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전설 : 천년이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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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내 자만심이 얼마나 하늘을 찔렀는지를 말이다.
트와일라잇의 명석한 두뇌와, 캐이댄스의 잠재 마력을 나와 비교해보고 나서 하는 말이다. 물론 난 이퀘스트리아의 다른 유니콘들과 비교하면 강력한 유니콘임은 확실했으나, 나만 유일하게 강력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 셋의 능력은 거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었다. 물론 캐이댄스는 마력량으로만 따지면 트와일라잇과 나를 한참 압도하고도 남았다. 본마가 그걸 포니들끼리 포옹하거나 키스시키는 데에만 써서 문제였지..
하지만 별로 분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난 그게 가장 놀라웠다. 나는 이미 정점 중의 정점에 달해있었으니 누가 더 극에 달했든 별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랄까. 그저 셀레스티아가 내 후계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선셋 언니!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려는데, 저 말고 그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포니들이 한 기도 없어요!"
...아직 그 말은 좀 이르려나. 트와일라잇은 여전히 미숙한 점이 많았다. 방금과 같이 일 흘러가는 게 제 예상과 살짝 틀어지기만 해도 즉시 강박증을 일으키며 극심하게 동요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코를 한 번 비비고, 한숨을 한번 쉰 후 일지를 들여다보았다.
"트와일라잇.. 설마 전처럼 캔털롯 공원에 진열된 석상이 사실은 봉인된 혼돈의 신이며, 봉인이 풀리는 날 이퀘스트리아는 멸망한다는 내용과 같은 허무맹랑한 괴담집의 내용을 보고 또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 주라..."
트와일라잇은 전에 그 괴담집을 보고 혼란에 빠져 자기와 같이 캔털롯에 가서 확인해보자고 한 바가 있었다. 근데 내가 미쳤다고 성에 제 발로 들어갈까? 난 그때 트와일라잇이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했었다. 그러나 진심인 걸 알고 나서 심각하게 정신과 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보라고 조언해볼까 고민도 한 번 해봤었다.
"아뇨 이번엔 진짜라니까요? 지금 언니랑 언쟁하고 있을 여유도 없는데..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절 성 밖으로 쫒아냈다구요!"
갈기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허둥지둥 음성 기록 주문이 뭔가 잘못돼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았다. 잘못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숨이 막혀왔다. 이거 나 때문에 그런 거야?
"잠깐! 어째서!?!??"
나는 극도로 동요하며 책에 대고 외쳤다.
"나 때문이야? 셀레스티아가 알아냈어? 트와일라잇! 바로 네 발굽 다 닮도록 싹싹 빌고, 다 언니 때문이라고 해. 응? 내가 살살 꼬셨다고 하라고! 책임은 언니가 다 질게!"
"그게 아니라, 성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친구 좀 사귀라고 하셨다구요."
안도감이 들어 나는 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트와일라잇은 내가 과거에 내가 큰 실수를 했던 기로에서 지금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다행히 난 내가 어디서 실수를 했는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트와일라잇이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언을 해 줄 수 있었다.
"일단 공주가 하라는 대로 해."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언니 말 들어. 굳이 공주랑 말싸움하려 드는 것보단 이 방법이 더 나을 테니까. 그리고 친구 사귀는 거 그거 좋은 일이야. 만약 내가 숲에서 살면서 다른 포니들과 교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정신이 완전 나가있었을걸?"
그리고 지금 난 폐허가 다 된 성에서 일지에다 대고 말을 하고 있지.. 사실 난 이미 미쳐있는데 내가 자각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우- 언니마저도 그러면 안 되죠! 내일이 무슨 날인줄 아세요? 금년부로 천 년째를 맞이하는 하계 태양절이라고요!"
나는 부연설명을 기다렸다....................... 더 없나?
".??....그래서"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책에 따르면, 천년이 지나 봉인이 풀린 달 위의 암말, 나이트메어 문이 이퀘스트리아에 영원한 어둠을 몰고 온다고 나와있다구요!"
나는 일어서서 갈기를 한번 긁적거렸다.
또 과민반응이구나 트와일라잇..
저번에 겪었던 일련의 사태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일의 최선의 해결책은 트와일라잇의 집중을 분산시키고 화기 엄금지역엔 가급적 안 가게 하도록 유도하면서 트와일라잇 본마의 흥분을 차차 가라앉힌 뒤 결국 자기가 이불 뒷발로 뻥뻥 걷어찰 짓 했다는 걸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뭐 그래도 이번엔 갈기를 빠르게 자라게 하는 방법을 찾느라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예 그런 일이 또 있을까봐 아예 외우고 있으니까. 저번엔 트와일라잇의 갈기에 불이 붙어서 뒷수습을 하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셀레스티아가 오히려 더 잘 알고 이미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지 않을까? 셀레스티아도 그렇게 바보는 아닌걸."
"그래서 공주님에게 물어봤는데, 심각하게 들어주시기는커녕 절 이렇게 쫒아내시는거 있죠! 가서 하계 태양절 준비나 도우라고 하더라니까요!"
"잘 됐네. 시키는 대로 해 그럼."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가열중인 가마솥 쪽으로 갔다. 물약과 점심 식사를 동시에 만들고 있었는데, 어떤 게 물약이고 어떤 게 점심식사인지 까먹었다.. 망할.... 하긴 뭐.. 가끔 에버프리의 마녀도 가끔씩 얼빠진 짓은 저지르는 법이다.
