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태조실록을 통해 본 정몽주 참살 과정
게시물ID : history_160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천자
추천 : 4
조회수 : 13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31 04:33:24

태조실록을 통해 본 정몽주 참살 과정




태조 1권 총서 131번째기사

정몽주가 조준 등을 처형코자 하니, 태종이 정몽주를 죽이고 일당을 탄핵하다 


정몽주가 상소하는 자들로 하여금 조준,정도전 등을 목베기로 대신 상소하게함.

정몽주(鄭夢周)가 성헌(省憲) 142) 을 사주하여 번갈아 글을 올려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을 목 베기를 청하니, 



이성계가 아들 이방과 등을 보내어 대궐에 가서 "조준이 전하(공양왕)가 아닌 다른 사람(이성계)을 세우려했는데. 신이 이 일을 저지시켰다."라고 (조준을) 탄핵하니 조준이 의논한 사람이 누구이며 , 신이 이를 저지시켰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조준과 대간이 조정에서 서로 토론시키게하소서."라고 말을 올리게하여 2~3번 대화하였으나 공양왕이 듣지않았다.

(정몽주는 공양왕 설득했고. 정몽주는 병문안 삼아 이성계에게 가서 사실은 이러저러~라고 말해서 풀 계획이었던거

같다. 그리고 이성계는 정도전이 뒤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

태조가 아들 이방과(李芳果)와 아우 화(和), 사위인 이제(李濟)와 휘하의 황희석(黃希碩)·조규(趙珪) 등을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서 아뢰기를,

“지금 대간(臺諫)은 조준이 전하(殿下)를 왕으로 세울 때에 다른 사람을 세울 의논이 있었는데, 신(臣)이 이 일을 저지(沮止)시켰다고 논핵(論劾)하니, 조준이 의논한 사람이 어느 사람이며, 신이 이를 저지시킨 말을 들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청하옵건대, 조준 등을 불러 와서 대간(臺諫)과 더불어 조정에서 변론하게 하소서.”

하여, 이 말을 주고받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공양왕이 듣지 않으니, 

여러 소인들의 참소와 모함이 더욱 급하므로, 화(禍)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자고 이성계에게 말했으나 이성계는 씹어버린다.

이방원이 다시 와서 "정몽주가 정도전을 국문하는데. 그 공사를 우리 집안에 관련시키려합니다.

시세가 이미 급하온데 장차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이성계가 말하기를 "죽든 살든 운명이니 순리대로 가자."라고 말하고(이방원 말을 안 믿음.)

이성계가 연이어 말하기를 "어머님 장례상 3년 마저 다치르고와라! 니 장소로 돌아가!"

라고 말했다. 

이방원이 이성계 병환을 시중들기를 2~3번 청하나 이성계가 허락하지않았다.

역시 이성계는 정도전이 국문받든 말든 관심이 없다.

우리 전하(殿下=이방원)께서 몽주(夢周)를 죽이기를 청하니, 태조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전하가 나가서 상왕(上王=정종) 143) 과 이화(李和)·이제(李濟)와 더불어 의논하고는, 또 들어와서 태조에게 아뢰기를,

“지금 몽주 등이 사람을 보내어 도전(道傳) 등을 국문(鞫問)하면서 그 공사(供辭)를 우리 집안에 관련시키고자 하니, 사세(事勢)가 이미 급하온데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태조는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으니, 다만 마땅히 순리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하면서, 우리 전하에게

“속히 여막(廬幕)으로 돌아가서 너의 대사(大事) 144) 를 마치게 하라.”

고 명하였다. 전하가 남아서 병환을 시중들기를 두세 번 청하였으나, 마침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방원은 독단으로 정몽주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이지란이 말하기를 "이성계께서 허락하지않는데. 내가 어찌 감히 하겠는가?"라고 하자

이방원이 말하기를 "아버님이 내 말을 듣지않지만 난 정몽주 죽이겠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

전하가 하는 수 없이 나와서 숭교리(崇敎里)의 옛 저택(邸宅)에 이르러 사랑에 앉아 있으면서 근심하고 조심하여 결정하지 못하였다. 조금 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므로 급히 나가서 보니, 광흥창사(廣興倉使)  정탁(鄭擢)이었다. 정탁이 극언(極言)하기를,

“백성의 이해(利害)가 이 시기에 결정되는데도, 여러 소인들의 반란을 일으킴이 저와 같은데 공(公)은 어디로 가십니까? 왕후(王侯)와 장상(將相)이 어찌 혈통(血統)이 있겠습니까?”

