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 아일랜드에 위치한 바크셔라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실종되거나 의문사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여기에는 바크셔를 상징하는 가문인 메릴랜드도 얽혀 있었다. 쇠락한 명문가인 메릴랜드의 마지막 후손인 메릴랜드 부인이 사망한 것이다. 이후 부인이 아껴온 그의 아들(제임스)과 딸(데일리)은 이 사건을 파헤치고 그녀의 원수를 갚을 것을 천명한다.
촌장인 로럼스는 괴물의 정체와 그 발표를 두고 장로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 장로단을 교묘히 거스르고 마을 사람들을 도우려는 로럼스에게 그의 동생인 데이비슨이 접근한다. 데이비슨은 자신이 부리는 폭력 단체인 '와일드' 단원들을 데리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거대한 연극을 도모하는데, 그 와중에 진짜 괴물이 나타나 데이비슨의 연극에 동원된 소년들이 모두 사망한다. 분노한 데이비슨은 괴물의 자취를 쫓아 숲으로 사라져 그대로 실종된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로럼스와 그의 아내는 숲을 찾아온다. 이후 괴물의 습격을 받아 로럼스의 아내는 죽고 만다. 로럼스도 위기에 빠진 그 순간, 빈스를 포함한 와일드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렇게 도망치던 중 이들은 괴물 새끼들을 맞닥뜨리고 결국 많은 동료들이 희생된 끝에 빈스와 로럼스만 가까스로 숲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빈스는 제임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연락을 받고 바크셔로 온 제임스와 데일리에게 로라는 정부로부터 전해진 자신들의 임무와 계획을 말해준다. 이제 제임스와 데일리를 포함한 사람들은 바크셔 호수의 괴물들에 피의 복수를 시작하게 된다.
22.
바크셔 최고의 집안인 카테필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 자체로 선택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럼스 카테필드는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특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완벽한 부모에 완벽한 집, 완벽한 하인들과 완벽한 그 모든 것들. 로럼스는 바크셔라는 온 동네가 자신의 발 아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즐거워 했다.
그가 6살 때 태어난 동생 데이비슨은 순수하고 명철한 영혼을 지닌 아이였다. 부모의 관심은 곧 새로 태어난 데이비슨에게 쏠렸다. 로럼스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타락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는 데이비슨을 끊임 없이 위험 상황에 빠뜨린다. 가령 그와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거나, 뒷골목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데이비슨을 피떡이 될 때까지 패도록 지시했다. 그를 죽이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다.
‘똑똑하긴 뭐가 똑똑해.’
이 모든 악행에 불구하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데이비슨을 보며 로럼스는 부모를 비웃었다. 데이비슨이 총총거리면서 다가올 때마다 뺨을 때리고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로럼스는 단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다만 웃으며 그를 안아줄 뿐이었다. 머리가 크며 데이비슨인 이런 로럼스를 두려워 했다. 하지만 로럼스는 그럴 때마다 더욱 따뜻한 태도로 데이비슨을 감싸 주었다. 같은 카테필드지만 로럼스가 보는 세상과 데이비슨이 보는 세상은 달랐다. 겉으로 완벽하나 썩을 대로 썩은 자신 가문의 정체를 파악한 로럼스는 사춘기 시절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부모의 관심이 데이비슨에게서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로럼스는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옥스퍼드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지역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최연소 촌장이라는 자리였다. 아일랜드 지역을 통틀어 가장 어린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는 데이비슨을 대했던 것과 같은 따뜻한 태도로 주민들을 대했다. 하지만 뒤로 그는 공금을 수탈하는가 하면 장로들을 데리고 인근 지역에 데려가 환락 파티에 참여시켰다. 데이비슨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을 타락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야망을 품었다. 역사상 최연소로 아일랜드의 총리가 되는 그런 야망을. 여왕 생일날 그는 영국에 날아가 아일랜드의 얼굴로서 당당히 여왕의 반지에 입을 맞출 목표를 세울 것이다.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청사진이 너무나 확실해 보였다.
