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미 독립 선언서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며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글은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치는 대목으로 남아 있을 만큼 높이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흔히 기미 독립 선언서는 학생들에게 “비폭력과 준법, 인류 공존과 평화 정신을 담은 위대한 문서”라면서 장밋빛으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 흔히 자랑스러운 선언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해 보면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과연 기미 독립 선언서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가르쳐야 할 내용일까요?
기미 독립 선언서의 내용 대부분은 최남선이 썼으며, 그것을 이광수가 약간 다듬어서 발표했습니다. 거기에 독립운동가 한용운이 끝의 공약 삼장을 덧붙여서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기미 독립 선언서는 약 2만 장이 인쇄되어 각지로 배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이광수는 3.1 운동 이후 친일파로 돌아섭니다. 조선 독립을 외치던 사람들이 왜 일본에 충성하는 친일파가 되었을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친일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썼던 기미 독립 선언서의 내용들은 대체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을까요?
(기미 독립 선언서의 대부분을 쓴 최남선과 이광수. 그러나 이들은 모두 3.1 운동의 실패 이후, 열렬한 친일파로 변절하고 맙니다.)
사실, 기미 독립 선언서의 내용은 단순히 조선 독립을 외쳤다고 기뻐하기에는 어쩐지 꺼림직한 내용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기미 독립 선언서의 원문 내용들을 가져와서, 그 안에 담긴 어두운 비밀들을 들춰 보겠습니다.
吾等(오등)은 慈(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여기까지는 국사 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문장입니다.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외친다는 기본적인 뜻은 전혀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서서히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 이래) 累千年(누천 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今(금)에 十年(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 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奇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이뇨.
이민족인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인들이 생존권과 정신을 훼손당해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데, 뒷부분에 가서는 그 때문에 조선인들이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었다고 비분강개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하철역의 거지나 노숙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세계 평화를 지키자고 외친다면, 그 말에 호응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처지도 엉망진창인 사람이 세상의 일을 논할 염치나 여력 따위는 없으니까요.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맬컴 X의 말처럼 누가 거지의 가치나 진가를 존중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민족의 침략을 당해 자기 나라도 주권도 없는 민족이라면 당장 입에서 나올 소리가 “이민족은 썩 물러가라!”이지, 뜬금없이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었다.”라는 문장이 대체 왜 나온단 말인가요? 이민족의 침략을 당해 생존권과 정신에 심각한 훼손을 당한 민족이 무슨 여유로 세계 문화 기여를 찾겠습니까? 일본의 압제에 신음하던 3.1 운동 당시 조선 민중들이 “우리가 일본의 침략을 당해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라는 생각 자체를 해보기나 했을까요? 너무나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닙니까? 먼저 자기 민족이 확고한 자주성을 되찾고 정체성을 완성한 다음에야 세계 문화 기여건 뭣이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 운운하는 대목에서 드러나듯이, 기미 독립 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이광수 등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당해야 할 고통을 거의 겪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조선의 일반 민중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 운운하는 대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통성)과 時代良心(시대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2천만 조선인들 저마다가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를 갖고 있으면, 아무리 강력한 힘도 이길 수 있답니다. 이 대목을 잃다가 그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도대체 저 문장을 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던 걸까요? 조선인들이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가 없어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여겼던 것일까요? 그리고 냉혹하고 살벌한 국제 사회에서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가 아무리 강한 힘도 이길 수 있다니요? 세상에 어린이도 아닌 다 큰 어른들, 그것도 나름대로 글자깨나 읽었다던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한심하고 어리석은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는 좋은 말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나쁘게 보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도덕적인 면에서 본다면 좋은 개념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냉혹한 국제 사회에서 양심이니 정의니 인도주의니 하는 달달한 말들은 통하지 않습니다. 다소 잔인한 말 같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무렵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반전여론이 들끓었고, 미군의 공격을 자기들 몸으로 직접 막아내겠다는 이른바 ‘인간방패’들이 무려 10만 명이나 앞다투어 이라크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를 믿었던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방패들은 막상 미군이 정말로 이라크를 폭격하자, 모두 겁을 먹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전쟁을 막지도, 이라크인들의 생명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양심과 정의와 인도주의가 미군의 폭력 앞에 패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003년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전 세계에서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라크인들을 보호하는 인간방패가 되겠다며 이라크로 달려갔지만, 그들은 막상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모두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아) 祖宗世業(조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 기초)와 卓犖(탁락)한 民族心理(민족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책(責)하려 안이 하노라.
