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취(屍臭) -上
시취(屍臭) - 中
시취(屍臭) - 中下
시취(屍臭) - 下上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
18)
광원이 없는 집안은 칠흑같이 어두워 핸드폰의 불빛으로 어둠을 걷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가스와 시독으로 가득차서 숨을 쉬는 것도 괴롭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은 없었다. 향단이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향기가 주위를 밝혀주고, 숨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무당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든든함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외감을 느낀다.
내 뒤로는 향단이와, 향단이의 손을 붙잡은 인영이가 따라오고 있다.
1층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어 조용했다.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수신-베프향다니♥: 어머니는 안방에 계세요.
인영이의 핸드폰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가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아챘다.
아래를 보니, 계단 난간 너머로 목과 팔이 비정상적으로 긴, 검은색의 연기로 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목을 ∩형태로 구부려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적들에 꼬여들어온 귀신이다. 계단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하는듯 내 발을 쭉 잡아당긴다.
평소라면 이정도의 잡귀야 부적으로 가볍게 처리를 하겠지만,
나는 지금 남궁아주머니에게 쓸 혼살이꽃으로 그린 부적 한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향단이가 그것의 팔목을 발로 꾹 밟아버렸다.
그러자 그것은 화들짝 놀라며 팔을 거두더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소매로 식은땀을 닦았다.
"휴, 덕분에 살았다."
수신-베프향다니♥: 별말씀을.
밤이 되자 현관과 창문을 통해서 검은색의 인영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향단이랑 마주치자마자 기겁하며 도망가거나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향단이의 주위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귀신들은 자기보다 큰 영혼, 특히 신들에게는 대적하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깐 분명히 향단이가 여기 처음 왔을때는 저들에게 도망다녔다고 했었는데.
"너 갑자기 왜이렇게 쎄졌어? 아까는 지네한테도 쩔쩔 메던데"
수신-베프향다니♥: 모르겠어. 갑자기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아.
내가 하고싶은말을 인영이가 대신 해준다. 하지만 향단이도 왜 그런지는 모르는 것 같다.
난 집히는 구석이 있긴 있었다. 아마 인간이 신을 믿으면 그만큼 신도 강해진다는 거겠지.
걱정했던 잡귀들이 다가오지 못하니 그 뒤로는 쉬웠다.
나는 떨어져있는 내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눈물나게 반갑다 가방아."
직업병때문에 가방에는 항상 퇴마에 필요한 도구들을 가지고 다닌다.
일단 가방에서 파사부를 전부 꺼냈다.
향단이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안방에는 거실과는 비교도 안되는 숫자의 귀신들이 몰려있다.
안그래도 안방쪽은 향단이의 몸에서 나오는 빛으로도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이 집 안에 귀신들이 들어갈 수 있는 몸은 아주머니와 향단이의 시체 정도이다.
하지만 시체가 계속 썩어서 인간의 형체를 잃을수록 귀신이 들어가있을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진다.
그러면 그 좁은 공간에서 나온 귀신들은 바로 옆의, 보다 넓은 공간인 아주머니에게 들어가서 뭉치게 된다.
아주머니에게 한계까지 귀신이 들어갔다고 할 때, 비교적 강해진 지금의 향단이라도 혼자서는 버거운 상대일 것이다.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는만큼 퇴마술을 발휘해야한다.
"금줄...은 이 집 자체가 밀폐돼있으니 필요하진 않을 것 같고."
금줄은 제령을 할 때, 잡귀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잡귀가 다가오지 못하게 할 때 쓴다.
지금 상황에서는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단 안방에 있는 귀신들을 밖으로 빼내야 하니까.
나는 금줄대신에 대신에 셀로판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셀로판테이프에 부적을 착착 붙인다.
한 줄에 부적을 다섯장씩 붙인 것을 여섯줄 만들어서 문에 붙인다.
이건 말하자면 부비트랩이다. 안에서 나오는 귀신이 부적에 닿으면 소멸할 것이다.
문앞에 붙이는 것으로 모자라서 거실바닥에도 부적을 깔았다.
또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염주를 꺼내서 목에 감았다.
유명한 절에 큰 액수를 시주하고 그곳의 지주스님에게 받은 것인데, 내가 가진 퇴마도구중에 두번째로 비싸다.
