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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중2주의] 사이코 패스 - 로미오의 무덤
게시물ID : animation_2413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k201
추천 : 0
조회수 : 12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20 00:35:51
※ 다소 오그라들 수 있습니다. 



"저희는 공안국 형사과입니다. 현재 이 구획은 안전을 위해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근 주민 여러분은..."

드론이 만들어 낸 앙증맞은 코밋사짱의 홀로그램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코밋사짱이 기계적으로 내뱉는 음성이 지향하는 바와 달리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 어느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하는 데도 왜 이렇게 몰려드는 거야" 

카가리의 불평은 드론의 벽 뒤에 몰린 수많은 인파를 향하고 있었다. 

"시빌라에 의해 좋은 것들만 보아온 자들에겐 이런 것도 나름의 일탈거리가 되나 보지"

"틀려 코, 예로부터 사건 현장은 좋은 구경거리였어"

"조용히 해!"

마사오카의 말을 의식이라도 한듯한 기노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집행관들의 대화를 끊었다.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한다"

기노자의 말에 다들 손목의 프로젝터에 시선을 돌렸다. 프로젝터에 비친 정체 모를 여성의 얼굴은 공안국 형사과 1계가 처리해야 할, 이코 패스 
규정치를 넘어선 인간으로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카츠라 마유, 사이코 패스 정기 검진에서 포레스트 그린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격리 되었지만 시스템 해킹으로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도주. 
현재 이 블록에 숨어 들어 있다"

기노자는 옆으로 손짓해 프로젝터의 화면을 바꾸었다. 집행관들의 프로젝터도 기노자의 손짓에 따라 화면이 전환되었다. 프로젝터에는 다른 남성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오오츠카 사이토, 격리 병동의 시스템을 해킹해 카츠라 마유의 도주를 도운 자로 그녀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에 기록된 사이코 패스 수치는 
정상이지만 카츠라 마유와 같이 있으면서 수치가 상승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 자도 보는 즉시 도미네이터의 지시에 따라 처분하도록"

기노자의 프로젝터가 꺼진 뒤 집행관들의 프로젝터가 꺼졌다. 

"사이코 패스 수치가 정상인 사람이 잠재범의 탈출을 돕는 것도 모자라 함께 행동하고 있다니.."

"혹시 연인 사이 아니야~"

쿠니즈카의 의문에 카가리는 능글맞은 투로 치근거렸다. 기노자는 가벼운 모습을 보이는 카가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카츠라와 오오츠카의 수신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둘의 사이는 제법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카가리는 자신이 한 수 앞서나갔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씨익 웃었다. 코가미는 기가 찬다는 듯 허파에 바람 찬 비웃음을 내뱉었다. 

"시대에 뒤쳐진 로맨티스트라.."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의 시대를 제일 많이 맛 본 마사오카는 옛 추억을 곱씹는 것 같았다. 확실히 지금의 사회는 예전과 비교 할 수도 없이 안락하고 
고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 또한 그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빌라 시스템이 일정 연령이 되면 추천해주는 
짝을 만나 사랑했고 함께 했다. 인격, 자본, 가치관 등 교제와 관련된 모든 요소를 포함한 추천이었기 때문에 시빌라 시스템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의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나가는 이야기도 이젠 구시대의 유물 혹은 대리만족의 매개체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마사오카가 이 사건에 향수를 느끼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리라. 

"허튼 소리 집어치워! 이들은 사이코 패스 규정치를 넘어선 사회의 악이다! 그런 시대착오적 발상은..."

"그 쯤 해둬 기노" 

코가미는 기노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기노자도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역정을 낸 것을 인지했는지 헛기침을 한 뒤 일을 진행하기 위해 도미네이터를 실은 드론에게서 도미네이터를 뽑았다. 집행관들도 감시관을 따라 드론에게서 도미네이터를 뽑았다. 언제나 그렇듯 도미네이터의 기동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마사오카와 카가리는 나를 따라와라. 코가미는 쿠니즈카와 함께 다른 경로를 탐색하도록" 

"예이~ 예이~"

카가리는 유쾌하게 말하며 마사오카와 함께 기노자의 옆에 섰다. 