위 문장에서 언급한 병자수호조규는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이 맺었던 강화도 조약을 가리킵니다. 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었고, 그로 인해 조선은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 적자가 해마다 쌓여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헌데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강화도 조약 이후에 일본이 자주 조선과 맺은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아마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고 발전시켜 주겠다고 한 것들?), 그런 일본의 신뢰가 없는 행동을 죄라고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이 죄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어기면 사이가 파탄이 나고, 더구나 금융 기관에서 신용 불량으로 낙인이 찍히면 큰 불이익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국가 간에 약속을 어긴 것이 죄가 아니라고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요?
그리고 나서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무시한다고 해서 꾸짖지 않겠다고 합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말입니다.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자기를 꾸짖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틈이 없으며, 현재를 바쁘게 준비하느라 옛날의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벌하거나 따질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의 임무는 다른 자(일본)의 파괴도 아니며, 원한과 감정으로 다른 자를 내쫓거나 반대 또는 거부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위 문장대로라면 무기를 들고 일본에 맞서 싸운 홍범도와 김좌진 및 윤봉길과 김원봉 같은 독립 운동가들, 그리고 오늘날 일본의 과거사와 독도 문제를 가지고 사과를 요구하는 과거사 피해자들은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 “일본을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혹은 일본의 잘못을 벌하거나 따지거나 반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못을 박았으니까요. 일본군이나 관리를 상대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진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을 “파괴”하고 그 “잘못을 벌한”것이며, 과거사 피해자들도 일본에 대해서 “원한과 감정으로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오늘날의 우리들은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는 첫 머리에 조선의 독립을 외쳐놓고서, 정작 그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일본에 대해서 어떠한 공격이나 저항조차 모조리 나쁘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조선인들은 일제가 어떤 억압을 가해도 절대 일본을 미워하거나 맞서 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게 어떻게 독립을 부르짖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더욱이 조선 독립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윤봉길과 김구 같은 임시정부 요인들은 엄연히 무기를 들고 일본에 맞서 싸운 사람들입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에 명시된 저 문장처럼 “일본을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혹은 일본의 잘못을 벌하거나 따지거나 반대하지 않았던.”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헌데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가요? 임시정부 요인들을 추앙하면서 그들의 독립 방식을 철저하게 반대한 기미 독립 선언서도 위대한 인도주의 정신 어쩌고 하면서 함께 치켜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모순된 일이 아닙니까? 기미 독립 선언서를 추앙하려면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일본에 더 이상 과거사의 사과를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아니면 이대로 임시정부를 추앙하고 일본에 과거사 사과를 계속 요구하려면 더 이상 기미 독립 선언서를 치켜세우지 말던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정체성의 혼란이 없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일본을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혹은 일본의 잘못을 벌하거나 따지거나 반대하지도 않으면서.” 대체 어떻게 독립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今(금)에 十年(십년)을 過(과)한지라.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여기서 기미 독립 선언서를 쓴 사람들의 국제 정세를 보는 통찰력이 얼마나 형편없고 어리석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이민족(일본)의 침략과 강압이 과거의 유물이고, 이제는 그런 힘의 시대가 끝나고 도덕과 정의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장만 보고 있으면 마치 당장에라도 지구 전체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 침략 전쟁이 끝나고 영원한 평화가 계속되는 낙원이 열릴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였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가 나온 해에도 여전히 조선은 일본의 침략과 강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미 독립 선언서로부터 22년이 지난 1941년에는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식민지 조선도 그 여파에 휩쓸리며 전시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수많은 식량과 물자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공출되었고, 조선 청년과 처녀들은 강제 징용과 위안부의 희생자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가 온갖 죽음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에서 물러간 이후에도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 자신만만하게 낙관했던 도의의 시대 따위는 오지 않았고, 5년 후인 1950년에는 무려 4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던 끔찍한 한국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더욱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이광수, 그리고 기미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는 자리에 있었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최린은 3.1 운동 이후에 자발적으로 열렬한 친일파가 되어,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 목숨을 버리라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 과거의 유물이라고 폄하했던 “이민족의 침략과 강압”에 무릎을 꿇었고, “위력의 시대”를 칭송하며 과거 자신들이 노래했던 “도의의 시대”를 완전히 부정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들 중 최린은 이런 말까지 남기며, 자신의 과거를 참회(?)했습니다.