이런 그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메릴랜드 부인은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기분이 나쁘다며 그에게 유독 쌀쌀맞게 굴었다. 로럼스는 복종하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감정을 느꼈지만 그녀가 가진 가문의 영향력이 바크셔에서 무시 못 할 수준이기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로럼스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갔고 야망도 점점 퇴색돼 갔다. 말 잘 듣는 뚱뚱한 아내를 얻었지만 단 한 순간도 그는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추락을 상징하는 존재라 생각해 증오했다. 아일랜드의 바크셔에서 중앙 정치로 진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이전의 촌장들 누구도 로럼스와 같은 큰 야망을 갖지 않았다. 그저 풀이나 깎고 아이들이나 돌보며 바크셔와 함께 나이들다 때가 되면 은퇴했다. 그런 삶을 그는 혐오했다. 탈출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지만 애초에 지역 주민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전체 투표에서 번번이 낙선했다. 그는 위로를 받으며 촌장 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러한 그의 좌절을 파악하고 정계로 진출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접근하는 장로들을 혐오했다. 아니, 더 나아가 바크셔를 혐오했고 아일랜드를 혐오했다.
그러던 중 로럼스는 바크셔 호수 근처에 있는 생태 연구소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유입돼 왔음을 보고받는다. 추궁하기 위해 비서와 함께 간 연구소에서 그는 연구원들이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혼종 연구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원들은 로럼스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크기가 3미터에 달하는 말과 사자의 혼합종을 발견하고 로럼스는 까무러칠 듯 놀랐다.
“아무리 강단이 센 사람이라도 이 괴물을 보면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연구원장이 실실 미소를 지었다. 로럼스가 그의 얼굴을 쳐다 봤다. 그의 귓가에 한 단어가 맴돌았다. 공포, 공포, 공포. 카테필드의 자랑스러운 아들인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지낸 말이었던가? 그는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청사진을 내보인다. 이제 그에게 여왕의 반지에 키스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온 세상이 절망하고 공포에 떨 순간을 만들어 갈 것이기에.
거미의 발에 흉측스럽기 짝이 없는 앞 다리, 뱀의 목에 사람의 얼굴. 인간에게서 최대한의 공포를 끌어낼 수 있는 괴물 앞에서 그는 오르가즘이라도 느낄 것만 같았다. 그가 원한 것이 이 존재였다. 초창기에 만들어진 녀석들은 연약했고 생식도 불가능했지만 새의 유전자를 결합한 끝에 알을 통해 생식이 가능한 존재들을 만들어 냈다. 최대 자랄 수 있는 크기와 수명도 점점 늘어 다 크게 되면 웬만한 아파트 크기를 능가할 정도의 거대한 괴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도 빼 놓지 않았다. 뇌에 전기 자극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그 의지까지 조절할 수 있는 칩을 뇌 속에 부착했다. 초식동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평온한 표정의 괴물이 전기 자극을 주자 수시로 표정을 바꿔댔다. 연구원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로럼스는 괴물이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큰 환희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 괴물을 밤마다 호수에 풀어 놓았다. 괴물은 갈퀴가 달린 앞 발로 유영하며 호수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청소했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창조물에 빠져들던 로럼스는 처음으로 그는 살인을 계획한다. 언제나 자신을 무시하던 메릴랜드가 첫째였다. 그가 사무실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져도 멍청한 바크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 했다. 심지어 데이비슨조차 그런 것 같이 보였다. 그저 와일드와 몰려 다니며 술이나 퍼먹는 그는 카테필드의 이름을 가지고도 주민들에게 완전히 낙인 찍혔다. 더 이상 그를 조심할 여지는 없다.
처음 연구원들은 괴물을 통한 ‘살인 행각’을 반대했지만 결국 집단적인 최면 상태에 빠져 들었다. 평생 연구만 하다 연구로 일생을 마칠 그들은 애초에 현실 감각이 극히 부족했다. 그들 앞에 촌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럼스는 마치 신처럼 보였음이 틀림 없다. 특히 숲에 제 발로 찾아온 어린 아이들을 사냥할 때는 연구원들 모두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 순간을 로럼스는 같이 만끽하지 못 했지만 대신 자신의 아내를 제물로 바치는 쾌감을 손에 얻었다. 빈스와 함께 괴물 새끼들을 만났을 때 그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어린 새끼들의 뇌에는 아직 칩이 안 박혔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자신은 그들에 의해 죽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건 그는 살아 돌아왔고, 로럼스를 심각하게 추궁하는 로라 앞에서 그는 공식적으로는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로럼스는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에 빠지는 약을 먹은 뒤 목을 맸다.