다행히 내가 찍은 오른쪽 방향의 가마솥에는 점심이 담겨있었다. 만약 물약이었다면 일주일 내내 내 몸 전체가 시퍼렇게 변했을 테니 천만다행이었다.
"진짜 저 만으로는 엄청 벅찬 일이에요! 언니가 꼭 도와주셔야 될 것 같아요!
나는 짜증스럽게 두 눈을 옆으로 굴리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트와일라잇. 나 여행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아니,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이번 하계 태양절 행사는 포니빌에서 열리니까요."
"잠깐.. 그 말은.. 셀레스티아가 여기 온다는 거야?!"
나는 내 숟가락을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그것부터 말 할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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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을 싸매고 망토를 단단히 두르고 포니빌 도서관 앞으로 걸어갔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셀레스티아가 올 때 까지 마을에서 넋 놓고 기다리느냐,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트와일라잇과의 약속을 어기고 성으로 튀느냐다. 인정하긴 싫지만, 난 이미 이 마을의 명예 주민이나 다름없는 입장이라 마을에서 내 신원은 언제나 발각될 수 있었으며, 성만큼 숨기에 안성맞춤인 곳은 이 근처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성의 폐허엔 보통 유니콘들이 그저 가까이 다가가만 해도 머리가 쪼개질 정도의 두통을 유발하는 거친 마력이 날뛰는 구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접근을 막는 함정들이 많았다는 건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전에 내가 숨겨진 함정을 잘 못 건드려서 저 밖 절벽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바람에 성 탐사를 아예 그만둘 정도로 이 성엔 진짜 함정이 넘쳐...
으으. 잠시 진정 좀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하늘을 보았...
는데 경비병들이 내 머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우라질!"
진정 따윈 진작 물 건너갔다. 나는 우왕좌왕하며 정신이 완전히 산만해지기 전에 순간이동 주문을 시전했다. 불행히도 나는 이런 돌발 상황에 순간이동을 할 때는 주문의 정밀성이 엄청 떨어졌으므로, 나는 도서관 나뭇가지 위로 순간이동하는 바람에 그 위에 볼품없이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지방 도서관은 정말 가짓수가 많지 않.....썰렁한 농담이로군...
나는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혹시나 경비들이 날 보면 체포해서 깜방에 처넣던가, 기타 등등 내 신상에는 안 좋은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선셋 언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어디 계시지?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순간 내 발굽이 가지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기제류는 평원을 달리기 적합하게 진화했지, 나무 위에서 활동하기 좋도록 진화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뭇가지를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애써봤자 헛된 시도였다. 나는 아주 익다 못해 썩어버린 과일처럼 나뭇가지 위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땅과 면담하기 바로 전에 어떤 유니콘이 마력으로 날 받아줘서 망정이었지..
"여기 계셨네요?"
트와일라잇이 날 만나서 아주아주 반가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언니. 나무 위에서 뭐 하셨던 거에요?"
"그럼 넌 경비병들이랑 뭐 하고 있었던 건데?!"
트와일라잇은 약간 입술을 깨문 채로 나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트와일라잇 등 위의 스파이크가 땅 위로 내려와 혀를 쯧 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열기구 타고 가자고 했었잖아. 하여간 상식이 없어요 상식이.. 선셋 누나. 걱정 마요. 경비병들 다 갔으니까."
나는 숨을 몰아쉬고 집중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스파이크가 타박을 놓건 말건 트와일라잇은 무언가를 꺼내기에 바빴다.
"여기. 상세한 계획을 짜 왔어요.!"
트와일라잇이 마침내 계획표가 적힌 두루마리를 꺼내며 말했다.
"일단 하계 태양절 대비를 빠르게 마친 후, 바로 언니는 나와 같이 조화의 원소를 연구하기로 해요. 그게 나이트메어 문을 물리칠 유일한 방법이라구요!"
나는 한 쪽 눈가를 미심쩍게 올렸다.
"조화의 원소?.... 어디선가 들어는 봤는데.."
어쩐지 내가 원래부터 알고 있어야 할 물건이라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공주님이 하신 다른 말씀은 어쩌구? 친구도 사귀어야 되잖아?"
스파이크가 끼어들었다.
"스파이크! 이퀘스트리아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는데, 한가하게 친구나 사귀러 다니자는 말이 나와? 그리고 나 친구 많아! 오빠랑, 캐이댄스 언니랑, 여기 선셋 언니! 봤지? 충분하잖아!"
트와일라잇은 당차게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네 오빠나 보모나, 선생님 빼고 다른.... 아 몰라. 관두자.."
스파이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자!"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에게 두루마리를 넘겼다.
"일정표 체크는 네가 좀 해줘. 첫 번째로 할 일은 뭐야?"
"음... 일단 스위트 애플 애이커에서 축제 음식 확인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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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애플 애이커. 아마도 포니빌이 처음 지어진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유구한 농장이었다. 다만 헛간만은 예외였다. 한 1~2년마다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기 일쑤였으니까.
보통 마법 같은 건 잘 안 믿는 애플잭도 이건 꽤 심각했던지, 헛간을 지어둔 자리에 고대 사슴 집단 매장지나 집시의 저주 같은 마가 끼었는지 나한테 확인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건 없었다. 대신 흰개미 때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뿐이었지. 결국 흰개미 때가 헛간을 거의 먹어치워 애플잭은 눈물을 머금고 헛간을 다시 한 번 올려야 했다.