"또 뭐가 있더라... 참. 인영아 너 이거 줄테니까 들고있어라."
"이게 뭐에요?"
"복숭아나무로 만든 목단검."
복숭아나무는 퇴마효능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안들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너는 절대로 앞으로 나서지 말고 그냥 뒤에 서있어."
인영이에게는 목단검을 주고, 나는 가방에서 진짜 칼을 한자루 꺼냈다.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劒)이라고 해서 모든 악을 벨 수 있다는 전설로 내려오는 검이 있는데, 이건 그 모조품이다.
호랑이년, 호랑이달, 호랑이날, 호랑이시가 돌아오는 12년에 한번씩 만들 수 있다는 사인검이란 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퇴마도구중에서 제일 비싼 녀석이다.
원래 내가 굿에서 칼춤을 출 때 쓰는 물건인데 날이 무뎌서 사람에게는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귀신에게는 이것보다 날카로운 물건이 없다.
원래 한쌍이긴 하지만 굿이 없을때는 한자루만 가지고 다닌다.
"오. 삼촌 그거 들고있으니까 진짜 퇴마사같아요."
"무당이라니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작전은 이러했다.
향단이의 시체에 붙어있는 귀신들과는 접촉하지 않는게 좋다. 적을 늘릴 필요는 없으니 일단 안방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자제해야한다.
거실로 아주머니를 불러낸 후에, 나와 향단이가 부적으로 아주머니를 제압한다.
그리고 혼살이꽃으로 그린 부적을 붙여서 혼을 되살린 후에, 제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에게 문을 열도록 하고 귀신들을 몰아낸다.
마침 향단이가 있으니 나갈 길만 있다면 귀신들은 달아날 것이다.
"일단 밖으로 불러볼까?"
이렇게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안방안에서는 불길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문 바로 앞에서 꿈지럭거리고 있으면 내다볼 법도 한데 말이다.
나는 소금과 팥이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방 안을 향해 던져넣었다.
팥과 소금 알갱이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투투둑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법도 한데, 바닥이 없는 것 처럼 안쪽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팥과 소금을 다 던져넣었는데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안방에 있는게 맞을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방 앞에 서서 들여다 보고 있는데도 안이 보이지 않았다.
토치라이터를 내서 안을 비쳐봤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손전등이 없으니 이거라도 써야지.
동시에 뒤에서 '띠링'하는 메시지가 수신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인영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삼촌 바로 앞에!"
안을 비추자, 바로 정면에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아차, 하고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내 멱살을 낚아채서 방 안으로 던져넣었다.
19)
쾅!
충격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방문이 닫혀버렸다.
안방의 바닥은 찐득찐득한 액체가 흘러있었다. 시체 썩은 물이겠지.
몸을 일으켜세우고 다시 달려들지도 모를 아주머니를 경계했다.
밖에서 보던것처럼 안은 진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허공인데도 진흙속에 있는 것처럼 무언가가 가득 차있는 느낌이다.
다행히 밖에서 희미하게 쾅쾅거리면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향단이와 인영이가 문을 열려고 하는 모양이다.
밖에서 볼때 안방문에는 딱히 부적이 붙어있지 않았다.
아마 지금 아주머니 자신이 문을 지나가지 못하게 막고있을 것이다.
"흭, 흭, 안돼. 안돼. 안돼. 향단이는 못줘. 나쁜새끼들. 죽여버릴거야."
저편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으로 당겨지는 와중에 딸려온 부적테이프들을 손에서 뭉쳤다.
혼살이꽃 부적은 나 혼자서 사용할 수 없다. 향단이가 같이 있어야한다.
일단 혼자서 아주머니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힌다.
그럼 문을 막고있는 힘이 약해져서 향단이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큰 과정은 변하지 않는다.
"아주머니. 향단이를 해치려고 온게 아니에요."
"아니야. 흭! 너도 똑같아.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조금만 기다리세요. 편하게 해드릴게요."
어둠속에서 붉은 안광이 보였다. 짐승같은 비명소리와 함께, 내쪽으로 쇄도해온다.
나는 부적테이프중 하나를 뭉쳐서 그쪽으로 던졌다.
슈아아아악!
부적뭉치가 그녀의 어깨에 붙어서 타오른다. 붉은 불빛이 방 안을 밝히기 시작했다.