"그리고 코가미, 10분에 한번씩 상황을 보고해"

코가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노자는 코가미를 의식하는 시선을 잠깐 보내더니 이내 마사오카와 카가리를 덤불과도 같은 건물들 사이로 들어갔다. 


기노자 일행이 간 뒤 코가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에 잠겼다. 1계가 두갈래로 갈라진 이유는 효율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1계가 쫓는 잠재범들은 
단수가 아닌 복수, 그들 또한 같이 행동하기 보다는 따로 떨어져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수배범이 된 두명이 함께 행동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고 
설사 처분 되더라도  두명이서 처분되는 것 보다는 한명이 처분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둘이 연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같이 행동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맥락으로 연인을 위한 희생으로 각자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치닿으면서까지 감성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로 따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유는 어찌 됐든 코가미는 자신의 감이 향하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시켰다. 

물고 있던 담배의 불이 꺼졌다.

코가미는 이 블록엔 카츠라 마유와 오오츠카 사이토의 은신처 및 숨겨진 도주로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들은 격리 병동의 시스템을 
해킹하면서까지 탈출을 감행했다. 그 다음 계획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버려진 블록도 아닌 여전히 번화가로 쓰이는 
거리에 그들이 숨어 들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시온, 이 블록의 예전 기획도를 찾아봐 줘" 

"어느 년대서부터?"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

"뭐?"

코가미는 웃으면서 말했다. 

"부탁할게. 책임은 내가 질테니" 

"..알겠어"

코가미는 분석관, 시온에게 연락해 블록의 기획도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정식상으론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의 기획도는 폐기되어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겠지만 시온은 나름의 꼼수를 쓰는 게 가능했다. 잠시 후 시온에이 보낸 기획도를 받은 코가미는 기노자에게 사전에 받은 현재 블록의 기획도와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의 블록의 기획도를 대조하여 특별히 모난 곳을 찾아 보았다.

'이건..'

한 건물이 자후 수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코가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와 지하 수도가 있는 건물과의 거리를 쟀다. 

 "이쪽으로!"

동남쪽으로 15분 거리에 지하 수도와 연결된 건물이 있다는 걸 확인한 코가미는 기노자 일행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쿠니즈카도 
묵묵히 코가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드론 한대가 오더니 수납되어 있던 팔을 꺼내 코가미가 버렸던 담배꽁초를 집어 안으로 넣었다. 

...

"그나저나 요즘에도 이런 낭만적인 녀석들이 있을까요?"

마사오카에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카가리에게선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사오카 또한 그러했다. 카가리 쪽이 본인 특유의 성격에 의한 
여유라면 마사오카는 예전부터 형사로써 일해온 자의 여유라고 볼 수 있었다. 

"글쎄.. 그 쪽은 문외한이어서 말이지" 

마사오카는 의수인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겐 이미 아내가 있었을 뿐더러 아들인 기노자는 이성교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사오카도 
자연스레 그 분야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기노 선생은 어떻게 생각해?"

"..."

기노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집행관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카가리는 꽉막힌 감시관의 태도에 혀를 찼고 마사오카는 맡은 역할에
신경을 쏟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말없이 빙긋 웃었다. 건물들 사이로 더욱 깊숙이 들어와서 기노자는 프로젝터를 켜 거리의 감시 카메라에 카츠라 
마유와 오오츠카 사이토의 얼굴을 대입해 수색하도록 했다. 감시 카메라는 기노자의 명령이 입력되자 고개를 분주히 기웃거리며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코가미다. 지하 수도로 통하는 건물을 발견, 지금부터 쿠니즈카와 함께 탐색에 들어간다" 

코가미의 통신이 끊긴 후 코가미와 쿠니즈카가 향한 건물의 위치와 그 건물 안의 구조를 상세히 표시한 약도가 왔다. 확실히 지하 수도라면 도주로로 
쓰였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기노자는 코가미의 선택이 석연치 않았다. 

