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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不眠) - 下
게시물ID : panic_818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타필리아
추천 : 54
조회수 : 2809회
댓글수 : 46개
등록시간 : 2015/07/24 13: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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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不眠) - 上
http://todayhumor.com/?humorbest_1097702

불면(不眠) - 中
http://todayhumor.com/?humorbest_1098145

에서 이어집니다.
 
시리즈로 쓴 글이라 처음 보시는 분은
 
19)귀접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10134
살충(煞蟲)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10152
시취(屍臭)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10633
 
순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
 
핸섬무당은 일단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을 삭제하라고 했다.

순순히 글을 지우니 쪽지로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전화를 거니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은정아사랑해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핸섬무당님 맞으신가요?"

-예 맞습니다. 그... 닉네임으로 부르는건 조금 그러니 가인도령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아, 예예. 저도 강대호라고 불러주세요."

-예, 강대호씨.

은정아사랑해나 핸섬무당이나 피차 부르기 부끄러운건 마찬가지였다. 장난치는 것 처럼 들리니 말이다.

가인도령은 갤러리에서 반말로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예의바른 사람인 듯 싶었다.
 
아니 예의바르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반말쓴다고 실제로도 반말쓰는게 이상한건가.

나는 확인차 질문했다.

"가인도령님. 그...뭐냐... 무속쪽에 종사하시는거 맞으시죠?"

-예. 무당입니다. 사무실도 운영하고 있고요.

사무실? 신당이 아니라 사무실이라고 부르니 뭔가 어색하다.

아니 뭐 부르기 나름이겠지만 보통 무당하면 점집, 신당, 무당집 이정도 아니던가.

-저주에 시달려서 무당한테 갔다고 그러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진짜 그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네요.

화면에 떠있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소리가 난다고 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무당은 눈치챈 모양이다.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신뢰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월요일 저녁, 아니 화요일 새벽에 가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거에요..."

그 뒤로 소리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것, 모텔에서 본 괴이한 손가락, 착각해서 딸의 인형을 박살낸 것, 무당을 찾아갔는데 벌레가 꼬일 사주라고 한 것, 500만원을 주고 산 부적, 그 소리가 아내와 딸에게 옮겨간 것, 무당이 천만원을 더 가져오라고 했던것을 최대한 기억나는대로 쭈욱 설명했다.
 
 
-따다다다다다닥!
 
 
통화를 하는 도중에도 지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옆을 기어다녔다. 조금 움찔해서 설명이 잠시 끊어진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가인도령이 입을 열었다.

-그 무당 이름이 뭐죠? 뭐 무슨 보살이나 무슨도사같은 이름이 있지 않던가요?

"아. 수남보살이라고 하던데요."

-XX빌딩 20층에 신당있는 할머니 말씀하시는거 맞으시죠? 남자하나가 카운터 보고있고?

"예. 맞아요."
 
-허... 세상에 이런 우연이있나...

저편에서 으으음. 하는 소리를 낸다.

"아는사이신가요?"

-네, 아는사이기는 한데 그렇게 친하지는 않고...

그 무당이랑 아는 사이인듯해 살짝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짜고치는게 아닐까하는 그런 불안감.

이 무당도 그정도 돈을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떠볼겸 질문을 던졌다.

"복채 1천만이면 적당한건가요? 원래 그렇게 많이 받아요?"

-무당에 따라서 다르긴 합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 시달리고 계신게 살충(煞蟲)같은데 말입니다.

"살충제할때 살충이요?"

-벌레를 붙이는 살...그러니까 저주라고 해서 살충입니다.

아까 게시판에서 봤던 단어가 기억났다. 뭔가 했는데 煞자가 저주 비슷한 뜻인가보다.

근데 그중에 살충에 걸리면 죽을수도 있다라는 말이 있었던것 같은데. 나도 실제로 저 지네가 내는 소리때문에 잠을 못자서 어제까지는 죽을 것 같았다.