스위트 애플 애이커. 아마도 포니빌이 처음 지어진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유구한 농장이었다. 다만 헛간만은 예외였다. 한 1~2년마다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기 일쑤였으니까.
"아! 언니 왔심니꺼?!"
우리가 농장에 도착하자 저 멀찌감치서 애플잭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애플잭의 농장엔 평소답지 않게 수많은 포니들이 몰려있었다. 이번 축제 준비를 돕기 위해 애플잭의 일가친척들이 한데 모인 것 같다.
"잘 있었어 애플잭?"
나 또한 큰 소리로 답례를 건넸고,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와 포옹을 나누었다. 트와일라잇은 이런 내 뒤에 서서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트와일라잇 스파클 입니다. 전-"
"아! 댁이 트와일라잇이신교?"
애플잭은 트와일라잇의 발굽을 붙잡고 잔상이 보일 정도로 흔들었다.
"선셋 언니께 말씀 많이 들었슴더! 지는 애플잭이라 캅니더. 스위트 애플 에이커는 언제나 오시는 분을 따뜻이 환대하는 곳이지예! 게다가 선셋 언니의 친구는 또 우리 친구다 아입니꺼?"
"잠깐! 언니.. 이 포니랑 아는 사이에요?"
트와일라잇이 얼굴을 찌푸렸다.
"알다 뿐입니꺼? 언니는 우리 애플 가문의 명예 가족이라 안 캅니꺼! 우리가 언니에게 참으로 신세를 많이 져갖고예!"
애플잭은 친근하게 내 어께를 감쌌다.
"자.. 그럼 무슨 볼일로 오셨슴꺼?"
"이런.. 캐이댄스 때의 복수 치고는 좀 과하려나?"
나는 스파이크에게 대고 소곤거렸다. 스파이크는 낄낄대며 웃었다.
"그..그게.. 하계 태양절 축제 준비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감독하러 온 거에요. 분명 여러분의 할당량이.. 축제 음식 맞으시죠?"
"바로 찾아오셨슴더! 온 김에 한번 맛 좀 보고 가이소!"
트와일라잇은 이래도 되나 하는 눈치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애플 가족은 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요리사이기도 해. 일단 맛보면 후회는 안 할걸?"
"그게 전 다른 일이-"
트와일라잇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애플잭은 트와일라잇을 낚아채고는 트와일라잇이 들을 생각이 없건 말건 일가친척들과 농장 지리를 죄 소개시켜주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내 옆에 앉은 채로 그 광경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너도 가서 뭣좀 먹지 그래? 여기 프리터 진짜 맛있는데 말야. 그리고 너 튀긴 음식 진짜 좋아하잖아."
나는 내 염동력으로 프리터가 가득 담긴 쟁반 하나를 들어 스파이크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누나."
이윽고 한 입 먹더니 행복한 탄성을 냈다.
"우와! 진짜 맛있다!"
"그럼. 누가 추천하는 건데."
나는 코웃음을 한번 쳤다.
"또 트와일라잇이 급하다고 너 밥도 안 주고 그러는 건 아니지?"
"누나 지금 농담해요?"
스파이크는 인상을 약간 구기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밥을 챙겨줘야 할 판 이였다니까요? 혼자 놔두면 밤새도록 연구만 하느라 며칠씩 밥을 굶을 기세였다구요!"
"걔답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언니야! 아점 좀 드시고 가실레예?"
애플잭이 멀리서 나한테 묻는 말이었다.
"당연하지!"
트와일라잇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냅다 승낙해버렸다. 제 정신 박힌 포니라면 공짜 밥은 거절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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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음식은 확인했고.."
스파이크는 일정표의 확인란에 체크를 해 두었다.
"다음은 날씨네?"
"으윽.. 터질 것 같아.. 파이를 너무 많이 먹었어.."
"반 이상은 네 얼굴에 묻은 것 같은데, 넌 음식을 얼굴로도 먹니?"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공주가 너한테 식탁 예절을 가르쳐 줬을 텐데..."
"이정도면 충분히 좋은 식탁 예절 맞죠! 그리포니아 식으로 따지자면요. 거기에서는 음식을 최대한 게걸스럽고 지저분하게 먹는 게 맛있는 요리를 해 준 요리사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구요."
"여기는 이퀘스트리아니까 이퀘스트리아 법을 따라야지. 이퀘스트리아라는 나라 알지? 유니콘들이 마력으로 음식을 집는것도 불결하다고 여기는 바람에 숟가락을 발명할 정도로 밥상머리 예절이 까다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네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내가 한참 트와일라잇을 골려먹고 있을 때 스파이크가 목록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음.. 이 구역날씨 관리 총 책임마가 레인보우 대쉬..."
"걔가 막 승진한지 몇 주 정도 됐던가? 전에 있던 관리마가 일을 농땡이피우는 바람에 포니 여럿 다칠 뻔한 적이 있었는데 레인보우 대쉬가 그 때 다서서 일을 싸그리 해결했거든? 만나는 포니마다 붙잡고 그때 자기가 얼마나 멋있었는지 떠벌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야 아마.."
"근데 지금은 왜 이 모양이래요?"
트와일라잇은 하늘을 가리켰다. 어젯밤 있었던 비로 인해 남아있던 잔 구름들이 청소되지 않고 어지러이 너부러져있었다.
"어디서 낮잠이라도 자는 모양인가보지.. 아휴.. 오늘 대부분의 날씨 관리마들은 축제 휴일 때문에 근무도 안 할 텐데.."