귀신이 몸에 들어간 사람에게 부적을 붙이면, 부적에 타는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물론 진짜 화상을 입는 것은 아니고 귀신을 부적이 정화하면서 일어나는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부적이 효력을 다하면서 불빛이 다시 약해진다. 나는 부적뭉치를 하나 더 던졌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이번에는 배에 붙었다. 다시 밝은 불빛을 내면서 타오른다. 남은 부적테이프는 하나.
보통 잡귀는 파사부 하나면 차고 넘치지만 얼마나 많이 들어가있는지 총 10장이 붙었는데 비틀거리는 기미도 안보였다.
나는 부적을 더 던지는걸 포기하고 일단 마지막은 아끼기로 했다. 그리고 사인검을 들고 아주머니께 달려들었다.
"용서하시길!"
칼등으로 아주머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사람을 베기에는 날이 무딘, 귀신을 베는 사인검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칼날로 치는것은 꺼려졌다.
하지만 그 작은 망설임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아주머니가 손으로 사인검을 붙잡은 것이다!
"미친!"
"아아아아아아!!"
아주머니는 그대로 검을 당겨서 뺏어서 던져버렸다.
사람으로 따지면 달궈놓은 쇠막대를 맨손으로 붙잡아 당기는 것이다!
귀신은 사인검에게 절대로 약할텐데! 잡기는 커녕 다가오지도 못한다!
아주머니는 숨을 몰아쉬면서 악귀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향단이는...못줘...다시 못보내... 개새끼들..."
아무리 몸에 귀신이 들어갔다고 해도 너무 강하다.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런 오염된 공간에서 오래도록 지냈을텐데 아주머니는 힘이 넘쳐흘렀다.
그래도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사인검을 뺏은건 무리한게 맞는지 더이상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한다.
나는 목에 감고있던 염주를 풀어서 오른손에 감았다.
슬슬 기운이 떨어지시는 듯 하니 이대로 마무리까지 가능할 것 같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아주머니. 걔네 다 빼네고 병원으로 모셔다드릴게요."
아주머니에게 달려들 기회를 엿보며 반원형태로 방을 돌았다.
우득
그때 무언가를 발로 밟았다.
"향단아아아아아아!!!"
비명소리에 향단이의 시체라는 것을 눈치챘다.
미안하다 향단아라고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는데 갑자기 시체가 내 발몪을 낚아챘다.
"어?"
대번에 몸이 넘어간다.
뒤로 쓰러졌는데, 아까 계단에서 봤던 목이 긴 놈이랑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벌쭉 웃는다. 당했다.
"향단이한테서 떨어져!!"
아주머니가 그대로 달려와서 나를 덥쳤다.
염주가 감긴 손으로 내 목을 조르려고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밀어낸다. 염주에서 파직파직하는 스파크가 튀긴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목으로 손을 뻗었다.
결국 염주쪽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진다. 염주구슬이 방 안으로 흩어졌다.
염주가 사라지자 그대로 목을 붙잡혔다. 괴물같은 손아귀힘이 목을 조른다.
가지고있던 마지막 부적뭉치를 아주머니께 던졌다. 던진다기 보다는 얼굴에 가져다 붙였다.
슈아아아아악!
부적에 불이 붙어서 뜨거울텐데 전혀 주춤하지 않는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딸... 못보낸다..."
"크으으으!"
필사적으로 품안에서 아까 받았던 수호부를 꺼냈다. 그걸 아주머니에게 붙였다.
"아아아아악!"
원래 이렇게 쓰는 용도는 아니지만 다행이 효과가 있는지 이번에는 눈에 띄게 힘이 줄어들었다.
나는 힘을 다 쥐어짜서 아주머니를 걷어찼다.
발차기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내 목에서 손을 떼고 저편으로 굴러간다.
"쿨럭! 쿨럭!"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다.
나는 틈을 타서 사인검을 주워들고 사인검으로 문을 퍽퍽 찍었다. 문에 흠집이 생긴다.
문을 막던 기운이 약해지자 벌컥 열리며 향단이가 들어왔다.
"삼촌!"
"인영아! 가방좀 이쪽으로 던져줘! 들어오지는 말고!"
