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미래전략실 해체" 선언..규모 축소하고 핵심기능 갖춘 조직 신설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했다. 과거 '구태'와 완전히 단절하고 '뉴삼성'의 출발을 알리는 충격적이면서도 상징성이 큰 결단이다. 이 부회장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그룹 전체를 통괄(統括)하며 '삼성식 경영'을 이끌어 온 핵심조직을 자신의 손으로 허물고 어떤 형태의 새로운 경영 조직을 제시할 지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에 대한 많은 의혹과 부정적 시각을 느꼈다"며 "부정적 인식이 있으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차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삼성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 부회장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미래전략실의 역할 및 구조 등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느낀 것 같다"며 "이참에 그룹 전반의 경영 시스템을 개편해야 겠다고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삼성 관계자는 "(조직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안갯속 같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미래전략실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기업 경영의 근간을 '책임경영제'로 삼았던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은 모든 것을 '전권위임'하는 경영체제를 고집했다. 적절한 인재를 찾아서 모든 것을 맡기고, 회장은 기업경영의 원칙과 이를 이어갈 인재를 발굴하는데 전념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이를 위한 조직이 바로 '비서실', 현재의 미래전략실이다.
호암은 산하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비서실'을 두고, 그룹 전체의 통괄을 일임해 왔다. 각사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분담시키고, 비서실은 그룹의 기획, 조사, 인사, 재무의 조정, 감사 등 그룹의 중추로서 기획, 조정을 하는 운영체제를 제도화했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호암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기업 경영에는 항상 원칙이 있고, 철학이 있고, 그 원칙이나 철학에 바탕을 둔 '제도'가 있다"며 "삼성 비서실의 기능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자리 잡혀온 삼성 고유의 것"이라고 밝혔다.
호암 이후 이건희 회장 시대를 거치면서 비서실(1959~1998년)은 구조조정본부(1998~2006년), 전략기획실(2006~2008년)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임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조직 규모나 업무 범위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탓에 잡음도 끊임없이 있었다.
이 부회장도 이같은 내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조부인 선대 회장때부터 만들어진 조직을 자신이 해체하는것에 대한 부담감도 나타냈다. 그러나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같은 '공언'을 한 것은 그만큼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계는 삼성이 미래전략실의 기능을 하는 조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래전략실 조직을 축소해 삼성전자 산하 조직으로 배치하는 방식, 그룹 전반의 현안 등을 조율하는 위원회 형태의 별도 조직 설립 방식,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방식 등 다양한 변화 방안들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지난 6일 청문회에서 "삼성은 국내 계열사 60여개를 포함해 해외 현지법인까지 총 400개가 넘는 기업집단"이라며 "그룹 컨트롤타워 없이는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컨트롤타워가 있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게 문제"라며 "과거처럼 조직의 이름 및 소속을 바꾸면서 규모를 줄이면서 기존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두거나, 지주회사 조직으로 전환해 법적 실체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은 현 상황에서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못지 않은 법률적,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당장 선택 카드로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그룹 및 각 계열사 공통으로 내부적으로 인사·재무·감사의 3개 축이 상호 견제 기능을 하며 정교하게 작동하는 구조"라며 "이런 시스템이 문제 없이 돌아가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총괄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