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에 당했던 IT강국 코리아, 이번엔 아이패드로 망신
쿠키뉴스 기사전송 2010-04-27 18:45
IT강국에서 ‘모바일 후진국’으로 전락한 코리아가 이번엔 ‘아이패드’로 체면을 구겼다. 정부는 애플의 태블릿PC(휴대용 터치스크린 PC) 아이패드 국내 반입을 금지시켰다가 27일 급히 뒤집었다. IT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우리 정부는 낡은 규제를 내세우며 발목을 잡거나 오락가락하고 있다.
◇제품 승인,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국내에서 휴대전화나 무선모뎀이 내장된 노트북 등 정보통신기기를 쓰려면 전기통신법과 전파법 등에 따라 반드시 전자파 적합성 인증을 거쳐야 한다. 전자기기 종류가 급격히 늘면서 기기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전자파도 늘고 있는 상황. 불필요한 전자파는 다른 기기나 통신에 장애를 일으켜 인명이나 재산 피해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 인증이 필요하다.
PC로 분류되는 아이패드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패드가 국내에 유통되려면 전자파 인증과 형식등록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아이패드 제조사인 애플은 국내에 인증 신청조차 하지 않은 상태라서 인증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선 연구·전시용 외에 아이패드 판매는 불법이다. 최대 2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27일 오전만 해도 “우리가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려 해도 미국 규정을 따라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인증 신청도 하지 않을 물건이 유통되도록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뒤죽박죽 오락가락 규제=국내엔 이미 아이패드 사용자가 있다. 얼리어답터로 유명한 두산 박용만 회장은 미국 출장 중 아이패드를 구입, 자신의 트위터에 아이패드 개봉 동영상을 올렸고 “노트북을 버리고 아이패드만 가지고 다니겠다”고 썼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아이패드 구입 사실을 트위터에 알렸고 가수 구준엽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이패드를 분해한 과정을 공개했다. 방통위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규정 적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방통위는 지난 16일 이후 연구·전시용이 아닌 아이패드 반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유 장관은 26일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하면서 아이패드를 이용했다. 시험이나 연구, 전시용은 인증이 면제되기에 유 장관의 아이패드 사용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쇼핑몰 등이 아이패드 판매를 중단했고 인터넷 등으로 미리 주문한 아이패드 물량은 세관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유 장관의 아이패드 사용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장관, 재벌은 아이패드 쓰고, 일반 국민은 못 쓰냐” “정부가 통관 금지한 제품을 장관이 쓰는 것 자체가 이 정부의 문제”라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방통위는 27일 오후 아이패드 반입 규제를 풀었다. 방통위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다음달부터 일반인이 사용을 위해 아이패드를 들여올 경우 전파인증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위피 실패 반복될까 걱정=업계에선 아이패드를 둘러싼 해프닝과 구글 유튜브의 실명제 논란, 게임 규제 등 첨단 IT기술과 정부 규제가 충돌하는 상황을 보면서 위피(WiPi·한국형 모바일 플랫폼 표준규격) 실패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위피 탑재를 의무화했지만 결국 외산폰 진입을 막아 빠르게 진화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술과 스마트폰 시대에서 한 발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방통위는 또 구글의 유튜브에 대해 실명제 논란이 일자 실명제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가 지난해 초 유튜브 한국판을 실명제 대상 사이트로 지정하자 구글 측은 게시판 기능을 아예 삭제했다. 그러나 아이폰에서 유튜브 한국 계정으로 동영상 올리기가 가능해 논란이 불거지자 이번엔 유튜브를 해외사이트로 분류해 실명제 적용에서 제외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위피 때는 국내 기술을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아이패드는 그마저도 없는 졸속 조치”라며 “정부의 IT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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