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불과 2개월여 만에 촛불 정국을 타고 대권 가도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그처럼 빠르게 ‘월반’한 케이스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내게 남아 있는 정치인생이 길다”는 말 속에서 과감한 도전을 꿈꾸는 자신감이 배어났지만, “인기가 ‘훅’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에서는 자만심도 느껴졌다. 이 시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생활을 하면서 산재로 장애를 입었고 두 번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거쳐 법대에 진학한 뒤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터 인권변호사가 됐고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인터뷰 내내 변방의 ‘아웃사이더’답게 거침없는 답변을 전투적으로 이어갔다. 그러나 이 시장은 대망을 품은 후보다운 주도면밀함도 보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돌파형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야권통합은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혁명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중도확장성을 강조했다. 그의 급부상이 불신받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안티테제에만 기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에 대한 현재의 지지가 굳건한 토대에 기반을 둔 것인지 지나가는 정치현상에 머무르고 말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이 시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저녁 경기 성남시청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정치인 이재명이 갖는 배타적 브랜드가 뭐냐. 다른 정치인과 무엇이 다른가.
“현장성, 변방성, 비주류, 아웃사이더 같은 게 오히려 강점이 된 게 아닌가 싶다. 현장에 매우 가깝고 실천적이고, 작지만 좀 전투적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난세의 영웅이란 말이네.
“그런 거지. 그 말을 내가 직접 할 순 없고. 하하하.”
―정치인으로서 최종적인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건가.
“대통령 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게 내 꿈이다. 그것 외에 나머지는 수단이다.”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대통령 되는 거라고 보면 되겠네.
“그렇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 때문에 불이익을 보는 내 형제자매, 이웃들, 이 사람들의 삶을 다 버리고 기득권자의 길을 가느냐, 다시 되돌아가느냐 갈등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다. 그래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가 됐고, 시장이 돼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국민이 나에게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거고.”
―지난 촛불 정국에 지지율이 굉장히 많이 올랐다.
“기존 정치와 다른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는 국민의 대리인인데도 사실은 국민을 지배했다. 그게 정치 불신, 정치 혐오의 원인이다.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해 국민을 배신한 거였다. 나는 달랐다. 국민을 주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려 노력했다.”
―최근 조사에서는 상승세가 한풀 꺾였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건가.
“조정되는 거다. 연애할 때도 막 좋아하다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되돌아보게 되지 않나. 냉정을 되찾는 시간이다.”
―지지율 급부상도 본질이 아닌 현상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대중을 속여서 지지를 획득하지 않았다. 나름 시민운동을 하고 시장으로 일하면서 알맹이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왔고 대중이 그걸 잘 알기 때문에 ‘훅’하고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말투와 내용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소통 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러나 내가 가진 소통의 장점이라면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장의 언어를 많이 쓴다는 거다. 나는 어렵고 모호한 정치적 언어를 쓰지 않는다. 정치적 언어의 본질은 기만이기 때문이다.”
―형수와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싸운 전화 녹음파일도 있던데, 대선 검증 국면에서 장애가 되지 않겠나.
“거친 인생을 살았던 상처, 상흔들이다. 가족 분란인데 정치적 문제로 확대된 것은 내 잘못이고 내 인격 부족이다. 형수와 폭언하고 싸운 건 형님의 패륜과 친인척 비리 시도를 막다 그런 것이다. 내가 비리를 봉쇄하니까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 압박을 가하려 했다. 병든 노모에게 죽인다고 협박하고 폭언했다. 급기야 말리던 여동생이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어머니는 입원했다. 형님을 극단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큰 사고를 쳤을 거다.”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공직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반기문은 외교만 하던 사람이고 안철수는 사업만 하던 사람이다. 문재인은 (대통령) 참모만 하던 사람이다. 한국의 축소판 같은 인구 100만 명의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시장으로 일하는 것 간단치 않다. 큰 배를 운영하는 데 작은 배의 선장을 쓰는 게 나을까 아니면 큰 배의 주방장을 쓰는 게 나을까.”
