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보충대를 향하는 자동차 안.
고모와 동생, 부모님이 타 계셨다.
모두들 군대 이야기만 하고 있다.
군대는 어쨌다느니 저쨌다느니 그러니 열심히 해야하느니...
그런 소리 하나하나 듣고보면 두렵기도하고 설레기도 한다.
물론 두려움이 99% 이고 설렘이 1% 미만이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쉬기 위해 들렀다.
차에서 내리니 전부 빡빡이들만 있다.
이 빡빡이 친구들은 나와 같은 입영장병이다.
나처럼 가족들과 온 빡빡이도 있고 여자친구와 온 빡빡이도 있다.
여자친구와 온 빡빡이들이 겁나게 부러웠지만 어차피 군대가면 나랑 똑같다.
그저 한마리의 안쓰러운 빡빡이 신세밖에 더 되겠는가.
어렵사리 춘천에 도착한 나와 가족들.
춘천은 닭갈비가 유명하다고 하여 닭갈비를 먹었으나 더럽게 맛도 없었다.
아직 입대 안한 칭구들을 위해 조언을 하자면...
102보충대 주변에 있는 닭갈비 집은 전부 맛 없다. 시간이 많다면 멀리 나가서 먹어라.
밥을 다 먹은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친구들이나 사촌들에게 모조리 전화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대충 하고나서 102보충대에 들어갔다.
102 보충대 주변에 서있는 군인 엉아들.
'안내' 라는 글씨가 써진 완장을 차고 있는 군인 엉아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지었다.
" 저 군인횽은 나한테 반한거야? " 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웃음은 단순히 ' 넌 X 됬어 자식아! ' 라는 의미의 웃음이니 착각하지 말자.
내가 사이다를 먹고 있는 도중...
" 입영장병 여러분들은 연병장 중앙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 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젠 가야할시간.
아부지와 어무이에게 마지막 포옹을 했다.
거기서 아부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연병장에 나름 열을 맞춰 줄을 섰다.
그리고 잠시후 입영장병들을 강당으로 인솔했다.
인솔자는 빨간 모자를 쓴 조교 엉아들이 담당했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 엉아들은 무척 무서워 보였으나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했다.
는 개뿔 강당에 들어가니 흉폭한 엉아로 변신했다.
그들에게 강당에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채 하루가 흘렀다.
생활관은 정말 대박 그 자체였다.
인원수에 비해 어찌나 좁은지...
솔직히 말하면 차렷 자세로 누워도 자리가 나지 않는다.
몸을 옆으로 세워서 자야 자리가 났었다.
잠자리가 편해도 잠이 안올판국에 잠자리 마저 불편하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문득 생각이 난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앞으로 2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야할 내가 생각이 난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새벽 2시 쯤에서야 잠이든 나.
새벽 3시 쯤 불침번을 서라고 누군가가 깨운다.
빡쳤지만 일어나서 불침번을 섰다.
이때도 아까 잠 잤을때 못지 않게 엄청난 명상에 빠져든다.
지금 쯤, 엄마 아빠는 자고 계시겠지... 나는 고통과 인내와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 창문 밖은 무쟈게 평화롭구나. 등등.
길고 긴 한시간의 불침번이 끝나고 잠을 자러 왔는데...
내 잠자리가 없어졌다...
잠자리가 워낙 좁아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사라진 모양이다.
어찌어찌 잘 파고들어서 잠에 청했다.
물론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102보충대에서 보급품을 받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군대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밥은 제때 제때 다 챙겨주었다.
참고로 밥은 더럽게 맛없다. 고무줄 간장 잡채와 간장 미역국. 폐타이어로 만든 닭고기.
설명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정말 대단한 음식이였다.
그리고 102보충대에 고작 3일 있는것인데 어찌나 시간이 안가던지...
마치 이제 막 출발한 고속버스안에서 똥이 마려운 만큼이나 시간이 안갔다.
어째든 시간은 흘러 3달 같던 3일이 지났다.
나와 동기들은 전날에 훈련소 배치를 받았는데, 오늘은 배치 받은 훈련소로 가는 날인것이다.
진정한 쿠닌의 시작인것이다.
내가 배치 받은 훈련소의 부대 명은 2사단. 혹은 노도부대라 불리는 곳이다.
나름 네임벨류가 있고 메이커 부대라고 소문난 한자릿수 사단이다.
하지만 이기자부대나 백골부대 만큼 은근히 유명하지 않아 무시하는 사단이였다.
같이 있던 동기녀석들도 이기자부대나 백골부대 만큼은 심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큰 착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고 만다.
