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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시물ID : sisa_519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천 : 2
조회수 : 2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30 01:17:34

한동안 사회적 기업의 한 축이었던, 그라민 은행으로 대표되는 마이크로크레딧의 현재는 초창기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장하준은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말하길, 소액을 빌려서 불릴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소액대출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다들 고만고만한 사업들을 하니까 결국엔 경쟁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챕터 외에도 저자는 계속 사회, 경제 전반적으로 '잘 돌아가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좌파 철학 중 하나인 보편적 복지에서, 좌파 진영은 무상복지를 파생시켰다.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돈을 내지 않고 복지를 누린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뻗어나온 가지가 무상교육, 무상의료 그리고 최근 불붙은 이슈인 무상급식이다.

 

 

내가 중등교육을 받을 땐 돈을 내고 밥을 먹었다. 나와 친구 몇 명은 급식의 질에 불만을 갖고 밖에 나가서 밥을 사 먹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 것도 만족스럽지 않은 짓임을 알고 다시 급식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학우들 중 몇은 아마 돈을 안 내도 됐을 것이다. 가끔 그것과 관련된 가정통신문만 받았기 때문에 존재만 알았을 뿐,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당시의 친구들을 만나면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도 있고, 아직은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나도 지금은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날 때면 아무래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걱정을 덜기 위해 내 지갑이 편안할 만큼의 지출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있다. 그런 것이 불만족스런 친구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려고 내 사정을 숨기며 친구들이 모두 만족할 만큼 나도 양껏 지갑을 열 수도 있다. 난 미래를 기약하며 약간의 신세를 지는 쪽을 택했다.

 

 

 

 

학생의 급식비를 포함하는 한정된 예산에서, 급식비를 0으로 만들면 최소한 그 줄어든 만큼은 어딘가에서 빼 와야 한다. 어딘가에서 빼 온다는 것은, 그것이 빼 올 만한 것이란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 방법은 동일한 질을 유지한다고 할 경우이고, 거기에 친환경이니 로컬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빼 와야 하는 덩어리의 크기는 더 커지게 된다. 이 과정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은 공무원의 능력에 달렸을 것이다.


어떻게든 쥐어 짜며 빼 올 만한 덩어리는 뺐다고 하자. 거기에 기존의 급식비를 추가하면 학교에서 먹을 수 있는 식사의 질은 어떻게 될까.

 

 

보편적이란 말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란 말은 무엇인가. 돈을 내지 않는 것?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 아니면 적지도, 많지도 않게 좋은 밥과 반찬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것들을 조합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보편적 무상 - 모두가 밥을 먹는데 돈을 내지 않는다.

보편적 배려 - 모두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한다.

보편적 양식 - 모두가 양질의 식사를 한다.

이 중 보편적 복지란 말에 가장 가까운게 어떤 것일까. 난 세 번째 항목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오천원이 있다면 어느 식당에 가서 한 끼를 사먹을 수도 있고, 적당한 재료를 사와서 집에서 몇 끼를 해먹을 수도 있다. 후자는 저렴하지만 너무 아마츄어 적이고 번거로운 일일 것이다. 전자는 당장은 편할지라도 통장이 금방 바닥나거나 언젠가는 내 주변의 기성식이 모두 질리게 될 것이다. 만약 나와 같은 조건의 사람이 수천 수만명이라면, 기성식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것 이다. 여럿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럿이서 적은 비용으로 함께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록 좋은 시스템이 될 것이다. 처음에 급식과는 관계 없는 마이크로크레딧을 언급한 까닭은 영역은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가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상이란 말은 퍼주기도, 포퓰리즘도, 복지와도 관계 없는 말이다. 국도를 이용하는데 당장 빠져나가는 돈이 없을 지라도 위와 같은 말을 붙이진 않는다. 무상이란 말은 돈 덩어리 전체의 크기에 관한 것, 그 돈 덩어리를 늘리는 것에 관한 것,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분할에 관한 것 등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축약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복지를 논함에 있어서 무상급식을 논할 때에는 무상이 아닌 급식이라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이 것이 학생 식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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