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온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고 해경의 구조 실패에 분노하고 있던 지난 5월18일, 경찰이 자살한 삼성전자서비스노조 간부의 시신을 탈취해서 화장을 해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처형자들의 시신을 빼돌려 화장을 한 일, 1991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의 시신을 탈취, 화장한 일은 지난 시절 공권력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의 한 방편으로 그리한 경우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사건의 사망자는 삼성의 노조탄압에 항의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고 유서에도 시신 수습 및 장례를 노조에 맡겼다. 그런데 경찰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의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수백명의 병력을 동원했고, 멋대로 화장을 하고 장사를 치렀다. 경찰은 왜 그랬을까?
과거 필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민주정부라고 하지만 실제 한국은 대기업이 공권력을 사실상 지배하는 기업국가가 되어 민주화의 이상은 빛이 바랬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우리 국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기업국가가 도를 넘어 거의 마피아 국가의 양상까지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한국 경제학자인 오인규와 터키 정치학자인 와르친(Varcin)은 공저 논문에서 터키와 한국을 재벌의 불안을 국가가 보호해주면서 그 대가를 챙기는 마피아 국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흔히 마피아 국가라고 하면 이탈리아·러시아·헝가리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거대 범죄조직이 지하경제를 움직이면서 경찰, 검찰, 법원, 대통령을 자신의 이익 보호를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나라를 말한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신흥 졸부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사설 용병이 창궐하고, 권력은 이들 신흥 재벌, 마피아와 합작하여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거나 감옥에 가두고 정치자금을 챙긴다. 한국은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여당은 재벌을 위한 입법에 앞장서고,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범죄를 눈감아주며, 세무당국은 탈세를 묵인해온 점은 마피아적 요소가 아니고 무엇일까?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서 소기업은 처음에는 동네 경찰서, 공무원한테 뒷돈을 챙겨주지만 규모가 커지면 경, 검, 국세청 수뇌부, 언론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통령과 거래를 해야 한다. 기업국가가 마피아적 요소를 갖게 되면 국가기관이 대기업의 사설 보호자 기능을 하면서 기업 범죄를 눈감아주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 국민주권의 원칙이 웃음거리가 된다.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가담한 법률가들이 상식 이상의 엄청난 액수의 보상을 받을 때, 권력이 저항세력이나 약자에 대해 극히 잔혹한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국가와 범죄라는 모순이 공존하는 역설을 감지한다. 삼성의 이재용이 48억을 갖고서 1조원 정도의 자산으로 불린 다음, 삼성 재벌의 총수로 등극하려는 오늘의 이 과정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직 대법관들이나 검찰 총수들이 퇴임 후 몇개월 동안 받은 수십억원의 수임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으로 추천, 임명된 전직 관료, 법관들의 엄청난 보수는 누가 왜 준 것일까? 삼성 백혈병 사망 노동자와 자살 노동자 가족들의 피울음이 과연 이런 일들과 무관한 것일까?
우리는 왜 경찰이 개인 노동자의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전쟁하듯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사실상 삼성의 사병 역할을 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경찰이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건의 성격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절규한 세월호 유족들과 여러 대학교수들의 성명은 세월호 참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구조에서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이 정권이 사설 인양업체한테 ‘구조’를 떠넘기고 스스로 직무를 포기한 일은 삼성 노동자의 시신을 작전하듯이 탈취한 경찰의 행동과 사실상 같은 일이다. 이게 ‘우리’나라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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