그리고 오늘, 로럼스는 분노에 휩싸인 바크셔 사람들을 데리고 그가 한 번 죽었던 폐교를 다시 찾았다. 그와 사람들의 손에 장총이 들려 있었다. 로럼스는 오늘 바크셔 주민 모두와 ‘괴물의 새끼들을 죽여 계획에 차질을 빚게 만든’ 폐교 안의 개새끼들을 모두 학살할 작정인 것이다.
23.
“대체 어떻게 된거야?”
로라가 소리를 질렀다. 성난 바크셔 군중이 아래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이 쏜 총알이 창문을 깨부쉈다. 파편으로 인해 그녀의 사무실은 난장판이 됐다.
“그만 멈춰 주세요! 우리는 당신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폐교의 방송국을 통해 바깥으로 음성이 울려댔다.
“정부의 개를 박멸하자!”
바크셔의 성난 군중들이 물밀 듯이 폐교 안으로 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라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자살했다던 로럼스였다.
“로럼스가 왜 저기 있는거야? 목 매달아 자살했다는 그가?”
무전기로 로라가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하 요원들은 모두 1층으로 내려가 합심해 문을 막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사무실을 비추던 형광등의 불빛이 나가버렸다. 주민들이 폐교로 향하던 예비 전력을 끊어버린 것이다. 욕설과 함께 그녀는 1층에 뛰어 내려갔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안거지?”
“보면 모르십니까?”
처음 제임스를 안내했던 덩치 큰 흑인 요원이 동료들과 함께 문 앞에서 끙끙대며 말했다.
“로럼스 저 개자식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거에요.”
“지원은 아직이랍니까?” “불행한 사실이지만 아직 연락도 못 취했다.”
로라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지국이 마비가 됐는지 핸드폰 연결도 안 돼. 게다가 군중들이 전력까지 막아 버려서 인터넷도 할 수 없어. 아침까지 버틴다면 분명 사람들이 올 거다. 지금으로선 바크셔 경찰관들로부터 뭔가 기대하기도 어렵군 그래.”
로라는 창문을 통해 허공으로 총을 쏘아대는 바크셔 경찰관 몇몇을 발견하고 이죽거렸다.
“어쩔 수 없다. 다들 총 들어!”
장롱과 책걸상으로 막아놓은 문이 흔들리다 열리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 로라는 총을 집어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죽인다!”
“이 괴물들! 바크셔의 괴물들!”
죽음을 직감한 요원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 때였다.
“잠시만요, 길 좀 비켜주세요.”
로라가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를까 빈스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뭔가 결심한 듯 굳은 얼굴이었다.
“그들은 내 친구입니다. 다치게 하지 마세요. 여기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저 혼자니 제가 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홀린 듯 요원들이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로라마저도 반 쯤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빈스 당신. 그러다 죽어.”
“오늘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빈스가 얼굴을 구기며 미소 지었다. 문득 로라는 그가 웃는 표정을 처음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로라 씨.”
빈스가 책걸상을 치우고 문 밖을 나서자 성난 군중의 외침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자, 여러분! 빈스입니다!”
그가 나간 후 요원들이 재빨리 책걸상을 다시 갖다놔 문을 막았다. 로라는 작은 창문 틈에 상황을 지켜봤다.
“죄송합니다!”
빈스가 곰 같은 덩치를 땅에 깔았다. 마치 절 하는 자세처럼 그는 엎드렸다.
“제가 여러분들의 아들들을 죽인 범인입니다.”
“빈스? 그게 무슨 소리야?”
“저와 와일드 단원들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고용했습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쳤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이들 중 한 명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분노에 차 그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바크셔 경찰서에 가서 다 설명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을 풀어 주세요.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고개를 든 빈스의 얼굴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빈스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군중의 분노가 조금씩 잦아드는 듯 했다. 최소한 혼란이라도 준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가 해낸 것 같아. 그가 우릴 구했어.”
로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 군중 사이로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악의적인 표정을 띈 남자, 로럼스였다. 로럼스를 발견한 빈스는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감동에 눈이 먼 빈스에게 로럼스의 악마같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빈스가 두 팔을 벌려 포옹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섰다.
“촌장님, 살아 계셨....”
그 때 총성이 울렸다. 놀란 로라가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빈스의 얼굴에 적중한 총알은 그의 턱만 남기고 얼굴 대부분을 앗아갔다. 뇌수와 피가 바닥을 적셨다. 경악한 군중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개 자식은 정부의 사주를 받았습니다!”
로럼스가 소리를 질렀다.
