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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참석하려다 망한 작품] 산문 - 듀엣 [BGM 주의]
게시물ID : readers_80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힐링텐트
추천 : 2
조회수 : 3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7/01 01:50:06


그녀의 시선이 한 장의 사진에 멈췄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늘게 뜬 눈은 이내 놀라움으로 크게 확대되어 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도 친척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카고 뒷골목에서,
그것도 우연히 들어간 갤러리 한 켠에 걸린 7년 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잊으려 했었고 이젠 다 잊은 줄만 알았던 기억의 파편들이 일순간에 맞춰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추억이었다.
그녀의 가장 아름답던 시절을 송두리채 앗아간 그런 추억이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꾸역꾸역 목으로 치밀어 올랐다.
참으려 하면 참을 수록 또렷해지는 지난 날의 기억들 때문에 이내 울음은 터지고 말았다.
행여 소리가 날까 입을 틀어 막았지만, 눈에서 흘러 떨어지는 눈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물 다섯 살 자신의 얼굴로부터 차차 초점이 흐려져 갔다.
그러자 그 사진을 덮고 있는 유리 위로 힘겹게 눈물을 견뎌내고 있는 그녀 얼굴이 비춰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 너머로 유리에 비추인 그의 모습을 그녀가 찾아내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3 분 전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회색 코트를 입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서너 발을 떼어을 무렵 그는 흘깃 옆을 돌아 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하얗게 바래져 버린 머리 속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버린 눈동자로 그녀의 뒷모습을 따르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사진 앞에 멈춰서자 그의 몸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길고 길었던 삶의 끝에서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일을 들춰내어 비난받는 심정이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 순간이 그에게 다가 올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잔인한 일이었다. 그리고 잔인한 운명이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그의 머리는 텅텅 비어버린지 오래였지만, 그의 입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으로 온 몸이 뜨거워져 다 말라버린 그의 입술과 혀는 아무런 소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힘없이 늘어진 그의 손에서 떨어진 종이컵은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그의 발앞에 멈추어 섰고,
얼마 남지도 않았던 커피는 종이컵에서 쏟아져 나와 천천히 그녀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아직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고야 말았다.

15 분 전

이미 온기가 다해버린 커피잔을 내려 놓고 그녀는 자리를 떴다.
지난 5년 간의 유학생활 동안 단 한번도 이런 것들에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신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나마 자신이 살던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카페를 나와 코트를 여미고, 길을 걷다 미리 봐두었던 길 건너편 갤러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갤러리 입구에는 'ONE'S EYES'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창문으로 들여다 보이는 갤러리 내부가 한산한 걸 보니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 싶었다.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지난 유학생활을 되짚어 보기엔 아주 적절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갤러리 입구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녀는 급히 나오는 어떤 남자와 어깨를 부딛쳤다.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한 손을 들고 눈을 찡긋하더니 , 
갤러리 앞에 주차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급히 사라져 버렸다.
그 무례한 행동에 어이가 없었던 그녀는 남자가 탄 차가 사라질 때까지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 보았다.
남자가 타고 있던 차로 보나, 입고 있던 옷으로 보나, 그 남자는 한국계였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래서 한국 사람들이 욕을 먹지'
그녀는 확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들어줄 사람도 없는 텅빈 거리에서 홀로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난 유학생활 동안 좀처럼 한국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래봤자 이제 사흘 후면 그들 속에 섞여 살아야할텐데'
그녀는 조금 전에 비아냥거렸던 그녀의 태도가 다시 자신에게 메아리쳐 돌아 오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깊은 숨을 들이 쉬며 다시 담담해진 표정으로 그녀는 천천히 갤러리로 들어섰다.
차분한 분위기의 갤러리 한 켠에선 한무리의 한국 사람들이 소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사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들은 모두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담고 있었다.
서너 개의 사진을 지나쳤을 무렵 그녀는 사진들이 지닌 공통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 처음 바라보는 어떤이의 시선'
한 사진의 주인공은 잠에서 덜 깬듯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른 사진의 주인공은 잠에서 깨자마자 자신 앞에 놓인 카메라에 놀란 듯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미소를 짓고 있는 행복한 아기의 얼굴
눈을 뜨지 않았지만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저씨
책상에 앞드려 졸다가 놀라서 일어난 학생의 표정

전시된 사진들을 돌아 보며 
그녀는 지난 5 년 간 바쁘게만 살아왔고 그래서 늘 짜증스런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시끄러운 자명종 소릴 들으며 맞이하는 아침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늘 괴로웠었다.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이름을 불러 깨워주었던 행복한 기억도
이미 꽤 오랜 시간 지나버린 추억일 뿐이었다.

그렇게 엷은 미소를 띠며 사진 하나하나 훏어 가던 그녀는
한 장의 사진 앞에 문득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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