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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따돌리느라 집에 선장을 데려갔다”
게시물ID : sewol_301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ondorJoe
추천 : 7
조회수 : 77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5/24 15:49:26
 
기사출처 :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2&cid=984650&iid=855265&oid=028&aid=0002232995&ptype=011
 
 
 
 
 

“취재진 따돌리느라 집에 선장을 데려갔다”


목포해양경찰서 박아무개 경사는 21일 밤 11시께 인터뷰를 마치고 전남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지난달 17일 밤부터 14시간 동안 머문 곳이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목포해경 박 경사에게 생긴 일


▶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관의 아파트에서 잠을 잤고, 당시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1시간45분간 작동을 멈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 계획이 없다”던 합동수사본부는 최근 폐회로텔레비전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피의자를 집에 재운 행동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해당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조직도 해체되고, (조직이) 저를 보호해주지도 않고… 그런데 참 질기시네요잉.”

21일 밤 9시30분께 전남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아파트 근처 빵집에 한 경찰관이 들어섰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자신의 아파트에 재운 목포해양경찰서 박아무개 경사다. 수차례 만남을 거절하던 박 경사가 인터뷰를 하는 데 동의하고 뒤늦게 약속 장소에 나왔다. 굳은 얼굴의 박 경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차라리 글로 쓸게요”라고 말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처음 나선 그는 기자가 노트북을 내어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박 경사와 기자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박 경사는 A4 용지 1장 반 분량으로 글을 남겼다.

“저는 목포해양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사 박○○입니다. 우리 경찰서 수사계 합동수사본부 업무 지원을 하던 중 합동수사본부의 지시에 의해 선장 이준석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 당시 지시 사항인 여관으로 선장을 데리고 가려 했으나 기자들이 따라와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판단에 의해 기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선장을 본인의 아파트로 데리고 갔으며 그때 만약에 여관으로 갔다면 수많은 기자들에 의해 여관 주변을 포진했을 것이며 또한 만약의 사태이지만 본조사를 하기 전 선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선장의 신변이 이상 없어야만 정확한 사고 원인 및 관련자들의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며 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을 예방할 것입니다. 당시 집에는 처와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죽했으면 선장을 집으로 데리고 갔겠습니까. 처는 곧바로 세월호의 선장이라는 것을 눈치챈 후 애들을 남겨놓은 후 처갓집으로 갔습니다.”

선장을 여관에 데리고 가던

경찰관은 취재진 차량을

따돌리려 아파트에 들어갔다

후배 경찰관에게 신병 관리를

당부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선장이 아파트를 떠난 뒤

아파트 CCTV가 멈췄다

우연일까 의도적 삭제일까

수사 필요없다던 검찰은

뒤늦게 CCTV 분석에 들어갔다

“선장이 살아야 진실 규명 될 거 아니냐”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날,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관의 아파트에서 머무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국가적 재난을 일으킨 당사자로 조만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한 피의자를 경찰관의 집에서 재운 상황은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게다가 선장이 아파트에서 14시간을 보낸 당일 이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1시간45분간 작동을 멈춰 ‘제3자’가 이 선장을 만나고 갔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키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 수사관 집에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수사력을 집중했던 검경합동수사본부(합수부)는 논란 직후 “수사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이 부실 구조를 한 해경으로 옮겨가면서 검찰은 뒤늦게 이 선장이 머문 아파트의 폐회로텔레비전 하드디스크를 확보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이봉창 형사1부장은 “해당 경찰관 아파트의 폐회로텔레비전이 기계적 결함 때문에 작동을 멈췄는지, 편집된 것인지, 편집됐다면 누가 의도를 갖고 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분석중이다.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구조 과정까지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폐회로텔레비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선장을 재운 박 경사의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 하드디스크를 확보했으나 박 경사를 따로 조사하진 않았다.

논란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당사자인 박 경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박 경사와 기자는 노트북을 사이에 놓고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빵집에서의 인터뷰였지만, 인터뷰 분위기는 경찰서 조사실처럼 무거웠다. 박 경사는 합수부에 속한 이 선장의 수사관이 아니라 합수부 업무를 외곽에서 돕는 지원팀에 속해 있다.

“제가 진짜 참 어렵습니다. 오늘 삼십며칠 만에 퇴근하고 처음 집 앞에서 소주 한병을 먹었어요. 차박차박 길을 걸어오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잖아요. 청해진과 결탁됐다느니. 이 사람(선장)이 살아야만 실체적 진실이 규명이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몰라주고 저만 뭐라 하고. 제가 오죽했으면 국회 가서 선서하고 다 말한다고 했겠습니까. (이 선장) 신변에 이상이 생겨봐요. 생기면 생겼다고 또 난리겠죠. 사람이 수백명이 숨졌는데 선장 놔두면 테러 당해요. 여관 간다고 해도 받아주지도 않아요. 지역 사회에서, 목포에서 얼마나 민감한데. 아, 근데 조사만 하다가 제가 (조사를) 받으려니까 이상하네요.”

