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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7 “aiidyn”님의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정작 해답은 없습니다
게시물ID : phil_91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oucault
추천 : 3
조회수 : 38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6/14 17:16:00
답변 이전 질문의 정리(알아보기 쉽게 숫자만 붙였음)
 

1. 법이 명백히 마땅한 죄인를 처벌하지 않거나 나아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자신이 용서 하지 않은 죄인을 법이 용서는 물론이고 죄가 없는 것으로 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드라마 '추적자'에서 처럼 법이 죄를 저지는 권력자를 비호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 그런 상태에서 피해자가 자체적으로 범인에게 죄에 상응한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해를 입히는 것은 정당화 될수 있을까?
5.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것을 '복수'라고 해야 하나?, '응징'이라고 해야하나?,'처벌'이라고 해야 하나?
6. 선량한 사람들이 비판해야 하는 대상은 그렇게 한 사람인가?, 법재인가?
7. 만약 절대자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은 범죄자여야 하나?, 피해자여야 하나?
8. 정당한 절차에 의한 그러나 명백한 악법이나, 또는 제대로 된 법일지라도 명백히 잘못 집행된 법으로 자신의 기본권이 위협받거나 치명적인 피해를 있었다면, 그래도 그 법이나 법집행은 존중해 주어야 할 가치나 정당성이 있는가?
 

제가 가입하고 처음 남기는 글이 이 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오유 가입도 안하고 눈팅만 하다가 지식인에 올라온 글에 답변을 달려고 가입했는데 본인확인 이메일이 약간 늦게 와서 답변을 달지 못했죠. 급했던, 그래서 늦으면 큰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던 것 같아 정작 가입은 했는데 답글은 안 썼습니다.) 리플로 남길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져 이렇게 남깁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질문을 잘해도 해답이 나오기 힘드나 이 사례는 질문부터 잘 못 되었기 때문에 해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글쓴이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공감해서 문제를 풀어본다고 하면 1~3번까지의 질문에서 국가형사체계가 껍질만 남아있는 형해화 상태일 때(붕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 (특히 형사법)의 의미, 4~6번 질문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사적복수제도의 허용 여부와 그 의미, 7번 질문은 제가 이해하지 못함, 8번 질문 기본권 침해에 대한 법의 의미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적어도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질문에 따르면 1~3번에서는 법의 의미를 상실한 법은 무엇인가? 법이 존재하는 이유와 만들어지는 과정과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법의 의미를 검토한 다음 이 기준이 안지켜지는 법은 과연 민주주의 국가 내의 법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의문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4~6번은 1~3번과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과연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으로 고민하면 되고, 8번은 기본권이 침해당할 때 개인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저항권 또는 시민불복종에 관한 의문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글쓴이가 문제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틀리더라도 고민에 대한 잠정적인 가설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질문을 하였기 때문에 단단히 꼬여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임의로 번호를 붙인 이유도 글쓴이의 질문 자체가 질문에 대한 본인 나름대로의 가설이 나온 다음에 그 가설에 따라 다시 질문을 해야 하는 구조인데도 가설은 온데간데없고 질문만 내뱉어버린 꼴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적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구질구질한 질문보다는 짧게 정리를 하면 오히려 글쓴이의 의도를 잘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의 형사법체계가 형해화 된 상황 속에서 사적복수를 하는 국민을 처벌할 수 있을까? 또한 형사법 뿐만 아닌 법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서 오히려 법이 국민을 위협하여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 국민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글쓴이가 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약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정리해보니 글쓴이는 형사법의 의미를 응보, 즉 국가가 대신 보복해주는 관점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복수가 불법한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죠.
 