(지금 당장 네이X에 쳐보면 알겠지만 명실상부한 Top 3 안에 드는 부대다.)
102보충대에서 2사단 훈련소로 향하는 길은 더럽게 험난했다.
정말로 산건너 강건너 다리건너 간다.
이런 곳에 길이 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대한민국 정부에 감탄했고.
이런 곳에 다리가 건설되어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세금이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있나 생각했으며,
이런 곳에 훈련하러가는 내가 겁나게 불쌍했다.
1시간~2시간 정도 흘러 2사단 노도 신병 교육대대에 도착한 나와 동기들.
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조교 엉아 한명.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쳤다.
" 빨리 내립니다! 빨리 빨리 안내립니까! "
우와. 목소리를 저렇게 낼수있다니!!
마치 한마리의 호랑이가 숲속에서 ' 이 숲의 왕은 나야! ' 라고 포효하는 것 같았다.
나와 동기들은 너무 무서워서 헐레벌떡 더블백을 들고 버스에서 뛰쳐나왔다.
그렇게 15초만에 뛰어나온 우리들.
나름 빨리 뛰어나왔지만 조교엉아는 자비가 없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300번 이상 했다고 하면 믿을텐가?
그것도 20kg에 가까운 더블백을 메고?
다리는 이미 내 다리가 아니다.
부들거리는것이 다음번에 앉으면 영원히 주저 앉을 기분이다.
그런데도 조교 엉아들이 앉으랜다.
하지만 조교 엉아들은 전문가들이였다.
절대 못 일어날거란 내 생각과는 달리 살기 위해서 일어나는 내 다리를 보게된다.
화려한 신고식을 마치고 우리들은 제식훈련에 임했다.
제식훈련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이 제식을 기억하고 있는 바람에 전역한 지금도 저절로 제식이 된다.
제식훈련을 마치고 진정한 군인이나 하는 훈련을 했다.
총도 쏘고 수루탄도 던지고 화생방도 하고 행군도 하며 각개전투도 했다.
사격은 정말 재밌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PRI훈련은 참을만하다.
다만 사격 한번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조교 엉아들은 심심해 하지 말라고 우리와 같이 놀아준다.
앉았다 일어났다 놀이.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놀이. 찍고와 선착순 3명 놀이.
이런 놀이를 끝내고 나니 사격장에 올라간 나.
총 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서든어택 대령까지 찍고 10만명의 초딩을 학살했지만, 총소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게다가, K2의 총기능력치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250M 까지 쭈욱 뻗어나가 표적을 맞추는 위력이란!
어째든. 20발 중 12발을 맞춘 나는, 합격 커트라인에 턱걸이로 통과되었다.
수류탄 훈련도 재밌게 한 기억이 남는다.
수류탄이 당장이라도 내 손에서 떨어져서 꽝! 하고 터질것같은데...
하지만 절대 수류탄은 떨어지지 않는다.
수류탄 역시 사격장 못지 않게 놀라움의 연속이다.
수류탄의 데미지는 가히 가공할만한 위력이다.
만약 정통으로 맞는다면 몸이 100갈래로 흩어질것이다.
화생방은 고통의 방이다.
미필자들에게 조언 하나 하고 싶다.
만약 열외가 가능하다면 반드시 열외를 해라. 한번 쯤 하는것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거 다 개구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이 화생방 훈련 열외에 실패했다면 재밌게 화생방 훈련에 임하는 팁 하나를 주겠다.
우선 화생방 훈련을 할때 첫번째 조가 되기 위해 노력해라.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먼저 들어가는게 낫다.
그리고 당신이 화생방 훈련을 첫번째로 끝내고 나올 때 정말 괴로운 표정을 지어주며 나오는게 좋다.
토를 해도 좋고 쓰러져도 좋다. 당신이 괴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아직 들어가지 않은 수백명의 동기들이 너의 표정을 보고 사색으로 변한다.
너는 그 표정을 보고 즐기고 있으면 화생방 훈련은 끝이 나는것이다.
행군도 고통과 인내의 연속이다.
첫 5킬로미터 까지는 재밌다.
총을 들고 군장을 메고 수백명이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장면 같다.
하지만 5킬로미터가 지나는 순간 지옥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어깨에 모든 감각이 쏠리기 시작하고 발바닥이 저리기 시작한다.
속옷은 이미 물에 빠진것과 다름없을정도로 젖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꾸 멀어져가는 앞 사람 때문에 짜증이 치솟기도 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군가도 더럽게 시킨다.
