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메르스때문에 유명한 지방 모 대학병원 비뇨기과 전공의 입니다. 비뇨기과는 현재 가장 비인기과 중에 하나라 최근 몇 년동안 전국 1년 정원이 100명 중에 저와 같은 년차는 30-40명밖에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 충청남북도 전북 및 대전 지역에 전공의는 딱 두 명입니다. 이 말은 이 지역 주민들이 밤에 비뇨기과적 응급질환이 생긴다면 둘 이외에 진료가 가능한 곳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하튼 저는 1년차 9월 부터 병원의 유일한 비뇨기과 전공의가 되었고 그 이후 아무도 밑에 년차로 들어오려 하지않아 현재 3년째 혼자 일월화수목금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며, 토요일 일요일 이틀 쉬고 일요일 저녁 병원에 복귀합니다. 내년에도 현재 같아서는 신입 1년차 지원자는 없어 보이구요.
귀신이야기 보다 더 무서운 제 이야기는 각설하고 위에 말했듯 두 달전 경험담입니다. 토요일 저녁 일주일간의 고된 근무를 마치고 귀한 쉬는 날을 맞았는데 하필 과 회식이 있어 얼큰하게 한 잔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저는 저대신 주말에 당직 서주시는 전임의 선생님을 뵈러 술기운에 밤늦게 당직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선생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저도 집에 들어가기 뭐해 평소에 자주 쪽잠을 자던 의국(회의나 각종 잡무를 보는 장소)에 넓다란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의국의 위치는 혈액종양내과 병동 깊숙이 있고 바로 아랫층은 호스피스병동이 있습니다. 혈액종양내과 병동은 말기 암환자들이 특히 많아 임종하시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방을 따로 두었고 의국 바로 옆에 있습니다. 또한 바로 밑 호스피스 병동은 하루에도 몇 명씩도 임종하는 분들이 있는 곳이구요.
의국으로 걸어가는 중 임종방을 힐끗 보았고 역시나 오늘도 환자 한 분이 준비를 하고 계시더군요. 의사라는 직업을 갖은 뒤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죽음은 쉽지 않더군요. 눈을 얼른 돌리고 의국에 들어가 자리에 눕습니다.
취기도 얼큰히 오르고 했지만 그날따라 매일 쪽잠을 청하던 그 공간이 그 날따라 싱숭생숭하더군요. 병원이 산자락에 있어 평소에도 기가 센 터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날따라 창 밖으로 개짖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들기 어려웠습니다. 힘들게 잠들고 뒤척이다 깨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 경이었습니다. 벽을 보고 누워 자다 깬 뒤 계속 등 뒤가 불편합니다. 서늘한 느낌이들고 누가 계속 있는 느낌이 듭니다. 병원에서 일주일에 5일을 자다보면 컨디션이 안좋은 날 종종 가위도 눌리고 하는데 그날도 좋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뒤돌아 볼까? 그냥 잘까?'
잠시동안 고민을 하다 일주일간의 피로와 익숙한 죽음의 느낌에 신경끄고 자기로 했습니다.
다시 잠든지 얼마 안되어 또 서늘함에 잠이 깹니다. 그 사이 잠결에 체위 변경을 해서 벽에 등을 지고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시간을 확인하려 눈을 떴을때,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없는것인지 분간은 되지 않지만 흰 소복을 입은 사람이 1미터 앞 의자위에 서있습니다. 순간 얼어붙어 눈도 감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지 수 초 후 흰 소복이 사르르 사라집니다.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이상스레 공포감이들거나 심장이 쿵쾅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잘못봤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침착한 제가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한 참 후에 그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 존재는 결코 저를 향한 원망이나 공격성을 갖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따뜻했다고 할까?
어찌됐던 저는 너무 당연스레 다시 잘 자고 다음날을 맞이했습니다. 혹시나 어제 임종을 준비하던 환자의 방을 들여다 봤으나 아직 준비중이십니다.
썰렁 하지만 제 경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쪽잠을 자지만 같은 경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여튼 그 이후로도 삶과 죽음에서 가장 가까운 의사라는 직업이 힘들기도 하지만, 꾸역꾸역 버티고 있습니다. 재미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