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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면 라면이 고프다고 하지만......이런 상황이라면?
게시물ID : bestofbest_818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이
추천 : 214
조회수 : 54221회
댓글수 : 3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09/12 12:55:10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11 00:17:04
http://yahoour.blog.me/80061186811



라면에 질린 이유 
본격 자학 만담 겸 생활일기 블로그답게 오늘도 생활 이야기 시작합니다. 

군대 다녀온 놈이 뭔 얘기를 하면 죄다 군대 얘기인 것은 그 놈이 여성배척적인 심리구조를 가졌다거나, 혹은 병영국가에 충실히 세뇌되어서 그런게 아니라 아는 게 군대얘기밖에 없어서인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orz 저같은 복돌이는 일단 사회 경험도 없고 대개는 군대 이후에는 조직에 속해있지도 않은 경우가 많으니 군대가 최신 사회 경험인 셈이니까.... 직장인은 그럼 왜 군대 얘기하는 거냐고 한다면 제게 훌륭한 가설이 있지만 여백이.......(후략) 

제가 복무한 부대는 그냥 평범한 사우디 후방의, 업무랄게 없는 땡보부대였는데, 저는 거기서 헌병대에 있었죠. 얘들은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근무하고 나머지는 쳐자는 것이 일과인 중대라서, 다른 애들과 생활 스케줄이 전혀 다릅니다. 대개는 새벽 1~4시에 근무하면 돌아와 자고선 다시 그날 저녁때 게이트에 나가 서있고, 그러면 다시 다음날 오전 7시에 나가서 정오까지 문 앞에 서 있다가 오는 뭐 그런 일상. 하루 종일 자는 건 아니고 어쨌든 자는 시간과 기상시간이 남들과 많이 다른데, 이게 치명적인 건 다른 게 아니라 밥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뭐 오전근무자 이러면 아침 먹고 나갔다 돌아와 점심을 먹고 이러면 되지만 예를들어 새벽 1~4시 근무자인 애는 새벽 1시에 깨어야 하니 나가면서 뭘 먹지도 못하고 돌아와서는 정오까지 자게 되어있어 또 뭘 먹지도 못하고. 이런 저희들을 위해 "특수근무자 증식"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특수근무를 하는 애들을 위해서 추가로 식사거리를 주는 건데, 이건 항상 분식으로 보급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밀가루 음식, 다시 말하면 라면. 저희는 매번 근무시간이 그렇게 남들과 다르니 다른 병사들 생활 여건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헌병대만 따로 내무실 건물을 쓰는데, 이 안에 간이 부엌이 있지요. 라면 끓여먹으라고. 

문제는 보급량인데... 제가 있던 헌병대는 병사가 43명이고 매일 이 중에서 14명이 야간근무를 섭니다. 이건 휴일이 없지요. 따라서 매월 420명이 야간 근무를 서는 셈이고, 보급품은 분기 단위로 나오니까 약 1300개 정도의 보급 라면이 나와야 다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됩니다. 제가 듣기로 공군본부에서는 애초에 진라면 정도에 예산액을 맞춰서 그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예산을 각 부대로 보내준다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라면 종류를 정해서, 그 예산을 라면 박스로 BX에서 사서 받아옵니다. 뭐 신라면을 산다면 좀 더 적게 받을테고, 스낵면을 사겠다면 조금 더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근데 여기에 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중간에 누군가가 삥땅을 친다는 거지요. 이를테면 부대 내에서 이 증식 예산을 할당해 주는 건 군수과인데 군수과가 매번 420명분이 아니라 280인분 정도를 보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돌려썼지요. 도대체 명목을 알 수 없는데, 서류를 보면 어디까지나 저희에게 준 걸로 되어있고. 봉지당 5백원 가정하면 대략 매달 한 8만원(저희만 타먹는게 아니라서)씩 1년에 한 100만원 삥땅쳐서 그걸로 통신특기들이 통신의 날 기념할 때 쓰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부대가 통신부대라서 부대장도 통신특기고 해서 다른 특기들이 조금 홀대받긴 했지요. -_-;; 아무튼 그래서 이런 경험이 몇년 씩 축적되고 나니까 라면 소비에 대해서 내핍과 검약의 정신을 함양하게 되었고 먹는 것도 자제하고 필수적으로 먹을 애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새벽 1-4  / 4-8시 근무자 애들만 먹이고 뭐 그렇게 지냈죠.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삥땅쳐지는 거 감당하면서 매번 분기 말에는 라면이 모자라서 애들 밥도 안먹고 근무나가는(......) 생활이 반복되었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부대장이 바뀌었는데 이 사람은 굉장히 꼼꼼하고 모든 데이터를 다 자기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이 사람이 통신의 날 축제 결재 문서를 다시 뒤지면서 이 축제 예산액보다 축제에 투입된 돈이 많은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헌병 라면값 빼돌리기를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사람은 "후방 특기의 밥을 빼앗아 통신 특기에게 술을 사주는" 관습이 말도 안된다고 지적하고서 이걸 다시 헌병에게 돌려주라고 지시했어서...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평소 그대로 스낵면이나 삼양라면같은 싼 라면을 구입했고, 그 분기에는 그래서 라면이 1.800개가 하달되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때 당시에는 축제 분위기였는데, 문제는 먹고 먹고 먹어도 이게 줄지를 않았다는 것. 항상 결재하던 13명으로 결재를 올려도 분기 말에는 약 500개의 라면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먹지 못하게 되어있는 사람이 먹으면 처벌을 받고 남겨도 처벌을 받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서류상으로만 추가 근무를 만들어서" 그 인원이 라면을 먹는 식으로 해서 간신히 이걸 다 처분했습니다. 휴가자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대원 절반이 매일 라면을 하나씩 먹어야 했던 셈인데, 해보면 알지만 이거 조난 고통스럽습니다. 다들 배가 나오고 개기름이 흐르고. 행정병은 당연히 죄도 없이 갈굼을 당하고. 

