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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빗속의 토요일
게시물ID : readers_81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미..
추천 : 0
조회수 : 1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7/07 10:27:09

빗속의 토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영식은 창 너머로 어둡고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내는 일찍 병으로 떠났고 하나 있는 딸은 이미 출가외인이 되어서는 이런 날마다 아비를 외롭게 만들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에 잠깐 고독해졌던 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랍장이나 정리 해야겠다."

오래전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그가 가지게 된 습관이었다. 그는 항상 수납장 정리를 이렇게 비오는 날에 하곤 했다.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책상서랍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낡은 책상을 바라보더니 곧 서랍을 통째로 들어냈다.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몰골의 책상을 놓아둔 채 책상으로부터 빼앗은 서랍장 세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곧 버릴 것 들이 속출해 나왔다. 낡은 마분지, 오래되고 이미 힘을 낼 수 없는 다 써버린 건전지. 여러 가지의 단추들(도대체 이런 것들이 왜 서랍장에 있는 것일까?)등등. 이리저리 물건을 빼내다가 하나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한 영식은 그것을 눈 높이 까지 들어 올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만년필.

어느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사오신 만년필. 그때 영식은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졸업 선물겸 입학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봐라, 우리 영식이도 인자 고등학생 아이가. ~. 니는 이 만년필이 뚝, 분질러 질 때 까지 공부해야 된데이. 알것나?"

술 취한 아버지는 대충 이런 대사를 남기면서 박장대소를 터뜨렸던 것 같다. 영식은 피식 웃어버린다.

아버지. 그리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용할 수 없게 된 이름이었다. 아니, 이제는 아버지를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하나 오래된 만년필의 기억을 공유해줄 사람이 없었다. 영식은 잠시 그리운 만년필을 들고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정말 케케묵어서는 과거의 교련시간을 격었 던 이들만 공감할 내용들이었다. 예전에 딸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딸은 흥미가 없어보였다. 그런 것이리라. 지금의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할 아버지의 이야기.

안개처럼 뿌연 영상은 영식의 기억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

 

아버지는 따뜻하고 인자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 말은 언제부터인가 영식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만큼 인색해져 버렸다.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다. 평일에는 집에서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고 일요일에도 항상 잠만 주무시는 그런 분이셨다. 하지만 영식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영식은 더욱 열심히 였다. 아버지만큼 열심히,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한번 싸운 적이 있었다. 항상 아버지를 따르고 뭐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던 영식이 아버지의 뜻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는 것은 집안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머라꼬? 인문계로 간다꼬? 그게 무슨 소리고!"

"아버지, 저는 꼭 대학을 가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영식의 뜻을 쉽게 받아들여 주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p공고가 강세였다. 영식정도의 실력이라면 p공고에가도 문제 없을 것 이라고 아버지는 누누이 강조했다. 더불어 은근히 영식의 진로를 p공고쪽으로 돌리려고 하셨다.

"니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기라. 대학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대학이고!"

아버지는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셨다. 하지만 영식은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아니, 화를 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나이에 누구나 가지는 반항심이 순간 고개를 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날의 영식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대학 가겠습니다."

"p공고 가라안카나!"

"인문계 갈 겁니다!"

영식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는 끝까지 화를 내시며 영식을 전혀 이해해주시지 않았다. 영식은 그 모습에 더욱 오기가 생겼다. 이미 주위에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노무 시키가, p공고가라 안카나!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살거 아이가!"

"저는 꼭 대학 갈껍니다. 아버지, 이해해 주십시오."

"이 자슥이, 내는 이해 못한다. 내가 p공고가라하믄 가는기다!"

이 대목에서 영식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반감이 완전히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영식은 저도 모르게 아버지보다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제 인생은 제가 사는 겁니다! 저는 대학 꼭 갈껍니다!"

"......이게 어디서 고함을 지르노!"

흥분한 아버지. 그리고 영식의 볼에서 들려오는 강렬하고 높은 타격음. 이미 분위기는 주체할 수 없는 곳 까지 와버린 것이다. 아버지도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말 잘 듣던 첫쩨가 아버지의 의견에 완전히 반대하며 전면적으로 나선것은 처음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가족들은 모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성이 나신 아버지는 아들에게 독설을 퍼 부었다.

"이게 어디서 고함을 지르노! 뭐가 니 삶인데! 내가 니 이렇게 되라고 쌔빠지게 일한줄 아나!"

영식은 뺨을 맞은 그 자세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어머니가 나섰다.

"그만하세요. 그만."

가족들도 모두 놀랐다. 그동안 아버지는 영식에게 손찌검을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말로 타이르셨다. 그런 그가 갑자기 아들의 뺨을 치다니. 하지만 그런 가족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아버지 특유의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였다.

"이노무 자슥, 내가 지를 우째 키웠는데 대드노! 니 삶이 어디가 니 끼고?"

영식은 그 자리에 여전히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영식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것은 작은 숙부님과 어머니였다.

"영식아, 어쩌자고 그랬니?"

어머니는 벌겋게 달아오른 영식의 볼을 쓰다듬으며 슬프게 말했다. 영식은 말이 없었다.

