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1일 '이야기마당, 국 한 그릇'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전철연 민주노련) 활동가]
얼마 전 세월호 참사로 전국이 떠들썩할 즈음 또 다른 이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염호석 씨로 삼성전자서비스에 다니는 34살 청년이었다는군요. 그가 마지막 받은 월급이 고작 41만 원이었다지요.
아무리 우리 사회가 죽음이 큰 충격이 되지 못하는 무덤덤한 세상이라지만 미래가 구만리인 사람이,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야 할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참 슬프고도 슬픈 세상 속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지요.
현재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의 직접 교섭 참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희 노점상들도 몇 차례 이곳을 지지방문을 하여 어묵국을 끓여 함께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강남과 서초지역에서 노점상을 하는 분들입니다. 생색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날 노점상들은 오전부터 인천지역 노점상 단속에 맞서 집회를 개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하는 분들이 비를 맞아가며 싸우고 있다고 연대가 필요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노점상들이 무슨 힘이 있나요? 그저 평소에 파는 음식인 어묵에다가 가스와 대형그릇 그리고 불판은 언제나 갖추고 있는 것들이라 그냥 무작정 챙겨 들고 농성 현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때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비닐로 텐트를 쳐서 무사히 약간의 음식을 마련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비 오는 날 어묵국을 끓여 삼성서비스 노동자들과 식사
잠시 우리 빈민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씨는 복지 공약을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송파 세 모녀의 자살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연일 목숨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장애인들도 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며 광화문 농성장에서 660여 일의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장애인 단체 사람들에게 "무슨 단체가 일 년이면 365일이 장례식이냐?"라는 웃지 못할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참 비참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니 가난과 맞서 싸워야 할 정부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싸울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가지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이들의 마지막 보루가 있습니다.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인데요. 박근혜 정부는 이마저도 해체하려는 시도를 계속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국민연금 제도를 기초연금과 연계해 후퇴시키고, 병원에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는 등 '의료 영리화'를 진행하는 실정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사회의 절대적 빈곤층뿐만 아니라 소위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의 삶에 처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희망이 없는 거지요. 대다수 일하는 노동자들은 염호석 씨처럼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더 개선되지 않고 빠르게 확산되어 나가고 있으며 주거와 교육 의료 등 재생산 영역 안에서도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한 생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지를 입에 달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이제 와서 빈곤을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내몰며 죽음의 터널 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꼭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죽음의 정부,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정부인 셈입니다.
마지막 보루마저 해체하려는 죽음의 정부
이제 6월입니다. 이 땅의 도시 빈민들이 노동자와 어깨 걸고 거리로 나설 차례입니다. 노점상의 최대 행사는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6.13대회입니다. 생소할 수 있으니 이 대회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노점상 대회의 출발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는 학살로 얻은 피의 정권임을 무마하기 위해 대규모 국제행사를 자주 개최하곤 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군부독재 정권은 전면적인 노점상 탄압을 전개합니다.
국제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거리는 외국인에게 보여 주기 위한 차원으로 정리되어야만 했고 '노점상들은 싹 쓸어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했으며 철저히 생존권이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노점상들은 1988년 6월 13일 성균관 대학교 금잔디 광장에서 약 3000여 명이 모여 '노점상 생존권 수호 결의대회'를 개최합니다. 5000명으로 늘어난 거리의 노점상들이 집단으로 모여 시청으로 진출하자 이를 가로막고 탄압하기에 이릅니다. 전투경찰의 만행으로 노점상 17명이 부상당하기도 했습니다.
분노한 노점상들은 그 후로 매일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마침내 군부독재 정권은 노점단속 방침을 유보하고 노점상 보관소 폐쇄 계획을 보류하게 됩니다. 마침내 노점상들이 최초로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특히 이날 집회를 계기로 노점상의 생존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여론화되면서 하나의 저항세력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한국 민중운동사에서 거리의 노점상이 제 진보 민중 운동 단체와 공동으로 연대를 모색하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조직적인 투쟁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노점상이 사회운동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88올림픽 노점상 싹쓸이 정책에 맞선 6.13 투쟁
다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되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무기한 노숙 농성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은 나와 있지 않은 것으로 들려옵니다. 잠시 교섭 내용을 살펴보니 각 하청업체들의 핵심 요구안은 폐업 센터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승계 문제와 건당 수수료제 개선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삼성전자의 외주화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로 그리고 다시 160여 개의 외주업체 노동자로 그리고 또다시 약 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건당 수수료를 받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어처구니'라는 말이 있지요.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머리 부분을 말합니다. 이 손잡이 부분이 나무라서 돌을 부수다 보면 종종 부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 머리 부분을 잃어버려서 일하지 못할 때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느 때는 법정 최저임금 벌기도 힘들었다는 언론의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저를 바칩니다"라는 34살 젊은이의 유언장 한 구절이 머리를 칩니다.
지금 세상에는 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아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 그들이 노점상이건 철거민이건 혹은 장애인, 노숙인이건 이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 노동자로 일을 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염호석 씨처럼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한들 우리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남과 서초 하면 참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운 동네입니다. 가끔 노점상과 철거민 문제로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낯설다 못해 주눅 들기 일쑤였습니다.
낯설고 황량한 서초구의 커다란 건물 사이로 대로변에 아무렇게 앉아서 농성하는 이들이나 혹은 불법이라는 딱지를 받아가며 근근이 장사하는 이들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6월 11일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마당, 국 한 그릇' 행사가 열립니다. 이날 이야기마당에는 진보 교육감을 만들어낸 전교조와 파업을 통해 사장을 몰아낸 KBS 조합원이 투쟁의 이야기를 그리고 10년 동안 투쟁을 통해 불법 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재벌을 상대로 한 투쟁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여기에 저희 노점상들이 마음을 보탭니다. 차가운 도시락만 먹고 있는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을 위해 따뜻한 국을 준비했습니다. 미역국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집밥'이 그리운 노동자들의 차가운 마음을 조금은 데워주려고 합니다.
노점상과 노동자가 함께 싸웁시다. 가난한 이들과 싸우는 박근혜 정부에 함께 맞서 나갑시다. 어묵과 찌개 몇 그릇의 연대를 넘어 더 큰 연대의 거리에서 함께 손잡고 나갑시다. 6월 13일 노점상대회가 그 연대의 포문을 여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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