그 때 하늘 저편의 구름에서 무지갯빛 잔상이 보여 그게 나한테 들이닥치기 전에 난 가뿐하게 몸을 피했다. 하지만 내 뒤에 있던 트와일라잇은 영문도 모른 채 그 고속으로 날아오는 잔상과 정통으로 부딪혔고, 그 바람에 근처에 있는 진흙구덩이로 쳐박히게 되었다.
"끄악!"
트와일라잇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오는군 이거.
"어, 미안요!"
레인보우 대쉬가 물 묻은 개처럼 진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사실 옆에 있는 이 언니 노리고 한 거였걸랑요? 전에 저 언니가 내가 비행 연습할 때 나 도와준다면서 속이고는 통과용 원형 고리가 갑자기 폭발하도록 장난질을 쳐 놨었단 말이지?"
"말은 바로 해야지. 일부로 폭발시킨 건 어니였거든? 그리고 고리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거기에 붙여둔 불의 마력이 너의 비행 마력과 작용해서 과부하가 날 수도 있다고 내가 뻔히 말했잖아."
아직도 그 고리가 왜 폭발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내가 뭘 잘못 조정했던지, 대쉬의 비행 마력이 주문식에 과부하를 걸 정도로 너무 강력했었던지 둘 중 하나였겠지.
사실, 그 고리에 장난질을 해 둔건 맞았다. 원래는 깃털을 하얗게 변화시키고 입에서 닭 울음소리가 나게 만드는 가벼운 저주가 걸려있었던 것이다. 다음번엔 더 주문식을 개량하여 실패 없이 해봐야겠다.
"말은 잘해요 하여간.... 그럼 나 잠깐 어디좀."
대쉬는 잔상을 남기고 저 멀리 사라졌고, 트와일라잇은 갖은 인상을 쓰며 날 돌아보았다.
"날씨 관리마라구요? 저런 포니가? 그냥 마을 불량배가 아니라?"
"불량배 비슷한 포니라면 여기엔 나 밖에 없는데? 왜? 마녀가 그렇지 뭐."
"잠깐 거기 있어봐요!"
레인보우 대쉬가 어디선가 거의 다 쓴 비구름을 가져와 트와일라잇 위의 하늘에 올려놓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대쉬는 비구름 위에서 아래위로 방방 뛰었다. 구름에서 비가 젖은 걸레 짜내듯 쏟아져, 트와일라잇의 온몸에 묻은 진흙을 다 씻어 내렸다.
"아휴.. 그래도 홀딱 젖는 게 진흙 뒤집어쓰고 있는 것보단 그나마 낫겠지.."
트와일라잇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잠깐 있어봐요. 그것도 바로 해결해주지!"
대쉬는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와 트와일라잇 주변을 날쌔게 빙글빙글 돌아 소규모의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트와일라잇의 몸은 언제 젖었었냐는 듯 바싹 말랐다. 하지만..
"음..... 아냐. 그냥 신경 쓰지 마."
트와일라잇의 갈기가 폭탄을 맞은 것 마냥 헝클어져 있었다. 어차피 트와일라잇은 별 신경을 쓰진 않겠지만 말이다.
"언니! 방금거 괜찮았지?"
대쉬가 인정하라는 듯 날 의기양양하게 쳐다보았다.
"....맞춰보죠. 댁이 레인보우 대쉬 맞죠?"
트와일라잇이 연달아 한숨을 쉬며 질문했다.
"고럼! 이 근방 레인보우 대쉬는 나 하나뿐이지! 트와일라잇이라고 했지? 선셋 언니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수."
"듣기로는 당신이 이 근방 날씨 총 관리마라고 하던데.."
트와일라잇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하긴 대쉬와 상대하다 보면 골이 아플 만도 하겠지..
"전 트와일라잇 스파클이에요. 공주님 명으로 여기 날씨 관리 상태를 확인하려 왔는데, 이게 대체-"
"에이~ 곧 끝낼 테니까 그건 걱정 붙들어 매요,"
"더 이상 시간도 없는데 뭘 곧 끝낸다고! 오늘내로 다 해야 됐었던 거 아니에요?"
"뭐? 시간이 없어?"
대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가만 있어봐! 10초 만에 끝내주지!"
대쉬는 곧장 날아오르더니 잘잘하게 하늘에 뿌려진 비구름과 권운들을 능숙한 솜씨로 입자 상태로 분해하기 시작했다.(구름은 원래 입자 상태라지만 좀 더 잘잘한 입자 상태로 말이다.) 마침내 마지막 구름마저도 사라지고, 대쉬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 의기양양한 미소로 우리들 앞에 와 섰다.
"자! 언니. 이번엔 몇 초나 걸렸어?"
대쉬는 숨을 몰아쉬며 내게 질문했다.
"10초 반."
대쉬의 표정이 금세 축 처졌다.
"..농담이야. 9.8초. 2중 공중회전만 안 했으면 기록을 좀 더 단축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건 절대 못 빼먹지! 스타일과 속도, 두 마리 새를 동시에 잡아야 된다고. 그럼 더 볼 일 없으면 이따들 봐요!"
대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빠르게 인사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멋지다!"
스파이크의 감상이었다.
"게으름뱅이 주제에..."
트와일라잇의 감상이었다.
"핸디캡을 달고 저 정도라니 대단한 거지 뭘..."
내 감상평에 트와일라잇과 스파이크는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만약에 정규 코스대로 경비대나 ROTC과정을 밟았다면 지금쯤 쟤는 원더볼트가 되고도 남았을걸? 하지만 쟤는 다니던 학교마저도 그만 두고 포니빌로 왔어."
