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TRS로 현장 상황 실시간 파악하고도
엉터리 상황보고 한 이유 뭔가?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연주연합,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위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받은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TRS(Trunked Radio System, 주파수공용무선통신시스템) 교신록과 해경이 작성한 상황보고서 등을 비교한 결과, 해경은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급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도 엉터리 상황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해경 상황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해양수산부(중앙사고수습본부)의 상황보고서나 안전행정부(중앙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 자료 역시 엉터리였고, 결국 이 같은 엉터리 상황보고서가 침몰 직후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만든 대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TRS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여러 사용자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무선통신으로 경찰이나 소방, 철도, 응급의료기관 등이 사용한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직후 가동된 해경의 TRS망에는 목포해양경찰서와 현장에 출동한 123정 등 함정과 헬기는 물론 서해지방해양경찰청과 해경 본청까지 들어와 침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그 가운데는 세월호가 얼마나 많이 기울어지고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지, 몇 명의 승선자를 구조했는지, 사망자는 언제 인양했는지 등 재난상황에서 긴급히 보고해야 할 중요한 정보들이 수두룩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정작 이 TRS망을 운용한 해경의 상황보고서에는 현장의 상황들이 반영이 되지 않거나 뒤늦게 반영되었다.
■ 123정, 09:47 “승객 절반 이상 못나와”...10:46 “침몰 배에 2~300명 있다” 보고
9시 43분경 “여객선에 접안해 밖에 나온 승객 한명씩, 한명씩 지금 구조하고 있다”고 보고했던 123정은, 불과 4분여 뒤인 9시 47분에 “배가 잠시후에 곧 침몰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배가 60도까지 기울어 지금 좌현 현측이 완전히 다 침수되고 있다”고 긴급한 상황을 보고한다. 그리고 곧 이어 123정은 목포해경에 “현재 승객이 절반 이상이 안에 갇혀서 못나온답니다. 빨리 122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될 것 같습니다”고 결정적인 소식을 보고한다.
이에 대해 서해해경은 ‘청장 지시사항’이라며 “123정 직원들이 여객선 올라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란다”고 지시하지만, 9시 53분경 123정은 다시 “완전히 침수해 현재 좌현쪽에서는 더는 구조할 수 없다”며 “구조방법은 항공을 이용해야 될 것 같다”고 보고한다. 123정은 이어 10시 4분에는 “현재 약 7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하고, 10시 12분에 “123정에 52명 구조했고, 헬기에서 18명, 현재 70명 정도 구조했다”고 보고한 뒤, 10시 13분 “저희 경찰이 다 나왔다. 여객선이 약 90도 (기울었다)”고 보고한다.
이어 10시 20분에는 헬기에서도 “90% 전복 침몰”이라고 보고하고, 10시 28분경 123정에서는 “현재 4m 그리고 길이 10m 정도 남고 나머지는 다 침몰중”이라고 보고한다. 이에 대해 목포해경에서는 “123정에서 52명 구조한 게 맞는지?”라고 묻자 10시 35분경 123정은 “47명을 전남707정에 인계하고 32명 승선중”이라고 보고한다. 이에 대해 목포해경에서 “지금 현재 여객선에 사람이 몇 명 있는지?”라고 묻자 123정은 “현재 학생들이 아마 다수 있는걸로...현재 선수 부분 4m 약 10m 채로 뒤집어 있음”이라고 보고한다. 즉 학생 등 수백명의 승선자가 여전히 배 안에 있는 채로 세월호가 침몰했음을 현장의 123정은 보고했고, 목포해경 역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서해해경과 해경본청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해경 상황실은 현장에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10시 46분 해경 상황실은 “지금 여객선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지?”라고 묻고, 이에 대해 123정은 다시 “현재 확인은 안되나 학생들이 2~3백명이 탔다는데 많은 학생들이 못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고, 이에 대해 상황실은 다시 “그럼 많은 학생들이 선박내에 있다는 것이 정확한지?”라고 재차 확인하자 이에 대해 123정은 “다 물 속에 잠겨 현재로서는 구조가 불가능하다”며 “구조하려면 122에서 와서 구조해야 할 것 같다”고 긴급한 상황을 보고한다. 그럼에도 11시8분 서해해경은 완도해경 소속 278함정에 “선박쪽에 접근해서 사람이 지금 현재 나와 있는가 확인 바람”이라고 지시하고 278함정에서 “지금 잠겨가지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안된다”고 보고하는 식으로 골든타임이 계속 허비되었다.
■ 해경, 상황보고서에 왜 ‘200~300명 갇혀 있다’ 보고하지 않았나?
현장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린 해경은 상황보고서를 작성해 현장 상황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현장의 결정적이고도 긴박한 상황을 누락시키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였다.
목포해경은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9시 2분 1보를 시작으로, 9시 42분 2보, 11시 8분 3보, 12시 28분 4보의 상황보고서를 서해해경과 해경본청에 보고했지만, 그 어디에도 세월호가 선수 일부만 남기고 바닷물에 잠겼다는 내용은 없었고, 그 안에 학생 등 2~300명의 승선자가 갇혀 있다는 내용 역시 전혀 없었다.
목포해경에 이어 9시 19분 1보, 11시 32분 2보, 12시 40분 3보를 전파한 서해해경 역시 선내에 수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는 언급은 전혀 없이 상황보고서 2보에서 ‘선박상태’에 대해 “선체 전복되어 선수선저 일부분만 보임”이라고 적었을 뿐이었다.
