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더 이상 사람이 죽어선 안되기에 끝까지 물러설 수 없어”
ㆍ가족 보고 싶어 힘겹지만 사회 각계의 손길이 보약… 길거리공연 등 다양한 투쟁
“이번에도 타결이 안된다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열사가 나올지 모릅니다. 더 내려갈 곳도 없고요. 끝을 볼 겁니다.”
16일 낮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빌딩 사이 도로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 기사인 염태원씨(39)가 500㎜ 생수통 물을 부어가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분향소와 10여개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널어놓은 빨래도 보였다. 설거지를 마친 염씨는 “지난해 최종범 열사에 이어 호석이까지 떠나보냈다. 더 이상은 안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달 17일 양산센터 기사였던 염호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전국 각지의 조합원들이 상경해 삼성본관 앞에서 한 달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염씨의 죽음 직후 농성자는 60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1000명이 넘는다. 이들을 붙잡아매는 공통적인 감정은 “더 이상 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남 통영센터 박성용씨(36)는 “사실 알려지지 않은 죽음도 많다. 생활고에 시달려 목을 매거나 옥상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반복될 수 있다”면서 “그게 제일 두렵기 때문에 결코 멈출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집을 떠난 서울 생활은 말 그대로 노숙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농성 초기에 설치했던 천막은 삼성 측 용역 직원들이 새벽에 찾아와 철거해버렸다. 비가 오면 피할 수 있는 삼성 빌딩 주변 공간들도 모두 막혀 있다. 씻는 것은 “운 좋으면 이틀에 한 번, 대개는 사나흘에 한 번”이라고 했다.
가장 힘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 달째 귀가하지 못한 박씨는 아내와 아홉 살 아들, 일곱 살 딸을 두고 있다. “가끔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들이 울 때 제일 힘들죠. 한번은 다른 조합원이 농성장에 아들을 데리고 왔어요. 그 녀석이 걸어오는 걸 보는데,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어요.”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런 와중에도 힘이 되는 것은 사회 각계의 손길이다. 지난달 말 노동단체들이 농성장에 찾아와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 행사를 갖기도 했다. 경북 칠곡센터 임종헌씨(39)는 “밥, 김치, 마늘장아찌만 먹다가 소고깃국과 비빔밥·샌드위치까지 먹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마음들이 참 고마워 힘이 났다”고 말했다.
파업·농성 방식은 조금씩 변했다. 조합원들이 길거리공연을 펼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삼성의 책임을 묻는 카드섹션을 했다. 농성장 주변 하수구까지 대청소도 했다. 임씨는 “처음엔 동료의 죽음을 생각하며 엄숙하게 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너무 침체됐다”면서 “가슴은 무겁지만 몸이라도 가볍게 끝까지 싸우자고 생각해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시민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사이 삼성 본관 앞은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정치권도 나섰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노조 측과 간담회를 갖고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또 글로벌 기업이다. 노사 문제를 삼성이 모범적으로 해준다면 한국의 노사 갈등 문제도 거기에서부터 많은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지난달 말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과 비공개로 만나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단됐던 노사 교섭은 회사 측 요청으로 지난 13일부터 재개됐다. 노조는 ‘삼성의 직접 사과 및 열사 명예회복’ ‘노조 인정’ ‘월급제 생활임금 보장 및 임단협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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