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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동안 함께했던 녀석이 오늘 떠났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80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롤로ㄹㅗ로
추천 : 19
조회수 : 720회
댓글수 : 29개
등록시간 : 2014/03/09 19:15:14
시장에서 엄마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던 어린 강아지.

팔려고 내어놓았던 녀석이 아님에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두부 가게에서 업어왔던 녀석.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 특히 나.

개한테 쏟는 애정의 반만 가족한테 돌리라는 핀잔도 그러려니.

좋으면 좋은대로 팍팍 드러내며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할 때 항상 내 곁에 머물러주었던 녀석.


집에 도착하면 문을 열기도 전에 짖고 낑낑거리며 날 반겨주었던 모습.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누구보다 겁이 많은 나라서 밤만 되면 꼭 껴안고 잤던 너.

그리고 또 개를 침대에 올려놓았다고 혼나던 아침.


어느 날 입맛을 잃고 잦은 기침에 힘들어하던 녀석.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지만 병명은 '심장사상충'.

밖에 나갈라치면 먼저 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함께 산책나가자고 보챘던 너는

어느 날부턴 조금만 뛰어도 힘들어서 헥헥대며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지.


동물을 기르는데 무지했던 우리는 왜 너를 조금 더 아껴주지 못했던 걸까.

주기적으로 약만 먹었더라면 피해갈 수 있었던 병인데

왜 그러지 못해서 널 힘들게 한 걸까.


그래도 성충이 죽을 때까지 꾸준히 약을 먹인다면 제 명까지 살 수도 있을 거라던 의사 선생님.

넌 약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강제로 입에도 넣어보고 꿀이랑 뭉쳐 입천장에도 발라보고 고기에 싸서 먹여도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어떻게든 버텨주길

그렇게 바라던 하루하루.


난 왜 하필 오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던 걸까

늦은 아침 일어나 바람이라도 쐴 겸 엄마와 함께 나갔던 시장.

널 데려왔던 그 곳.

너는 어느 때완 달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우리를 그저, 조용히,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허어, 희한하네. 정말 많이 힘든가 봐. 나가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아.'


장을 보면 언제나 들르는 애완동물 코너.

'별이가 뭘 좋아할까. 사료는 안 먹어도 간식은 잘 먹던데. 치킨 사시미? 이거나 하나 사다줘야겠다.'


돌아온 집은 고요.

여전히 힘든 듯 너의 자리에 고개를 묻고 엎드려있는 녀석.

바닥에는 고통의 흔적들.

"어휴, 얘 또 피 토해놨네. 어쩌면 좋아. 힘들어서 일어나지도 않네."

걱정스레 바닥을 닦는 엄마.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녀석이 너무나 이상했던 나.

그 때만큼은 널 건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담요에 고개만 묻고 있는 네가 너무 이상한데, 널 건드리면 안될 거 같았다.

널 만지고 싶지 않았다. 널 쓰다듬고 싶지 않았다. 널 건드리는 순간 난, 알아버릴 것 같아서...

"엄마, 얘... 이상해...."



그렇게 가버린 너.

한 동안 오열과 울음만이 가득한 집.

널 어쩌면 좋은지 방향이 잡히지 않아 계속되는 고민.

결국엔 뒷산에 묻어주자는 결정.


가고 싶지 않다는 엄마를 두고 나 혼자 녀석을 데리고 향한 뒷산.

작은 모종삽으로 팔뚝만한 깊이의 구덩이를 파놓고 널 감싼 보자기를 살짝 풀었다.

"그래, 이제 내가 널 보내줄 때구나."

여전히 녀석에겐 약한 온기가 느껴진다.

"뭐야,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묻어. 별아 너 죽은 거 맞아? 죽은거야?"

눈을 감겨주려해도 감질 않는다.

녀석을 감고 있던 신문지를 풀어 널 다시 안아본다.

늘 했던 것처럼 콧잔등에 입을 맞춰보고 목덜미를 쓰다듬고 배를 만져본다.

믿기지가 않았다. 네가 가버린게. 도저히 죽은 거 같지가 않았다. 현실감 없다.

'이게 죽은건가? 살아있는 거면 어쩌지? 발작이라던가, 마비라던가, 그런 증상이면 어쩌지? 그럼 내가 묻어서 죽어버리는 거면 어떡해?'

지끈거리는 머리.

떨려오는 손.

그러나 너의 가슴께를 쓰다듬으며 나는 결국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죽었구나."

멎은 호흡과 심장박동.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죽음.

그렇게 나는 녀석을 묻을 수 밖에 없었다.

모종삽을 한켠에 던져놓고 흙을 다졌다.

널 밑에 내려놓고 흙을 덮는다.

"안녕, 미안, 잘 가, 그 동안 고마웠어. 알지? 내가 너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침마다 나 때문에 엄마한테 혼나게해서 미안해. 네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매일 쓴 약 먹이고 괴롭게해서 미안해. 잘 가. 그 동안... 너 때문에 진짜 즐거웠어."


흙을 덮고 낙엽을 덧씌우고 멀찍이 선다.

한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 겨우 산을 내려온다.

돌아오는 내내 멈출 수 없었던 줄담배.

그리고 작은 약속.


"식목일에 다시 올께. 그 때는 진짜 예쁜 모종 하나 가져와서 네 옆에 심어줄께. 네가 이곳에 자리잡고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춥더라도 잘 있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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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별이를 묻어주고 와서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다가
이 느낌을 어쩐지 기억해두고 있어야할 것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이제서야 왜 반려견을 '반려'견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에요.

녀석을 묻어주면서 혼자 울고 소리치고 다시 웃고 말하고... 정말 미친년처럼 굴고 왔네요.

죄책감이 심해서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어요.
왜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그 힘든 시간을 왜 함께하지 못했을까.

애완견의 마지막 소원은 주인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정말 못된 주인이었네요.

심장사상충에 마지막도 함께 못해주다니..


그냥...

너무..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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