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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남도일기
게시물ID : readers_132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준탁
추천 : 3
조회수 : 21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5/31 02:40:23
 
초로의 여인이 혼자 맞는 작은 아들의 제삿날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기름내가 한나절이나 계속되더니 과일이며, 닭이며, 떡이며, 갖은 음식이 아들의 밥상으로 높이높이 올려진다
그 모습이 몹시도 정성스러워,
거들기도 민망해진 나는 아무렇게나 앉아서 상 위의 음식만 하릴없이 올려다본다
왜 바닷가 사는 양반이 생선 한나를 제상에 안올립니까?”
내 물음을 듣는 지 마는 지, 그 여인은 제 할 일을 하며 퉁명스럽게도
내 젊을 적에 죽겠다고 바다로 뛰 들어가 그 짜고 쓴 것을 하도 마셔서, 입때껏 바닷것은 쳐다보기도 싫소하고 내뱉는다
괜히 물어봤나 싶어, 객쩍은 마음에 엉덩이를 털고 돌아나가던 차에
진설도 다 했는데 절이나 같이 하고 가지하는 여인의 말이 내 뒤통수를 잡아끈다
공복감에 빈 배가 뒤집어지는 듯 해 마침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내심 연고도 없는 제상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뜨악기도 하여
가신 분이랑 아무 연고도 없는 데 내가 공연히……하는 차에 여인이
절 받을 사람은 많은데 인젠 절 할 사람도 없고……하고 누구에게 하는 지도 모를 말을 한다
그 목소리가 하도 차고 섧어 
나는 이 이름 모를 모자의 밥상 곁에 서고 말았다 
향이 오르고, 이끌린 손에 절을 두 번 했을 때,
여인은 작은 아들의 밥공기에 닭날개를 한 점 크게 떼어 올려주고는,
이내 크게 손을 모아 허리가 땅에 쳐박힐 듯 깊게 수그린다
무엇을 비는 지,
아들에게 속 담아둔 말이 있는 지,
고개를 들면 아들이 밥을 떠먹다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여인은 그렇게 한참동안 절을 한다
덩달아 나도 엉거주춤하다, 문득,
 
툭, 툭, 하고 물방울 소리가 들린다, 적막속에서
 
 
끊어 질 듯 이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집중할수록 머리에 피가 쏠린다
세월이 부서진 파리한 몸에선 그때 마신 바닷물이 웃남아 흐르는지 아직도
여인은 자신의 짜고 쓴 것으로 연신 아들의 방문을 그렇게 툭, 툭, 두드리고 있다
이따금 파도 소리가 마당 너머로 들리는 듯 하다, 봄바람이 시원하게 목덜미를 감아 내렸지만
여인과 나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들이 없는 아들의 밥상에 봄바람이 지방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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