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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게시물ID : panic_811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동호흡
추천 : 17
조회수 : 2955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5/06/25 21: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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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학년 1학기,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자취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절대 자취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2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보증금 200에 월세 35. 대학가에서는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적당한 집이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산다는 사실에 들떠 마냥 좋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매일 밥을 지어 먹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귀찮은 일이었고 원체 게으른 내게 청소는 과제보다도 끔찍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건 집이 유난히도 습하다는 사실이었다. 원룸 건물 앞에 작은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집이 늘 습했다. 심한 날은 들어오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환기를 해도 눅눅한 냄새가 났고, 벌레가 많이 나왔으며, 화장실엔 곰팡이가 폈다.

 곰팡이. 나는 도저히 그것의 존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벽과 바닥의 타일, 그리고 세면대, 변기 안까지 곰팡이가 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무수한 검은 점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확 끼쳤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전부 솔로 박박 닦아 없앴는데 그 끔찍한 것들은 사나흘쯤 지나면 다시 슬금슬금 자리를 잡으며 나를 비웃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주일 정도 방치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화장실 안이 온통 새카맸다. 그날은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고 한껏 예민해진 상태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 방 바꿀 수 없어?”

 뭔 소리야? 계약한지 얼마나 됐다고. 왜 그러는데?”

 징그러워서 살 수가 없어! 곰팡이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리 없애도 계속 생겨!”

 네가 청소를 잘 안 해서 그…”

 매일 한다고! 생길 때마다 솔로 박박 닦는데 자꾸 생기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이건 이 집 문제 아냐?”

 왜이래? 아무튼, 곰팡이 생기는 거야 당연한 거고. 뭐 정 싫으면 옥시크린 같은 걸로 닦아보든가. 방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네가 살고 싶다고 난리를 쳐서 얻어줬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바쁘니까 끊어.”

 내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엄마가 통화를 대충 마무리 짓고 끊었다. 짜증이 치밀어 침대 위로 핸드폰을 집어 던진 후에야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이 끔찍한 집에서 남은 학기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다. 나는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옆 슈퍼에서 옥시크린을 사왔다. 결과는, 기대조차 않았지만 실패였다.

 

 곰팡이에게 집 일부를 점령당한 채 지낸 지가 벌써 2개월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곰팡이는 꾸준히 나를 미치게 했다. 이따금 나타나는 다리가 열 개도 넘게 달린 벌레보다도 훨씬 싫었다. 아마 몸에 직접 닿을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변기 안쪽에 생기는 곰팡이는 상당히 찝찝할 수밖에 없잖은가. 그래도 그건 솔로 닦으면 무난히 잘 닦여나가는 편이었다. 문제는 샤워기였다.

 샤워기 호스의 굴곡진 틈 사이로 검은 곰팡이가 잔뜩 꼈다. 이건 왜인지 솔로 닦아도 잘 닦여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것들과 달리 샤워를 하는 도중 내 몸에 직접 닿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나는 샤워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요즘은 곰팡이가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곰팡이 청소를 하지 않고 주말 동안 본가에 내려갔다 왔더니 곰팡이가 끔찍하리만치 넓게 퍼져 있었다. 한동안 그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 청소를 열심히 해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고무장갑까지 끼고 땀이 나도록 세게 문질러 곰팡이를 없앤 후에도 계속 곰팡이 생각이 났다.

 다음날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동기가 옷을 샀다며 어떠냐고 물었다. 검은 바탕에 하얀 도트 무늬가 불규칙하게 들어간 옷이었다. 나는 무심코 곰팡이하고 중얼거렸다. 이미 뱉은 말에 동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미안. 그게 아니라, 내가 요즘 곰팡이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동기는 다행히 크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락스를 뿌려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까지 해줬지만 이미 시도해본 방법이었다. 평소에도 말을 까칠하게 하는 동기 언니가 지나가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말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곰팡이가 있는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괜히 기운을 빼고 싶지 않아 관뒀다.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들자 곰팡이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나는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나날이 예민해졌다. 과자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순간 곰팡이가 화장실 밖으로까지 퍼진 줄 알고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나는 곰팡이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 매일 많은 시간을 곰팡이 제거에 투자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곰팡이를 없앴는데, 그럼에도 샤워기 틈새에 낀 곰팡이만큼은 완전히 제거하질 못했다. 왠지 그곳이 곰팡이의 원흉 같기도 했다.

 주말에 집에 다녀온 사이 역시나 곰팡이가 번져 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손길로, 그러나 여전히 날이 잔뜩 선 채 청소를 한 뒤 샤워를 했다. 샤워기 틈에 낀 곰팡이는 이제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최대한 호스가 몸에 닿지 않게 노력하며 샤워를 끝내고 나와 안경을 썼다.

 “……이게 뭐야?”