“신문을 보십시오! 그 여인네의 말이 사실이랍니까? 우리가 원한 것은 진실 아니었습니까? 언제까지 우리 바크셔 사람, 우리 정 이런 이유로 그들을 봐줄 것입니까? 언제까지 휘둘릴 겁니까 여러분! 이젠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로럼스가 빈스의 시체를 걷어찼다. 동시에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손가락을 놀려댔다.
“내 오늘 저 녀석들을 끝장내지 않고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들이여!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문에 돌진했고 군중의 공포는 곧 다시 멈출 수 없는 분노가 돼 휘몰아쳤다. 몇 명의 주민들은 창문 너머로 상황을 주시하던 요원에 총을 쏴 명중시키기도 했다.
“있는 힘껏 막아!”
문을 부여잡고 로라가 소리를 질렀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목소리에 서린 절망을 숨길 수 없었다.
이 때, 로럼스와 군중 뒤로 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군중들은 공격을 멈추고 차에서 내릴 인물을 주시했다. 군중들은 놀라 뒷걸음질쳤다. 제임스와 데일리. 한 때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 껏 치켜든 데일리의 오른 손에는 작은 사진 액자가 들려 있었다. 제임스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붕대에 감긴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통증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맙소사, 자기야. 빈스가 죽었어.”
“우리 모두 절체절명의 위기 아래 놓였단 소리겠군.”
제임스가 중얼거렸다.
“여러분! 제임스 메릴랜드와 데일리 메릴랜드입니다!”
“어디서 감히 그 성을 입에 올려?”
그들에 삿대질을 하는 군중들은 금방이라도 그들에 덮쳐올 것처럼 공격적으로 팔을 휘둘러 댔다. 데일리는 사진 액자를 그들 앞에 내보였다. 메릴랜드 부인의 장례식에 모인 이들이 찍힌 사진 액자였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메릴랜드의 장례식에 참여했기 때문에 군중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이 것이 여러분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데일리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괴팍하게만 굴었던 늙은 노인을 사랑했어요. 가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랐다고 말하지 마세요. 메릴랜드의 이름이 예전에 쇠락한 잊혀진 역사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소리치는 소리가 정적에 휩싸인 운동장을 울려댔다.
“이 안에는 빈스도 있고 데이비슨도 있고 로럼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떠신가요? 당신들 발 밑에 있는 그 사람이 빈스가 아니던가요? 과연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일까요? 우리 모두 지금 정말 슬픈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죽었어요.”
여전히 액자를 치켜든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와 저기 있는 모두를 죽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저도 한 아이의 엄마에요. 이제야 당신들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제임스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돌아 보았다.
“데일리?”
“맞아요. 제 남편에게조차 비밀로 해왔어요. 가장 행복할 때 얘기해주려고요. 아이란 건, 그래요 행복이잖아요. 지금 횃불과 총을 들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보여요. 당신들이 그걸 휘두를 때마다 아이와 함께 했던 행복은 그만큼 더 멀어질 거에요.”
“톰!”
데일리의 말을 듣던 중 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한 사람이 땅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어머니들도 자신의 아들 이름을 부르며 땅에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의 표정도 분노에서 지친 표정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데일리도 액자를 땅에 떨구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조용히 그녀에 다가가 안아 주었다. 그 때였다.
“저 마녀를 잡아!”
로럼스가 소리쳤다.
“로럼스!”
제임스가 그녀를 막아서며 으르렁거렸다.
“감히 내 아내에게 손댈 생각이라면!”
순간 총 소리가 울렸다. 데일리는 놀라 남편의 배에 손을 갖다 댔다. 따뜻한 피가 그녀의 손에 묻었고 데일리는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가 뜬 눈으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데일리는 끌고 당기며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발악했다. 제임스는 기침과 함께 피를 한 움큼씩 토해냈다. 데일리는 눈물마저 닦아냈다. 자신이 눈물 흘리는 이 상황이 더욱 상황을 사실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에.
“아냐, 이건 꿈이야. 꿈이야. 우린 지금 매니먼에 있어. 우린 지금 매니먼에 우리 침대에 잠들어 있어.”
데일리가 미친 듯이 제임스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팔을 당겨댔다. 군중들을 귀신에 홀린 듯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제임스가 천천히 그의 팔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께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 그들이 재회했을 때 그녀가 그렸던 것처럼.
