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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不眠) - 上
게시물ID : panic_817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타필리아
추천 : 34
조회수 : 2086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7/21 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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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근 후에 회식을 마치고, 취기에 비틀비틀거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해 몇번이나 틀리며 도어락을 여니, 이제 말을 시작한 딸, 혜영이가 현관에 누워서 자고있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막 지나고 있다.

나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든건가, 기특한마음에 볼에 뽀뽀를 해주고 안아들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내는 이미 골아떨어진 모양이다.

작게 '여보'하고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나는 서류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아직까지 켜져있던 TV를 껐다.

셔츠를 벗고 넥타이를 겨우겨우 풀고나니 갑자기 갈증이 들었다.

냉장고를 열어서 물병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킨다.

갈증이 풀리니 문득 물병에 입을 대고 마시지 말라던 아내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뭐 어때. 자고있으니 내가 입대고 마셨는지 아닌지 모를 것이다.

안들키면 그만이지 뭐, 하고 생각했지만 행여 아내가 깨어 잔소리를 할까 냉장고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조심조심 아내 옆에 누워서 어지러운 취기와 함께 잠에 든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2)

-꾸드득...꾸드득...
 
한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이상한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꾸드득. 꾸득.
 
무언가가 찌그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도둑인가? 정신이 번쩍 들며 가슴 한쪽이 싸하게 식어온다.

침대에서 살짝 빠져나와서 무기로 쓸것이 있나 화장대를 더듬어봤다.

아내의 화장품병이 손에 잡힌다. 못미덥지만 지금은 이게 어디인가.
 
-꾸드득...
 
소리가 나는 곳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경찰에 신고부터 할걸 그랬나? 핸드폰을 켜면 불빛때문에 눈치채지 않을까?

일단 뒷통수를 이걸로 후려쳐야지. 나름 운동부 출신이다. 좀도둑정도야.

근데 칼같은걸 가지고있으면 어쩌지? 화장품병으로 되나? 너무 성급하게 나섰나?

아니 사람이 멀쩡하게 자고있는데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

순식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껴진다.

하지만 어둠에 익은 눈으로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맥이 쫙 풀렸다.

"하..."

참고있던 숨을 한번에 내쉰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괜히 오버했다는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꾸드득
 
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다. 소리의 근원지는 내 서류가방이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건가 싶어서 서류가방을 열은 순간, 무언가 길다란게 확 튀어나와서 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으아아악!"

나는 기겁하면서 가방을 팽겨쳤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팔에 들러붙은 그것을 손으로 붙잡았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팔을 뚫고 들어왔다.

다시한번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던져버렸다. 벌레종류인지 길다란 몸과 수많은 다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다. 어린애 팔뚝만한 크기정도.
 
-따다다다닥
 
방바닥을 수십개의 다리가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재빨리 불을 켰다. 아내가 내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

"뭐야? 뭐야?"

나는 내 팔을 문 그것을 밟아 죽이리라고 생각하면서 바닥을 살펴봤다.

따다다닥하는 소리가 방에 울려퍼진다. 눈으로 소리를 쫒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귀를 기울였으나 내 거친 숨소리만 크게 들려온다. 어디로 숨은건가?

나는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이고 침대와 다른 가구들의 아래를 살폈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무슨 벌레... 지네같은게 들어와서 물렸어요."

"빨리 문 닫아요. 혜영이 방으로 들어가면 어떡해."

그 말을 듣고 재빨리 방 문을 닫았다.

지네는 독도 있어서 물리면 상당히 아프다. 혜영이가 물린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어디 물렸어요? 한번 봐봐."

"여기 팔...응?"

물려서 따끔거리던 팔목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 자국도 없는데요?"

"아니 분명히 팔을 물렸는데..."

날카로운 무언가가, 아마 독니가 팔을 뚫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물렸던 곳은 멀쩡했다.

"뭐 꿈꾼거 아니에요?"

"아니...진짜 물렸어요...이상하네. 분명이 여기 물렸는데."

