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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집 알바생입니다. 빵 구걸을 하러 누가 왔었음.
게시물ID : gomin_823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cmplZ
추천 : 11
조회수 : 905회
댓글수 : 165개
등록시간 : 2013/08/30 00:11:38
도넛가게에서 알바하다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고민게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착한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반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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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도넛 가게는 오픈/미들/마감 이렇게 3타임으로 나뉘어서 알바생&매니저 가 같이 일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나는 원래 일주일에 다섯~여섯번씩 마감만을 주로 하는 알바생이었는데, 오늘은 사장님이 갑자기 미들 시간에 나와서 알바를 하라고 했다.
 
솔직히 마감은 밤 11시에 끝나서 위험하기도 하고, 뭐랄까 저녁의 여유를 느낄 수 없어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있었다.(물론 알바를 하는 시간에 술에 취한 손님이 와서 민폐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고... 이 세상 어느 알바가 애로사항이 없겠냐마는.)
 
사장님의 말에 나는 얼씨구나 하고 점심시간까지 가게에 출근을 했다. 원래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먹고 식후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려야 하는데, 오늘 점심 즈음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손님이 뚝 끊겼다. 고작해야 4번의 주문을 받고 나서야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 가게가 회사 근처에 있어 주 고객이 회사원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끝난 마당에 커피를 찾을 회사원은 거의 없었다. 당연스럽게도 가게 안은 몇몇 손님을 제외하고는 텅 비었고, 추가적인 빵 진열과 청소가 임무였던 나는 모든 임무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두들기면서 간헐적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알바가 끝날때까지는 3시간이 넘게 남았다.
 
그 때 어떤 마른 체형의 남자가 가게 안에 들어왔다. 평소와 같이 우렁차게 어서오라는 인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옆에서는 같은 타임에 일하는 매니저님도 서 있었다. 내가 포스기를 두들겨서 계산을 하면, 옆에서 매니저님이 빵을 포장해주는 그런 형식으로 일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남자 손님은 뭔가 달랐다. 표정도 어두워 보이고 숨을 약간 거칠게 몰아쉬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좀 이상한 손님이다... 싶을 찰나 그 손님이 카운터 앞에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했다.
 
"빵좀 먹읍시다"
 
??????????????????????????????????????????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데 빵 좀 먹읍시다"
 
수많은 손님을 받으면서 "어서오세요-얼마입니다-얼마받았습니다' 라는 투의 기계적 응대만을 하던 내게 그 남자(빵을 달랬으니 이제 손님은 아니었다.)의 말은 날 당황스럽게 했다. 군대도 제대하고 알바를 시작한 지 2달이 되어가서 어느정도 일에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구걸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나는 멍청하게도 자연스럽게 일개 알바생보다 권한이 많은 매니저님을 돌아보았고, 매니저님도 역시 벙찐 표정으로 어버버 하다가 결국 단호하게 대응했다.
 
"지금 우리가 알바 중이니 사장님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는 그렇게는 불가능 합니다."
 
우리 측 대응은 확실해졌다. 사장님이 부재 한 상황에서 매니저님이 못 준다고 못을 박은 이상, 내가 주느니 마느니 할 권한은 없었다. 속으로 이 남자에 대한 불쌍함과 괘씸함이 들었지만 그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지난번 오유에서 베오베에 올라온 한 글이 기억이 났다.
 
( -제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20850 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알바생은 자비를 털어서라도 여건이 좋지 않은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했다. 그 당시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알바를 하는 이상 손님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대접하고, 또 그로 인해서 손님들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행동은 어떠한가? 천몇백원 하는 도너츠 하나를 구걸하는 남자에게 '사줄까? 말까?'를 연신 되뇌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내 머릿 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는 매니저님이 단호하게 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 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니저님을 바라보던 눈길이 돌연 나에게 돌아왔고, 그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배가 고파 뒤질 거 같은데 빵 하나만 먹읍시다"
 
입장이 난처해졌다. 매니저님은 주지 말라고 하는 입장이고, 나는 속으로 이 남자에게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빵을 사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 남자는 빵 하나를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정말 예스와 노 사이에서 생각이 쉼없이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고 대답한 것은 거절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이라 빵을 드리게 되면 저희 시급에서 값이 나가는 바람에..."
 
