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지만, 지배체제의 목표는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지배다. 지배체제는 한줌의 지배세력이 대다수 인민들의 피를 빨아 한없이 안락한 세상을 목표로 할 뿐, 그런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식은 개의치 않는다. 지배체제 내의 가장 강경한 분파가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군사 파시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지배체제 내의 가장 유연한 분파가 전면에 나서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면서 경제적 착취를 강화하기도 한다(개혁). 두 분파는 동지애로 뭉쳐있기보다는 짐짓 죽고살기로 싸우는 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배체제 내에서의 권력 다툼이자, 지배체제와 인민 사이의 정당한 갈등을 차단하기 위한 ‘좌우 쇼’일 뿐이다.
사회적 브레인스토밍 삼아 질문을 하나 해보자. 오늘 한국에서 조갑제가 더 해로운가, 강준만이 더 해로운가? 이 질문은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것이다. 아무리 강준만을 조갑제와 비교할까?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단연 강준만이 더 해롭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 조갑제의 견해(이를테면 “주석궁에 태극기를 꼽을 때까지 진군!” 따위)는 더 이상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너무 낡고 ’구려서’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영감들(살아있는 화석들)에게나 소구되는 것이다.
반면 오늘 ‘양식 있는 한국인들의 영웅’ 강준만은 진지한 사람들, 이기심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진보적인 경향의 사람들에게 소구된다. 강준만은 그런 사람들이 오늘 지배체제의 본질인 개혁을 "실현가능한 최선의 진보"라 여기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개혁에 희망을 걸었다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고 민노당이나 그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세력으로 옮겨갈 사람을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차이에나 집중하게 만들어, 지배체제 손바닥 안에서 맴돌게 만드는 게 강준만의 역할이다.
조갑제보다 강준만이 더 해롭다는 말은 얼마나 악하게 느껴지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함으로써만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한겨레 21, 김규항)
제 부족한 글솜씨보다 저와 입장이 같은 김규항의 글을 퍼오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가져와봤습니다. 전 유시민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또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분리주의자니 물타기니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글이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오늘 김규항 책 출간 기념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독자와의 대화 다녀왔는데 들을만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