안에 아까처럼 잡귀가 남아있을 것이다. 인영이는 부적들을 붙여놓은 바닥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여기요!"
가방을 받아들고 안에서 부적을 몽땅 꺼냈다.
제압부 10장이다. 파사부는 아까전에 다 썼다.
파사부가 귀신을 태운다면 제압부는 귀신을 둔하게 만든다.
제압부로 아주머니를 묶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혼살이꽃 부적을 쓰면 될것이다.
아주머니의 힘이 떨어지자 방 안으로 들어온 향단이에게 나오는 빛으로 방안의 밝혀진다.
방 안의 잡귀들이 향단이에게 혼비백산해서 방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중에 일부는 아까 남아있던 부비트랩에 걸리거나 바닥에 깔아놓은 부적을 밟고 타오른다.
내 발목을 낚아챘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야."
나는 친절하게 그녀석을 불렀다. 그놈이 목을 뱅글 돌려서 나를 쳐다본다.
"니덕분에 죽는줄 알았잖아. 닌 내가 손수 보내줄게."
사인검으로 길다란 목을 쳐버리자 귀곡성과 함께 형체가 흩어지면서 사라진다.
20)
"으으...안돼... 안돼... 안돼..."
아주머니는 시체를 부둥켜안고 필사적으로 구석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시체는 이미 귀신들까지 다 빠져나가버려서 텅 비어있다. 진짜 단순한 썩은고기다.
"안돼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한계까지 소진해, 이미 힘까지 다 빠져버린 것 같다. 이건 제압부를 쓸 필요도 없어보인다.
"제발..."
"아주머니."
"향단이는 안돼...흐윽...."
시체를 보호하려고 하는지 필사적으로 감싸안는다.
눈물겨운 모정에 코끝이 찡하게 저려왔다.
나는 향단이를 힐끔 쳐다봤다. 향단이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향단이는 죽었어요 아주머니."
"아니야. 여기 있잖아."
"그거 시체에요."
"아니야. 우리 딸이야. 저리가! 저리 가라고!"
손에 잡히는 빗이나 리모콘따위를 던지며 내가 다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나는 혼살이꽃으로 만든 부적을 꺼내들었다. 이제 다 끝이다.
향단이가 부적의 다른편을 마주잡는다.
"지금 제정신으로 되돌려드릴게요."
부적을 아주머니의 이마에 붙였다. 그러자 푸른 빛으로 타오르며 사라진다.
눈부신 푸른빛이 방안을 감싼다.
부적이 다 사라지자 아주머니가 잠에서 깨어난 듯 두 눈에 초점과 생기가 돌아온다.
향단이를 발견하자 두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향단아?"
향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아!!"
아주머니가 향단이를 부둥켜안는다.
"미안해...흐윽... 엄마가 미안해..."
향단이는 조용히 아주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바리데기님이 보내셨데요."
"정말이니? 아이고... 바리데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당은 신을 버렸지만 신은 무당을 버리지 않았다.
딸이 자기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자기를 버리고 미쳐버린 무당을 위해 딸의 영혼을 보내준 것이다.
영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바리데기 답다고 할까.
난 등을 돌려서 방 밖으로 나왔다. 모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보고있던 인영이가 쪼르르 따라온다.
"끝난거에요?"
"응."
아까보다 집안의 시기가 많이 죽어있다.
나는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아까와 달리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신선한 밤바람이 집안의 냄새를 몰아나간다.
창문도 전부 열었다. 부적들이 끼어있긴 했지만 사인검으로 잘라냈다.
"이거 부적도 다 회수해야하는데. 쩝."
수백장이나 되는 부적들을 일일히 떼어낼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아프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안방으로 돌아가니 모녀는 여전히 부둥켜안고 있었다.
나와 인영이가 들어가자 향단이가 아주머니의 품에서 몸을 떼어냈다.
띠링, 하는 소리와함께 인영이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전송된다.
수신-베프향다니♥: 미안해요 엄마.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 안된다. 가지마렴. 그냥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니?"
수신-베프향다니♥: 미안해요. 바리데기님이 주신 시간이 다 끝난 것 같아요.
아주머니가 향단이에게 매달린다. 향단이는 씁슬한 웃음을 지었다.
수신-베프향다니♥: 항상 지켜볼게요 엄마. 몸 건강하시고요.