아내가 떨떠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는 식은땀을 닦았다.

"혹시 모르니까 약이나 뿌리고 자세요. 오늘도 출근해야하잖아요."

나는 창문을 열고 살충제를 방 구석구석에 뿌렸다. 연기에 질식한 녀석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하도 뿌려서 하얀색 거품이 만들어질 정도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정도면 약에 쩔어서 죽었겠다 싶어서 바닥에 조금 남은 살충제를 탁자에 올려놓고 잠을 청했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또 한시간정도 눈을 붙였을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약에 쩔어서 제 풀에 지쳐서 기어나왔나보다. 하지만 불을 켜자마자 소리가 사라졌다.

다시 방 바닥을 살펴봤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밝아지니 도망간 모양이다.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다. 출근하기에는 이르지만 잠을 다시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두시간정도밖에 자지 못했지만 다시 잤다가 지각하는것도 좀 그렇다.

나는 나름 이름있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시작은 빚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경쟁업체를 제치고 겨우 적자가 흑자로 돌아섰다.

내가 사장이긴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도 있어서 내가 지각하면 뻗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냥 일찍 출근해서 어제 하던거나 마저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에 벌레를 남겨두고 출근하자니 불안하다.

문득 물렸던 팔을 보니 어젯밤의 생생한 느낌이 꿈이었던듯 멀쩡했다.

그래도 방금 소리가 들렸으니 아마 살아있을 것이다.

팔을 몇번 쓰다듬고나서 아내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아내가 잠이 덜깬 목소리로 물어본다.

"으으응? 벌써일어났어요?"

"응. 좀 일찍 나가려고요. 아까 새벽에 지네가 아직 방에 있는것 같아. 조심해요."

"윽. 나 지네같은거 무서운데... 그냥 잡아주고 가면 안돼요?"

"불켜니까 도망갔어요. 약같은거 사올테니까 방에 있지말고 문 닫아놔요."

"네."
 
 
 
3)

인터넷에 지네 잡는법, 지네 퇴치법, 지네 죽이는법 등을 검색해봤다.

여러가지 정보가 나왔는데 당장 쉽게 구해서 쓸만한 것은 살충제, 끈끈이덪... 이정도였다.

어떤 블로그(아마 광고겠지)에선 방충업체를 부르라고 하는데 지네 한마리 잡자고 부르자니 좀 아깝다.

보통 한국에 사는 지네의 크기는 아무리 커봐야 20cm를 안넘는다고 하는데, 어제는 분명 50cm는 되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정도 크기의 지네는 동남아나 갈라파고스까지 가야 있다고 한다.

게다가 크기가 크면 클수록 독성이 치명적이라서 물리면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부어오른다고 한다.

분명 물렸던 것 같은데 아무런 자국도 없으니...그냥 착각한듯 싶다. 다행이다.

그런 종류는 애완동물로 밀반입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게 왜 내 가방에 들어있단 말인가.

찾아보니 마리당 50만정도 하고, 비싼녀석은 100만원까지 간다는데, 그런 귀하신 몸이 뜬금없이 내 가방에서 튀어나오는 영문을 모르겠다.

순간 잡아다가 팔면 짭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집안에 그런게 돌아다니다가 아내나 혜영이가 물리면 어쩔 것인가.

어린아이가 물렸을 경우에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멀쩡히 포획할 방법도 모르겠고, 게다가 이미 약까지 쳤으니 제값받기도 힘들겠지.

문득 피곤해져서 눈을 문질렀다. 믹스커피를 원샷하니 좀 정신이 돌아오는 것도 같다.
 
 
 
 
"아빠왔다!"

"왔어요?"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딸이 반갑게 맞아준다. 혜영이가 쪼르르와서 안겼다.

"다녀오셔써요!"

"우리딸 인사도 잘하네. 뽀뽀!"

"쪽!"

"이쪽에도 뽀뽀!"

"쪽!"

"으이구 이뻐라."

