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중국 <샨터우특구만보>에 실린 서울 명칭 변경 비판 기사. '한자 범람으로 한글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나?'라고 제목을 달았다.
서울시가 지난 19일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청'(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꿨지만 중국쪽은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주로 "이는 중화문화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한국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국 신문인 <중국참고(中國參考)>는 26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Wellington)의 한자 표기는 실제 발음과 일치하지 않는다, 웰링턴은 중국어로 후이링둔(惠靈頓)이지만 웨이링둔(威靈頓)이 훨씬 현지 발음에 가깝다"며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는 후이링둔(惠靈頓)이라는 표기에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번 서울의 한자 표기 개편은 한자 문화권 국가의 사회적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한국은 무형 자산의 손실을 입게될 것"이라며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은 경제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민족주의의 고양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25일 <샨터우 특구 만보>는 '한자 범람으로 한국어가 사라질 것을 걱정했나? 한국의 (서울) 명칭 변경은 억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맹비판했다.
이 신문은 "한성이라는 명칭은 1394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정한 것"이라며 "그러나 19세기 들어 한국은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1970년부터 한국에서는 초·중·고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표음문자인 한글만 남겼다"며 "이번 서울의 명칭 변경은 한국 민족주의 발전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중국청년보>는 24일 "중국은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을 이해해야한다"며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지만 현재는 평등한 동반자라는 이해를 기초로 반드시 지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청년보>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은 결코 중요하지 않고, 한국의 국력이 제고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며 "중국인이 서울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서울이 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는가에 있다"고 주장했다.
언뜻보면 이웃나라의 결정에 대한 이해로 보이지만 글 이면에는 중화주의 시각이 짙다.
<중국청년보>는 "한청(漢城)을 서우얼(首爾)로 바꾼 것은 민족주의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한자 사용 줄이기' 운동이 이미 한국에서 여러 해 진행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겨레> 중국어 표기는?
순수 한글로 된 고유명사를 중국어로 표기할 때 어려움은 상당하다. 예를들어 순 한글인 <한겨레>의 경우를 보자. 처음 중국인들은 한겨레를 '一族新聞'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뜻도 통하지 않고 우습기까지 했다. 나중에 좀 낫게 바꾼 것이 '韓民族新聞'이다. 한겨레라는 뜻이 '큰 겨레'라는 뜻으로 '우리 겨레'를 이르는 말이니 뜻이 통하기는 한다. 그러나 중국어 표기로 보면 국수주의 신문같이 보인다. 그러나 적당한 중국어 표기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애초 지난 1990년 대 초 중국과 수교 직후부터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한국 쪽에서는 '서우얼(首兀)' 등을 제시했으나 중국 쪽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신문은 "우려되는 것은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미약하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점"이라며 "중화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근국가가 지명을 바꾼다는 것은 중화문화의 흡인력이 서구 문화의 앞에서 더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했지만 한국을 비롯해 대만, 홍콩의 문화가 유행하는데 비해 중국 대륙 문화 상품의 해외에 대한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화권에 많은 시청자가 있는 홍콩의 <봉황위성TV >는 "한국의 이번 방침에 중국 외교부가 별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중화권 전체가 냉담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방송을 비롯해 일부 중국 언론들은 지난 24일 <조선일보>의 박승준 중국 전문 기자가 쓴 '속좁은 중국인들에게'라는 칼럼을 인용하면서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넓은 마음으로 서울 명칭 변경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중국 네티즌 비난 일색... 중국 외교부 무덤덤
중국 네티즌들도 비난 일색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속국이었던 한국이 수도 명칭을 마음대로 바꾼 것은 가소롭다는 것이다. 중화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던 한국이 서울 명칭을 바꾼 것은 민족주의의 발로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25일 홍콩의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도 '이름이 무슨 뜻이 담겼기에'라는 사설에서 "수백년 관행이었던 한성이 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라며 한국과 중국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로 주장하면서 한국인들은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으로 우려한다"며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의 부상이 위협인지에 대한 지식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학자라고만 신분을 밝힌 저우칭안은 26일 중국 <신경보>(新京報)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은 관용과 자신감을 가지고 서울의 명칭 변경을 바라봐야 한다"며 "이름이 바뀐다고 역사적 기억과 한 국가의 국제적 실력과 지위를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민중은 서울의 명칭 변경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지만 마음 속은 그들의 표현대로 '중국의 속국이었던 한국의 문화 독립'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않았다.
중국외교학원의 저우잉성 교수는 "한국은 수도 서울의 이름을 변경할 권리가 있다"며 "그러나 중국과 한자 문화권의 나라들도 역시 변경된 이름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권리는 당연히 한국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우 교수 역시 "한국은 자신의 문화를 보호함과 동시에 외래 문화, 특히 광대하고 심원한 중국 문화를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당부성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한국 결정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상하이 푸단대학 역사지리연구중심의 거젠슝(葛劍雄) 교수는 25일 <동방조보>(東方朝報)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한국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주장했다. 거 교수는 중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학자다.
다음은 거 교수의 기고문을 요약한 것이다.
지명을 그 땅의 주인이 정한다는 것은 국제적 관례다. 유엔의 지명 원칙도 어떤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이 지명과 외국어로 표기 방법 등을 정하며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변경된 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유가 있을지라도 중요한 원인은 (상대방과) 우호관계가 아님을 표현한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수도의 이름을 베이핑(北平)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바꿨다.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은 모든 나라들은 이런 중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했다. 대만도 처음에는 베이징을 받아들이지 않고 베이핑이라고 썼지만 지금은 베이징이라고 한다.
한성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한국의 내정에 속한다. 한성은 600년된 이름이지만 1945년 한국이 독립한 뒤 서울로 바꿨다. 그러나 중국은 계속 한성이라고 썼다. 당연히 주인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제 주인이 이름을 바꿨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우얼'은 '한청'보다 본 발음에 가깝다. 이는 한국 및 국제적 교류에 훨씬 더 편리하다. 일본 오사카(大阪)의 중국어음(따반)은 현지 발음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발음으로 무엇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한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현지 발음과 완전히 다른 중국어 표기는 오히려 국제교류에 방해가 된다. 앞으로 언론 등은 외국지명을 중국어로 표기할 때 현지 발음을 정확히 나타내는 발음부호를 붙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중국 국민들이 점점 더 익숙하게 되고 국제 교류에도 더 큰 이익이 된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대단히 적다.
애초 서울시가 중국어 표기 변경을 추진할 때 일부에서는 "중국어 표기만을 따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신판 사대주의"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는 정 반대로 '한국 민족주의의 발로'라며 비판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중국 외교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는 등 서우얼의 정착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과연 서우얼이 중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질지 가늠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