"잠깐.. 학교를 그만뒀다구요?!?!"
트와일라잇이 세상에 그건 무슨 끔찍한 소리냐는 듯 질겁하며 외쳤다.
"친한 친구 플러터샤이랑 계속 붙어 다니고 싶었다나봐. 전에 플러터샤이가 사고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대쉬는 그게 제 때 없었던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자기는 플러터샤이랑 쭉 가깝게 지내면서 곤란한 일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도와주기로 맹세했지. 전에 대쉬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포니가 제 발로 학교를 그만 둘 수가 있어요? 학교도 안 나온 포니를 과연 제대로 된 포니라고-"
"거, 제 발로 학교 그만두고 나온 포니 앞에서 말 참 예쁘게도 한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뭐..."
트와일라잇은 얼굴을 붉히면서 웅얼거렸다. 나는 표정을 풀고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됐고, 대쉬랑 단 둘이서 상의할 게 조금 있으니까, 넌 다음 장소로 먼저 가봐. 언니는 나중에 뒤따라갈게."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혼자서 뭔가 꿍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대쉬는 마을 광장에서 한참 건초버거와 건초 후라이를 먹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쟤는 운동을 한참 하고 나서는 건초버거와 건초 후라이를 먹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여~ 선셋 언니. 또보네?"
대쉬가 날 보고 앞발굽을 흔들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빠르게 대쉬 앞으로 걸어왔다.
"요새 내가 숨어다녀야할 일이 생겼다는 거 뻔히 알면서 지금 그러지 대쉬?"
나는 대쉬를 약간 째려보았다.
"마을 광장에서 함부로 내 이름 부르지 좀 마. 셀레스티아의 비밀 요원들이 몰래 엿들을 수도 있으니까!"
"어유 언니. 전부터 느껴왔던 건데, 너무 과민반응하는거 아뇨?"
대쉬가 인상을 구기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언니 암말친구 말인데, 성격 진짜 까칠해 보이더라."
"걔 성질 안 더럽거든? 그리고 걔 내 암말친구 아냐!"
"왜 그걸 굳이 두 번째로 부정했을까? 응? 뭔가 묘~한데?"
대쉬가 제 멋대로 낄낄대며 말했다.
"집어 치우고. 대쉬. 부탁 하나만 하자. 전에 하늘에 남아있는 잔류 날씨 마법 모아서 만들어둔 큰 소나기구름 있지?"
"다음 주에 쓸 건데 그건 왜? 근데 언니. 이거 알아? 그 구름 썬더레인이랑 클라우드 키커가 창고에 모아둔 거거든? 근데 걔네들이 창고 안에서 눈이 맞더니 그만 딱-"
"남 성생활 이야기 따윈 안 엿듣고 싶으니까 그만 해. 그러니까 해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아 맞다. 너 전에 나한테 빛 진거 하나 있었지?"
"빛?"
대쉬가 인상을 팍 구겼다.
"전에 내가 네 상관인 척 하고 네가 결함 있는 완충된 번개구름을 관리하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변명을 해 준거 기억 안 난단 말이지 지금? 사실 그거 네가 번개구름을 엉뚱한 곳에 삽입해서 생긴 뇌전성 임질-"
"그만! 아 언니! 진짜 이러기야?"
대쉬가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다른 포니들 듣잖아! 그래! 해준다! 해줘! 나 참 더러워서..."
"말이 통하니 다행이군."
나는 악당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래. 그 소나기구름을 어떻게 해 주면 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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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시청 안에서 충격과 공포와 비통함이 가득한 애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후대의 학자들이 '패션 감각 부재의 아픔을 절망적인 비명으로 승화해 표현.'했다고 평할 정도의 소리였다.
뭐, 래리티가 저 난리를 피운 적은 하루 이틀도 아니었으니, 별로 걱정되지도 않았다.
"어머나 세상에! 자기! 지금 꼴이 왜 이래?!"
래리티는 트와일라잇의 갈기를 가리키며 거의 절규하다시피 외쳤다. 트와일라잇은 자기의 갈기를 올려다보곤 '그래서 뭐?' 라는 듯 어께를 으쓱거렸다. 자기 눈에만 안 보이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보아, 트와일라잇의 갈기 관리법은 나랑 거의 같은 모양이었다.
"내 갈기? 사연이 좀 있어요. 그건 됐고, 잠시 몇 가지 확인 차 여기 방문했는데 확인만 끝나면 더 이상 귀찮게 안 할게요."
"뭐라구요? 지금 그런 갈기 꼴로 지금 내 앞을 그냥 지나가겠다는 거야?! 제가 관리를 좀 해 드릴게요. 아이구.. 전에 여기 있는 선셋 언니가 가게 오픈 날 오셨었는데요, 갈기에 작은 동물들이 둥지를 틀 정도였었다니까요? 근데 지금 그것보다 더 심하세요. 아세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마녀들은 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건가요?"
"저 마녀 아니거든요. 캔털롯에서 온 공주님의 학생인데-"
"캔털롯에서 왔다구요? 어머나! 잠깐만 있어봐. 이럴 때가 아니지!"
래리티는 트와일라잇을 질질 자기 가게로 끌고 갔다. 트와일라잇은 곧 래리티에 의해 패셔너블한 갈기 관리를 받게 되는 처참한(?)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트와일라잇은 구해달라는듯 나를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슬프게도(?)저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난 래리티가 트와일라잇을 그냥 끌고 가게 놔두었다.