"아까 게시판에서 써있던 글에는 구더기가 알을 까서 먹혀서 죽는다... 뭐 이런게 써있던데 죽을정도면 위험한거 아닌가요?"
 
-아...그건 좀 설명하자면 긴데... 걔는 일부러 저한테 오게 하려고 겁을 좀 준거에요. 그런 경우에는 심해도 죽을 정도까진 아닙니다.
 
"아 그래요?"
 
-살충에도 종류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에 지네가 가장 강력하거든요. 약한 살은 그냥 정신만 차리면 기에 못이겨서 사라지는데 지네살은 좀 독합니다.
 그래서 지네살이면 퇴치하는데 살충중에서 돈을 좀 많이 받긴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500만은 엄청나게 많은거에요.

"그 무당이 이상한거군요?"

가인도령은 또 다시 생각에 빠진듯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도 확답을 못드리겠는게...애초에 살충자체가 살중에서 강한 살이 아니에요. 기가 강한사람이면 금방 떨쳐냅니다. 주변에 옮겨가지도 않고요.
그리고 만나셨다는 무당께서 좀 연륜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냥 살충은 지네던 뭐던 간단하게 쫒아낼 수 있으신 분이에요. 근데 500만도 모자라서 천만원을 더 달라고 하는건 이해가 안가네요 저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애초에 이렇게 시달릴 일이 없는데 이렇게 시달리고 있고, 돈을 그렇게 받을리가 없는데 그렇게 받고 있다. 이런 말씀이시죠?"

-예. 그런셈입니다.

이렇게 설명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 수남보살이라는 무당은 그냥 무조건 죽을것이다. 돈을 내놔라. 정도의 이야기밖에 안했는데 이 가인도령에게 전문가다운 설명을 들으니까 더 믿음이 가는 것 같다.

"그럼 가인도령께서 고쳐주실 수 있으신건가요? 가격은 얼마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격은... 전화로는 뭐라고 확답을 못해드리겠고 직접 봐야 판단을 하겠는데요.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한번 뵈어도 될까요?

주소를 알려주니 오늘 오전중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10)
 
"안녕하세요. 강대호씨 맞으시죠? 가인도령이라고 합니다."
 
"어서오세요."
 
10시를 조금 넘을 즈음에 핸섬무당...아니 가인도령이 도착했다.
 
30대 초중반정도로 보였는데 몸이 호리호리하고 선이 가늘어 전체적으로 날카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핏이 좋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무당이라면 당연히 통이 큰 두루마기?같은걸 입고 있을 줄 알았기에 의외였다.
 
실제로 수남보살이라는 무당도 그런걸 입고있지 않았던가.
 
검정색의 백팩을 매고있었는데 무당이라기 보다는 직장인으로 보인다.
 
하긴. 그렇게 따지만 무당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좀 의외긴 했다.
 
그런데 혼자 온게 아니라 같이 온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쪽분은..."
 
"안녕하세요! 김인영이라고 합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어깨정도의 단발에 눈이 동글동글하고 볼살이 좀 있어서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앳된 느낌이 채 가시지 않은 밝은 목소리로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평소라면 어이구 인사성도 밝네 하고 받아줬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의아한 느낌이 먼저였다.
 
무슨 상황인지 가인도령을 쳐다봤더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렬하다.
 
"아는애...알바...아니 조카입니다. 그...퇴마하는걸 보고싶다고 해서..."
 
"그러니까 관계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무리 이쪽이 아쉬운 입장이라고 해도 처음보는 여고생이 따라온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행색도 무당같지가 않았고, 뭔가 여러모로 찝찝하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인영이라는 여자아이가 아내의 무릎 뒤에서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혜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이름이 뭐야?"
 
"강혜영."
 
"몇살?"
 
"세..살?"
 
혜영이가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네살입니다. 전 무당을 부른거지 애보는사람을 부른건 아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데려오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신경쓰이는 점을 지적하자 가인도령이 고개를 숙인다.
 
