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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달마도
게시물ID : panic_688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왕양명
추천 : 34
조회수 : 4381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4/06/12 14:02:41
내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자친구를 가족들에게 소개시켜줄 때 할머니는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아주 고집적으로 반대를 하셨다.

할머니가 우리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다름이 아닌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전부터 할머니는 그런 궁합이나 사주 등의 미신에 심취해 계셨고 조금이라도 용하다고 소문나면 점쟁이고 부적이고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셨다.

그런 할머니이신지라 궁합상 나와 여자친구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쟁이의 말을 철썩같이 믿어버린 우리 할머니는 정말로 극심하게 반대하셨다.

그러나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듯 결국 우리는 식을 올렸고 할머니는 그 일이 그렇게 충격이 되셨는지 앓아 눕고 마셨다.

할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내 인생을 함께 걸어갈 반려자로써 아내를 선택했고 할머니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가족분들은 우리 사이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한 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준 것을 걷어찰 수는 없었고 별개로 나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나는 할머니께 죄송해서라도 결혼 후 할머니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가정을 꾸렸다.

아내를 상전모시듯 챙기며 부모님과 조부모님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전혀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고 시름시름 앓다가 내가 결혼식을 올린지 1년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에 나는 상당히 힘겨웠다.

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몇번이고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으나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밝게 웃고만 계셨다.

할머니의 장례식 절차가 끝나고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할머니가 나에게 남기신 유품이라는 달마도를 한 점 받게 되었다.

"이거 가져가거라"

"할아버지...이게 뭔가요?"

"느그 할매가 너 장가보낼때 뭣하나 해준게 없다고 이거 전해달라고하더라"

"......."

나는 할머니의 유품이라는 달마도를 받고 할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했다.

"그거 할매가 참말로 아끼던 달마도다...너한테 반대해서 미안했다고 꼭 잘살라고 하면서 눈 감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반대를 하셨으면서도 결국에는 나의 행복을 바라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며 달마도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으나 참았다. 앞으로 잘사는 것이 하늘에 가신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달마도는 집의 거실에 걸리게 되었다.

달마도의 부리부리한 눈매를 보니 앞으로 집의 액운을 모두 몰아내 줄 것만 같은 듬직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잘부탁합니다 달마스님"

달마도 때문인지 시기상 운이 좋았던지 할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나는 점점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서 승진에 성공했으며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입지를 다져나갔고 아내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정말로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이 모든게 할머니와 달마도의 축복처럼 느껴져서 나는 더욱 더 정성스럽게 달마도를 관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었다.

그날은 아내가 친정에 잠깐 내려가게 되었고 나는 회사의 일로 야근을 하느라 조금 늦은 새벽에 귀가했다.

집에 혼자있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 나는 살짝 외로움을 느끼며 맥주를 한캔을 꺼내들고 거실로 가 TV를 켰다.

그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광경을 보게되었다.

달마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면서 집안 곳곳을 훑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굴리던 달마도는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눈물을 흘렸다.

달마도가 그려진 종이가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내가 달마도의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자 달마는 다시 눈을 굴려 베란다로 시선을 던졌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도 베란다를 향해 이동했다.

어두움에 덮힌 창문쪽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온몸을 긴장시킨채 베란다로 몸을 옮겼다. 

베란다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다만 창문이 열린 채로 블라인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내가 별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배란다의 창문 밑에 매달린 채 나는 노려보는 어떤 검은 형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 형체는 잠시 나를 째려보며 눈을 빛내더니 곧 밑으로 뛰어내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순간 얼이 빠진 나는 당황한채 한참을 도망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띠리리링

내가 넋놓고 있는 동안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친정에 가 있을 아내였다.

"어, 여보?"

"당신 괜찮아?! 방금 꿈에 할머니께서 위험하다고...걱정이 되서"

"어,어 아무일도 없었어"

나는 얼버무리듯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후 거실로 와 다시 달마도를 관찰했다.

달마도는 무슨일이 있었냐는듯이 평소와 같이 부리부리한 눈을 한 채 현관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험악한 인상의 달마도이지만 나는 왠지 달마도가 웃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달마도에서 따듯한 온기가 나를 감싸는 것 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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