결국 9시 30분 1보를 시작으로, 10시 23분 2보, 11시 25분 3보, 12시 15분 4보의 상황보고서를 청와대 위기관리세터와 사회안전비서관실, 총리실, 해수부, 안행부, 합참, 국정원, 해군, 소방방재청 등에 보고한 해경본청 역시 배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갇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고, “11시 20분 현재 총 구조현황 162명 구조 완료”(상황보고서 3보) 등 구조자 숫자만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목포해경 서장과 서해해경 청장, 해경 본청 상황실 등 지휘부가 모두 TRS망에 들어와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음에도 정작 ‘목포해양경찰서장’, ‘서해해양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의 이름으로 발신된 상황보고서는 엉터리 내용과 늑장보고로 채워졌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10시 40분 첫 브리핑에서, 이미 현장에서는 세월호가 선수만 남긴 채 완전히 침몰했음에도 그 같은 내용에 대한 언급도, 배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는 상태에서 “단 1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객실 엔진실 등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통령 지시사항이나 발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11시 30분 2차 브리핑에서도 배 안에 갇힌 채 바닷속에 잠긴 사람들의 소식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이는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린 해양수산부의 상황보고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 10:46 “사망추정자 1명 인양” 보고받고도 추가확인 않고 상황보고서에 누락
이밖에도 TRS 교신록에 의하면, 10시 46분 123정에서 “현재 본정 단정이 사망추정 한 사람을 인양했다”고 보고했지만, 해경 상황실에서는 정확한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 남성인지, 여성인지, 학생인지, 성인인지 등 신원확인을 위한 질문도 전혀 하지 않았다. 123정이 인양한 사람은 12시가 넘어서야 ‘심폐소생술 끝에 사망’으로 확인된 단원고생 정차웅군이다. 최초 구조 당시 이미 ‘사망’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해경측은 이에 대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상황보고서에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12시가 넘어서야 시신으로 발견된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가 ‘첫 사망자’로 목포해경의 12시 28분 상황보고서 4보를 통해 처음 전파되고, 중대본 역시 12시 30분 3차 브리핑에서 박지영씨를 ‘사망자 1명’으로 알리게 된다. 배가 침몰한 직후인 당시 “현장에서 사망 추정자가 인양됐다”는 보고가 즉각적으로 올라갔다면 상황의 위급함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수립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 10:30 KBS “대책본부, 구조 신속하고 순조로워 사망위험성 낮은편으로 낙관”
11:02 MBC “안행부, 구조에 큰 문제 없고 인명피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월호 침몰 직후 방송보도 또한 TRS 교신록에서 나타나는 현장의 급박한 상황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내용들로 가득 찼던 것으로 드러난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의 경우 10시 14분경 “해경관계자는 침몰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1~2시간 안에 모든 인명 구조를 마칠수 있을 것 같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도저히 ‘해경관계자’를 출처로 볼 수 없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이 같은 보도 기조는 오전 내내 이어져 세월호가 선수만 남기고 침몰한 뒤인 10시 30분에는 “대책본부는 구조가 신속하고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며 사망위험성은 비교적 낮은편으로 낙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11시에도 “해경 관계자는 모든 인명구조를 곧 마칠수 있을것 같지만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고, 11시 46분에는 “구조작업은 현장에서는 거의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추정이 된다”는 어이없는 보도를 했다.
MBC 역시 배가 뒤집어진 시간대인 10시 20분경 “해경은 구조작업도 큰 무리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며 “승객들은 모두 구명정을 입고 있고 모두 바다에 뛰어내리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라고 정반대 내용의 보도를 했고, 10시 44분에도 “구조작업을 벌이는데 큰 무리는 없다고 해경은 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11시 1분경 <안산 단원고 “학생들 전원구조”> 자막이 보도됐고, 11시 2분에 “안행부는 45도 배가 기운 상황에서 해경배가 붙어서 구조하고 있기때문에 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인명피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보도하는가하면, 11시 7분에도 같은 내용의 리포트를 반복했고, 11시 9분에는 “아직 구조가 되지 않은 나머지 승선원들은 전원 구명동의를 착용한 채 바다에 뛰어든 상태라는 내용도 들어와 있다”며 “현재 해군 등은 바다 위에 있는 이 구조자들에게 구명장비를 띄워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현실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내용의 보도를 오전 내내 내보냈다.
세월호 국조특위 위원인 최민희 의원은 “배가 어느 정도 기울고 있고, 끝내 언제 뒤집어졌다는 것은 물론 그 안에 200~300명이 갇혀 있다는 사실 또한 실시간으로 보고받은 해경 지휘부가 왜 현장의 급박한 상황을 ‘상황보고서’를 통해 보고하지 않았는지 밝혀져야 한다”며 “이 같은 엉터리 상황보고로 인해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허비한 것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최민희 의원은 “방송 등 언론에게 현장의 실제 상황과는 정반대되는 것은 물론 상황보고서의 내용과도 맞지 않는 얘기를 전한 해경과 안행부 등의 관계자가 누구인지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엉터리 상황보고와 ‘곧 모두 구조될 것’이라는 거짓말, 그리고 이를 확인없이 보도한 언론에 의해 세월호 승선자 가족과 국민 모두가 우롱당한 사이 우리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