무당을 부른건 말하자면 치부다. 어쩔수 없긴 했지만 난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무당같은걸 믿어도 되는가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근데 그걸 '아는애'라는 여고생이 쫒아와서 옆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저 아이는 내보낸 채로 진행하고 싶었다.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와중에 김인영이 들고온 쇼핑백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혜영아. 언니가 선물가져왔어."
 
"응?"
 
"짜잔!"
 
"우와아!"
 
혜영이가 박수를 치며 탄성을 지른다.
 
나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선물이라고 가져온 물건은 내가 부숴버린, 혜영이의 생일선물로 사줬던 인형이었던 것이다.
 
저게 튀어나올줄은 몰랐기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떡하게 벌렸다.
 
전화로 인형하나를 부쉈다는 말은 분명히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무슨 모델인지까지는 말을 안한 것이다.
 
당장 장난감가게만 가도 인형이 수백 수천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저 인형을 사왔다고?
 
혜영이는 인형의 포장지를 뜯으며 마냥 기뻐하고 있었다.
 
"이, 이걸 어떻게... 참. 혜영아 감사하다고 일단 인사부터 해야지."
 
"언니! 감사합니다!"
 
아내도 당황한듯 말을 더듬었다. 무당이 아니라 마술사라도 보는 기분이다.
 
가인도령이 흠흠하면서 헛기침을 한다.
 
"이 아이도 신기가 좀 있습니다. 인형도 인영이가 골랐고요. 공부에 도움이 될까해서 데려왔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런걸 받아도 될지. 가격이 좀 있는건데."
 
이 인형은 10만원을 호가하는 꽤나 고급품이었다. 방문선물로 받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그냥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서로 믿음이 있는게 굿하기에도 더 좋습니다."
 
불청객이었던 김인영의 인상이 순식간에 180도 바뀐다.
 
집안에 들어온 가인도령인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김인영은 아내와 함께 혜영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런건 보통 밖에서 들어온 물건에 붙어서 같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새로 구매한 물건이 있으신가요? 가구같은걸 새로 들여놨다거나."
 
"전혀 없습니다. 짚이는 곳이 전혀 없어요."
 
"집에서 흙? 한약? 같은 냄새가 나요."
 
혜영이랑 놀아주던 김인영이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다. 냄새? 전혀 못느끼겠다만.
 
아내는 손님이 냄새가 난다고 하자 방향제를 뿌리기 시작했다.
 
"서류가방에서 나왔다고 했죠? 일단 그걸 좀 보고싶은데요."
 
나는 방에서 내가 쓰던 서류가방을 가지고 나와서 보여줬다. 가인도령은 서류가방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인도령은 서류가방을 올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발견한듯 했다.
 
"여기 안쪽에 조금 구멍이 뚫려있네요."
 
"엇. 처음봤습니다."
 
"음. 좀 뜯어봐도 되나요?"
 
"아, 예. 그러시죠."
 
 
-꾸드드득
 
 
가인도령은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벌리기 시작했다. 가죽과 천을 잇던 실밥이 끊어지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파열음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분명 맨 처음에 잠에서 깼을 때 들었떤 소리였다. 그게 저 소리였나.
 
가인도령은 천과 가죽사이의 공간에서 검은색의 종이를 한장 찾아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살을 날릴 때 쓰이는 부적입니다. 원래 노랑색이나 흰색종이를 쓰는데 살을 맞으면 이렇게 검정색으로 변합니다. 아마 여기서 나왔을거에요."
 
"그게 왜 거기 들어가있는지..."
 
"아마 누가 일부러 넣었겠죠. 최근에 가방을 누가 가져갔다거나 하는 일 없었나요?"
 
가방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지만 분명히 회사에서 자리를 비울때나 회식자리등에서 술을 마시면서 가방을 몸에 떼어놓은 일은 몇번 있었다.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근데 왜 저한테 이런걸..."
 