하면서 간절히 말하였다. 전하가 즉시 태조의 사제(私第)로 돌아와서 상왕(上王=정종)과 이화(李和)·이제(李濟)와 의논하여 이두란(李豆蘭)으로 하여금 몽주를 치려고 하니, 두란(豆蘭)은 말하기를,

“우리 공(公) 145) 께서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 감히 하겠습니까?”

하매, 전하는 말하기를,

“아버님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 허물을 책임지겠다.”

하고는, 휘하 인사(人士) 조영규(趙英珪)를 불러 말하기를,

“이씨(李氏)가 왕실(王室)에 공로가 있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나, 지금 소인의 모함을 당했으니, 만약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고 손을 묶인 채 살육을 당한다면, 저 소인들은 반드시 이씨(李氏)에게 나쁜 평판으로써 뒤집어 씌울 것이니, 뒷세상에서 누가 능히 이 사실을 알겠는가? 휘하의 인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이씨(李氏)를 위하여 힘을 쓸 사람은 없는가?”

하니, 영규(英珪)가 개연(慨然)히 말하기를,

“감히 명령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려한다는 말을 이성계 쪽 사람 변중량이 정몽주에게 알려주자 정몽주가 의심을 풀려고 이성계 병문안하러옴.

이성계가 정몽주를 환대함. 이 점이 매우 중요~!!!

영규·조영무(趙英茂)·고여(高呂)·이부(李敷) 등으로 하여금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들어가서 몽주를 치게 하였는데, 

변중량(卞仲良)이 그 계획을 몽주에게 누설하니, 몽주가 이를 알고 태조의 사제(私第)에 나아와서 병을 위문했으나, 실상은 변고를 엿보고자 함이었다. 태조는 몽주를 대접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이화가 우리 전하에게 아뢰기를,

“몽주를 죽이려면 이때가 그 시기입니다.”

하였다. 이미 계획을 정하고 나서 이화가 다시 말하기를,

“공(公)이 노하시면 두려운 일인데 어찌하겠습니까?”

하면서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니, 전하가 말하기를,

“기회는 잃어서는 안 된다. 공이 노하시면 내가 마땅히 대의(大義)로써 아뢰어 위로하여 풀도록 하겠다.”


이방원이 자객들로 하여금 정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서 매복해 정몽주를 기다리게하고

정몽주에게도 미행을 붙여놓았다.

정몽주가 자기 집에 들어왔다가 머물지않고 곧 나왔다. 

이방원이 일이 성공되지못할까 두려워하여 친히 가서 지휘하려고 나와 문 밖에 나오니 말이 있어

말 타고 상왕 정종의 저택에 이르러 "몽주가 지나갔냐 안지나갔냐" 물어보니

"지나가지않았당께."라고 답함. 

이방원이 다시 방법,계책을 지시하고 돌아옴.

정몽주가 판개성부사 유원이 죽어서 정몽주가 그 집에 들어가 조상하느라고 지체하니 방원 부하 영규가 

무기를 준비하고 기다리고있다가 정몽주가 이르자 달려가서 쳤으나 맞지않았고

정몽주가 영규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니 영규가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이 넘어졌다. 

몽주가 낙마하고 일어나서 급히 튀니 고여 등이 쫓아가서 그를 죽였다.

이방원이 정몽주가 죽었단 소식을 듣고 이성계에 알렸다.

하고는, 이에 노상(路上)에서 치기를 모의하였다. 전하가 다시 영규에게 명하여 상왕(上王=정종)의 저택(邸宅)으로 가서 칼을 가지고 와서 바로 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이르러 몽주를 기다리게 하고, 고여·이부 등 두서너 사람으로 그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몽주가 집에 들어왔다가 머물지 않고 곧 나오니, 전하는 일이 성공되지 못할까 두려워 하여 친히 가서 지휘하고자 하였다. 

문 밖에 나오니 휘하 인사의 말이 안장을 얹은 채 밖에 있는지라, 드디어 이를 타고 달려 상왕(上王=정종)의 저택에 이르러 몽주가 지나갔는가, 아니 갔는가를 물으니,

“지나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므로, 전하가 다시 방법과 계책을 지시하고 돌아왔다. 이때 전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유원(柳源)이 죽었는데, 몽주가 지나면서 그 집에 조상(弔喪)하느라고 지체하니, 이 때문에 영규 등이 무기(武器)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몽주가 이르매 영규가 달려가서 쳤으나, 맞지 아니하였다. 몽주가 그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니, 영규가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이 넘어졌다. 몽주가 땅에 떨어졌다가 일어나서 급히 달아나니, 고여 등이 쫓아가서 그를 죽였다. 영무가 돌아와서 전하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전하가 들어가서 태조에게 알렸다. 