나는 가게 바깥의 시청 광장을 돌아보았다. 현수막과 장식들이 사방팔방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래리티가 그 작업을 위해 다른 포니들이 시청 광장으로 출입하지 못하게끔 임시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좋은 기회로군.. 나는 씨익 웃었다. 트와일라잇이 해준 나이트메어 문에 관한 이야기는 난 별로 안 믿었지만, 셀레스티아가 여기에 온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해보였다. 순수한 힘으로만 따지자면 난 셀레스티아의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난 셀레스티아가 뻔히 어디에 설지 예측이 가능한 반면에 셀레스티아는 아니었다. 마침 래리티가 트와일라잇의 갈기를 강제로 범하고(?)있을테니 이 장식물들에 수작을 부려놓을 시간 또한 충분했다.
나는 앞발굽들을 쓱쓱 비비고,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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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트와일라잇의 일정표를 한번 몰래 훔쳐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트와일라잇이 지금 쯤 플러터샤이를 만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둘 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포니였으므로 트와일라잇과 샤이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샤이와 어울린다면 도서관으로 갈 때 까지 트와일라잇의 기분이 약간은 풀리지 않을까도 싶었다. 글쎄.. 샤이가 낯선 포니를 보고 먼저 숨어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트와일라잇이 그걸 찾아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주 180도 빗나갔다.
"...그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용생 이야기야. 오늘 겪은 일 까지는 말 안했는데, 그것도 듣고 싶어?"
스파이크는 헤벌레 웃으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조잘대고 있었고, 플러터샤이는 트와일라잇은 안중에도 없는 채 스파이크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뻔히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측해야 됐던 건데.. 동물이라면 환장하는 얘가 새끼용이나 새기 키메라 같은 희귀한 동물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응! 해 주라! 부탁해!"
플러터샤이는 아주 행복에 겨운 듯 한 눈치였다.
트와일라잇은 도서관을 올려 보다가, 내가 가까이 있는 걸 눈치 채고 휘리릭 내 쪽으로 돌아섰다.
"선셋 언니! 여기 계셨군요!"
날 보고 미소를 짓는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미소가 어찌나 밝은지 흡사 광기마저도 느껴질 정도였다.
트와일라잇은 도서관을 올려 보다가, 내가 가까이 있는 걸 눈치 채고 휘리릭 내 쪽으로 돌아섰다.
"선셋 언니! 여기 계셨군요!"
날 보고 미소를 짓는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미소가 어찌나 밝은지 흡사 광기마저도 느껴질 정도였다.
"저기 플러터샤이 씨라고 했죠? 죄송해요.!얘가 곧 잠을 자야 돼서요."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의 저항 따윈 아랑곳도 않고 스파이크를 도서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하하! 보세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잖아! 선셋 언니! 같이 스파이크좀 침대로 옮겨주실래요? 그리고 침대 위에서 어떻게 하면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나 연구 같이 하자고요!!"
"침대 위에서 세계의 종말을 막는다니요?..음.... 설마.. 둘-"
트와일라잇이 대번에 희번뜩한 시선으로 플러터샤이를 쏘아보았으므로, 플러터샤이는 '힉' 하면서 말을 멈추었다. 이윽고 트와일라잇은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미안 플러터샤이. 트와일라잇 쟤가 좀 성질이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 쟤는 압박을 잘 감당 못 하는 성격이거든... 너도 그 기분 잘 알지?"
플러터샤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축제 시작 전까지 저 분 기분이 좀 풀렸으면 좋겠네요..."
"분명 그럴 테니 안심해."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축제때 셀레스티아가 나타나면 난 아마 거기 없을 테니까. 나 괜히 찾지 마. 알았지?"
"알았어요 언니.. 핑키 파이에게 언니 몫의 펀치도 좀 남겨달라고 물어보시는 게 좋을 텐데요..."
플러터샤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핑키 파이라.. 걔가 안 보이네? 어디 있는지 알아? 마을에 처음 오는 포니가 있는데도 안 나타나다니 걔답지 않은걸? 아마도 하계 태양절 축제에 정신이 팔린 것 같은-"
"놀랬-지!!!"
"...그럼 그렇지.. 아까 질문은 그냥 신경 쓰지 마.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까.."
"우리도 갈까요?"
"...가는 편이 좋겠지. 아마도 내가 없으면 트와일라잇이 광역 충격파 주문으로 마을 포니들을 싸그리 황무지까지 날리려는 걸 막을 포니가 없을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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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음이 밝혀졌다. 트와일라잇은 그냥 파티를 피해 사서실로 도망가 버렸으니까. 주변 포니들의 환영사를 무례하게 뿌리치면서 말이다.... 트와일라잇과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괜히 듣는 게 아니지..
"트와일라잇 씨 왜 저러죠?.. 음악이 맘에 안 들었나.."
핑키 파이가 축 처진 얼굴로 나한테 물었다.
"다른 음악을 틀어봐야겠다! 폴카! 그래 폴카 어때요 언니?"
"그냥 쟤는 지금 기분이 좀 나빠서 그러는 것뿐이야.. 악의는 없을 테니 안심해."
나는 핑키의 어께에 발굽을 올려 얼러주며 말했다. 지금 이 마을에 있는 포니들 중에서 트와일라잇을 이해할만한 포니는 나 밖에 없을 테니, 트와일라잇의 편을 들어줘야만 했었다. 물론 핑키가 이 깜짝 파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걱정 마. 네가 멋진 파티를 연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트와일라잇 쟨 그냥... 음.. 너도 플러터샤이가 낯선 포니 많이 어려워하는 거 잘 알고 있지? 그거랑 비슷해."