"원한관계겠죠 뭐. 간단하게 말하면 엿한번 먹어보라는 심정으로 날리는겁니다."
 
누가 나를 그정도로 미워하고 있다고? 이건 전혀 짚이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사람한테 그정도로 피해를 끼친 일이 있었나?
 
나는 손사래를 쳤다.
 
"원한관계요? 살면서 그런건 전혀..."
 
"보통 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핸섬무당이 살짝 조소 비슷한걸 띄운다.
 
"사실 살에 맞는 사람이 은근히 많거든요. 그런분들을 만나면서 원한관계가 있냐고 여쭤보면 십중팔구 다 착하게 살아왔다고 그러십니다.
 
뭐 사실 몰라도 상관 없긴 해요. 이런걸로 고소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따다다닥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지네가 뒤쪽에서 소리를 냈다. 식겁해서 그쪽으로 돌아봤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외부인에 지네는 살짝 겁을 먹은듯 조심스럽게 동태를 살피는 듯 했다. 소파아래에서 슬쩍 고개(얼굴있는지는 모르겠지만)를 내밀고있다.
 
핸섬무당도 소리를 들은건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허, 생각보다 훨씬 큰데요? 지네살은 보통 아무리 커야 한 자를 안넘는데 저건... 형상도 이상하고."
 
조심스럽게 위치를 옮기며 지네를 살펴본다. 놀란 기색이 역렬하다.
 
"보통 살이 아닌데 저건... 거의 요괴에 가까운데요."
 
"요괴요?"
 
"요괴라고 해야하나. 사람것이 아닌 혼령같은걸 뭉친걸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지네살은 겉으로 보기에 그냥 평범한 지네에요. 크기가 좀 크거나 색이 이상하다거나 그런 경우는 있어도 손가락이 달려있는건 처음 봅니다."
 
가인도령의 안색이 안좋다. 나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퇴치는 가능하신거죠?"
 
"아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냥 생각보다 커서 좀 놀란거에요."
 
가인도령은 안색을 풀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퇴마를 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야. 인영야. 잘봐둬라."
 
"네~"
 
"네!"
 
혜영이가 덩달아서 같이 대답을 한다. 김인영은 깔깔 웃으며 혜영이를 간지럽힌다. 혜영이의 웃음소리가 집안을 채운다.
 
만난지 한시간도 채 안됐는데 벌써 친해진 것 같다. 아내도 같이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들떴다.
 
"혜영아 언니 좋아?"
 
"응! 언니들 진짜조아!"
 
언니들? 김인영 혼자 아닌가? 그냥 혜영이가 잘못 말한건가.
 
가인도령은 가방에서 퇴마도구로 보이는 것들을 주섬주섬 꺼네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살충제에 나무상자? 어디 마트에서 사온듯한 닭고기와 하얀색 가루같은걸 꺼낸다.
 
나는 적나라하게 에X킬라라고 써져있는 살충제를 보면서 식은땀을 닦았다.
 
"그것들은 뭐죠?"
 
"퇴마도구입니다만."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 자세히 보니 부적이 붙어있다. 저걸로 끝? 상상했던거랑 너무 다른데.
 
"원래 지네살은 떼어낼 때 크게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닭고기로 유인해서 죽이거나 상자같은데 가두면 끝이니까요. 근데 저건...좀 쌔게 가야겠는데요."
 
다행히 꺼내놓은 것이 전부가 아닌지 닭고기를 가방에 다시 넣고 가방에서 부적뭉치와 칼을 꺼낸다. 칼?
 
"아. 주술용 칼입니다. 칼춤출 때 쓰는거요. 별로 날카롭진 않습니다."
 
내가 갑자기 등장한 날붙이를 불안하게 바라보자 위험하지 않다는것을 확인시켜주는듯 손가락으로 칼을 가볍게 훑는다.
 
그러고보니 칼에 한자같은게 써져있다. 칼을 두자루 꺼낸 가인도령은 칼등을 서로 부딪혀서 쨍하는 소리를 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닥!
 
