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욱아 너 소개팅 해볼래?"
군을 제대를 하고나서 복학을 하자 내 일상은 학교와 집의 반복이었다.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은 이미 졸업반으로 취업하기에 바빴고 조금이라도 정신이 깨어있는 녀석들은 정신차리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한 주위의 분위기에 나 역시 영향을 받아 그들과 함께 스터디를 만들어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사실 나는 여자친구도 만들고 싶었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나아가기 보다는 아직 술을 먹고 떠들며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동물이라던가? 친구들의 면학분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나가던 1학기의 끝무렵 나는 친구에게 달콤한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다.
"야! 할거야 말거야?! 소개팅"
막상 공부 외에 다른 대학 생활의 길을 친구가 제시해 주었으나 나는 선뜻 그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동안 공부만 해 왔던 탓인지 새롭게 여성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했고 주머니 사정이나 하던 공부들이 생각나 고민이 되었다.
"음...?"
내가 뜸을 들이며 고민을 하는 듯 보이자 친구놈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장사하는 톤으로 말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다 빨리 물어!"
그러한 친구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소개팅에 나가겠다고 답변을 주었다.
"야 알았으니까, 사진이나 좀 줘봐"
친구는 핸드폰을 꺼내어 한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깨끗한 치아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있는 여대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지?"
친구는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으며 내 반응을 살폈다.
내 이상형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제법 귀엽고 예쁘장한 모습에 사실 나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고 그동안 메말랐으리라 생각했던 가슴에 한줄기 설레임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응 예쁘다... 근데 이 여자분은 내 정보를 알아?"
내 물음에 친구는 정곡을 찔린 듯이 주춤하면서 대답했다.
"어,아직 니 얘기는 안했고 그냥 내 여자친구가 친구중에 소개팅 원하는 애가 있대서...니 생각이 나더라고"
결국 친구의 말에 의하면 소개받을 여성분은 딱히 나를 원한 것은 아니었고 나는 내 사진과 정보를 주어 그녀의 허락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에라이! 너 같으면 저런 귀여운 여자가 나같은 난쟁이에 평범한 안경잽이랑 사귀어 주겠냐?"
나는 조금 역정을 내며 친구에게 다그쳤으나 친구는 아니라며 나를 은근히 비행기 띄워주며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뒤 친구의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래냐?"
"키는 상관 없고 사진 좀 보내 달라는데?"
절반쯤은 성공인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자리에서 최대한 멋져보이게 셀카를 찍어 전송해 주었다.
사진을 보내고 한동안 답장이 없었고 그 때문에 나는 한참을 후회했다.
"아...그냥 하지 말걸 괜히 까이면 기분 나쁠텐데"
내 자신감 없는 태도가 불만이었는지 친구가 어깨를 두드리며 강하게 말했다.
"임마! 니가 어때서 키 작아도 너정도면 인물을 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뭐가 꿀리냐? 자신감 가져!"
그리고 얼마 후 친구에게 소개팅의 성사 여부를 결정하는 답변이 전달되었다.
"오! 콜했다."
"정말?!"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복학생 아저씨에다 키도 작고 그다지 잘 난 구석이 없는 나를 뭘보고 소개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는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잘해봐라! 잘되면 술사고"
친구는 으스대면서 나에게 소개받을 여자에 대한 전화번호와 조금의 신상을 보내주었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이미 끝난 것처럼 확신하면서 생색을 내는 친구의 모습이 기가막혔으나 어쨌든 이러한 기회를 준 친구였기에 나는 별다른 말 없이 녀석의 생색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서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저 안녕하세요 이번에 소개받은 욱 입니다 반가워요^^
-아, 반갑습니다 ㅎㅎ
우리는 서로 카톡으로 인사를 하고 이것 저것 이야기 하다가 우리는 시험이 끝나고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주말까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를 정도로 나는 긴장을 하며 주말을 기다렸다.
약속 당일 나는 옷장 속에서 가장 세련되고 깔끔한 스타일로 차려입고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하필 오늘 비가오냐"
갑자기 비를 쏟아내는 하늘이 원망스러웠지만 식당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나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온 상태로 약속을 취소하기에도 조금 에매한 상황이었다.
지하철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바지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부르르르
핸드폰을 꺼내 보니 소개팅 녀에서서 카톡이 몇 통 와 있었다.
-저 죄송해요ㅠㅠ 비가 와서 조금 늦을거 같아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ㅠㅠ 미안해요ㅠㅠ
-ㅜㅜ
약속에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문자였으나 비 때문이라는데 뭐라할 이유도 없었고 나 역시 꽤 고민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답장해 주었다.
-괜찮아요 길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넵ㅠㅠ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지하상가에서 큰 우산을 하나 사서 쓰고 예약된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예약 확인을 마치고 예약된 자리로 가자 나보다 먼서 소개받기로 한 여자분이 와서 앉아있었다.
"어, 죄송합니다 늦으실거 같다더니 저보다 먼저오셨네요"
당황한 나는 재빨리 사과를 하며 맞은 편에 앉았고 그녀는 핸드폰을 보고있던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소개받기로 했던 여자분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괴리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뭐야 뽀샵빨이었나... 이렇게 안생겼던거 같은데'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그런데 지나치게 우유빛으로 건강한 색채가 아닌 화장실의 흰색 페인트처럼 메마르고 생기 없는 톤의 흰 피부였다.
사진에서 처럼 동그랗고 큰 눈을 가졌으나 뭔가 흐릿하고 초점이 없는 눈동자를 보자 나는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깨끗한 치아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있던 사진속의 인상과는 다르게 눈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입을 꾹 다문채 무표정하게 나는 응시했다.
아마도 자신보다 내가 늦게 도착해서 화가 난 듯 보였으나 나는 정시에 도착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소개팅을 이제와서 망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더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제가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정말 미안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슬쩍 웃었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으나 나는 애써 기분을 감추며 주제를 돌렸다.
"참 배고프실텐데 뭐 드실래요? 이 집은 크림파스타가 맛이 좋다고 하던데"
나는 웃으며 식사메뉴에 대한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계속 조소를 지은 채로 대꾸없이 나를 보았다.
그 비웃는 듯한 미소를 품은 여자는 과연 사진속에서 그렇게 밝게 웃던 여자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괴리감이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침묵속에서 당황하던 나는 다시 바지 속에서 떨리는 핸드폰을 느꼈다.
핸드폰을 꺼내자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는 앞에 앉은 소개팅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의 이름은 소개팅녀라고 떠 있었다.
순간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자 소개팅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여보세요?"
"저 욱씨 죄송해요...지금 어디신가요? 역에서 내렸는데 레스토랑을 못 찾겠네요"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 들었다.
"여보세요? 욱이씨? 여보세요?"
시선을 돌려 다시 앞 쪽을 바라보자 나머지 입꼬리를 귀까지 올린 채 마치 상어의 이빨같은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