어오니까 더 죽을 것 같다만."
향기까지 난다고? 얘 혹시 무당기가 있는건가?
하지만 시취를 향기롭다고 느끼는 무당은 듣도보도 못했다.
부적이랑 상성이 너무 좋은건가? 아니면 이 집에 무언가 있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으로 창문의 부적을 떼어보려고 애쓰다가 포기했다.
그냥 아주머니를 만나서 문을 열고 나가는게 빠를 것 같다.
그나저나 부적을 이렇게 사용하는건 처음봤다.
"이런 미친짓을 어떻게 한거지?"
부적은 기본적으로 그린 사람의 영기를 넣어서 만든다. 한장을 만드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건 인장으로 찍어내는 부적도 아니고 하나하나 붓으로 쓴 것이다.
벽지나 문풍지마냥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그걸 수백장 써서 도배를 해버리다니, 왜 이런짓을 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딸의 영혼을 불러오려고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혼을 부르는 청백부적이 이만큼 붙어있으면 아무리 특정한 영혼을 겨냥했다고 해도, 잡귀들이 꼬인다.
거기다가 혼을 가두기까지 한다. 덪같은 구조인 것이다.
아마 문이 닫힌건 그 일환같은데, 그럼 이 집 안에는 꼬여서 들어왔다가 못나가서 갇힌 귀신이 잔뜩 있어야한다.
하지만 여긴 시기까지 넘쳐흐르고 있는데 잡귀따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게 가능한 경우는, 이 집의 무당이 너무 영험해서 귀신들이 얼씬을 못하거나,
귀신들도 무서워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거나.
"왔니?"
"엉마야!"
뒤에서 남궁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영이가 깜짝 놀라서 소리지른다.
그쪽으로 손전등을 비췄더니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산발을 한 아주머니가 안방 앞에 서계셨다.
그리고 손에 식칼을 들고 계시다.
뭔가 싶어서 얼굴을 봤더니 입은 헤 벌려져있고 눈은 반쯤 풀려있다.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보시더니 씨익 웃으셨다.
"가인아 마침 잘왔어. 걔좀 잡아줘."
"누구요?"
"니 옆에 여자애."
식칼로 인영이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드신다.
"...왜요?"
"향단이한테 줘야하거든."
"향단이는 반년전에 죽었을텐데요."
"아니야. 안죽었어. 내가 살려냈어."
"아니에요! 향당이 안주겅따니까요!"
인영이가 딴지를 건다. 나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넌 좀 가만히 있어!"
아주머니가 제정신이 아니신건 한 눈에 봐도 알겠다. 딸이 죽어서 미쳐버리셨다고 추측하는 것은 쉬웠다.
문제는 식칼까지 들고 뭔 짓을 하실지 모른다는거지.
"안죽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려내요?"
나는 아주머니의 말씀의 모순을 지적했다. 갑자기 아주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잡으라고!"
그리고 입에서 나온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귀곡성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쫙 풀린다.
인영이는 벌써 주저앉아있었다.
"#^%^%&@#"
악귀같은 얼굴로 식칼을 겨누며 뭐라고 씨부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몸에서 무당의 기운인 영기가 아닌 귀신의 기운인 귀기가 흐른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 짐승마냥 안광이 나왔다.
이 집처럼 귀신이 꼬이기 좋은 환경임에도 귀신이 얼씬도 안하는 곳이 있다.
그런게 가능한 경우는 무당이 너무 영험해서 귀신들이 얼씬을 못하거나.
귀신들도 무서워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 몰려있어서 못찾았거나.
11)
아주머니는 이미 신도 잃어버린 듯 하셨다. 영기가 예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미미한 수준이다.
"바리데기님은 어떻게 됐어요?"
"버렸어"
아주머니가 고개를 기이하게 옆으로 꺾으시더니 흭흭거리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신다.
무당이 신기를 잃는 경우는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향단이가 죽은게 바리데기때문이라고..."
"응. 근데 빨리 걔좀 잡아줘. 향단이가 친구보고싶대"
"향단이는 죽었다니까요! 자꾸 왜그러세요!"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을 잃는다고 완전히 일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머니처럼 공부가 깊은 큰무당은 부적을 쓰고 귀신을 다를 정도의, 능력은 남아있다.
하지만 신이 빠져나가면 무당의 정신에는 큰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공백을 다른 것들이 채우게 된다. 즉 아주머니는 신을 내보낸 이후에 무언가에 씌였다는 것이다.
미쳐버린 무당의 말로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아주머니한테서 걔네 빼드릴게요."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파사부(破邪符)를 꺼내들었다.
향단이도 죽은 마당에 아주머니까지 미쳐 죽어버리는 꼴은 도저히 못본다.
일단 파사부를 붙이면 잡귀들은 전부 도망갈 것이다.
