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8월 어느 무더운 날 오후의 일이었다. 영국의 함대가 잔지바르의 항구 밖에 평화스럽게 정박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이제부터 시작하려고 하는 크리켓의 토너먼트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서로들 내기를 걸기도 하면서 군데군데 모여서 놀고 있었다. 이윽고 승무원들의 상륙 준비도 진척이 되어, 갑판 위에서는 사관(士官)들이 구김살 없는 새하얀 유니폼으로 몸을 단장하고, 천막 아래서 할 일 없이 위스키 소다수를 들고 있었다. 갑자기, 이 고요한 정경을 깨뜨리고, 함대 사령관 「서 헨리 로슨」 제독이 타고 있던 기함으로부터 수기신호(手旗信號)가 보내져 왔다. 그 신호는 잔지바르의 추장 「세이드카리드빈바르가슈」가 영에 대하여 지금 막 선전포고(宣戰布告)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평화스러웠던 항구는 일변하여 싸움터로 바뀌었다. 여섯 척의 영국 전투함으로부터 추장의 궁전을 향하고 함포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겨우 37분 23초 뒤에 궁전은 폐허로 화하고, 5백 명의 잔지바르병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 곳의 유일한 군함 그리스코 호는 응전하자마자 영국 군함의 직격탄으로 소리 없이 물 속에 가라앉았다. 추장은 독일령(領)으로 도망하여 보호를 구하였고,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이 이렇게 빨리 끝난 것은, 때마침 「로슨」 경(卿)의 함대가 크리켓 경기를 하려고 잔지바르의 수역에 모여든 바로 그 때 선전이 포고되었으므로, 기다렸던 것처럼 간단히 해치워 버려서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이란 새 기록을 세운 셈이다.
가장 긴 전쟁은
335년 전쟁은 영국의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전쟁인 제2차 영국 내란(1642년 ~ 1652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회파의 올리버 크롬웰은 콘월에 자리잡은 왕당파를 서쪽으로 몰아내었다. 왕당파 해군은 존 그렌빌 경이 가지고 있는 실리 군도로 퇴각했다. 한편 네덜란드는 의회파와 동맹을 맺었다.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와의 80년 전쟁(1568년 ~ 1648년)에서 잉글랜드의 도움을 받아 1648년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했었는데, 영국 내전에서는 이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편과 손을 잡은 것이다. 네덜란드 해군은 실리 섬에 자리잡은 왕당파의 함대에 큰 손해를 입었다. 네덜란드의 마르턴 하르페르츠존 트롬프(Maarten Harpertszoon Tromp) 제독은 왕당파 쪽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1651년 네덜란드는 전쟁을 선포했다. 대부분의 잉글랜드는 의회파가 장악했기 때문에 실리 군도에만 선포한 전쟁이었다. 전쟁이 선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651년 6월,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의회파 함대에 왕당파는 항복했다. 네덜란드 해군은 실리 군도에 총 한 발도 쏘지 않고 돌아갔다. 다른 나라의 한 부분에만 선포했다는 전쟁의 모호함 때문에 전쟁은 공식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잊혀졌다. 1985년 실리 의회의 의장이자 역사가인 로이 던컨은 실리 섬이 아직도 전쟁 중에 있다는 "전설"을 처분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런던에 있는 네덜란드 대사관에 보냈다. 대사관은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던컨은 주영 네덜란드 대사 레인 하위데코페르 백작(Rein Huydecoper)을 실리 군도로 초대해 평화 협정을 맺었다. 1986년 4월 17일, 전쟁이 선포된 지 335년만에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났다.
씁쓸하게도 가장 긴 전쟁은 사상자가 한명도 없었는데, 가장 짧은 전쟁은 37분 23초 만에 500명의 잔지바르 군사가 부상과 사상을 당했고 유일한 전함(정확히 말하면 상선을 개조해서 만든)도 침몰당했다는... 참 전쟁이라는게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