 로션을 바르려고 본 거울 속 내 쇄골 밑에 검은 점이 있었다. 나는 쇄골에 점이 없는데. 놀란 마음에 거울에 붙은 곰팡이인가 싶어 몸을 움직여봤지만 점은 내 움직임을 따라왔다. 확실히 내 몸에 있는 점이었다. 보통 점은 갈색 빛이 조금 돌기 마련인데, 이 점은 유독 까맸다. 마치 곰팡이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그 부위가 가려워져 조금 긁었다. 자면서도, 다음날 아침에도 계속 가려웠다. 하루 종일 그 부위를 쓰릴 정도로 긁다 밤에 샤워를 하고 나오며 다시 거울을 봤다. 점은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두 개였다.

 문득 샤워를 하다 호스가 몸에 닿았던 것이 기억났다. 설마. 하지만 점이 늘어난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다. 유난히 가려워 자꾸만 쇄골을 긁었다. 아팠지만 그만큼 불안했다. 한동안 거울을 피하며 샤워기 호스를 비닐로 감쌌다. 쇄골은 여전히 간지러워 습관처럼 긁어댔다.

 전공 수업이 끝나고 동기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동기는 내가 쇄골을 긁는 모습을 보더니 빨개졌다며 그만 긁으라고 핀잔을 주었다.

 , 너 거기 점 있었네?”

 ……. 생겼어.”

 생겨? 한 번에? 세 개나?”

 “……세 개?”

 , 하고 대답하는 동기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쇄골 쪽을 비췄다. 점은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나번져 있었다.

 아아아악!”

 놀란 동기를 뒤로하고 쇄골 밑의 살을 찢을 듯 세게 긁으며 단숨에 언덕길을 내려왔다. 거울을 보니 더욱 뚜렷한 세 개의 점이 보였다. 안돼, 안돼.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화장실을 청소하던 솔을 꺼내 문지르려다 문득 곰팡이가 더 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긁을 수 있는 거, 곰팡이없애야 돼…… 긁는, 날카로운 거…!”

 물건을 마구 뒤적이다 찾아낸 것은 커터칼이었다. 잠시 망설여졌지만 곰팡이가 더 번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입술을 깨물고 거울을 보며 쇄골 밑을 칼로 마구 긁었다.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피가 옷에 흥건했다. 아픔에 깨문 입술도 터져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씨발 별 것도 아닌 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피곤했는지 졸음이 몰려왔다. 대충 상처에 약을 바르고 그대로 잠들었다.

 

 낮에 잠이 든 탓에 오후 늦게나 눈을 떴다. 그 동안 온 카톡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쇄골이 아팠다. , 맞다. 곰팡이를 제거했었지.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청소를 하기 위해 불을 켰다.

 “…, 아아……!”

 바닥이 온통 검었다. 아까 내가 흘린 피 자국대로 군데군데가 둥글게, 혹은 넓게 검은 모양들이 불규칙하게 잔뜩 퍼져 있었다.

 곰팡이. 곰팡이다.

 검은 곰팡이가 이제 욕실 밖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아니, 아니야…”

 저 곰팡이는 욕실에 있던 게 아니다. 욕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데, 곰팡이 자국이 이어지지 않고 욕실과 뚝 떨어져 있다. 이건 내 피에서내 피가, 내 피 속에 곰팡이가 있어. 내 몸 속에 곰팡이가…….

 안돼, 안돼제발. 없애야 돼……. 제발.”

 울면서 쇄골을 마구 긁었다. 아직 아물지도 못한 상처에서 또 피가 났다. 아픈지도 몰랐다. 그저 그 피 속에도 곰팡이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고 보니 칼로 긁었을 때 쇄골 쪽의 곰팡이가 사라졌었는데. 그래. 몸 속에 있는 곰팡이가 빠져 나와서 그랬을 거다. 나머지 곰팡이도 전부 빼내야 돼. 안 그러면 온 몸에…….

 순간, 온 몸이 검게 뒤덮인 내 모습이 스쳤다.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며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꺼냈다. 아픈 건 잠깐이야할 수 있어. 해야 돼. 연신 중얼대며 손 닿는 곳은 전부 칼로 그었다. 계속 소리를 질렀기에 옆집에서 벽을 쾅쾅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아니 사실은 얼마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조금 어지러운가 싶더니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잔뜩 빠져 나온 피에 곰팡이가 사라졌을 것을 생각하니 만족스러웠다. 몸을 가눌 힘이 없어 누운 채 시선을 돌린 곳은 욕실이었다.

 이제 곰팡이의 원흉이 사라졌으니 욕실도 깨끗하겠지. 기대를 품고 바라본 욕실 바닥은 나를 비웃듯 평소보다 훨씬 짙은 곰팡이가 넓게 퍼져 있었다.

 

 뭐야, 대체 뭐, …! 내가 이제 뭘 어떻게…….”

 곰팡이는 나를 비웃듯 빠른 속도로 더욱 넓게 퍼졌다. 그것은 바닥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시야를 덮었다. 시야가 점점 곰팡이에 침식되어간다. 검은 곰팡이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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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곰팡이를 보고 있자니 자꾸 히스테릭해지는 것 같아서 글로나마 곰팡이와의 전쟁을 끝내보고 싶었어요. 결국 졌지만...
 
현재 방에서 나온 상태인데, 짐을 빼러 돌아갔을 때 곰팡이가 어디까지 번져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ㅠ
출처 3개월간 곰팡이에 시달리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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