"헤헤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방긋방긋 웃으며 안겨온다.

이래서 딸이 최고라고 했구나.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플 것 같다.

혜영이를 내려놓고 옷을 벗으러 안방으로 들어가니 약냄새가 물씬 풍겼다.

"살충제를 두통썼어요."

"잘했어요."

이정도까지 약을 뿌렸으면 절어 죽었겠지.

혹시 모르니 사온 끈끈이덪을 가구 아래쪽을 중심으로 꼼꼼히 깔았다.

그렇게 끈끈한가 싶어서 손가락을 대봤더니 철썩 붙어버린다.

아무리 커봐야 벌레지 뭐. 먹을것도 없으니 시간만 좀 지나면 죽을 것이다.

단란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딸아이랑 놀아준 다음에 안방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열어서 약냄새를 좀 뺀 후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었는데,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따다다다다닥 따다다다다닥
 
잠이 깨버렸지만 굳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약도 잔뜩 뿌렸고 끈끈이까지 깔아놨다. 죽는건 시간문제다.

근데 어째 소리가 어제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따다다다다다닥!

순간 바로 내 옆쪽으로 무언가 지나가며 딱딱한 여러개의 다리가 바닥을 딛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지네의 사진이 생각나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물리기라도 하면 대형참사다. 당장 죽여야한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불을 켰다.

소리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며 샅샅히 뒤져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소란에 잠이 깬 아내가 짜증섞인 신음소리를 냈다.

"잡았어요?"
 
"아뇨... 깨워서 미안해요."
 
아내는 대답 없이 팔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봤지만 조용하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 아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

시계를 보니 두시간을 잤다.

피곤이 확 밀려와서 불을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지네건 뭐건 분명 돌아다니다가 끈끈이에 잡힐 것이다.

어제도 잠을 두시간밖에 못자서 졸려서 미칠 지경이다.

피곤해서 일을 못한다거나 혹시 졸음운전이라도 하면 어쩌나.

신경을 끄고 잠을 더 자야겠다 싶어서 침대에 누웠다.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따닥.
 
약을 올리듯이 잠이 들려니 또 소리가 들려온다.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따다다다다다닥.
 
자자... 자자... 자자...
 
-따다닥. 따다다다다닥.
 
몸을 벌떡 일으켜 불을 켰다. 소리가 들려왔던 곳으로 미친듯이 약을 뿌렸다.

서랍장에 하얀 막이 씌워지고 방안이 매캐한 냄새로 가득찼다.

아내가 콜록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했다.

"아직도 있어요?"

나는 말없이 창문을 열었다.

시간을 보니 2시다. 이놈의 지네가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보이기라도 하면 쳐죽여버릴텐데, 불을 켜면 숨어버리고, 불이 꺼지면 돌아다닌다.

어제 손으로 쥐었던 느낌이나,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크기가 상당할텐데 더듬이하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내때문에 불을 껐지만, 이번에는 침대에 눕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의 지네를 때려죽이고 말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으니 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기분나쁜 고요함.

방안에 나와 아내 이외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슬슬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따다닥.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따다다다다닥
 
내 뒤쪽으로 무언가 지나간다. 드디어 나왔구나.

나는 몽둥이처럼 쥐고있던 신문지뭉치를 들고 뒤쪽으로 핸드폰을 비추었다.
 
-따다다다닥!
 
불빛을 비추자 그것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따라서 불빛을 움직였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 놓치고 만 것이다.

그정도 크기가 움직이는데 보이지가 않는다고? 말도 안된다.

소리가 멈춘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 후로 나는 날이 밝도록 숨바꼭질을 계속 했다.
 
 
 

4)

출근할때는 다행이 어느정도 정신이 들어서 졸음운전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죽을 지경이다.
 
어제 2시간 오늘 3시간정도 잔 것 같다.
 
아니 그나마도 깜빡 졸은 정도라서 전혀 잔 것 같지가 않다. 애초에 요즘들어서 잠을 잘 못잤다.
 