원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글을 적을려고 했는데 정작 적다보니 대답은 없거나 아주 약간만 언급하고 글쓴이의 내부 심리에 대한 분석만 주욱 적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계속 해봐야죠. 오히려 글쓴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합니다. 답변은 바로 명쾌한 해답이 절대로 안나오는 부분을 건드렸습니다.’라는 것이죠.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 그 장치의 작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죠. 오히려 그 장치를 독단적으로 사용해 소수의 이익을 추구하고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뭐 이런 것은 오유인이라면 다 알고 저보다도 많이 아시는 분들이 대다수인 것이 사실이니깐 정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장치는 많은데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보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 지 학자들도 많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안 나오죠.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자신에게 피해를 줄 권한을 적극적으로 부여해주는 모순적인 상황, 사실을 알려주면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해도 오히려 영화 메멘토의 결말처럼 비극만 초래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메멘토는 이런 비극의 영구기관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질문에 대한 법학적인 대답은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이 있다. !’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글쓴이의 질문도 잘 못 되어서 명백히 마땅한을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가?(한때 혼인빙자간음죄도 명백한 범죄였고, 일부 국가에서는 성폭행 피해자에게도 범죄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형법은 국가가 보복을 대신해주는 대행서비스기관에 불과한가? 도대체 어디까지를 기본권 침해로 볼 것인가?[국가를 보복을 대신해주는 기관으로 본다면 사형제도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불균형(피해자 인명 손실, 가해자 인명 유지)을 균형적으로(가해자를 죽임으로서) 유지해주는 제도일 수도 있습니다.(이렇게 설명하는 학계의 논의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국가와 가해자, 이 쌍방 당사자로만 보았을 때에는 생명권이란 기본권의 심각한 침해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글쓴이가 정당한 법이지 않느냐 정당한 절차이지 않느냐 라고 할 수 있지만 글쓴이는 정당화침해 순으로 논의했으나 이는 개별 사안에 대한 침해정당화 순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쌍방 당사자이라고 했습니다.] 등 정리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글쓴이는 질문을 한 것이지 않느냐라고 하겠지만 위에 적은 것을 다시 강조하면 질문 자체가 가설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인데 해결된 것도 하나도 없이 선입견을 가설로 대체해서 질문을 진행했으면서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이 질문을 읽은 제 개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면 이 질문을 통해 남는 것은 난 이런 것도 고민할 수 있다.’라는 글쓴이의 허세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은 자신 밖에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많죠. 그러나 자기만 알 수 있다.’라는 것은 자기만 위대하다.’라고 변질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타인의 생각을 모른다.’는 상황 그 자체는 타인은 아무 생각이 없다로 변해서 자기가 위대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어이없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글에 대해 답글을 남긴 것은(글쓴이가 질문한 해답은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위기상황에 대해 피상적이긴 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글쓴이가 쓴 다른 글도 대충 읽어봤는데 오류는 있지만 어떻게든 고민해보려고 하는 분이신 것 같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오히려 이 주제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하면 야한 옷과 성범죄의 상관관계를 통해 지배욕이란 결론을 끌어낸 지난번 글처럼 세부적이거나 구체적인 소재부터 질문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봅니다. ‘그건 나의 글, 일종의 가설 또는 해답이고 이건 질문이잖아?’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해답에 대한 글도 자신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해답추구 과정에서 진행된다고 보시면 글이나 질문이나 크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한 것이지 질문을 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셀 푸코도 벤담의 파놉티콘 속에서 규율사회를, 조르조 아감벤도 로마시대 호모 사케르라는 모순되어 보이는 말 속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로 나아간 것을 보면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큰 주제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또한 어차피 질문이라고 해서 위의 질문과 같이 가상적인 상황을 만들면(물론 가상 상황이 필요한 질문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현실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붕 뜬 가상 상황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는 나중에 본인도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적은 글처럼 지금 존재하는(글쓴이가 의문을 가진 이번 질문도 우리 곁에서 지금 현재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사례를 찾는다고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세부 상황을 통해 질문하면서 한 계단씩 질문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무엇을 하실 분인지 모르겠으나 그 고민에 흔들려 로그인도 안하고 글만 보는 사람이 로그인하고 첫 글을 남깁니다.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로 큰 인물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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