―대권 도전 준비는 좀 돼 있는 건가.
“국가 경영에 필요한 정책 공부를 시작한 게 1년 전이다. 도와주는 팀이 분야별로 있다. 정치·외교·안보·경제·토지·조세·노동 분야별로 한 30명 가까이 된다. 네트워크까지 합치면 더 많고. 내가 말하거나 발표하는 게 나 혼자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조직과 세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되면 당을 다 접수해서 쓰면 된다.”
―선거는 구도다. 이번 대권 구도를 전망한다면.
“다자구도를 최소화해야 한다. 야권통합은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주인을 위해. 정권교체는 국민의 여망이니까. 그나마 통합이 안 되면 연대, 대선 후보 단일화라도 하자는 거다.”
―민주당 대선 경선 룰은 어떻게 돼야한다고 보나.
“원래 당헌·당규에 있던 100% 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를 하면 된다.”
―그렇게 안 된다면 탈당할 수도 있나.
“그렇게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다.”
―자신의 리더십은 문재인의 리더십과 어떻게 다른가.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의 종류가 다르다. 지금은 매우 역동적이고 혁명적인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관리형 리더십보다 ‘돌파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문재인의 “탄핵 안 되면 혁명” 주장에 찬성하나.
“나 같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헌재에서 기각 안 되게 최선을 다하고, 기각되면 국회에서 퇴진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해야지.”
―반기문 대권 도전은 어떻게 보나. 연대나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나.
“반기문은 이 나라가 요구하는 리더십이 아니다. 실제로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오직 박근혜 편들고 정치권력을 불나방처럼 쫓아다녀 출세했다. 국가 지도자로서 비전을 갖고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고 말하거나 노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표의 확장성은 어떤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는 못하지만 중도 외연 확장성은 내가 당내 누구보다 크다. 여론조사를 분석해 보면 다 드러난다. 진짜 보수가 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법과 질서를 지키자, 민주공화국을 지키자, 재벌이든 대통령이든 죄를 지으면 처벌받는 것을 보여주자, 이렇게 주장하는 게 진짜 보수 아닌가.”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사회 실현이다.”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비전과 내용은 뭔가.
“경제 질서 안에서 경제주체 간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 주고 공정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난다. 재벌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기업 해체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금해 노동의 몫을 늘려야 한다. 노동의 몫이 떨어지고 가계의 몫이 줄어드니까 자연히 경기침체가 온 거다.”
―본인의 성장 담론은 무엇인가.
“나는 성장론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경제 담론을 내놓는다. ‘공정성장’이 아니라 ‘공정경제’라고 말하고 싶다.”
―저성장 시대에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데 성장론이 없다면 납득할까.
“공정경쟁을 통해 공정경제가 되면 성장은 거기서 자연스레 나온다.”
―‘분권형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 개헌 시기는.
“탄핵으로 싸우는데 대선 전 개헌 이야기를 하는 건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거다. 또 지금의 개헌론은 오염됐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을 다시 회복하는 수단으로 개헌을 논의하는 측면이 있다. 권력 나눠먹기다. 대선 후보가 개헌 공약을 내걸고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맞다.”
―공약은 당선 후 지켜지지 않더라.
“사람마다 다르다. 내 (성남시장) 공약 이행률은 96%나 된다.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20년까지로 임기를 단축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으면 난 100% 한다고 말한다. 지금 월반해서 왔지 않나. 내게 남아 있는 정치인생이 길다.”
―광장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로 수렴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주권주의 정신은 살려야 한다. 국민발안, 국민소환 이런 걸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고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제재 압박 수단이 한계를 드러냈으니 대화 협력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좀 추가해 보면 어떨까. 투트랙 병행 체제로.”
―자신의 정치 이념적인 ‘토폴로지’가 어디쯤 있다고 보나.
“대한민국 정치인을 기준으로 보면 왼쪽인 것으로 보이지만, 교과서적으로 보면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에 있다.”
정리 = 김다영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http://v.media.daum.net/v/201612221200355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