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다는데 왜 그래요, 대체?" "그러니까 잠깐 시간 좀 내 달라니까" "시간 없어요, 그만 좀 해요 이제!"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선배 좋아하지 않는다고 제가 말했죠? 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어쨌든 넌 내게 운명지워졌어. 넌 나를 사랑하게 될거야. 그리고 내가 널...지켜줄꺼야"
정말 지겨웠습니다. 하두 외로워 보이기에 조금 잘해준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너무나 귀찮게 굴어 짜증이 나고 있었습니다.
"수업 끝났니? 오늘 날씨 좋은데 어디 바람이나 쐬러갈까?" "선배 혼자 쐬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전 오늘 바빠요" "그러지말고 좀 같이 가자. 우리사이에 내숭떨 필요는 없잖아" "선배!!!" "나 귀 안먹었어" "제발...제발 이제 그만 해요! 난 선배가 싫어요. 알겠어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말 지겨웠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뻔뻔해져서 동기들이 있는 앞에서까지 노골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젠 아예 그 선배가 밉기까지 했습니다.
"왜 기분 안좋은일 있니?" "정말 미치겠어. 오늘도 얼마나 열받게 하던지...자기야. 자기가 혼좀 내줘" "내가? 난 안돼" "왜?" "그 사람 싸이코 기질이 있잖아. 무서워" "어휴...정말 난 어떡해..."
남자친구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소용없었습니다.
아니 그 누구에게 말을 해도 다들 그 선배를 무섭다고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앗습니다.
그날은 회식이 있었습니다. 다같이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 선배는 단체생활은 질색이었기 때문에 회식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선배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기숙사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 무서워서 막 뛰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제 팔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워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또다른 누군가가 제 입을 막아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샘 솟듯 쏘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절 강제로 인근의 산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선배는 나를 나꿔채더니 얼른 달아나라고 하였습니다. 날 납치하려 했던 남자들은 칼과 몽둥이를 들더니 욕을 하며 선배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전 무서워서 기숙사로 마구 뛰었습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경비원 아저씨에게 울면서 그 일을 말했습니다.
아저씨와 그곳에 도착하니 그 선배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온통 피투성이 였습니다.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내가 막 울자 그 선배가 눈을 뜨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피터지는...영화보러 가자..."
전 그만 울다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는 이상하게도 전과는 달랐습니다. 절 구해줘서인지는 모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배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사랑의 감정은 아니엇습니다...
한번의 데이트가 끝나고 그 선배는 더 이상 제게 시간을 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편하고 자유스럽기는 했지만 어딘가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봅니다...
남자친구와 성격차이로 헤어지고 난 후에 그 선배에 대한 생각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행여나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 앞을 지나가도 그저 잘 지냈니 라는 말 한마디 하고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서운하다 못해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그 선배에 대한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일기장은 온통 그 선배에 대한 내용이었고 남자를 만나도 그 선배와 비교하게 되고 술을 마시면 술잔에 그 선배가 아른거리고 지금 흐르고 잇는 지서련의 울고싶어지는 오후를 부르면 괜시리 눈물까지 나게 되었습니다. 제 곁에 있을때는 그렇게도 싫더니만 막상 멀어지니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배에게 제가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고 있는데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니 문 틈새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복도로 나오니 온통 연기가 뒤덮고 있었고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는데 불길이 치솟아 내려 갈 수가 없었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아이들이 다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옥상문이 잠겨 더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죽음이라는 생각이 더욱더 우리를 공포에 젖게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기가 짙어져서 바로 앞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며 구토가 나오려 하였습니다.
그때 눈군가 절 들어올렸습니다.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지 알수 있었습니다. 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내가 왔으니 무서워 하지마..."
그 사람은 다름아닌 그 선배였습니다. 전 안심이 되었습니다. 날 안고 있는 그 선배의 목을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자...이제 내려 갈거야...뜨거울지 모르니까 담요로 덮자"
제 몸에 폭신폭신한 것이 덮여졌습니다. 꼭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길이그렇게 거셌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전담요를 살며시 들추고 날 안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전 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의 얼굴은 불에 그을려 빨개져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다 타서 몇가닥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선배..." "어서 담요 뒤집어써. 이제 내려 갈거야" "선배 얼굴..." "어서!"
그 선배가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전 화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 남아있는 기력을 짜내 담요를 걷어내며 날 안고있던 그 선배를 떼어냈습니다.
"왜 그래? 빨리 내려가야 한단 말야" "흐흑...선배 얼굴이..."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죽는단 말야. 어서 담요 덮어" "선배는 어떻하구요?" "나? 나는 불사신이야. 난 괜찮아. 빨리 덮어" "싫어요...나 때문에...나 때문에..."
전 결국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네 눈물로는 이 불을 끄지 못해"
눈을 들어 선배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내 사랑은 이 불을 끌수 있어"
선배의 눈은 투지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전 선배를 끌어안았습니다.
"너...나 사랑하니?"
선배도 참 이런 순간에...
"네...사랑해요...정말로..."
부끄러워 선배의 가슴에 얼굴을 깊이 묻었습니다.
"내가 한말 기억하니? 넌 내게 운명지워졌다고 한거... 그리고 날 사랑하게 될거라고 한거... 내가 널 지켜줄거라고 한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까짓 불은 날 막지못해. 나 죽지 않아. 걱정하지마"
선배가 제 얼굴을 손으로 감싸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일 어디갈까?"
"선배가 가자는 곳은 다 갈께요" "그래...자! 이제 간다"
몸이 흔들렸습니다. 가다가 멈추기도 했고 빨리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어디쯤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전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그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땅으로 놓여진 것 같아 담요를 걷었습니다.
컴컴한 하늘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몸을 살펴보니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