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28·넥센 히어로즈)가 3년 연속 30홈런 고지를 밟았다. 이승엽(1997∼2003년), 타이론 우즈(1998∼2001), 마해영(2001∼2003)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나온 3년 연속 30홈런 기록이란다. 팀 동료 강정호(26개)가 엄청난 기세로 따라오고 있지만 현 추세대로면 데뷔 처음으로 40홈런을 넘기고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할 가능성이 짙다. 카스 포인트에서도 지금은 강정호(2698점), 최형우(2544점·삼성)에 이은 종합 3위(2537점)에 머물고 있으나 홈런 페이스를 올리면 3년 연속 1위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박병호를 보면 가끔씩 궁금해진다. 야구팬이라면 한번쯤 곱씹었을 생각, 바로 '박병호가 만약 엘지(LG)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다. 박병호는 엘지 안에서도 점차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려서 홈런왕에 오를 수 있었을까. 가뜩이나 홈구장이 잠실구장인데?
의심의 여지는 있다. 목동구장은 분명 구장 크기면에서 잠실구장보다 타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박병호는 올 시즌 30개 홈런 중 21개(44경기)를 목동구장에서 터뜨렸다. 반면 잠실구장에서는 홈런이 2개(8경기)밖에 없었다. 목동구장에서의 장타율은 0.789지만, 잠실구장에서의 장타율은 0.483로 뚝 떨어진다. 37홈런을 때려낸 2013시즌에는 잠실구장 성적이 더 안 좋았다. 16경기에서 단 1개의 홈런밖에 못 때려냈다. 2루타도 1개뿐이었다. 반면 목동구장에서의 홈런 수는 22개(64경기)였다.
그러나 히어로즈로 옮겨 첫 풀타임을 소화한 2012시즌(31홈런)에는 달랐다. 잠실구장 6개(20경기·3.33경기당 1개), 목동구장 12개(67경기·5.58경기당 1개)로 오히려 잠실구장에서 홈런 빈도수가 더 높았다. 잠실구장이 홈이었다고 하더라도 풀타임으로 뛰었다면 많은 홈런을 때려냈을 것이라는 숫자적인 도출이 가능하다. 2012시즌 때 박병호의 잠실구장 장타율(0.658)은 목동구장(0.513)보다 훨씬 높았다.
애초 '엘지에 있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의 핵심은 '구장'이 아닌 '구단'이었다. 과연 엘지에서도 히어로즈에 준하는(홈런왕이 아니더라도) 성적이 났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궁금증을 대한 답은 히어로즈의 한 코치가 줬다.
"박병호는 상당히 성격이 예민한 편이다. 엘지에 있을 때 타격 내용이 좋았을 때와 나빴을 때의 팬들의 반응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었다고 한다. 쌍둥이마당 같은 팬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 하나, 하나에 상처를 많이 받고 그랬던 것 같다. 팬들이 많은 구단 특성이 그렇지 않은가. 타석 하나에 온 신경을 다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히어로즈)로 오니까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실력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나 할까. 여기에 온 뒤 박병호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은 참 편해보였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병호가 히어로즈로 팀을 옮기고 풀타임의 기회를 잡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은 분명한 듯하다. 풀타임으로 뛴다는 것은, '내일이 있는 야구'가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있는 야구'는 작금의 이재원(SK)의 모습에서, 모창민(NC)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재원이나 모창민은 "풀타임 선수가 된 뒤 '오늘 못 쳐도 내일 치면 된다'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풀타임 선수가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믿음'이라는 토양이 있을 테고.
'만약'은 다분히 결과론적인 얘기다. 현재의 박병호를 보면서 아쉬움을 곱씹을 팬들도 많겠으나 현재의 자리에 있기에 '홈런왕 박병호'라는 현재의 모습도 있는 것일 게다. 다만 자신과 궁합이 맞는 팀을 찾았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궁합'은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