“루스벨트여! 귀가 있으면 들어보라. 내가 윌슨의 자결주의에 속아 천황의 역적 노릇을 하였다. 이 절치부심할 원수야! 이제는 속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라!”
하지만 그 역시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 “위력의 시대가 끝나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는 소리만큼이나 섣부르고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일으킨 태평양 전쟁은 불과 4년 만에 일본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애초부터 공업 생산력에서 일본보다 무려 15배나 앞서 있었을 만큼 국력에서 월등한 우위였던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리가 없음에도, 최남선과 이광수와 최린 같은 친일파들은 일본이 미국을 이긴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가 되면 일본의 국토가 미군의 폭격에 파괴되고 매일 수많은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죽어나가는 판국이었는데도, 친일파 지식인들은 일본이 끝내 승리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보지 않고, 오직 자신들이 믿고 있던 환상 속의 ‘대일본제국’만을 숭배했던 것이니, 참으로 멍청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은 처음엔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와 다른 약소국들의 독립을 보고 이제 조선도 그런 식으로 쉽게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섣불리 판단했다가 막상 3.1 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절망하여 친일파로 전향했으나, 그들이 기댄 일본 역시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오래 못 가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국제 정세를 전혀 모르고 두 번이나 잇따라 잘못된 선택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리한 바보’였던 셈입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는 공약 삼장으로 끝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公約三章 (공약 삼 장)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이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히 發表(발표)하라.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요약해서 풀이하면 오늘 즉 1919년의 3.1 운동은 정의와 인도주의에 의거한 요구이니 결코 배타적 감정, 즉 일본에 적대하는 감정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당하게 의사 즉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되, 질서를 지키면서 하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오늘날의 평화 시위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기미 독립 선언서가 평화적 독립을 이루려는 정신을 담고 있다면서 감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약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겠다면서 어떻게 일본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앞에서도 밝혔지만 “일본을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혹은 일본의 잘못을 벌하거나 따지거나 반대하지도 않을.”바에야 무엇하러 독립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야 굳이 일본에서 번거롭게 독립하지 말고 그냥 사이좋게 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또한 질서를 지키면서 독립 만세 시위를 하라?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만약 일본 당국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위는 모두 불법이므로 절대 금지한다. 시위대는 즉각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엄포를 놓는다면, 아무런 항의 없이 그 말에 따라야 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독립 운동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질서라고 하지만, 그 질서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침략자이자 압제자인 일본이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침략적 압제자인 일본이 만든 질서에 순응하면서, 어떻게 일본에서 벗어나자는 독립을 외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너무나도 모순된 처사입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를 분석한 결과, 문맥에서 느낄 수 있는 바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국제 정세에 지극히 무지한 어리석음, 그리고 도저히 실현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유치한 정신적 자위로 가득 찬 허무맹랑한 명분과 이념들이었습니다. 좀 심한 말로 하면 기미 독립 선언서를 쓴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부 사람들은 “기미 독립 선언서가 작성된 당시의 사정도 봐야한다. 최남선과 이광수 등을 너무 비판하지 말라. 그것은 오늘날의 눈으로 과거를 보는 무리수이자 어리석음이다.”라고 두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미 독립 선언서의 허황됨은 이미 당시 사람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산(1905~1938년)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와 3.1운동의 실패를 본 김산은 “조선은 어리석고 늙은 할머니처럼 평화와 자유를 구걸했으나, (세계 열강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말았다. 조선이 그렇게 외쳐댄 평화는 3.1 운동이 피를 쏟으며 실패한 다음에야 왔다. 차라리 자유를 얻기 위해 모두가 싸우는 러시아가 조선보다 더 낫다!”라고 환멸감을 털어 놓기도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