하지만 결국 도착지점에 도착하고 군장을 내려놓게 된다. 참고로 한동안 발바닥은 따가워서 다음날 아침까지 잘 못 걷게된다.
각개전투는 훈련소의 꽃이라 말 할수있다.
행군,사격,화생방 이 세개를 다 합쳐도 이 훈련의 고통에 못 따라간다.
특히나 팔꿈치가 아픈데,
팔꿈치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편하다.
살다 살다 팔꿈치로 고문하는 기술은 군대에서 처음 봤다.
비가 내린 직후에 훈련하면 흙탕물에 빠진채 훈련한다.
비가 오랫동안 안내렸을때 훈련하면 얼굴이 흙먼지를 뒤집어 쓰게된다.
이때 코를 파면 나오라는 코딱지는 안나오고 흙이 나온다.
고작 짝대기 한줄의 계급장을 받기 위해 이런 고생을 한다는게 놀라웠다.
또 전역한 모든 남자들이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기나긴 훈련이 끝나고 우리는 수료식을 했다.
수료식날 면회가 가능한데 우리 부모님역시 나를 보기 위해 면회를 오셨다.
이때 부모님과의 감격의 포옹을 다시 한번 맛 보았다.
참고로 우는 동기들도 듬성듬성 보인다.
나는 면회를 나가서 아이스크림 2개, 과자 한봉지에 치킨 1마리 피자 한판을 먹어치우고 식사로 갈비 3인분을 먹었다.
물론 식후땡으로 냉면까지 먹어주었다. 마지막엔 아버지와 당구 한게임도 했다.
면회가 끝나고 훈련소로 돌아와서 마지막 축제의 밤을 연다.
이때만큼은 조교엉아들도 우리들에게 무척 너그러워진다.
개판 5분전이 되도 크게 혼내지도 않는다.
밤 12시가 넘어서 까지 생활관엔 웃음꽃이 핀다.
이제 우리들은 2사단 휘하의 부대에 자대 배치를 받고 제2신병교육대에 가서 심화 훈련을 받게된다.
하지만 나는 자대 배치도 받지 않고 제2신병교육대에도 가지 않는다.
운전병이기 때문에 야전수송교육단에 가서 운전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전병들은 2사단 휘하의 부대에 자대를 배치 받는것이 아니라 강원도 전 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즉, 운전병이 아닌 동기들과는 이곳에서 영원한 이별을 해야한다는 소리였다.
야전수송교육단으로 가는 동기와 제2신병교육대로 가는 동기들은 둘로 나뉘어 포옹과 악수를 하고 전화번호도 교환한다.
(참고로 이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들은 자대가기도 전에 잃어버렸다.)
잠시후 야전 수송 교육단으로 가는 이등병들은 버스를 타라는 조교 엉아의 말이 들렸다.
40인승 버스 몇대가 정들었던 훈련소 연병장을 떠나 야전수송교육단을 향했다.
야전 수송 교육단의 줄임말은 야수교.
또 다른 말은 야수베거스. 그야말로 꿀 부대였다.
남들 제2신병교육대에서 행군하고 있을때 우리는 마음 편하게 운전 교육 했다.
야수교에서 발급되는 군 면허증을 받기 위해선 교육을 받고 시험을 받아야한다.
나는 백여명의 교육생 중에서도 가장 처음 시험을 보았고 당당히 합격했다.
야수교에서 군면허가 나오고 내 자대가 발표되었다.
강원도에서 후방으로 취급하거나 제법 큰 도시라고 자부하는 곳.
혹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애틋한 기도를 격추시켜버리는 신.
2사단.
오 마이 갓.
2사단 훈련소에서 도망가다시피 왔건만 또 그곳으로 가란다.
울면서 2사단 신병교육대 보충대로 돌아간 나.
2사단에 온 10여명의 내 동기 칭구들.
2사단 신병교육대 보충대에서는 더 자세한 자대가 발표된다.
즉, 2사단에 속해 있는 휘하부대를 발표해준다는 소리다.
' 포병만 아니여라 '
' XX포병대대 '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로써 한층 북한에 가까워지고 고생에 가까워졌다.
XX포병대대에 도착한 나는 그곳에서도 중대급 부대배치를 기다렸다.
한시간 넘게 기다리자 무섭게 생긴 상사한분이 오시더니 본부포대로 데려갔다.
그리고 XX분대로 가라고 했다.
그렇다. 이제 내 소속은 2사단 XX 포병대대 본부포대 XX분대 였다.
XX분대 선임들을 처음 보았다.