“고마워.”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제임스의 눈에서 생명의 기운이 꺼져 버렸다. 그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데일리는 비명을 질렀다. 창문을 통해 모든 순간을 지켜본 로라는 그녀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24.
총을 장전하는 금속음이 들렸다. 로럼스는 그녀의 울음에 아랑곳 않고 다시 총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분노에 차 있던 군중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 하는 상태였다. 모두 넋이 나간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로럼스 이 개자식!”
데일리가 제임스에게서 몸을 일으켜 그를 노려봤다. 달려드는 순간 공격하기 위해 로럼스는 총을 그녀에 겨누었다. 순간 누군가 로럼스의 복부를 강하게 때렸다. 로럼스는 자신을 때린 상대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턱을 맞은 그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은 이미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결국 총을 내주고 말았다. 로럼스를 추종하는 몇 몇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로럼스를 공격한 상대가 누군지 깨닫고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데이비슨. 당신도 살아있었어?”
데이비슨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데일리. 난 이 녀석이 설마 군중들과 함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어.”
그가 말했다.
“예상보다 훨씬 악독하고 뻔뻔한 놈이군.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이들과 함께 있을 생각을 한거지?”
“너는 평생을 알고 지내놓고 여전히 나를 모르는군. 멍청한 동생아.”
로럼스가 피를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형을 마주보는 데이비슨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랬단 말인께롱!’ 넌 이런 식으로 바보처럼 재주를 피우는 데이비슨만 알고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보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야. 저기 저 제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데이비슨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로럼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예전부터 네가 뭔 짓을 꾸민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나마 예상할 수 있었지. 이 예상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은 장로단과 네가 나눴다는 거짓말을 들었을 때였어. 장로단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 일을 공개하자고 했는데 네가 반대했다 하더라고. 근데 넌 잘도 나에게 거짓말을 지껄였지. 그들이 이 일을 숨기고 싶어한다고. 바크셔에 있는 그 괴물을 숨기고 싶어하는 건 다름 아닌 너였는데.”
바크셔 주민 몇몇이 놀라 숨을 삼켰다. 데이비슨이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래, 괴물! 저 호수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끔찍한 괴물이 있다. 바로 이 자식이 만들어 낸 녀석이지. 난 아이들을 고용했어. 왜냐하면 멍청한 내 친구들을 포함한 너희들이 이 상황이 종료됐다고 믿게 만들고 나는 뒤에서 이 녀석을 추적할 생각이었거든. 너희가 괴물에 의심을 가질수록 이 녀석은 그 괴물 녀석을 더욱 꼭꼭 숨겨둘 테니까. 나는 그 소년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서로 자신들이 한 행동을 떠벌리기를 바랐어.”
그리고 여전히 울고 있는 어머니들에게 다가갔다.
“미안하다. 내 잘못으로 애들이 죽었다. 저기 죽어 있는 빈스는 아무런 죄도 없어. 그저 순수하게 나를 따랐을 뿐이야. 이 일에 대해서는 내 평생 갚아 나갈게. 하지만 저 녀석을 용서할 수는 없어.”
데이비슨이 총을 들고 로럼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로럼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수수께끼를 내볼게. 지금 호수에 뭐가 있게?”
“뭐가 있기는, 괴물 녀석이 있겠지.”
로럼스가 더 큰 목소리로 웃어댔다.
“아니, 그 곳에는 너희들의 죽음이 있어.”
로럼스는 데이비슨이 저지할 새도 없이 그의 입에 데이비슨이 들고 있던 총구를 집어 넣고 억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로럼스의 뒤통수에서 뇌수가 터져 나갔다. 군중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그를 지지하는 청년들은 로럼스의 시체를 향해 뛰어왔다. 데이비슨은 조용히 자신의 발치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로럼스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폐교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빨리 연락망을 정상화하는 게 좋을거요!”
로라가 고개를 들어 데이비슨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믿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 하는 눈치였다.
“지금 괴물 두 마리가 세상을 향해 기어 나오고 있소! 빨리요!”
“괴물이 나왔다! 괴물이 온다!”
괴물이 갑자기 현실이 돼 눈 앞에 나타나자 군중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들고 있던 횃불마저 내팽개친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데이비슨은 달아나는 군중들을 바라보다 자동차에 기대 제임스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데일리에게 다가갔다. 그는 애처로운 눈길로 데일리를 바라 보다 감짝 놀랐다. 데일리의 아래 쪽이 피로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