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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의 눈물
게시물ID : sisa_5300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시선
추천 : 1
조회수 : 19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12 16:51:56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


"우린 순덕이 언니 따라가면 그만이야.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을 때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면…"

 

목소리가 떨렸다. 더 질문을 드렸다가는 지난 설움을 왈칵 토해낼 것만 같았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나는 2, 3번 정도 그곳을 찾았다.

2004년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처음 나눔의 집에 갔다.

또다시 어김없이 찾아온 광복절을 맞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AP3B25.JPG   ”빼앗긴 순정”

 

강일출 할머니(81)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지 64년 만인 2007년 처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너무나 달라진 고향이 오히려 낯설었을 강 할머니.

 

 AP6E5D.JPG  강일출 할머니

 

그는 16살 꽃 같은 나이에 일본군의 트럭에 실렸다.

그의 순정도, 그의 청춘도, 그의 인생도 그날 트럭에 실렸다.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던 강 할머니는 광복 후에도 돌아올 수 없었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곳, 중국에 정착했다.

2000년 3월에야 조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버린 조국으로…

강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이 다쳤다고 해도 마음이 아픈데,

나라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프다고 해도 상관없는 모양이야.

이렇게 푸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2004년 7월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로 삼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2005년 1월 다시 나눔의 집을 찾았다.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AP6BFC.JPG  나눔의 집 입구에는 ”못다핀 꽃”이란 제목의 동상이 있다.

 

 

광복 60년이라고 밖은 떠들썩했지만 나눔의 집은 여느 겨울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뿐이었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 무관심한 정부를 질타하며 국적 포기 선언을 했다.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면서 ”나도 얼마남지 않았구나..”하는 마음에

국적 포기보다 더한 것도 했을 것이다.

 

나눔의 집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못다핀 꽃”이란 제목의 청동 소녀상.

그 옆에는 ”못다 핀 꽃의 주인, 연꽃되어 잠드시다”란 문구가 적힌

고 김순덕 할머니의 묘비가 있다.

김 할머니는 2004년 6월 30일 숨을 거뒀다.

 

AP7FF5.JPG

 

12년간 일본대사관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던 김 할머니.

그는 급성 뇌출혈로 유언 한마디 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30여년 전 심장마비로 숨진 남편에게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끝내 말하지

못했다.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아들은 울먹였다.

"어머니 정말 장하세요. 그렇게 험한 과거를 갖고도 참 열심히 사셨어요."

 

AP525E.JP; 김 할머니가 그린 ''끌려가는 날'' <p style=   김 할머니가 그린 ”끌려가는 날”

 

 

나눔의 집에는 역사관이 있다.

역사관에는 모형 위안소를 만들어 누구든 당시의 참혹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1평 남짓한 공간. 그곳에서 수년간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억척스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유품도 전시돼 있다.

1990년 위안부의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고 배봉기 할머니의 유품도 한켠에 있었다.

배탈약통 1개, 수저, 컵 2개, 사기그릇 4개가 그가 세상에 남긴 전부였다.

 

AP4B48.JPG 위안부 숙소 사진

 

갑자기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떠오른 것은 최근 한 기사 때문이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유공자단체가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들어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허가를 취소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단다.

이 박물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광복회는 이 박물관의 건립을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항일저항과 민족혼의 성지인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그것도 순국선열의 혼을 위로하는 위렵탑 앞에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AP04D4.JPG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조감도

 

다시 말해 적극적 항일투쟁을 한 분들을 위한 서대문독립공원과

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박물관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복회 등 독립유공자단체의 주장이 전혀 생뚱맞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들의 역사 인식이다.

역사는 단절돼 있지 않다. 톱니바퀴처럼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쉼없이 굴러간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항일투쟁은 끝났다. 63년 전 우린 국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싸우고 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 곁에서 싸우고 있다.

 

AP0755.JPG

 

더욱이 안창호 선생이, 윤봉길 의사가, 유관순 열사가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는가.

위안부 할머니처럼 힘 없는 조국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던 이 땅의 민초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과연 그분들이 자신의 혼령을 지켜주는 위령탑 앞에 피해자를 위한 박물관이 들어섰다고

진노할까.

오히려 흐뭇하게 미소지을 것이다.

아니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AP496F.JPG

수요집회에 참석한 일본 학생들이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짓고 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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