 
겁에 질린건지 화가난건지 지네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나와 아내가 동시에 움찔하며 놀란다.
 
"이 칼이 비싼값을 하거든요... 쥐잡는데 소칼쓰는격이 아닌가 모르겠지만."
 
칼을 옆에 내려놓고 붉은색의 가느다란 줄뭉치를 꺼낸다. 그리고 그걸 바닥에 동그란 형태로 깔은 후에 테이프로 촘촘히 고정시킨다.
 
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부적을 붙인다. 무슨 마법진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원은 아니고 한 귀퉁이가 뚫려있었다.
 
가인도령은 손바닥을 툭툭 털면서 몸을 일으켰다.
 
"준비는 일단 이걸로 끝입니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 지네를 몰아서 그 안으로 넣을겁니다. 그러려면 미끼가 필요한데..."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진해서 손을 들고 나섰다.
 
미끼라니 조금 무서운 기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당연하게 아내나 혜영이에게 시킬 수도 없다.
 
가인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가방에서 찾아냈던 검은색의 종이를 나에게 건냈다.
 
"이걸 들고 계시고요. 제가 이 칼을 부딪혀서 소리를 내면 자극을 받아서 숨을 곳을 찾을겁니다. 원래 지네는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해서 흙속이나 돌틈에 숨습니다. 그런데 지네살은... 사람 몸속으로 숨거든요."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커다랗고 날카로운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하다.
 
가인도령은 나를 안심시키려는듯 하하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곤 아까 가방에서 꺼냈던 검은색 종이를 나에게 건냈다.
 
"아, 그렇게 겁내실건 없고요. 이 종이를 들고 원 가운데에 서계시면 지네가 그쪽으로 갈겁니다. 일단 원 안으로 들어가면 이 붉은선은 못넘어가거든요. 그럼 제가 그걸 죽일게요."
 
"이 종이는 뭐하는거죠?"
 
"지네가 잘 보도록 하는 깃발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위협을 느끼면 그게 있는 쪽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갈겁니다."
 
"그...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냥 돌아다니는걸 잡아죽인다거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물어보자 가인도령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빨라서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안하면 오히려 도망다니다가 누구에게 들어갈지 몰라요."
 
불안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아내를 한번 힐끔 본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김인영과 놀고있는 혜영이도 한번 돌아봤다.
 
"안심하세요. 들어가게 두지도 않겠지만 만에 하나 들어간다고 해도 책임지고 빼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살짝 안심이 된다. 하긴.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나는 종이를 든 채로 원 안으로 들어갔다.
 
가인도령은 불을 끄고 커튼을 전부 쳤다.
 
대낮이라서 그것만으로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딱히 더욱 어둡게 하려고 하진 않는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닥!
 
 
어두워지자 소리가 한층 활발해졌다. 바닥을 돌아다니는 것 같긴한데 어디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건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계속 바뀐다. 하긴 저걸 쫒아가서 잡는건 힘들 것 같다.
 
가인도령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쨍! 쨍! 쨍!
 
 
가인도령은 칼을 일정한 박자로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금속 특유의 진동음이 집안에 울려퍼진다. 그것에 지네가 그것에 발악하듯이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따다닥. 끼이익. 끼이이이이익.
 
-쨍! 쨍! 쨍!
 
-끼긱. 끼기기긱. 까아아악.
 
 
마치 손톱으로 바닥을 벅벅 긁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괴로워하고 있는건가?
 
나도 상당히 귀가 괴로웠지만 이번 한번만 참고 넘기면 이제부터는 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해 꾸욱 참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건지 어느정도 발악하던 지네의 힘이 확연하게 빠지는게 느껴졌다. 소리가 훨씬 작아지고 뚝뚝 끊킨다.
 
저 가인도령이란 무당이 생각보다 영험하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복채는 얼마나 나올런지.
 