다음 분기가 다가왔는데, 슬슬 다들 "과도한 라면"이 지치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라면 보급량을 적정량 (하루 13봉)만 받아올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라면을 사면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단순한 것이, 우리는 이 일이 부대장의 개혁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만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군수과장의 일시적인 변덕 때문에 한번 많이 준 것 뿐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다시 싼 라면을 사야 그나마 수요를 충당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변덕이 이번 분기까지 지속된다면? 별로 즐겁지는 못할 상황;; 군수과에 물어보면 된다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지요. 이유를 모른다면 직장을 다녀보세요. 조직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 법. (.....) 간부들과 토론을 해보고 결국 우리는 그냥 싸구려 라면을 다시 사기로 했고, 이번에도 역시 1800개의 라면이 우리 손에 쥐어졌습니다. 당연히 고참들은 행정병들을 갈궈댔고, 죄없는 행정병들은 군수과의 변덕을 욕하기 시작했고 ㄳ. 분기 내내 모두가 라면을 먹어대는 생활을 했어야 했고, 사실 이와 별도로 지급되는 쌀국수와 컵라면과 건빵을 포함하면 거의 모두가 3일에 2일을 라면을 먹었어야 했던 것인데 매일 사병식당에서 식사후 사인을 해야하는 우리 부대 특성을 고려한다면 헌병 전원이 6개월 동안 6kg가 찐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지요. 

세번째 분기가 다가왔고, 이 분기는 심지어 4,5,6월. 날이 풀리면 원래 라면을 덜 먹으니까, 지난 두달의 경험에 근거해서 우리는 대폭 비싼 라면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선정된 것이 무파마. 무파마는 비싸니까 적게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순수한 착각이었음이 밝혀졌지요(........) 무파마가 2,200봉이 지급된 것. 이때쯤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부대장이 그동안 착-_-복한 헌병대 라면값을 다른 곳 예산을 깎아서 순차적으로 돌려주라고 지시했다는 것 orz 우리는 비싼 걸 사면 적게 나오겠지 했는데 비싼 걸 사니까 더 많이 나온 셈이지요 orz 이 시점에서 이미 서류 결재받아 라면 끓여먹는 질서는 붕괴되었는데, 당연합니다. 남았을 때 지는 책임이 더 크니까. 이쪽은 중대장이 책임을 져야하고 서류결재 안 받는 건 선임병이 책임지는 거니까. 간부들이 라면 박스를 집에 가져갔는데 병사들이 환호하는(........) 이상한 체계가 갖춰졌고, 뭐 타 중대랑 축구라도 하면 우리가 상대편 데려다가 라면 한 30개 끓여서 먹이고서 서로 흐뭇해하는(.......) 희한한 상태로 좀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한 분기가 지났고, 라면 500개가 남았지요. 제대가 가까워진 병사들이 대거 라면을 먹지 않는(.......) 사태가 일조했긴 하지만 뭐 애초에 너무 많았던 것. 

다음분기에 선택한 방법은 짜파게티, 스파게티 같은 맛있는 라면들을 시켜보자는 것. 국물도 없으니 양도 적을 것이고 맛있으니 좋을 것이다! 라는건데 님들 짜파게티 한달 동안 한 사람당 20개씩 먹어봤나요 orz 휴가자가 항상 6~8명이 있고 과소인원 상태여서 사실 부대에 있는 병력은 30명 뿐이었는데 라면 보급은 월 720개씩 총 2200개 정도가 나오고 이건 뭐 답이 없었다능. 전달 이월분 라면 500개를 합치면 이제 2700봉지인데, 당연히 초악성재고로 짜파게티만 1500개 정도가 나중에는 남아서...... 중대장이 직접 지원중대에 전화해서 우리 애들은 밥 안먹는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 3일간 라면만 먹으니까 슬슬 애들이 피부가 누래져서 다시 밥을 먹이고 뭐 이런 악순환. (........) 

그리고! 다음 분기인 연말에 우리는 특단의 조치로! 아예 초 비싼 생생우동을 시키기로 했고! 그 타이밍에 부대장은 또 특단의 조치로! 통신의 날을 그 해에 치르지 않고 그거 예산 5백만원을 죄다 증식에 붓기로 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생생우동 2600봉지를 얻게 되었고! 생생우동 유통기간은 3개월도 안됐고! 우리는 조또 극한에 몰렸고! 나는 그래서 서둘러 제대했고! (.........) 뒷 이야기는 모른다능. -_-;;; 짜파게티는 한 300개 정도는 땅을 파고 묻어버렸는데 난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대장은 자기 임기인 1년 내로 그 동안의 악폐습을 철폐하고 그거 보상하려고 한 거 같은데 우리는 되려 그런 전대장을 욕했고 참 이게 희한한 상황. 개혁자, 게다가 우리에게 돈과 재화를 베풀어준 개혁을 한 사람을 되려 수혜자들이 욕하는 희한하지만 일상적인 경험도 해보고 제대했다. 뭐 나도 제대하는 날 생생우동 한 박스(20개입)를 들고 제대하긴 했는데 -_-;; 그 전 제대자들은 무파마나 짜파게티 박스를 들고 제대하고. 그러고 환송받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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