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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트레이너다 -1- <운동을 왜 하는가 上>
게시물ID : diet_493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들레항아리
추천 : 5
조회수 : 5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6/17 01:00:00
안녕하세요.
 
이 간단하고 뻔한 정보들은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이자 응원입니다.
 
저는 전문 트레이너가 아니며, 그저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지속하고싶은 많은 굴러가는 돌들 중 하나입니다.
 
제 지식은 기초적으로는 '다이어터'라는 툰을 통해 습득되었으며, 그 외에 대부분은 트레이너 세 분과의 대화를 통해 얻어진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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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숙아로 태어나 항상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더구나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아 국민학생때에는 발육 좋은 편의 여자아이들이 나를 공주 안듯이 안아들고 다닐 정도로 마르기까지 했었다.
 
보다못한 할머니께서 당신이 씹어 말랑해진 고기를 내 입에 넣어서라도 단백질을 밀어넣어주셨고,
 
육식의 맛을 알고부터 1인분을 시키면 내가 하루 3끼로 먹어도 다 못먹을 정도로 인심을 얹어주시던 떡볶이집 아주머니처럼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작고 통통한 안경잽이로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는 머리를 굴려, 착하고 건강하고 덩치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 열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을 항상 모아 움직였다.
 
그것은 '무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고 견고해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탓에 신검에서 4급을 맞았고, 나는 환호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천차만별의 보폭을 하나로 맞춰야 하는 구보는 그야말로 내 가랑이를 찢어놓았고, 이동하는 매 순간이 나에겐 파워워킹과 진배없었다.
 
점심시간에 공을 좇는 대신 서너명이서 벤치나 구령대 계단 쪽에 앉아 책을 읽었던 몸이었다.
 
발 뒷꿈치가 헐어 양말 바닥이 질척해질때까지 피가 나고 밥먹으러 이동만 해도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약함은 적과 동일하다.
 
난 토요일마다 행해지는 오래달리기에서 주먹자랑하던 동료들이 다 떨어져나갈 때까지 악착같이 달렸다.
 
아마도 20대의 절정을 맞은 세포들의 끈기 덕이었을 것이다.
 
 
 
퇴소 후 공익으로 배치를 받고 사복으로 확인했을 때 내 허리사이즈는 무려 3인치나 줄어있었다.
 
고작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살았음에도 오르막길이라는 핑계로 난 학생권을 구입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너무 신기해서 다시 내려갔다가 뛰어서도 올라갔다.
 
조금 숨이 가빠졌지만 어느새 차분했다.
 
이제 나에겐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배치받은 곳은 우편집중국이었다.
 
트럭에서 빠렛(100kg 상당의 대형 빠렛)에 가득 실린 우편물(집중국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편지보다는 잡지 종류가 대부분이다)은
한 빠렛에 약 1톤, 보통 한 트럭에 5~9개까지 싣고 온다.
 
월말이 되면 수십 개의 빠렛들을 한 번에 밀어버리는 지게차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트래픽이 찾아왔다.
 
어깨 두 명을 내 눈 앞에서 턱에 빵! 빵! 때려 도려낸 지푸라기마냥 스러지게 만드는 복싱하다 온 친구조차 몸이 상하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유일한 낛이 있었다면 배드민턴이었다.
 
우리 모든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는 공무원들은 점심시간마다 건물 3층에 있는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즐겼다.
 
짬이 조금 찬 공익들은 자의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반년 정도 그렇게 즐겼다.
 
어느 날, 키 180 후반에 팔이 긴 편에 신변잡기에 능했던 한 형님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넌 평생 해도 나 이길 수 없어. 에유."
 
 
 
난 소집해제 후, 집 근처의 배드민턴 클럽의 문을 두드렸다. 꼬박 모은 월급을 코치한테 내밀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토하는 것은 더 파이팅의 주인공들만 하는 줄 알았고,
 
혈뇨를 보는 것은 훈련 중 심심찮게 목숨을 잃는 일본의 잔혹한 사나이 만화들에서난 나오는 줄 알았다.
 
파워를 더 갖추고 싶어 헬스장에도 갔다. 기본적으로 매일 헬스와 배드민턴으로 몸을 움직였고
 
월수금/화목토를 분리해 헬스의 PT와 배드민턴 레슨을 받았다.
 
 
 
신경도 쓰지 못한 사이에 배에는 굴곡이 생기고 팔뚝을 휘감은 선명한 핏줄들이 생겨있었다.
 
그 외모의 변화를 깨달은 것은 문득 지나친 짧은 순간이었고,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다.
 
레슨을 받은지 2년이 지났을 때에 클럽 시합에서 C조를 획득했고, 그 해에 나를 부추긴 형님의 이마에 셔틀콕을 꽂아버렸다.
 
 
 
그리고 오른팔이 고장났다.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으나 더이상 채를 잡는 것은 무리였다.
 
마침 집이 이사를 가면서, 나는 배드민턴을 포함해 운동을 끊게 되었다.
 
할 일은 많았다. 운동에 매진하느라 늦춘 복학시기때문에 공부야말로 뒤쳐졌으니.
 
2년간 단련한 몸은 고작 그 반도 안되는 시간만에 요요를 더해 나를 집어삼켰다.
 
가장 큰 문제는, 나는 그때까지도 그러한 변화들을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목에 종양이 생겼다.
 
전신마취로 수술한 후 한 달 가까이를 침상에서 꼼짝도 못하며 보냈다.
 
대화하면서 계단 열 칸만 올라가도 산소를 들이키느라 말을 멈춰야 했다.
 
서있는 것 만으로도 식은땀이 옷을 앞뒤로 질척거리게 했다.
 
강단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몸을 고정시키면서 논문발표를 마치고 나는 가까스로 졸업을 했다.
 
 
 
드디어, 나는 백수로 접어들었다.
 
누군들 자신이 백수가 되었음을 쉬이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의도는 순수했다.
 
 
 
더 빠르게 스텝을 밟고
 
더 강하게 공을 쳐내고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집 앞 PC방에 걸어갈 때 헐떡거리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별 기대 없이 역시 집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헬스장을 찾았다.
 
쭈뼛거리며 들어가 무관심한 시선들을 피해 가장 먼저 눈에 담은 것은, 스쾃을 하며 수건을 개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뒷태였다.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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