아주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흐느끼셨다.
수신-베프향다니♥: 영원히 헤어지는게 아니에요.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안가면 안돼? 진짜 가야하니? 흑..."
옆을 보니 인영이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도 새삼 눈물이 나와서 고개를 들었다.
수신-베프향다니♥: 삼촌이랑 인영이도 고마웠어.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은혜라니. 죗값...아니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거지."
"친구장아! 이정도는 당여나.. 히잉... 향단아!"
인영이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향단이에게 안긴다.
"몽 겅강하고. 훌쩍. 흑. 아랐찌? 응?
향단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베프향다니♥: 그럼 진짜로 가볼게. 바리데기님이 부르시네. 잘있어. 안녕.
인영이가 서있는 곳 부터 현관까지 흰색의 꽃이 피어났다.
흰나비 하나가 그 길을 따라서 팔랑팔랑 날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99)
그 뒤로 아주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시체가 있는 집에서 생활한 사람 치고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건강하다고, 의사는 놀라워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쇠약해져있고, 시독이 올라있기 때문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음료수를 사라고 보냈떤 김양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놀이터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자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내가 준 카드로 막내동생이랑 치킨을 사먹었다고 했는데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따지지도 못했다.
아주머니의 신당은 전부 처분했다. 물론 돈은 전부 아주머니께 드렸다.
아주머니는 이사를 하셨다. 원래 살던집은 허물고 굿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거든.
병문안을 갔을 때, 나는 아주머니께 세계여행 팜플렛을 건네 드렸다.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이라도 다니셨으면 해서였다.
그리고 아주머니께 몸조심하시라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비싼 수호부를 드렸다.
나는 바리데기님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고사를 드렸다. 아주머니의 신당에서 가져온 바리데기탱화를 사무실에 걸어놓게 됐다.
향단이의 시체는 장례식을 치뤄줬다. 향단이는 일주일 전에 지병으로 죽은 것이 됐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몸이 약하셨기 때문에 밤을 세우는것은 무리셨고, 나 혼자서 며칠째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보통 이정도 되는 무당의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많아서 시끌벅적할법 한데, 낮에 찾아온 사람들 빼고는 한산했다.
나는 하품을 하면서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그때 누군가 빈소로 들어섰다.
"여어."
"형?"
아는 얼굴이다. 180을 훌쩍 넘어가는 큰 키와 근육으로 다져진 몸. 짧게 친 머리. 레슬링이나 격투기 운동선수같은 인상이다.
이 사람은 우리 항렬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내 사촌형뻘이다.
모시는 신이 특이해서 영험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대신에 발이 엄청나게 넓다.
향을 올리고, 맞절을 한다. 그리고 육계장을 한그릇 떠와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굶었어?"
"아. 지금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이거든. 부산할배가 돌아가셨다."
"뭐?"
부산할배라고 하면 친척들중에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분인데, 유명한 큰무당이셨다.
"아마 그쪽으로 사람들이 가서 여기가 한산한가보다."
"언제 돌아가셨는데?"
"어제 아침에. 급하게 다녀와서 굶었지뭐냐."
뭔가 해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고가 와있었다. 낮에는 바빠서 확인을 못한 것 같다.
"왜?"
"그게 말이지...지네한테 물려죽었다고 했나 뱀한테 물렸다고 했나.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소문이 돌더라고. 바리보살이 자기 딸을 살려냈다던가."
"헛소리."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아주머니가 바리데기님을 내보내시고 좀 쇠약해지셔서...그냥 시체를 방치했던거야."
"아 그래?"
거짓말은 아니다.
형은 의외로 심플한 반응을 보이더니 먹던 육계장을 마저 먹었다.
먹다가 다시 입을 연다.
"아참. 또 하나. 음...바리보살의 딸이 무당이 못된게 제 탓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엄청 재능이 있었는데...누가 신내림을 막았다고 했나"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상을 내리쳤다.
"자꾸 개소리할꺼면 그냥 꺼져버려."
"아 미안하다. 역시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지."
형은 남은 국물을 한입에 쑤셔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을 해준다고 따라나갔는데, 갑자기 내 어깨를 감싸안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그리고 이건 진짜 나도 긴가민가한데... 이번 부산할배도 그렇고 누가 큰무당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자꾸 이상한 소리..."