그 뒤에 아주머니를 제압하고 다른 무당들까지 불러서 굿을 하면 되겠지.
이때 나는 여러모로 흥분해서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 아주머니와 인영이의 말대로 '향단이가 진짜 살아 있는 경우'
혹은, '살아있는 것 처럼 보이는'경우.
지이이이익....
무언가 죽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주머니의 뒷쪽, 안방에서 무언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냄새가 배로 독해졌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다 썩어가는 시체였다.
물러터진 살은 우둘투둘한 뭔가가 기포처럼 올라와있고, 제 색을 잃고 검푸른색으로 변해있다.
썩어 떨어져나간 살은 진득한 시쳇물을 흘리고있고 거기서 악취가 나온다.
집안의 악취의 원인은 저것인 모양이다.
인영이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향다나!"
아니, '향단이의 시체'다. 결국 장례도 안치르고 시체를 집에 방치해놓은 모양이다.
일단 다 썩어가는 시체가 살아있을 리가 없고, 무당인 나는 죽은것과 산것을 구별 할 수 있다.
저것은 향단이의 시체 안에 다른 것들이 들어간 것이다.
자세히 보니 피부 위로 푸른색 문신같은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간다.
향단이는 반년전에 죽었다. 이건 확실하다.
그 이후로 아주머니는 시체를 가지고 돌아왔고, 특유의 영혼을 모으는 부적술과 빙의술로 시체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설명이 가능하긴 한데, 인영이가 봤다는건 뭐지?
"니가 본게 저거냐?"
"아니에요! 훵씬 멍쩡해써요!"
인영이가 아는 향단이와 내가 아는 향단이는 동일인물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저 상태로 학교를 다닐수 있을리가 없다. 냄새는 둘째치고 저 상태로 수업을 받았다고?
저건 그냥 시체에 들어간 귀신들이 시체를 움직이고 있는상태다. 개미가 지렁이 시체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집의 특수한 환경때문에 저게 가능한 것이지 집밖으로 나가면 자기것이 아닌 몸에서 다 빠져나갈 것이다.
게다가 수업을 받기는 커녕 대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향단이의 친구라는 인영이가 그것도 못알아챘다고?
인영이의 말을 들어보면 일주일 전의 향단이는 시체썩는 냄새가 심했다.
그럼 그때부터 잡귀가 들어갔다는 이야기인데, 그 상태에서 수업을 받고 대화를 해?
인영이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것 같긴한데, 상황이 연결이 안된다.
그 일주일 안에 무언가가 일어난 것은 분명한데 추측도 할 수 없다.
일단 나는 아주머니를 말리기로 했다.
"아주머니. 그거 향단이 아니에요. 살아있지도 않은데다가 안에 다른게 들어가있잖아요!"
"아냐. 우리 이쁜 딸이야."
아주머니가 허리를 숙이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시체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 상냥한 손결에 썩어 물러터진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뽑혀나온다.
쪽
시체의 볼에 뽀뽀를 한다. 부드러운 입술에 피부가 뭉개지면서 진물이 흐른다.
그리고 일으켜 세운다음에 다정하게 가슴에 안는다.
썩어버린 시체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진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우웨웩!"
구토와 함께 눈물이 같이 흐른다.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아주머니는 완전히 미쳤다.
미쳐버린 모정때문에 '영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라는 지론조차 던져버리고 빙의술로 시체를 움직이면서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딸이 살아있는 마냥 시체의 머리를 빗기고, 시체를 안고자고, 시체에게 뽀뽀를 해준다.
잔인하리만치 애처로운 광경에 나까지 미쳐버리는 기분이었다.
"허억...허억...."
구토를 하니 겨우 참고있던 숨을 한번에 몰아쉬게 됐다.
가스와 시독이 몸으로 스며든다. 지금까지 그것들을 마셔온 덕분에 아슬아슬했던 한계치를 한번에 훅 넘어버린다.
그대로 의식이 훅 멀어진다.
안된다. 여기서 의식을 잃으면 나는 물론이고 인영이까지...결국에는 아주머니도...
...안 돼...
...안되는데...
...
...
의식이 멀어지는 틈에서, 은은한 향기를 맡은 것 같다.
(계속)
-------------------------------------------------
저의 모자란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덧글과 추천을 주시는 분들도 사랑해요!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또 편을 나누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스압이 있더라도 한번에 몰아쓰면 좋은데 지금 감기기운이 있어서 몸과 목 아프고 기침도 나고 해서 한번 집중해서 쓰기가 힘드네요.(열은 안납니다.)
원래는 상,하로 쓸 예정이었는데 이게 상,중,하가 돼고... 상,중,중하,하가 되고...
잘못하면 상,중,중하,하상,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넘버링을 1,2,3으로 붙일 걸그랬어요.
다음편에서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