정몽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방원보고 '불효자'라며 길길이 화를 내는 이성계

태조는 크게 노하여 병을 참고 일어나서 전하에게 이르기를,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忠孝)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大臣)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經書)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네가 감히 불효(不孝)한 짓을 이렇게 하니,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하매, 전하가 대답하기를,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康妃)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지라, 전하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공(公)은 항상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자처(自處)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

하였다. 전하는,

“마땅히 휘하의 인사를 모아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待備)해야 되겠다.”

하면서, 즉시 장사길(張思吉) 등을 불러 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빙 둘러싸고 지키게 하였다. 이튿날 태조는 마지못하여 황희석(黃希碩)을 불러 말하기를,

“몽주 등이 죄인과 한편이 되어 대간(臺諫)을 몰래 꾀어서 충량(忠良)을 모함하다가, 지금 이미 복죄(伏罪)하여 처형(處刑)되었으니, 마땅히 조준·남은 등을 불러 와서 대간과 더불어 변명하게 할 것이다. 경(卿)이 가서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라.”

하니, 희석(希碩)이 의심을 품고 두려워하여 말이 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제가 곁에 있다가 성난 목소리로 꾸짖으므로, 희석이 대궐에 나아가서 상세히 고하니, 공양왕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은 탄핵을 당한 사람들과 맞서서 변명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장차 대간(臺諫)을 밖으로 내어보낼 것이니, 경(卿) 등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않아 너무 분노하여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름.

이 때 태조는 노기(怒氣)로 인하여 병이 대단하여,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하(이방원)가 말하기를,

“일이 급하다.”

하고는, 비밀히 이자분(李子芬)을 보내어 조준·남은 등을 불러 돌아오게 할 의사로써 개유(開諭)하고, 또 상왕(上王)과 이화·이제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 상왕을 보내어 공양왕에게 아뢰기를,

“만약 몽주의 무리를 문죄(問罪)하지 않는다면 신(臣) 등을 죄주기를 청합니다.”

하니, 공양왕이 마지못하여 대간(臺諫)을 순군옥(巡軍獄)에 내려 가두고, 또 말하기를,

“마땅히 외방(外方)에 귀양보내야 될 것이나, 국문(鞫問)할 필요가 없다.”하더니


배극렴이 대간을 국문하여서 토설을 받아냈는데. 억지토설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조금 후에 판삼사사(判三司事)  배극렴(裵克廉)·문하 평리(門下評理)  김주(金湊)·동순군 제조(同巡軍提調)  김사형(金士衡) 등에게 명하여 대간을 국문하게 하니, 좌상시(左常侍)  김진양(金震陽)이 말하기를,

“몽주·이색(李穡)·우현보(禹玄寶)가 이숭인(李崇仁)·이종학(李種學)·조호(趙瑚)를 보내어 신(臣) 등에게 이르기를, ‘판문하(判門下)  이성계(李成桂)가 공(功)을 믿고 제멋대로 권세를 부리다가, 지금 말에서 떨어져 병이 위독하니, 마땅히 먼저 그 보좌역(補佐役)인 조준 등을 제거한 후에 이성계를 도모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였다. 이에 이숭인·이종학·조호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조금 후에 김진양과 우상시(右常侍)  이확(李擴)·우간의(右諫議)  이내(李來)·좌헌납(左獻納)  이감(李敢)·우헌납(右獻納)  권홍(權弘)·사헌 집의(司憲執義)  정희(鄭熙)와 장령(掌令)  김묘(金畝)·서견(徐甄), 지평(持平)  이작(李作)·이신(李申)과 이숭인·이종학을 먼저 먼 지방에 귀양보냈다. 형률(刑律)을 다스리는 사람이 말하기를,

“김진양 등의 죄는 참형(斬刑)에 해당합니다.”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다. 진양 등은 몽주의 사주(使嗾)를 받았을 뿐이니, 어찌 함부로 형벌을 쓰겠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호되게 곤장을 쳐야 될 것입니다.”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이미 이들을 용서했는데 어찌 곤장을 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진양 등이 이로 말미암아 형벌을 면하게 되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4장 B면

【영인본】 1책 17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사법-행형(行刑)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역사(歷史)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