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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 잇단 수난, 공공 패륜? 세대충돌?
게시물ID : humordata_822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하철Ω
추천 : 1
조회수 : 50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7/03 20:34:47
1일 오전 11시쯤 서울 건대입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안. 문이 열리자 70대 할머니 한 분이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평상복 차림인 할머니는 오른손에 봇짐 하나를 들었다. 걷는 게 힘겨워 보였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할머니 앞에 앉아 있던 20~30대 승객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태블릿PC를 통해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느라 바빴다. 보다 못한 40대 여성이 일어서며 “할머니 이쪽으로 앉으세요”라고 권했다. 할머니는 “이거 미안하게 됐다”고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평소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는 승객 유은원(40)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편하자고, 아니면 자신이 먼저 앉았다는 이유로 양보하지 않는 게 두드러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민원게시판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5호선을 탔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힘겹게 서있는데도 젊은 사람 누구도 자리 양보를 안 했다. 결국 좀 젊은(?) 할아버지들이 노약자석을 양보했다. 나의 자리는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글을 쓴 사람은 임신 32주차 예비 엄마였다.

지하철에서 젊은 층과 노인들의 충돌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패륜녀’ ‘막말남’으로 불리는 인터넷 영상물 속 주인공들이다. 일부 젊은이는 노인들에게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다. 노인들 사이에서는 ‘공공 패륜(공공규범·전통예절의 붕괴 현상)’이 만연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어른 공경’ ‘노인에게 자리 양보’ ‘타인 배려’ 같은 공중 예절과 규범이 깨지는 현상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특히 지하철 좌석을 두고 벌어지는 노인과 청년층의 충돌은 세대갈등으로 번질 기세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 세대에 맞서 몇 안 되는 노약자석이라도 사수하려는 노인들 도 적지 않다.


지하철 옆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것을 지적한 노인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막말남’ 동영상 속 장면. 이 청년은 60대 남성이 말린 뒤에야 겨우 막말을 멈추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런 사태는 1980~9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나타난 ‘경로(敬老) 패러다임 붕괴현상’은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공론장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됐다. 30대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만진 60대 할머니를 때렸던 ‘지하철 페트병녀’ 사건을 중재했던 혜화역의 박범순(55) 부역장은 “80~90년대엔 노인이 타면 다들 자리를 양보한다고 일어서기 바빴는데, 이제는 노약자석을 뺀 나머지는 젊은이 좌석이라고 생각해 아예 양보를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몇 년 새 예의범절과 수치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7호선 건대입구역 이경호(51) 역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노인들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는데, 스마트폰 때문에 최근 공론화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하철은 수도권에서만 하루 평균 6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용한다. 그런 지하철 공간의 특성 때문에 남녀노소, 세대, 계층 간의 접촉 기회가 많다. 게다가 노령화로 인해 지하철을 타는 노인인구 역시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4년 10% 선이었던 무임승차(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비율은 2005년 10.9%, 2007년 12.3%, 2009년 12.6%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이나미(심리학) 박사는 “일반 생활 속에서 노인과 젊은 층이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물며 접촉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지하철은 이들이 불가피하게 접촉하는 공간이어서 갈등과 충돌의 여지가 항상 있다”고 말한다. 이 박사는 또 “노인들이 너무 권위적으로 소통하려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탈권위와 디지털 소통에 익숙해 면대면 접촉에서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데 서투르다”고 지적했다.
노인·청년 사이 충돌 중에서도 노약자석 자리다툼으로 인한 민원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노약자석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층이 “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느냐”고 따지는 노인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생기는 민원들이다.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에 따르면 노약자석 관련 민원건수는 2008년 62건에서 2009년 170건, 지난해엔 397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 말 현재 210건이 접수됐다. 도시철도공사 정선인 보도팀장은 “노약자석을 비롯한 좌석 다툼은 경우에 따라 막말과 욕설로 이어지게 된다”며 “갈수록 세대 간 충돌이 격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세대가 이용하는 버스에서도 충돌은 발생한다. 지난 2월 초 한 시내버스에서 70대 노인이 경로석에 앉은 여대생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구하자 이 여성이 “아이 X발”이라고 욕을 뱉으며 반발한 일이 있었다.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지만 운전기사와 주위의 만류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에서의 ‘세대 충돌’은 지하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탑승인원이 지하철보다 적은 데다 유사시 버스기사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도 한몫한다. 권오혁 서울시 버스관리과장은 “버스 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CCTV에 승객들의 막말이나 폭력 행위까지 찍히기 때문에 이를 의식해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성운수 조형오(58) 노조위원장은 “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경찰 순찰차나 경찰서 접근이 용이해 상대적으로 패륜 행위가 적다”고 전했다.

젊은 대학생들은 이른바 ‘지하철 세대 충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생 26명을 무작위로 골라 물어봤다. 절반에 가까운 12명(46%)은 ‘젊은이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이라고 답했다. 8명(31%)은 ‘젊은 세대의 잘못도 크지만 노인들도 문제’라고 했다. 3명은 ‘살기 힘들어 분노하게 만드는 사회적 책임’을, 2명은 ‘패륜 행위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이 문제’라는 답을 내놓았다.
김혜인(23·여·건국대)씨는 “나를 드러내고 돋보이는 것만 배워온 젊은 세대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걸 당연시하는 풍토에서 나타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강산(25·경인교대)씨는 “학교 교육에서부터 인성 교육이 무너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패륜’만으로 치부하면 그만일까. 일각에선 노인들의 잘못된 태도도 지적한다. ‘당연히 경로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과잉행동을 일삼는 일부 노인이 반감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욕을 하는 것은 물론 앉아 있는 젊은 승객을 무릎으로 미는 등 물리적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 이진혁(23·인하대)씨는 “몸이 진짜로 아프거나 불편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예의 없다’며 부모 욕을 하고 손가락질하는 노인이 꽤 있다”고 말했다. 유해인(20·여·숙명여대)씨는 “지하철에 노인들이 타면 항상 자리를 비켜드리는데도 ‘왜 빨리 일어나지 않느냐’는 식으로 눈치를 주는 분들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메트로 민원 게시판에는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인들로부터 욕을 먹었다는 임신부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는다. 한 임신부는 “배가 남산만 한 걸 보고도 ‘예의 없다’면서 부모를 들먹이고 막말을 한다”고 적었다. 베테랑 역무원인 2호선 당산역의 천경례(51·여) 역장조차 “무임승차 규정에 따라 노인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어미·아비도 없느냐’는 막말 세례를 받은 적이 많다”고 말할 정도다.

이현택 기자, 오선진·장혜인 인턴기자



본문링크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7/03/5381150.html?cloc=n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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