핑키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언니! 웅~ 그러니까 친해지려면 인내심을 가지라는 거죠?"
"그렇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다가 걱정도 태산이거든. 물론 너한텐 파티가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트와일라잇 같은 성격의 얘들한테는 혼자서 차분히 있는 게 확실히 더 나은 방법이고."
"그치만..."
핑키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다못해 내가 컵케익이라도 대신 가져다줄게. 그럼 됐지? 네가 구운 빵 싫어하는 포니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핑키의 기분이 대번에 풀린 것 같았다. 핑키는 보라색 아이싱이 올라간 컵케익을 내게 주며 말했다.
"자! 이거면 완벽할 거에요!"
"음.. 트와일라잇 털색과도 맞는 색이군."
나는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면 분명 걔 기분도 조금 풀릴 거야. 내가 보증할게.'
나는 컵케익을 받아들고 사서실 문을 두드렸다. 트와일라잇의 분홍색 마력과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내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꽈당 닫혔다.
"언니! 언니 욕하려는 건 아닌데, 왜 언니 친구들을 하나같이 정신이 나갔어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만큼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숲 속의 무서운 마녀랑 친구를 하려고 들겠어? 안 그런가요, 그 중에서 제일 정신 나간 포니 씨?"
"그..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트와일라잇이 투덜댔다.
"세상에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파티 질이람..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애꿎은 포니가 독서하는걸 방해하는 거냐구!"
"하계 태양절 축제가 그렇지 뭐. 셀레스티아가 태양을 띄울 때 까지는 계속 저렇게 복작거릴 거라는 거 너도 뻔히 잘 알면서.."
나는 트와일라잇에게 컵케익을 내밀었다.
"자. 이거나 좀 먹어. 그렇게 입을 삐죽이고 있다간 입만 더 길어지겠다."
"네. 네. 알았어요 엄마."
트와일라잇은 콧방귀를 끼고 컵케익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트와일라잇의 축 처져있는 귀가 쫑긋 올라갔다. 컵케익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트와일라잇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저러다 목에 걸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수준이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컵케익은 핑키 파이가 만든 거야. 핑키 파이의 제빵 실력은 과자를 맛있게 만든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 마을 과자가게 주인 케이크 부부를 훨씬 능가할 정도니까.... 약간의 희한한 맛 실험작들을 제외하면 평범하게 만든 것들은 대부분 다 맛있게 만들거든. 핑키 파이는 큐티 마크로 타고난 재능을 뼈 빠지는 노력이 이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산증마지."
"대단하긴 한데요, 지금 그게 중요한건 아니잖아요! 물어볼 게 있어요. 도대체 하루 내내 어디 계셨어요?"
트와일라잇이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언니라면 절 분명 도와주실 줄 알았어요! 둘이 흩어져서 태양절 준비 과정 확인을 반반씩 나눠서 했더라면 이 시간이면 조화의 원소에 관한 연구를 끝내고도 남았을 거라구요!"
"그야 셀레스티아가 날 찾을 때를 대비해 준비를 좀 해두느라 그랬지."
시청의 장식을 가까이서 쳐다보는 포니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거기에 걸어둔 주문이 확 발동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일일수록 모르는 포니가 많은 게 더 좋은 법이다.
"좋아 트와일라잇. 우리 논리적으로 토론을 한번 해보자."
나는 트와일라잇의 침대 위에 올라와 앉았다. 트와일라잇은 걱정돼는 눈빛으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넌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반드시 일어난다고 명확한 근거 없이 단정 짓고 있어."
"아니에요! 그때로부터 딱 천년이 지났어요 언니!"
트와일라잇이 자기 등자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여기 좀 보세요. '1년 중 낯이 가장 긴 때가 1000번이 지나면 별의 인도를 따라 나이트메어 문이 풀려나서, 곧 온 세상을 끝없는 밤으로 뒤덮는다는 전설이 있다.' 라고 나와 있잖아요! 이정도면 명확한 거 아닌가요?"
"반론 하나: 저 책에서도 저 문구는 분명 '전설'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반론 둘: 고대부터 내려오는 전설들 대부분은 1000년을 기한으로 두고 있다. 만약 그 예언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현재 이퀘스트리아에 닥치는 재앙은 전부 몇 개가 될까?"
"...50개 정도요.."
"정답. 그리고 천년이라는 게 그저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막연히 오랜 시간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말로도 쓰인다는 사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어께를 으쓱거렸다.
"만약에 예언이 맞는다고 치더라도 그때 쓰이던 태양력과 지금 쓰이는 태양력의 기준이 다를 가능성도 존재하지. 예를 들어 그리폰들의 달력을 한번 생각해봐. 바람력이라는 정신 나간 절기표를 쓰는데, 4년마다 날과 요일이 격변 급으로 뒤바뀐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만약 네 주장이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미 일이 터질 줄 잘 알고 있을 천살 넘게 먹은 포니가 한 기 있을 텐데, 그게 누구지?"
"...셀레스티아 공주님이요."
트와일라잇이 축 늘어진 톤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근데 그분은 제게 걱정 따윈 그만하고 가서 친구나 사귀라고 하셨죠.."
"바로 그거야."
나는 트와일라잇을 양 발굽으로 감쌌고, 트와일라잇은 내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이제 좀 진정하기 시작한 것 같군.