입을 열고 튀어나온 말에 남자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나는 내가 한 말을 곱씹어 볼 틈도 없이 자괴감에 빠졌다.
 
그 천몇백원이 아까워서 나는 이 남자에게 거절을 한 것인가? 나는 그렇게 옹고집에 매몰찬 사람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남자를 배고픔에서 구원해 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번 말을 내뱉고 나니, 마음은 거절하는 방향으로 점점 쏠렸고, 나는 차마 그 남자를 보지 못하고 그저 포스기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매니저님을 한번 더 돌아보자, 저런 사람 한번 주면 습관된다며, 연거푸 고개를 내저으셨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하건만, 이 남자는 연거푸 나와 매니저님을 번갈아보며 빵 하나좀 먹자고, 점점 언성을 높혔다. 매니저님은 부엌으로 들어가버렸고,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기어코
 
"그렇게도 인정이 없습니까? 예? 빵이 저렇게 많이 있는데... 내가 오른손이 병신이라서 그런데 그 하나를 못 줍니까?"
 
라고 말하면서 도넛 진열장에 다가섰다. 분노한 나머지 진열장을 열고 빵을 집어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운터로 나가려고 할 찰나, 그 남자가 진열장을 손바닥으로 세게 밀었다. 쾅 하는 소리가 났고, 매니저님은 놀라 뛰쳐나오며 그 남자 앞에서 왜 이러냐며, 이러시면 안된다며 말했다. 매니저님도 여자였기 때문에 겁을 먹으셨는지 나에게 다가와서 도움을 구했다. 나는 결국 내 돈으로 도넛을 하나 사서 주겠다며 진열장에서 그나마 크기가 큰 도넛을 하나 꺼내서 남자에게 주었다. 남자는 도넛을 받아들고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아 씩씩대면서 도넛을 먹었다. 먹는 중간중간 에이씨- 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 남자는 이내 도넛을 다 먹고 나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나갔다. 그가 인사를 할 때, 나는 너무 미안해서 오히려 더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 남자가 가게를 나가고 난 뒤 그가 앉았던 자리를 치우려고 행주를 들고 자리에 갔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원래 손님이 가게에서 도넛을 먹고 갈 경우, 쟁반에다가 제공하는데, 나는 그 남자에게 그저 유산지 한 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남자에게 잔인한 짓을 했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남자로써의 자존심도 버리고 가게에 들어와서 빵을 하나 달라고 했을까, 자기 오른손이 병신이라고 말하면서까지 구걸을 했을까. 나는 그 빵 하나를 주는 결단력이 모자라서 그 사람을 잔인하게 대했는가. 그 사람의 말처럼 왜 그렇게 인정이 없었을까.
 
같은 남자로써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매니저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부엌에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타이밍 좋게 사장님이 들어와버리는 바람에 이 창피한 모습을 들켰고, 나 대신 매니저님이 사장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장님과 매니저님은 저런 사람들의 구걸을 들어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저런 사람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나 이번에 온 남자는 불쌍한 척을 하면서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의외로 말짱한 모습하며 가게를 나간 직후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농협은행으로 들어간 행동을 보면 정말 불쌍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매니저님은 도넛 가격을 본인이 직접 지불했다. 사장님 또한 맞장구치면서 이전에 가게에 구걸 하러 온 사람들의 사례를 알려주면서 그렇게까지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또 덩치 큰 사내자식이 뭘 우냐며 놀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가게를 나간 이후로 손님이 많이 왔고, 나는 바쁜 나머지 그 남자를 잠시 잊어버렸다.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온 후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그렇게 인정머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보다 약한 자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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