헛구역질이 나고 머리통에 무언가 들어가있는 것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다.
 
뒷목이 뻐근하고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다. 잠이 깨도록 세수라도 하자싶어서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다크서클이 장난이 아니다. 안색이 초췌해서 창백했다.
 
그나마 어제는 잘 버텼는데 오늘은 너무 힘이 든다.
 
젊었을때는 사흘정도는 밤을 새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나이도 들고 술배도 나올정도가 되니 제대로 잠을 못자면 바로 신호가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너무 심하게 졸리고 피곤하다.
 
의식이 계속 깜빡깜빡거려 당장이라도 화장실 바닥에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단 응접실의 쇼파에서 좀 눈이나 붙일까 싶어서 화장실을 나오다 최부장님과 마주쳤다.
 
일단 내가 사장으로 직급이 제일 높다고 해도 최부장님은 나와 띠동갑이시다.
 
하지만 회사의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으니 사석은 몰라도 공석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쓴다.
 
최부장님은 초반에는 조금 불편한 기색이었으나 이제 서로 적응한 차였다.
 
"아니 자네 얼굴이 왜그러나? 어디 아파?"
 
"잠을 좀 설쳐서요... 응접실에서 눈좀 붙일테니까 무슨일 있으면 깨워주세요."
 
"회사에서 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회사가 여관이야?"
 
"죄송합니다. 진짜 힘들어서요."
 
"그렇다고 해도 다른직원들 다 보는데, 거기다가 응접실에서..."
 
좀 고지식한 분이라서 바로 딴지를 걸어온다.
 
평소라면 나도 회사에서 자지는 않겠지만(애초에 간이침대같은 숙직을 위한 시설도 없다) 오늘은 한계였다.
 
그런데 기분탓인지 최부장님이 묘하게 평소보다 날이 선 것 같다.
 
보통 이런 경우는 내가 어느정도 굽히겠지만 오늘은 나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제 회사에서 제가 좀 자겠다는데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말하고나서 아차 싶었다. 쓸데없이 나도 강하게 말했다. 나도 잠을 제대로 못자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이다.
 
최부장님의 눈썹이 대번에 올라간다.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다른 직원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좋은아침입니다!"
 
다른직원 앞에서 싸우긴 좀 뭐했는지 최부장님은 불쾌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면서 돌아가버렸다.
 
자고 일어나서 나중에 사과를 할까 생각하면서 응접실 소파에 몸을 눕혔다.
 
푹신한 소파가 부드럽게 몸을 감싼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자, 다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잠이 왔지만
 
 
-따다다닥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바로 다시 눈을 떠야했다.
 
비몽사몽간에 잘못들었나 싶었다. 혹시 꿈을 꾼게 아닌가?
 
그리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지만, 내 생각을 비웃듯이 더더욱 또렷하게 들려온다.
 
 
-따다다다다닥.
 
 
쇼파 아래로 소리가 지나간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서 쇼파 아래를 살펴봤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가방이나 옷에 붙어서 회사까지 옮겨온건가?
 
그렇다면 내가 눈치를 못챌리가 있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내나 혜영이가 물릴 일은 없지 않는가.
 
때려죽여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지만 워낙 신출귀몰해서 방법이 없다.
 
일단 너무 졸려서 제 정신이 아니었고 말이다.
 
나는 재빨리 응접실에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혹시라도 그것이 내 몸에 붙었는지 확인했다.
 
확실히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서 가방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가다가 아까 그 부하직원이랑 마주쳤다.
 
"사장님, 어디 가십니까?"
 
"어...응. 계약처랑 미팅이 있어서."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황급히 사무실을 나와서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응접실에 남아있는 지네가 좀 찝찝하긴 했지만 기어나온다면 누군가가 발견해서 죽이겠지.
 
다시 한번 몸에 무언가 붙어있는지, 가방에 무언가 들어있는지 확인한다.
 
없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회사에서 나와서 내가 향한곳은 모텔이었다.
 