"전번처럼 이번에도 너무 넘겨짚어 생각한 것 같지 않아? 언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갑자기 사악한 암흑의 공주가 어디서 딱 나타나 영원한 밤을 몰고 올 것 같지는 않거든."
"근데 진짜로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구요. 조화의 원소를 충분히 연구하지도 않았는데. 아~ 진짜!"
짜증난 소리를 내면서 트와일라잇은 내게 몸을 기댔다. 트와일라잇의 둔부가 내 둔부 쪽에 딱 달라붙었다. 쟤는 진짜 다른 포니에게 자기 몸을 밀착해야 안정이 되는 모양이다.
"공주님은 이런 분이 아니셨어요... 절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시는 분은 아니었는데.."
그게 진짜 이유였었군...
"언니 생각을 좀 말해줄까?"
트와일라잇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 생각엔 셀레스티아는 분명 무슨 계획이 있는 것 같아. 포니빌에서 태양절 축제를 여는 것 까지는 좋은데... 왜 하필 여기에서 나랑 친한 친구들만 딱 집어서 축제 준비를 시킨 걸까?"
트와일라잇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혹시... 언니가 여기 있다는 거 아시는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목록을 보고 나니 난 감이 딱 오던데. 내 주변마들의 이름이 많이 보이는 걸 보아하니, 분명 몇 년을 들여 내 주변을 조사했을 것 같고... 우리가 쓰는 그 일지도 너한테 일부러 보여줬을 거야. 교묘하게 자기 원래 목적을 숨기려고 말이지. 네가 맥락 없이 앞에 나타난 책에 정신을 안 팔 수가 없어 별 생각 없이 일지를 써 보게 되었고, 결국 그러다가 나도 별 다른 의심 없이 너와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으니까."
"...그거 말 되네요... 그러면 언니 친구들을 축제에 불렀다는 이야기는... 결국 제게 친구를 사귀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라는 교훈을 저에게 주기 위해서라는 건가요?"
"그렇지! 봐봐. 머리 좋은 두 포니끼리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니까 간단하잖아. 너를 대놓고 무시한 건 아마 비밀 유지를 위해서였겠지. 그 깜짝 교훈의 대상은 아마 오랫동안 떠나있었던 나까지 포함되는 것 같으니까."
"으아..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건 아냐. 셀레스티아의 함정에 빠지기 전에 알아냈으니까... 셀레스티아 상대로 그 정도로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란 생각 안 들어?"
나는 살짝 웃으며 트와일라잇에게 내 얼굴을 부벼주었다.
"그런가요? 휴.... 그럼 이제 어쩌죠?"
"지금 뭘 하려고 해 봤자 진작 늦었어. 하지만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곱게 빠져줄수는 없단 말씀이지. 난 일단 셀레스티아가 갈 때까지 어디 숨어있을 생각이야. 일단 환영 마법 아는 게 좀 있고, 그리고 에버프리숲의 생태를 참고해 새로 만들어본 점술 교란 마법을 한번 실험해보고 싶거든."
"언니! 잠깐만요! 달 위의 암말이 혹시라도 나타나면 저 혼자서는... 언니도 이 근방에 있어주세요!"
"뭐?"
난 한 쪽 눈꼬리를 올렸다.
"왜냐면 만약 고대의 악이 진짜로 나타난다면 채리티-"
"래리티겠지..."
"-래리티 같은 포니가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요! 분명 그 포닌 화염구 하나 제대로 못 쏠 거라구요!"
나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었다. 이거 막무가내로군. 도무지 달랠 방법이 없겠는걸..
"좋아. 그럼 마을 근처에 있을게. 그래도 공주가 나타나기 전 까지만 이야. 알았지? 아휴.... 그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 격언만 믿고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겠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타르타로스 정문을 지키고 있는 케르베로스마저도 따돌릴 방법을 아까 내 친구들을 만나 구상해 두었던 것이다. 트와일라잇은 활짝 웃더니 나를 다시 한 번 꼭 껴안았다.
"고마워요 언니! 정말.. 정말 저 혼자서는 벅찬 일 같아서요..."
"저기 트와일라잇. 우리 내기 하나 하자. 만약 나이트메어 문이 안 나타난다면 네가 틀린걸 순순히 인정하고 다음 번 나 찾아올 때 마법학 개론 최신개정판 하나 사 들고 와. 만약 나이트메어 문이 나타나면 그때는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네 부탁을 뭐든 한 가지 들어줄 테니까. 어때? 내기할래?"
어차피 나이트메어 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세상 끝났다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내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 물론 진짜였을 경우 세상이 망한다는 사실은 논외로 치자.
"좋아요! 히힛...."
트와일라잇이 웃으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트와일라잇! 선셋 누나!"
스파이크가 사서실 문을 열며 외쳤다.
"나와요! 곧 일출 시작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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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에버프리의 마녀도 곧 대단원이 다가오는군요.
과연 나이트메어문은 실제로 나타나는 걸까요? 아니면 선셋의 예상대로 트와일라잇의 헛된 생각에 불과했을까요?
Q: 헐퀴, 트와일라잇 왜 저렇게 까칠하져?
A: 지금은 성질이 많이 완만해져서 그렇지, 시즌1 1화를 보면 원래 꽤 까칠했습니다. 약간 내성적이다 보니 대놓고 다른 포니들에게 말을 안 해서 그랬지. 그리고 이 평행세계에서는 선셋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거친 성격의 영향을 아주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