일단 수남보살같은 사기꾼같은 무당과는 다르게 일은 제대로 하는듯 했다. 그래도 돈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슬슬 금속음에 귀가 마비돼서 소리가 잘 안들릴 정도가 됐을 때, 언제 끝나나 싶어서 좀이 쑤셨다.
 
나는 손에 쥐고있던 검은색의 종이를 살펴봤다. 살을 날리고나서 검은색으로 변한 것이라고 했는데 원래는 그냥 부적이었을까?
 
"어?"
 
검은색으로 변하는 부적?
 
고개를 돌려 귀를 막고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혜영이를 쳐다봤다. 혜영이의 목에 걸려있는 부적주머니가 눈에 띈다.
 
분명 수남보살은 저 부적이 검은색으로 변하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부적도 모기향처럼 효력을 다하면 검은색으로 바뀐다는 식으로 이해를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가인도령은 살에 쓰이는 부적은 살이 성공했을 경우에 검은색으로 바뀐다고 했다.
 
혹시 무당이 준게 지네를 쫒는 부적이 아니라 오히려 지네를 한마리 더 담아놓은 부적이라면?
 
인터넷에서 지네는 같은 종류라도 서로 부딪히면 싸우니 애완용 지네를 키울때는 한마리씩 따로 분리해서 키우라는 글이 떠올랐다.
 
저 안에 지네가 들어있어서 원래 돌아다니던 지네가 알아서 피하고 있던거라면?
 
직감에 가까운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가인도령에게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무언가 내쪽으로 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따다다닥
 
 
나를 괴롭히던 그 지네였다.
 
힘이 약해졌을 뿐만이 아니라 거의 죽어가는듯 손가락에 달려있던 뾰족한 손톱이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손톱이 빠져서 그런지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히던 소리도 한층 약해져있었다.
 
가인도령이 칼을 부딪히는 손을 멈추지 않은채로 서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거의 다됐습니다!"
 
"잠시만요! 지네가 한마리가 더 있는 것 같아요!"
 
"뭐라고요?"
 
"꺄아아악!"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황급히 그쪽을 보니 바닥에 기어다니는 녀석과 똑같이 생긴 지네가 혜영이가 걸고 있는 부적주머니에서 꿈틀거리면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혜영아!"
 
"나오시면 안됩니다! 둘다 놓쳐요!"
 
"그럼 저건 어쩌고요!"
 
급한 마음에 그쪽으로 가려고 하자 가인도령이 제지했다.
 
"꺄아아아아악!"
 
다시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김인영인가?
 
"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너무 비명을 질러대서 지네나 칼소리가 묻힐 정도다. 목청도 좋네.
 
나는 침착함을 잃고 가인도령의 말을 어기고 붉은 선 밖으로 나와버렸다. 가인도령이 다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일단 혜영이쪽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순간 다 죽어가던 지네녀석이 꼬리를 쳐들더니 탁 하고 바닥을 치며 내쪽으로 도약했다.
 
다 죽어가는 놈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징그러운 손가락과 손톱들이 얼굴로 날아드는 것이 슬로우모션을 보는 마냥 느리게 보였다.
 
"말, 좀, 들으시라니까!"
 
찰나의 순간에 가인도령이 들고있던 칼로 날아오는 녀석을 내리쳐버렸다.
 
깔끔하게 동강나버린 지네가 툭하고 떨어져서 굴러다닌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김인영이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삼촌! 삼촌!! 여기좀 도와줘요!!!"
 
그쪽을 보니 김인영이 자기 팔뚝만한 지네를 양 손으로 붙잡아들고 있었다.
 
응? 잡고있네?
 
"으아아! 맨손으로 만졌어!!! 향단아아아아!!! 꿈틀거려!!! 꺄아아아!"
 
최대한 몸에서 떨어트리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팔을 쭉 뻗고있다. 지네가 몸을 꿈틀거리면서 버둥거렸지만 손아귀를 풀지는 않았다.
 
