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사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그림덕후입니다.
실제 겪은 일이고, 무덤덤히 넘긴 사건 이었는데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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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덜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만해도 중소 게임 개발사는 사무실에 항상 숙식의 공간이 기본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쓰는 늄침대는 좀 하급이고... 밥 해주는 아주 머니와 잠잘 방을 따로 마련해 놓는 좋은 곳도 있었죠.
여하튼간에, 사무실에서 같이 숙식을 하는 동료도 있지만 대개는 저 혼자 한밤중에서 새벽 4시 정도까지는 철야 작업하고
게임도 하면서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평소 무서움을 주변 사람들보다 좀 덜 타는 편입니다. 공포영화 좋아하고 고어물은 걍 밥 먹으며 볼 수 있는 비위를 가졌구요.
그렇기에 깜깜한 밤길 혼자 걸어도 무서움 안타고 불 다 꺼놓고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면서 텅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게 익숙해서인지
어두움과 홀로 됨은 저에게는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히끼꼬모리 아닙니다. 예쁜 딸 셋 있는 마흔살 가장이예요 ㅡ,ㅡ)
어릴적에 다른 건 다 기억 안나도 5살 즈음에 밤에 불만 끄면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발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상당히 오랜 기간 여명이 올때까지 밤만되면 불 켜고 집안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읽으면서 무서움을 극복한 기억이 납니다.
(5살 짜리 꼬마였는데 깨알같은 글씨의 백과사전과 위인전, 수필, 소설 등을 읽었으니 말 다했지요.)
큰아버지댁 제사에 가서 밤에 무서움 타는 얘들은 젯밥에 물 말아서 먹으면 무서움 안탄다고 하신 큰어머니 말씀에 갈 때마다 젯밥 한그릇
다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몇 년 젯밥 먹고, 밤에 잠못이루고 책을 읽으며 무서움과 싸운게 몇년 후.... 거짓말처럼 무서움이 사라졌
습니다.
시골 할머니댁이 경기도 화성이고 화성쪽에서도 양지편 마을과 가까운 해안가 옆에 100년 정도 됨직한 초갓집이 외할머니댁이었습니다.
바로 앞 산이 외할머니 처녀 적에 이무기가 나와 밤엔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도 않는다는 곳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외할머니가 새벽기도
가신다고 그 산을 지나가실 때 따라오던 강아지들이 산 입구 초입에서 멈춰 더이상 따라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밤에 혼자서도
걍 지나갈 정도로 무서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서늘하고 오싹한... 소위말하는 솜털이 쭈뼛 서는 감각도 사라진 건 아니지요.
아무튼 나이가 차고 20대 중후반 즈음에 일하던 회사는 서울의 창동에 위치한 게임 개발사였습니다. 사무실이 팀 별로 나뉘어있어서 규모는
33평 아파트 평수만한 곳에 5~8명 정도 팀이 게임 하나씩 맡아 개발하는 사무실이었습니다. 숙식 또한 제공되어 여건이 괜찮죠.
"그녀"가 제게 찾아온 첫 번째 징후는 게임에 들어갈 사운드 Wave 파일을 찾기 위해 인터넷 나우누리와 하이텔 자료실을 뒤지던 때 였어요.
사운드 샘플 찾는 중 게시물 중 하나의 제목이 "소름끼치는 귀신 소리"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뻔하죠. 여자 웃음소리죠 뭐... 다운 받았습니다.
모뎀이라 느리죠. 몇 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사운드 편집 프로그램에 해당 파일을 로드하고 플레이를 누르는 순간..... 전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제 이름을 "명규"라는 가명을 쓰죠.
(작은 소리로) "명규야~~~~"
(좀 더 크게) "명규야~~~~"
(좀 더 앙칼진 톤으로) 명 규 야~~~~~흐으~~~~"
(소름돋는 여자 웃음소리) "이히히히히히히히히~~~~~~~~~"
리버브와 볼륨이 최대한 높은 찢어지는 여자의 음성이 스피커를 찢듯이 나와서 의자에 앉아있던 저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습니다.