"혹시 모르니까 너도 몸 조심해라."
어깨를 두드리더니 그대로 휙 가버린다.
저 형이 헛소리를 좀 하고 다녀도 아예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소문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성격이니 분명 저 말도 어딘가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가 큰무당을 죽인다고? 왜? 뭣때문에?
뭐 무당이 죽는다고 악귀가 창궐하는 것도 아니고, 무당이 종교전쟁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헛소리려나..."
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고 노력하며 형이 먹고간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끝)
항상 제 졸작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드디어 끝났네요. 이예이!
원래 빨리 올리려고 했는데... 순X리 먹고 뻗어서... 12시쯤 일어나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한병밖에 안마셨는데 핑핑 돌더군요.
...라고 해도 결말이 너무 흐지부지한건 아닌가 불안하네요 흐 ㅠㅠ
저에게 쏟아지는 칭찬이나 기대에 보답해드리기가 힘드네요 ㅠㅠㅠㅠ 죄송합니다.
시취를 쓰면서 계속 느꼈던 것은 제 부족함이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일단 공부를 많이하고, 많이 써보라는 말이 있어서 일단 연습차 써보고 있긴 한데
써놓은걸 다시 읽을 때마다 부족한점이 계속 눈에 들어와서 괴롭습니다. 끄앙 ㅠㅠ
나중에 한번에 몰아서 쫙 수정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시취는 지금까지 쓴 소설들중에서 제일 길게 썼는데, 역시 소설이 길어지니 실수도 많아지고 소재도 떨어지고 아이고 ㅠㅠㅠㅠ
시취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시점이 막 왔다갔다 했는데... 이렇게 쓴 이유가
1.여러 인물시점에서 진행해서 설정과 설명을 보충
2.여고생 주인공을 연습해보고 싶었음.
이정도인데, 역시 처음 시도해보는거라서 많이 부족했습니다...하 ㅠㅠ 다시 읽어보니까 이상한 부분도 많네요.
감정표현이 제대로 안돼서 여색한 점도 많고 ㅠㅠ 공부도 많이 부족해서 쓰다가 막히고 쓰다가 막히고 하더군요.
단어력도 모자라서 똑같은 단어가 많이 보인다거나, 역시 오타나 어색한 문장들도 많이 보이네요.
한번에 쓴다음에 퇴고를 반복하는게 아니라 쓰고 끊어서 인터넷에 연재하는 형식으로 쓰는거라서 더욱 힘겹네요 힝 ㅠ
넘버링도 원래 상,중,하로 끝내려다가 버거워서 상,중,중하,하상,하하라는 이상한 넘버링이....
다음부터는 그냥 숫자로 할게요...
한자로 넘버링 하시는 분들이 너무 간지나보여서...따라했다가 (대참사가 일어남)
공부가 많이 부족하단걸 느끼고 있어서 한동안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등을 찾아보며 자기개발을 하려고 합니다.
그냥 밀린애니 보고 게임하려고 하는거잖아
원래 향단이와 인영이는 제가 구상한 다른 소설에서 쓸 주인공이었습니다.
대충 줄거리가 살해당한 향단이의 영혼이 인영이를 찾아와서 범인을 잡아달라고 하는데 향단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인영이는 애기무당이 돼서 인터넷 카페에서 사연을 받아 퇴마를 하러다니면서 단서를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내용은 아니고 그냥 백합백합한 라이트노벨느낌으로 쓰려고 했는데
몇줄 써보니까 흑역사가 생성되는 기분이라서 걍 말소시켜버렸었죠...
복숭아 목단검과 복숭아 동도지궁으로 귀신을 잡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설정에서는 인영이가 도 대표의 양궁선수라는 설정이었습니다.
시취를 쓰면서 놀란건 팬아트를(코끝찡) 그려주시는(흡) 분들이 계셨다는건데(감동)
정말 황송합니다 ㅠㅠㅠㅠ 정말 감사하구요 ㅠㅠㅠㅠ
오늘의 유머-아므랄리메님
http://todayhumor.com/?animation_335432
오늘의 유머-해파리1호님
오늘의유머-계피계피님
정말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그럼 저는 소드X스 이벤트가 있어서 던전돌러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