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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스토리] 이동국, 그의 선수 생활이 행복하게 마무리되길...
게시물ID : soccer_1049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HC소울
추천 : 5
조회수 : 7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25 13:50:31
 
 
[임형철의 풋볼스토리 66번째 이야기 : 이동국, 그의 선수 생활이 행복하게 마무리되길...]
http://stron1934.blog.me/  
  
 
1998 프랑스 월드컵, 대량 실점으로 좌절하고 있던 네덜란드 전에서 한 청년이 용감하게 때린 중거리 슛은 골문 위쪽으로 날카롭게 날아갔다. 당시 대표팀의 막내였던 차세대 스트라이커 ‘이동국’의 슛이었다. 힘 있게 날린 그 날의 중거리 슛은 선수 이동국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모두들 앞으로 있을 월드컵은 이동국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상했다.
 
하지만 달랐다. 잦은 부상과 해외 진출 실패, 장기적인 슬럼프로 인해 결국 2002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완벽한 준비를 마쳤던 2006 독일 월드컵은 아쉽게도 월드컵 2개월 전 입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됐다. 12년을 기다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어 출전 기회를 잡았으나 두 차례 교체 출전에 불과했다. 특히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였던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종료 직전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었지만 단 한 차례의 실수로 인해 월드컵 첫 골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12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얻은, 그동안 쌓이고 쌓인 월드컵에 대한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라기엔 너무나도 아쉬웠다. 선수 이동국 본인 역시 ‘내가 이 순간을 위해 12년 동안 땀과 눈물을 흘렸나’며 경기 직후엔 허무한 감정만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12년을 기다려온 월드컵 첫 골은 아쉽게도 다음 월드컵이 열리는 4년 뒤를 기약해야만 했고, 이동국 역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꿈을 새롭게 그려나가야 했다. 많은 이들이 2014 브라질 월드컵만큼은 이동국의 무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왔다. 이동국 역시 그 누구보다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꿈은 절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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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마이데일리)
  
하지만 그로부터 4년 뒤, 이동국은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히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한 이후, 소속팀인 전북 현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은 그동안 단 한 차례도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동국을 지켜보던 많은 K리그 팬들 역시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북 팬이건 타 팀 팬이건 이동국은 많은 K리그 팬들의 지지를 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대부분의 K리그 팬들이 이동국의 월드컵 한풀이 골을 기대했고,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동안의 아픔을 털어 놓는 세레머니를 펼치는 장면을 바래왔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동국에게는 단 한 차례도 대표팀에서 기량을 실험해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월드컵에 대한 꿈은 무산되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K리그 팬들은 월드컵 엔트리 발표 직후 아쉽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동국의 반응은 덤덤했다. 이미 본인의 월드컵 탈락을 예상하고 있었다며, 본선 진출에 기여한 것만으로 만족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월드컵 무대와는 그동안 유독 인연이 없었기에, 본선 진출에 적지 않은 기여를 남겼기에 본인을 엔트리에 뽑지 않은 것에 대해 충분히 섭섭한 마음을 가질 법도 하련만, 어느덧 베테랑이 된 36살의 이동국의 입에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한 반응이 나왔다. 또한 이동국은 현재 전북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고, 전북의 승리를 위해 뛰는 것이 지금은 제일 중요하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그동안 본인이 바래왔던, 본인을 괴롭혀왔던 월드컵 무대에 대한 욕심과 부담에서 이제는 해탈한 모습이었다.
 
(△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지만, 이동국의 반응은 덤덤했다. 소속팀 전북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월드컵 무대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떨쳐낸 것이다. / 사진 출처 : 전북 현대 모터스 공홈.)
 
12년을 기다렸다. 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무대가 월드컵이었다. 선수 생활의 희노애락이 모두 깃든 월드컵이었다. 사실상 선수 생활의 마지막 월드컵, 마지막 기회였던 만큼 선수 개인의 욕심과 미련이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 전북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월드컵 무대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떨쳐냈다. 36살 이동국의 말에서는 한 경기 한 경기 전북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경기의 감동이 느껴졌고, 전주성의 전북 팬들이 주는 응원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한 메시지가 전해졌다. 축구 선수에게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남긴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요즘은 월드컵의 골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단 걸 많이 느낀다. 전북에서 뛰면서 나이 어린 팬부터 60대, 70대의 어르신까지 나를 보고 박수 쳐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월드컵에 나가서 골을 넣었다고 누구나 다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매일 즐겁게,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다. 축구 선수에게 월드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 [서호정의 킥오프] 이동국, “월드컵은 못 갔지만 지금 행복하다” 기사 中
 
장기적인 슬럼프로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팀, 그리고 그 기회가 있도록 믿음을 준 최강희 감독이 있는 팀, 빌딩 두 채 정도의 조건을 제시한 중동 팀의 제의를 뿌리치고 잔류를 택한 팀인 전북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그의 인터뷰에는 진정성이 가득했다. 1998년, 용감한 슈팅을 날리며 혜성 같은 스타의 탄생을 알린 유망주 이동국은 이제 16년 뒤, 월드컵에서의 골보다 축구 선수에게 더 소중한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멋진 베테랑으로 성장했다. 그렇기에 월드컵 엔트리 탈락 이후 그가 남긴 인터뷰는 분명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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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올해로 36살을 맞았다. 이동국을 선수로서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동국은 리그에서 5골로 득점 순위 3위를 기록 중이고, 아직도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유독 월드컵에서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는 분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스트라이커임에 분명하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뛰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월드컵에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지금 누비고 있는 그라운드가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이 그 어떤 선수보다도 이동국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선수가 느끼고 있는 행복이 오래토록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이동국을 위한 가장 큰 응원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이동국은 이제 월드컵에서의 골보다 더 귀중한, 그리고 더 값진 의미를 깨달았다. 그의 선수 생활이 마지막까지 행복하길 응원한다. (풋볼스토리 / 임형철 / [email protected] )
 
 
 



(▽ 주간K리그 37화 바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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