엄청 빨라서 엥간해선 못잡는거 아니었나? 그리고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거였어?
 
꽤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 모습에 벙찌고 말았다.
 
옆을 보니 가인도령까지 벙찐 표정이었다.
 
"아 뭘 보고만 있어요! 이것좀 어떻게 해봐요!"
 
"어? 어? 응."
 
김인영이 질책하자 그제야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한다.
 
들고있던 칼로 지네를 쳐버리자 몸이 조각나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꿈틀거리는 녀석을 몇번 칼로 쳐버리자 곧 움직임이 멈춘다. 생각보다 싱거운 결말이었다.
 
가인도령은 바닥에 떨어진 지네시체를 아까 가져온 상자에 담고 하얀 가루를 부었다.
 
그리고 상자를 닫고 부적을 붙인다.
 
"끝났습니다."
 
"정말로요?"
 
"예."
 
이제 더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건가?
 
정말 주위가 조용하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뭔가 감격이 북받쳐서 코끝이 찡해졌다.
 
가인도령은 무슨 종이를 꺼내서 볼펜으로 끄적끄적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욱 하고 종이를 뜯어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계산서고요. 거기 아래에 싸인해주세요. 계좌 써있는 곳으로 입금시켜주면 됩니다."
 
"아, 예. 예."
 
받아든 종이에는 <전통무속신앙연구회, 전통무속활동공연, 청구금 100만원> 이라고 써있었다.
 
100만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생각보다 엄청 쌌고) 싸인을 하는데 뒤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 죄송한데 화장실이 어디에요? 손좀 씻게요. 으으으... 맨손으로 만졌어..."
 
 
 
 
 
99)
 
 
산뜻한 월요일.
 
신바람이 절로 난다. 카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에이지가 기분을 한층 북돋아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니 어느새인가 회사에 도착해있다.
 
"여러분! 좋은아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좋은아침입니다."
 
"하하하. 오는길에 도넛이랑 커피좀 사왔습니다. 아침 안드셨죠들? 좀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잘먹겠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새로 산 서류가방을 내 책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의자를 한바퀴 뱅글 돌린다.
 
"사장님이 왜 저렇게 텐션이 높으시지. 저번주만해도 히스테릭했는데."
 
"로또라도 당첨됐나?"
 
직원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쿨하게 못들은척 넘겼다.
 
"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온다.
 
숙면이라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일 줄이야.
 
그동안 몸을 짓누르던 불쾌한 피로감이 싹 날아가니 몸도 날아갈 것만 같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 할 일을 검토하고 있는데 최부장이 슬쩍 다가왔다.
 
"어때요. 제가 말한 무당한테는 가봤습니까?"
 
"그러면요! 갔다왔죠! 엄청 잘해주셔서 엄청 개운하네요!"
 
"뭐? 개운하다고?"
 
"예. 날아갈 것 같네요. 왜요? 뭐 잘못됐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아닙니다."
 
최부장은 벌레씹은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나에게 왜 수남보살이라는 무당을 소개시켜줬는지 아직까지 찝찝한 점이 있었지만 심증밖에 없는지라 참고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사기를 친 그 수남보살이라는 무당을 찾아가서 다 때려부수고 멱살잡이라고 해보고 싶었지만 가인도령이 자기가 아는 무당이니 자기가 직접 확인을 해보겠다, 한번만 참아달라. 이런식으로 사정을 해서 좀 더 두고보기로 했다.
 
그리고,
 
-보통 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사실 살에 맞는 사람이 은근히 많거든요. 그런분들을 만나면서 원한관계가 있냐고 여쭤보면 십중팔구 다 착하게 살아왔다고 그러십니다. 뭐 사실 몰라도 상관 없긴 해요. 이런걸로 고소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가인도령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오히려 내가 그에,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뭔가 잘못한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자고 생각했다.
 
얻은 교훈치고는 500만원은 비싼 느낌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끝-
 
 
 
 
 
 
항상 제 모자란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덧글과 추천을 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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