전부 더럽게 무섭게 생겼다.
한명은 키가 196cm 였는데 별명도 골리앗이다.
혼자서 사람만한 타이어를 들었으니 얼마나 괴물인지 알수있을것이다.
자대 첫날밤.
이날 나는 ' 취침 쏘등하겠습니다. ' 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유독 이 말을 할때면 말이 자꾸 꼬여버렸는데 선임이 재밌다며 별명을 지어준것이다.
몇일이 지나니 이등병은 언제나 털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뭘 해도 털리니 그냥 마음을 놓는게 편했다.
한번은 자기 배고프다고 포카칩을 사오라고 해서 사왔더니 작은거 사왔다고 욕 먹었다.
그냥 욕먹은게 아니다. 하루종일. 일요일 아침부터 취침 전까지. 진지하게 털렸다.
일병을 달았을땐 군 생활 끝난 느낌이 잠깐 들지만 곧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일병이나 이병이나 다를건 없다.
털리는것은 같았다.
다만 이병보다 활용가치가 높기 때문에 일을 겁나 많이 하게 된다.
게다가 신병까지 챙겨줘야하니 정말 더럽게 바쁘다.
나는 본네트를 열고 신병에게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것이 엔진이라고 알려줬다.
참고로 군 차량의 엔진은 누가봐도 엔진 같이 생겼는데 혹시 몰라 하나하나 다 알려줬었다.
그러나 나중에 모 상병에게 엔진을 ' 시동기 ' 라고 말하는 바람에 내가 털렸던 기억이 난다.
상병을 달고 분대장을 달았다.
맞선임도 말년 병장이 되서 더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나의 군 생활은 클라이맥스였었다.
나의 분대는 내 마음대로 움직였다.
이거 하라고 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하는 나의 분대원들.
뭔가 뿌듯하기는 했지만 책임감도 막중했다.
만약 무언가 실패를하거나 어긋나면 모두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맞후임이 소문난 S급 후임이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위기의 순간들을 많이 넘기고는 했다.
나는 그가 고맙고 미안했다. 내 실수도 그 녀석이 많이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S급 분대원들이 있다고 하지만 운전병이라는 주특기 특성 때문에 사고가 안나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분대원들이 사고를 칠때면 정말 후덜덜 거렸다.
분대원이 사고를 치면 털리는건 사고를 친 당사자가 아니라 분대장인 나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부대후임이 길거리에서 엔꼬(연료바닥)가 나서 차가 서버린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불려가 겁나 욕 먹었다.
이 일로 나는 간부들에게 미움도장 턱 하고 박혔다.
내가 잘못한게 아니라 분대후임이 잘못했어도 말이다.
비록 어깨위에 초록견장을 다는 최하위 계급이라 할지라도 분대의 책임을 져야하는 분대장이였기 때문에 내가 털렸던 것이다.
수 많은 사건사고가 끝나
나는 병장을 달았다. 분대장도 후임한테 던져 줬다.
진심 끝난거다. 이건.
분대장도 아닌 그냥 병장.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짱박혔다.
간부가 없는 곳이 내 쉼터이자 휴게소였다.
한마리의 다크켐플러가 되었던 나.
그런 다크캠플러를 찾아다니는 오버로드와 옵저버가 있지만 나는 나름 잘 숨었다.
그때 당시에 오버로드 역활을 해낸 분대 막내의 한이 맺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중사님이 신병장님을 찾아오시라고 하셔서 저는 생활관으로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제 당직근무를 섰던 박상병님이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박상병님에게 신병장님 어디가셨냐고 물어보았는데 ' 신병장님 PX 갔다.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PX에 갔더니 아무도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곳을 찾아보려고 나가려는데 PX병이 왜 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 신병장님 찾으러 왔습니다. ' 라고 하니 PX병이 흡연장에 갔을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곧바로 흡연장으로 향했으나 그곳에서도
신병장님은 안계셨습니다. 저는 못찾겠다 꾀꼬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오줌을 싸러가는데 신병장님이 잡지와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
다크 캠플러와 그를 찾는 오버로드.
이것이 병장 생활이다.
이런 생활도 잠시 나에게 3차 정기 휴가날이 다가오고 휴가를 나갔다.
휴가이지만 전역한 느낌이다.
복귀날에도 기분은 좋다.
복귀 다다음날. 전역이다.
전역증을 받았을때의 느낌은 20년 역사상 그 어떤 느낌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대학 합격했을때도 이 정도는 아니였다.
전역하고 집 가는 버스 안에서 비춰지는 밖의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