아침나절부터 양복입은놈이 혼자서 모텔에 오니 주인이 떨떠름하게 바라본다.
 
"대실 5만원이요. 6시간. 혼자오셨어요?"
 
"예."
 
"아가씨 부르실건가요?"
 
"아뇨."
 
"시간 끝나면 인터폰으로 전화 드리니까 연장하실거면 말씀해주세요."
 
"예."
 
계산을 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룸으로 뛰어올라갔다.
 
결혼한 이후로는 모텔이 처음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모텔이 아니라 호텔에 온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갔을때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때와 시설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침대도 크고 푹신푹신했고, 한쪽에는 대형 벽걸이TV가 걸려있었으며 천장의 조명도 화려했다.
 
침대 옆에 어디다 쓰는지 모를 버튼이 붙어있었는데,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나는 바로 옷을 벗어던지고 커튼을 치고 조명을 죄다 꺼서 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샤워도 안한채, 바로 침대로 뛰어 들어갔다.
 
지금은 그냥 다 필요없고 자고싶었다.
 
이번에야 말로. 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는데,
 
 
-따다다다다다다닥
 
 
예의 그 소리가,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격렬할 정도로 느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한여름의 매미가 내는 소리가 더 편안하게 들릴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씨발!"
 
나는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침대를 발로 펑펑 찼다.
 
도대체 어떻게 따라왔단 말인가.
 
저 집요한 소리때문에 미쳐 돌아버릴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단순한 벌레가 이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나?
 
진짜 지네가 맞나?
 
지네가 어두울 때 활동하는건 맞지만 그렇다고 귀뚜라미마냥 시끄러운 벌레도 아니다.
 
외국종인지 뭔지 해도 잠잘때 기어들어와서 물면 모를까 잠도 못자게 소음을 내는 벌레는 아닌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곤충이 내는 발소리가 저렇게 요란할리가 없다.
 
 
-따다다닥. 따다다다다다닥.
 
 
귀를 막았는데 어째서인지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골통을, 뼈를 두드려대는 느낌이다.
 
단순한 소음이라기에는 소름이 쫙 끼치는 불쾌한 소리.
  
약이라도 올리듯이, 바로 귀 옆에서 따닥따닥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베개에서 얼굴을 때고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달려있는, 곤충의 다리마냥 길다란 손가락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침대 모서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닥!
 
 
형상은 얼핏 보면 지네였는데, 벌레의 다리 대신에 수많은 손가락들이 양 옆으로 달려있다.
 
열개, 아니 수십개? 쉴새없이 움직여서 도저히 셀 수가 없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손가락들이 물결치듯이 침대 모서리를 두드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뾰족한 손톱 끝과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의 딱딱한 모서리가 부딪히며 딱! 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 동작을 수십개의 손가락이 반복한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닥!
 
 
생전 처음보는 기괴한 것에 대한 공포로 쉽사리 반응하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생긴 지네가 있었나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내가 잠을 못자서 헛것을 봤나 싶어서 눈을 감았다 뜨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감은순간 다시 떠지지 않았다. 눈꺼풀을 무언가 짓누르고 있는 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눈꺼풀만이 아니었다. 전신이 무언가로 꽁꽁 묶인 마냥 움직여지지 않았다.
 
분명 의식은 또렷한데, 몸에 아무리 힘을 줘봐도 무언가로 묶어놓은듯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눈을 뜰 수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 소리만이 끝없이 울려퍼졌다.
 
몸이 안움직이니 귀를 막을수도, 도망갈수도, 그것을 손으로 쳐내버리지도 못한다.
 
비명을 질렀지만 성대도, 혓바닥도 굳어버린듯 미약한 숨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따다닥. 따다다다다다다닥!
 
 
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고문마냥 단지 그 소리만을 하염없이 들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대실시간이 끝났는데도 인터폰을 받지 않자, 보려고 올라온 직원이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릴 때 까지, 그 소리만을 계속 듣고 있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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