박 경사는 ‘해경 아파트에서 묵은 이 선장’ 보도가 나간 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감찰 조사를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물을 들이마시거나 인터뷰 중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도 했다.

목포해양경찰서 3층에 꾸려진 검경합동수사본부. 조만간 조직이 해체될 목포해양경찰서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경찰관도, 흘러나오는 이야기 소리도 없었다. 세월호 부실 구조로 감사를 받고 있는 해양경찰서 복도 창문 밖으로 쪽빛 바다가 보였다.

“목포해양경찰서를 나선 시간이 17일 밤 9시40분쯤이에요. 합동수사본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건 밤 9시35분이고요. 저는 그날 오후에 팽목항에서
희생자 신원을 파악하는 업무를 맡았고 합수부 업무 지원도 했어요. 세월호 선장 이준석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당시 혼자는 못
가겠으니 인원 한명을 추가해 달라고 했어요. 저는 차량에 타고 대기하고 있었고 수사과 직원 두명이 선장을 데리고 나왔죠. 그런데 기자들이 선장을
둘러싸서 간신히 선장만 제 차량에 타는 바람에 원래 함께 가기로 한 직원은 타질 못했어요. 선장과 저만 차에 타게 된 거죠. 이후 경찰서 근처 여관에 가려고 했는데 취재 차량을 따돌리느라 힘들었어요. 수시로 차량 룸미러를 통해서 선장의 상태를 확인했고요. 선장에게 ‘이러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여관에 갈 수 없겠다’고 말을 하자 선장이 말은 안 하고 고개는 푹 숙인 채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우리 집에 가는 게 차라리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승낙을 했어요. 우리 경찰서 후배 직원에게는 제 아파트로 오라고 전화를 했죠. 그날 밤 제 집에 도착한 게 밤 10시10분쯤 됐을 겁니다.”

합수부에서 모른다고? 글쎄요…

-기자들을 따돌린 뒤 다시 제3의 장소로 이동할 수는 없었나요?

“아파트에 도착한 뒤 선장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따라온 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둘러싸서 쉽게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후배 직원이 도착
했고 직원과 선장, 두명만 겨우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갔어요. 이후 저도 아파트에 들어갔고요. 저와 선장, 후배 직원은 15분 정도 아파트에서
휴식을 취했어요. 선장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려고 동태를 살피려 아파트 현관에 나갔더니 기자들이 가지 않고 있었어요. 다시 아파트로 들어와 10분쯤 있다가 후배 직원에게 ‘우리는 선원 조사를 맡고 있지 않으니 특별한 말은 하지 말고 잘 데리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경찰서로 나갔어요. 집사람은 세월
호 선장인 줄 알고 처갓집에 가버렸고, 아파트에 선장과 경찰서 후배 직원, 자고 있는 제 아이 두명이 있었던 거죠. 다음날 경찰서에서 저와 선장을 따라왔던 그 기자도 만났습니다.”

한 아파트로 들어가는 이 선장과 인터뷰를 시도하는 취재진의 모습이 한 종합편성채널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선장 신병을 보호한 경찰관과 취재진이 17일 밤 실랑이를 벌였던 것은 사실인 셈이다.

-선장이 집에 혼자 있었던 적은 없었나요?

“후배 직원과 선장이 함께 거실에서 잤다고 들었습니다. 혼자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에서 빠져나와 사무실에서 희생자 관련 문서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샜습니다. 18일 낮 12시께 합수부 직원들과 선장을 데리러 집에 도착했어요. 경찰서에 돌아온 시간이 낮 12시15분께입니다. 경찰서에 도착한 이후에는 합수부 직원들이 이 선장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이후 상황은 모릅니다. 그리고 제 집에서 이 선장이 잔 상황을 사무실에 보고했어요. 사고 터지자마자 계속 팽목항 현장에 있었고 정신도 없었어요. 저는 수사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합수부가 시키면 아, 그런가 보다 했어요. 왜냐면 각자 일이 있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업무도 하면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하는 거예요. 인원은 없지. 분주해요.”

-선장 신병보호 업무를 누가 시켰고, 집에 재운 사실을 누구한테 보고했나요?

“이 선장을 데리고 (여관에) 가라는 지시는 수사계장이 했죠. 아이고, 미안해 죽겠네. 계장도 오더(지시)를 받고 밑에 시킨 거예요. 목포해양경찰서에
합수부가 차려져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오더는 계장 위에서 내려졌겠죠.”

