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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변호사가 정치인이 된 선례
게시물ID : sisa_5202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ong!
추천 : 10
조회수 : 67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5/31 18: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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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 (橋下 徹) 현 오사카시(市) 시장


약력 : 변호사 활동중, 고교 선배로부터 방송 제의가 들어옴(TBS 라디오, 아사히 방송)
         니혼TV 방송중 [행렬이 생기는 법률삼당소](한국으로 치자면 솔로몬의 선택) 프로듀서로부터 방송 출연 제의, 2003년 4월경부터 레귤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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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답지않은 위트있는(?) 발언 및 방송센스로 제법 인기를 얻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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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오사카부(府) 지사(知事) 선거에 출마, 당선 

그후 오사카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위해 재정 비상사태 선언, 부지사 급료/보너스 30% 삭감/퇴직금 50% 삭감 

일반공무원의 월급 삭감(3.5~16%) 및 보너스 삭감(4~10%)및 각종 공무원 혜택(주거, 교통수당 등) 대폭삭감

지자체 차원의 지원활동 및 보조금 지급 전액 폐기 및 비정규직 공무원(경비위탁,의무교육 보조 등) 인원 정리해고 및 급료 삭감

그밖의 부차원의 행정/교육/안전/보험/응급센터 등 예산이 들어가는 곳이란 곳은 모두 인원 및 예산 대폭 삭감

"나와 함께 죽을때까지 일해달라, 그리고 죽어달라" 라 발언


현재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재정적자는 해소된것처럼 보이지만 부내(府內)의 경제활동이 침체되어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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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사카 부지사를 사임 후 오사카 시장(市長) 선거 출마 선언 (한국으로 예를 들면 경남도지사가 사임 후  부산시장 후보에 출마)

그리고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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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사 시절엔 자민당(일본 제1여당, 1955년부터 중간의 몇개월씩 빼고는 항상 제1여당으로 집권)의 지원을 받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탈당 후
오사카 유신회 라는 당을 설립 (이후 일본 유신회로 당명 변경, 후에 동쪽의 또라이 이시하라 신타로와 합당)

이후의 행보는 주로 오사카 부+오사카 시=오사카도(都) (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경남+부산을 합쳐 부산특별시, 즉 수도와 같은 지위로 승격) 구상에 박차.

자신의 고문 변호사들로 하여금 시청 내 공무원의 이메일 등을 검열,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려 하는 움직임 등, 깔 거리는 수도없이 많으나.


대망의 망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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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대표 [위안부는 필요했었다]) 2013년 5월

오키나와 주둔 미군사령관과 회견중 미 사령관에게 "좀더 풍속업(성매매업)을 활용해주길 바란다" 라 발언
"위안부 제도는 아니지만 성매매업은 필요하다 생각한다. 사령관에겐 허용 법률 안에, 성적인 에너지를 합법적으로 해소할수있는 장소가
 일본에는 있으니 진지하게 그런 장소를 활용하는걸 검토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미 해병대의 성욕을 컨트롤 할수 없다."
라 발언

이에 대해 미 해병 사령관은 쓴 웃음을 지으며 "미군 규정에는 금지되어있다" 라며 단박에 거절
(이후 미국에서는 마이크 혼다 의원 및 미 국무부 대변인, 에드 로이스 공화당 하원의원까지 나서서 하시모토를 규탄)

이 외의 발언을 대충 정리하자면...

역사를 살펴본다면, 여러 전쟁에서 이긴 쪽이 진 쪽을 겁탈한다는것은 산더미만큼 많다, 그런 문제를 하나하나 따져가기 위해서라면, 일정범위 내에선 위안부같은것이 필요하다는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위안부 제도는) 한국전쟁 당시에도 있었다

현재 우리 일본국이, 한국이나 기타 다른나라의 선전때문에 강간국이라고 오해를 받고있다. 이게 제일 문제다. 증거가 나온다면 인정해야 하겠지만 현재 2007년 정부의회(제1차 아베내각) 내에서는 그러한 증거가 없다고 되어있다. 글씨크기가 점점 커지는것은 작성자의 혈압이 덩달아 상승하였기 때문입니다





종합 요약 : 방송에서 파격적인 스타일로(방송 초기에는 금발 및 선글라스 착용) 기존 법률인의 이미지를 깨고 딱딱하다 생각되었던 법률인의 이미지를 탈피, 트위터 팔로워 61만여명을 거느린 방송의 인기스타로 발돋움, 그후 정치계 입문, 방송인 시절에는 법률인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그 여파일까, 뇌가 딱딱하게 굳어서 생각없이 사는중. 그러나 이사람이 정치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방송 이미지 활용 및 끊임없이 자신은 무언가를 해내고야 말겠다던 끊임없는 선전 및 포퓰리즘으로 인하여 그때까지 수동적인 정치인의 행보에 익숙해져있던 일본국민이별 생각 없이 "쟤가 저렇게 열심히 하겠다는데 한번 뽑아봐야지" 하며 표를 사용한것이 지금의 사태(물론 그도 정치인이 된후 말바꾸기는 기본이요, 망언은 옵션이고 지지율이 오락가락 할때는 다시한번 포퓰리즘 파워!)




현재 선거에 출마해 있는 어떤 분의 행보의 초기양상과 매우 비슷하여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주어는 없습니다만) 물론 그사람이 저리 되란 보장은 없지만, 단순히 방송에 오래 출현하여 아는 얼굴이 이사람밖에 없어서, 방송에서 이미지가 좋았으니 잘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따위가 아닌, 후보 한명한명마다 공약 및 검증된 자료를 활용하여 유권자분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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