제 이름이 맞는지 다시 틀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바로 파일 삭제했지요.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자고 일어나면 엄청난 두통이 몰려오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워낙 미련하고 무덤덤한 성격이라 한 밤중에 받은 귀신 소리 사운드 파일에서 제 이름 석자가 또렷하게 나왔어도 꿋꿋하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철야하며 지냈지만... 한 번 자면 웬만해선 꿈도 꾸지 않을뿐더러 무슨 꿈인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푹 빠져 자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두통이 생겼습니다.
아울러서 커피를 달고 살기 때문에 커피를 쏟는 일이 참 많은데... 그 일을 겪은 후 커피를 쏟으면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야 이 X발년아 제발 그만 좀 해!!!" 라고 마치 누가 옆에 있는마냥 탓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갔습니다. 중딩때부터 같이 그림 그리며 놀던 친구라 그 날 친구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지요.
샤워를 하고 나와 티브이를 보는데 자꾸만 등이 간지러워 친구보고 등을 좀 긁어달라고 했습니다.
웃통 까고 등을 친구쪽으로 돌리는데, 친구가 잠시 아무 말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뭐해? 등 좀 긁어 달라니까!"
친구가 그러더군요. "야.. 너 등에 이게 뭐냐?"
친구가 "야.. 니 등짝에 손톱자국 나있어..."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자다가 가려워서 긁었나부지.."
"야. 이걸 니가 어케 긁어.. 목부터 허리까지 일직선으로 세 줄 자국인데... 니 팔이 달심이냐?"
친구가 거울 하나를 저에게 주고 다른 거울로 등을 비춰 주었습니다. 순간 섬뜩하더군요.
당시 상황을 직접 그림으로 설명함.
정확하게 목부터 시작해서 엉덩이 바로 위까지 세 줄의 손톱자국이 끊김없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팔을 등 뒤로 돌려 똑같이 긁으려 해도 중간에 끊임없이 긁는 다는 게 도저히 불가능하여 대체 이게 왜 생긴건가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요. 한밤 중에 귀신소리 사운드 파일 받아서 재생했는데 제 이름이 나온거부터...
자고 일어나면 두통이 심하다는거.... 친구가 회사에서 자지말고 자기집에서 자라고 권유하더군요.
괜찮다고. 안 무섭다고 얘기하고 그날 친구집에서 자고 다음날부터 다시 예전처럼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습니다.
지금은 아주 가끔 그녀의 존재를 느낍니다.
결혼하고 애도 있고 먹고살기 바빠 "그녀"가 뭔가 저에게 사인을 줘도 눈치 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지만...
가끔 아이패드로 만화보다 소파에서 잠이 들면 유독 새벽 1시에서 두시 사이에 깨면서 한 여름인데도 오싹하고 추울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살포시 와이프랑 딸들 곁으로 가서 누워 잠을 자지요.
가장 최근에는 국립 자연휴양림에 놀러가서 1박할 때, 복층식으로 된 숙소였는데... 딸들과 와이프는 춥다고 1층 방 안에
들어가서 자고 전 술기운이 올라오고 후덥지근하여 2층에서 잔 적 있는데 소름돋고 오싹한 기분에 잠이 깨서 가족들 곁으로
가서 잔적이 있었지요. 아마도 그녀가 숙소 주위를 배회하는 게 아니었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십수년간 따라다니며 커피 쏟고 등에 손톱자국 낸 그녀의 정체를 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밤이 무서워서
잠못드는 어릴적부터 그랬던 건지도 모르고요...
그냥 두서없이 체험담 쓰는 저도 대체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을 가지지만, 오늘도 여전히 바쁜 출시 일정에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글을 쓰고 있고 제 생활이 딱히, 변할 조짐은 없어 마치 제 삶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한 마디만 합니다.
"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다른곳으로 가거라"
PS : 이 글은 100% 제 경험담입니다. ㅋㅋㅋ 인터넷에 뭐 괴담이니 뭐니해서 올린적 한 번도 없고, 영화 "귀접" 재미있는지
검색해보다가 오유 공포 게시판으로 타고 들어와서 글 쓰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