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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짐멜에 대해서 알아보자 (재미있는 사회학. 1편 짐멜의 삶)
게시물ID : phil_82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회학도
추천 : 5
조회수 : 684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2/1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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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 Simmel (1858 ~ 1918. 독일 베를린. 유태인)
최대한 재미있게 써볼려고 했습니다. 비하나 이런건 전혀 없으나,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 되네요... ㅜㅜ







세계 6대 사회학자를 아는가?

역사를 바꾼 혁명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

현대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맞춘 사회과학 전체의 대가 '막스 베버'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점의 존재를 밝혀낸 프랑스 사회과학의 시초 '에밀 뒤르캠'

생물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발전한다는 사실을 탐구한 '허버트 스펜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주체인 개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한 꿈 꾸는 사회과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게오르그 짐멜이다.


(인기 없는 대학 강사처럼 생겼다. 대학 강사는 맞으나 인기는 쩔었음)



독일 사회학의 시초로 보기도 하는 '형식사회학'
자본주의를 맑스와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접근한 '돈의철학'
미학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그외 저작들...

사회학, 미학, 철학을 통섭한 재능을 갖추고 있던 게오르그 짐멜만큼 저평가 된 학자도 찾기가 힘들다.

짐멜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학계의 유태인의 위엄)


다른 학계는 모르겠지만 사회학계에서 유태인의 업적은 어마어마하다. 마르크스, 베블렌, 짐멜, 부르디외, 루카쉬, 뒤르켐, 칼 만하임, 아도르노...

배우다 보면 끝도 없다.

유태인이라는 출신이 사회현상의 이면을 바라 보아야 하는 사회학의 특성에 적합한 '이방인'인 점이 위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왜 유태인이 이방인이냐?!




(전혀 상관 없는 사진... 그냥? 응. 그냥!)



당시 유럽 사회에서 유태인은 '이방인'이었다. 사회에 온전하게 소속 되어 있지 않는 그런 민망한 존재였다.

이유는 다들 알고 있....... 간단하게 말을 해보자면, 일단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가톨릭, 개신교도도 아니었으며 사회적으로 천대 받는 금융업이나 상거래업을 주로 하던 계층이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많고, 서양사와 철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니... 나중에 다루던가 해야겠네요.



어찌 되었든 짐멜은 아주 훌륭한 철학자였다. 당시 절대 지성으로 명성을 높이던 막스 베버와 친교도 나누었고, 베버는 공식적으로 짐멜을 지지하는 말도 자주 했다.


(Max Weber. 짐멜보다 어리고, 사회학도 늦게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잘나서... 사회과학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베버를 모를 수 없음)


당시 사강사(신청하는 학생 수 만큼 돈 받는 비정규직 강사)로서 짐멜은 인기도 겁나 많았다.

그의 강의는 항상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짐멜은 딱딱하고 거시적이던 당시 학계에 아주 신선한 존재였다.

미학과 의사소통을 다루고, 에세이적 글쓰기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회현상을 아주 감각적으로 다룬 학자였기 때문이다.


(장신구의 사회학, 식사의 사회학, 알프스에 관한 내용과 같은 아주 미시적이면서도 신선한 내용을 다룬 짐멜의 책)


당시 유럽 학계의 최대 집대성 중 한 곳인 베를린 대학에서 유명 강사였으나.

정규직 취직에 실패한다.

이유는?

유태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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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대학. 대표하는 사람은 다 쓸 수도 없다. 독일 지성인이라면 거의 다 연관있다고 보면 됨)



다행히 대부가 베를린에서 피아노 사업하던 사람이라서 유산은 많이 받았다. 그래서 돈은 좀 여유가 있었던듯.

짐멜은 좌절한다. 베버가 짐멜의 정규직 취업을 알선하였으나 출신의 한계는 어마어마 했다. 

짐멜은 좌절했다.







그러나 짐멜에게도 정규직 취직의 기회가 온다. 당시 독일땅이자, 현재는 프랑스의 영토인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정규직으로 취직에 성공한다.

때는 바야흐로 1914년. 그의 나이 57세였다. 





(독일침공으로 인해 프랑스어 수업이 마지막이었던 역사적 환경을 그린 '마지막 수업' 의 배경인 알자스 로렌 지방의 도시인 스트라스부르)













짐멜의 진짜 비극은 여기서 시작.





(말 그대로 대재앙. 1차대전)


유태인 학자로서의 삶의 애환을 극복하고 도착한 그곳에서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말 그대로 부임하자마자 터진다.

대학생들은 전원 군대로... 짐멜은 결국 수업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1918년에 생을 마감한다.

짐멜의 삶은 결국 유태인 사회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사회를 객관적을 조망할 수 있었던 유태인 짐멜은 이곳에 미학과 생철학까지 융합했던 아주 천부적인 학자였다.

마르크스나 베버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90년대 영미,유럽에서 시작된 짐멜 르네상스가 지금 한국에 까지 번지고 있다.

대체 왜 지금에서야 이 바람이 불고 있을까.






짐멜의 사회학 이론. 그리고 왜 지금 짐멜이 다시 링 위로 불려나왔는가.............는 2편에.

images (1).jpg


끛.






제가 전공하는 학문 중 제일 좋아하는 학자를 쉽게 소개하고 싶어서 러프하게 작성했습니다.
너무 가볍게 보이거나, 비하로 보여질까봐 두렵기도 하네요.

그러나.

많이들 알아주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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