-집에 제3자가 들어오진 않았고요?

“우리 집을 어떻게 알고 온답니까. 청와대 직원이 온 사실이 없고 청해진 직원도, 국정원 직원도 온 사실이 없어요. 우리 집 앞에 교회가 하나 있어요.
저는 무슨 교회인지도 모르는데 구원파 교회라고 소문 나질 않나. 저 집 내놨습니다. 기자들이 아파트에 자꾸 오고. 이렇게 살겠습니까.”

-지금도 합수부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나요?

“네. 중추적인 역할도 아니고 잔심부름이나 문서 처리도 하고요. 주로 목포서 형사계 일을 하고 가끔 합수부를 지원하는 겁니다. 2002년 해경이 돼서
7년을 형사계에서 일했고요.”

-이 선장을 아파트에 데려간 뒤 상부에 보고했다고 하는데, 합수부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던데요.

“몰랐다? 그 사람들이 몰랐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글쎄요.”

폐회로텔레비전 고장 둘러싼 엇갈린 증언

당시 해경이 이 선장 등 선원들의 신병 확보에 나선 때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3~4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 선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 오후 5시40분이 돼서야 경비정에 탑승해 해경에서 선체 구조를 설명했다. 이 선장은 16일 밤부터 17일 새벽 4시까지 1차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 사무실에서 쉬었다. 2차 조사는 17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이어졌다. 이 선장은 2차 조사가 끝난 이후인 17일 밤 10시부터 18일 낮 12시까지 14시간 동안 박 경사의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박 경사와 합수부 직원들은 18일 낮 12시께 이 선장을 아파트에서 데리고 나갔다. 폐회로텔레비전은 이 선장이 나가고 난 이후인 오후 1시15분부터 3시까지 멈췄다. 이 시간대 이후부터 카메라는 정상 작동했다. 폐회로텔레비전이 작동을 멈춘 1시간45분간 이 선장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검찰에 시간대별 수사 상황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합수부는 18일 저녁 7시께 이 선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선장이 박 경사의 아파트에서 머무른 사실이 논란이 되자 합수부는 거리 두기를 했다. 보도 직후 검찰은 “신병 관리를 잘하라고만 지시했을 뿐”이라며 “해경 아파트에서 잠을 잔 사실을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선장은 경찰관의 집에 머무르고, 선원들은 목포 죽교동의 한 모텔에서 합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의자 관리를 소홀히 하고 이들이 입을 맞출 시간을 벌게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달 21일 선원 김아무개씨가 모텔에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평현 합수부 부본부장은 “세월호 침몰 초기에 팽목항에 있었기 때문에 (해경 아파트에서 잠을 잤다는) 보고를 사후에 받았다. 취재진을 따돌리느라 아파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경찰관이 보호를 원하는 선원들과는 함께 있었다. 영장 없이 구속은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해명했다.

<한겨레>가 전남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박 경사의 아파트를 처음 찾은 20일은 검찰이 폐회로텔레비전 하드디스크를 확보한 다음날이다. 문제가 된 폐회로텔레비전에 대한 아파트 관리자들의 설명은 오락가락했다. 조용하던 아파트에 이 선장이 머무른 사실이 드러나고 취재진이 드나들자 관리사무실 쪽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실 관계자는 “선장이 다녀간 이후인 5월1~8일 해당 폐회로텔레비전이 고장나서 교체했다”고 말했다. 1년간 근무했다는 경비실 관계자는 “이 선장이 찍힌 3번 카메라는 고장나서 교체한 적이 없다. 다만 2번, 6번, 12번 카메라는 예전에도 고장나서 수리했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카메라를 놓고 설명이 달랐다.

박 경사는 이사를 가려고 이 선장을 재운 자신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놨다. “기자들이 경비실이랑 관리사무실에 찾아오고. 제가 여기 살 수 있겠습니까?” 박 경사는 인터뷰를 마친 뒤 조만간 떠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경찰관이 영장 없는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에서 잠을 재운 대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1시간45분간 작동을 멈춘 폐회로텔레비전에 대한 진상 규명은 돼야 한다. 만약 선장이 다녀간 날 폐회로텔레비전이 단순 고장으로 작동을 멈춘 것으로 밝혀진다면, 박 경사 또한 언론에 의한 피해자일 것이다. 폐회로텔레비전을 둘러싼 의문은 아직 진실의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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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꼬리에 꼬리를 물게끔 의문스럽군요..
말이 안되는게 왜 멀쩡한 유치장 놔두고 왜 굳이 여관까지 데리고 가려했는지. 만약 중간에 틈을 이용해 도망갔음 어케하려고?
그리고 cctv는 왜 작동하지 않은건지.
얼른 죄다 진상규명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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