"우짤라꼬 그라노."

숙부의 걱정과 질책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영식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여전히 말이 없었다. 숙부의 경상도 사투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영식의 귀에 강한 질책이 되어 들려왔다.

"영식아, 오늘은 이만 네 방으로 가거라. 내일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영식은 어머니의 따스한 말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 꼭 대학 갈래요."

"영식아......."

어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셨다. 영식을 꼭 안고 눈물을 보이셨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와 영식은 서로를 피해가기 시작했다. 고교 입학시험을 치는 날은 점점 다가왔다.

"영식아, 공고 가그라."

부자가 심하게 다툰 이후 어느 날 아버지는 조용히 영식의 방에 들어와 말씀하셨다. 영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니는 와 대학 갈라하노?"

아버지의 말에 영식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버지, 저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도 좋지만 대학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영식의 말에 아버지는 전혀 동의하지 않으셨다.

"뭐라하노? 기술을 배워야지. 대학가서 뭘 배울끼고? 법을 배울끼가?"

대학하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법이리라. 하지만 아버지는 일찍이 영식이 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영문학을 배울 겁니다."

"그따위 코쟁이 말 배워서 어디에 쓸끼고?"

"이제 세계화 시대입니다. 이제는 대학을 가는 것이 성공에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강대국이고 우리와 가장 많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어를 배우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영식을 말없이 바라보셨다. 영식도 어느새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좁은 방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부자가 침묵과 싸우고 있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침묵은 더욱 무거워 지려했고 부자는 그런 침묵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침묵을 이겨냈다.

"지금은 기술자들이 먹고 사는 사회인기라. 사회에 나가서 기술하나 있으면 서로 대꼬갈라 한데이. p공고가그레이."

영식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집안은 난리였다. 아버지의 뜻이 옳다는 사람과 영식의 뜻이 옳다는 사람들이 둘로 나뉘기까지 했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카이."

작은 숙부님의 말씀에 백부님이 나섰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야지."

큰 숙부님은 말씀하셨다.

"그래, 조카가 하고싶은 거 한다는 데 삼촌이 말리면 되겠나? 지가 하고싶은 거 해야제."

"아닙니더, 행님. 남자는 기술을 배워야지예. 그리고 지가 애비한테 달려들면 어뜩 합니꺼. 지가 백번 잘못했으니까 인문계 가고 싶어도 공고가야지예. 행님이 다 지 잘되라고 가라 카는거 아인교."

분열. 영식의 반발로 집안은 일시적으로 분열되었다. 영식은 같은 항렬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고 또 명석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술을 달고 사셨고 영식을 나무라는 어른들도 많았기에 영식은 집에 와서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항상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자의 갈등은 심해질 대로 심해져 있었다. 그리고 시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안의 이런 분위기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시험 당일이 왔다. 모두들 긴장한 가운데 시험장으로 가는 영식의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쏴아아아아

영식은 빗소리에 잠시 회상을 멈춘다.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영식은 잠시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거세어져갔다. 방안 가득 빗소리가 훑고 간다. 수만 개의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가 방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영식은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바닥에 누웠다. 다시 그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결과는 뻔했다. 영식이 아무리 공부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시험을 준비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결국 성적미달로 p공고를 못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름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결과가 나온 그날의 영식은 온종일 힘이 없었다. 풀이 죽어서는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그날도 아버지는 술을 마셨다.

다음날 영식은 의욕이 하나도 없이 방에 그대로 있었다. 평소 휴일이었으면 제일 먼저 집안일을 거들었을 영식이었지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를 안았다. 영식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행군을 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밤이 왔다.

"영식아! 영식아!"

술기운이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가 영식을 불렀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대문에서 한참 영식을 불렀다. 영식은 마지못해 나갔다. 영식은 고개를 땅으로 향한 체 아버지에게 걸아갔다. 아버지는 기죽은 영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크게 웃으셨다.

"보그레이! 선물이데이."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아버지가 내민 것은 내모난 상자였다. 영식은 그것을 받아들고 상자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열어볼 것을 재촉했다. 영식은 마지못해 상자를 연다. 그 속에는 검은 광택을 뽐내는 만년필이 있었다.

"영식아, 그걸로 팬이 뽀사질때 꺼정 공부하그레이. 하하하하"

*

 

-쏴아아아아

닫혀진 창문 사이로 빗소리가 여전히 들어온다.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기가 만년필의 펜촉 끝에 맺혔다.

"아버지."

오랜만에 불러본다. 여전히 대답은 없다. 씨익. 영식은 웃는다. 그리고 다시 서랍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열대위에 만년필을 소중히 놓아둔 채... ...

창밖의 빗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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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2떄 적은 소설입니다. ㅋㅋㅋㅋ 오래된 글이긴 한데.....원래 판타지만 쓰던 사람인데 처음으로 현대소설 도전해봤는데....제 생각엔 이제까지 쓴 판타지보다 이게 더 나은것 같더라구요. 심지어 지금 쓰고있는것 보다.....OTL 여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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