3년 전의 그 날 이후 코가미는 범죄계수가 상승했고 그에 따른 강등 조치를 받았다. 집행관으로 격하된 코가미는 동류를 쫓기 위한 개가 되어 그 
후각을 점차 발달시켜 나갔다. 아버지에 이은 동료의 타락을 옆에서 지켜 본 기노자의 심정은 지금까지도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코가미의 선택을
힐난할 마음은 없었지만 논리적인 이유가 아닌 감각을 이용해 길을 찾아냈다는 생각은 찜찜함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프로젝터가 다시 켜졌다. 화면에는 평범한 시민들의 틈에 숨어 들은 잠재범, 카츠라 마유의 모습이 있었다. 곧 몇장의 사진이 더 보내졌다. 기노자는 
사진이 찍힌 장소와 시간을 대조해 카츠라 마유가 현재 있을 장소를 계산했다. 

"따라와라" 

기노자는 도미네이터를 바지 뒤춤에 넣어 숨긴 다음 골목을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도미네이터를 든 채 거리로 나간다면 일약 소동이 일어나 수색에 
혼동을 빚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안국 베테랑인 카가리와 마사오카도 그 뜻을 이해하고 옷의 남는 공간에 도미네이터를 숨긴 뒤 기노자를 
따라갔다. 늦은 밤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북적거렸다. 상점가의 건물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진열대에 배열한 물건을 화려한 조명으로 비추고 있었고 연인들은 서로의 옆구리를 빈틈 없이 채우고 있었다.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에도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지금부터 홀로 슈츠로 위장한 채 수색에 임한다"

기노자는 홀로 슈츠를 켜서 공안국의 마스코트인 코밋사짱의 모습이 되었다. 카가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손으로 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냉철하고 지적인 기노자와 코밋사짱의 이미지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잠재범에게 접근하는 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지식하신 기노자 
선생께서 솔선수범을 보이시는 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거리에 등장한 코밋사짱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천천히 나아갔다. 마사오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손을 흔들어 주는등 평범한 
코밋사짱의 모습을 연기했으나 기노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도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꿋꿋이 정면을 바라보며 걸었고 카가리는 
자기 취향에 맞는 여성들에게 과도한 인사를 하는등 고장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저기 있군"

코밋사짱의 모습으로 거리를 행진한지 15분 째, 눈썰미가 좋은 마사오카는 한참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카츠라 마유를 발견했다. 카츠라 마유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써서 최대한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그런 보호색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것이었고 집행관들의 눈에는 되려 형광색으로 
보이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카가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다른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해라"

기노자는 카가리를 무리에서 떨어뜨린 다음 마사오카와 함께 천천히 카츠라 마유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홀로 슈츠를 끄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홀로 슈츠를 해제하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둘은 점점 카츠라 마유와 점점 가까워져 갔다. 

"쳇! 눈치챘다 이건가!!"

기노자와 마사오카의 모습이 카츠라 마유에게도 보이게 되었을 쯤, 카츠라 마유는 급하게 반대편으로 도망가 버렸다. 대각선으로 먼저 앞서 
나가있던 카가리는 홀로 슈츠를 해제하고 무작정 카츠라 마유를 쫓았다. 기노자와 마사오카 또한 카츠라 마유가 도주하는 모습을 보고 카가리처럼 
홀로 슈츠를 해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


지하 수도로 연결된 건물에 들어 온 쿠니즈카와 코가미는 건물의 약도를 보며 빠르게 움직였다.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건물이기 때문에 길을 찾는 
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코가미, 이쪽으로 와"

지하 수도로 통하는 길을 찾아낸 쿠니즈카는 코가미에게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 어두운 복도에서 프로젝터의 빛에 의지하며 걸어 
오는 코가미를 볼 수 있었다. 

"들어간다"

코가미가 앞장 서서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하수 특유의 오물 냄새의 농도가 점점 짙어졌다. 형사과 일을 계속 해오면서 비위가 
어느 정도 늘은 코가미였으나 그의 표정은 격한 오물 냄새에 저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코가미가 이 정도이면 쿠니즈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조명이.."

코가미와 쿠니즈카는 드디어 지하 수도에 다다랐다. 그와 동시에 코가미의 추측이 맞아 떨어졌다는 증거가 눈 앞에 펼쳐졌다. 시빌라가 생기기
이전에 쓰였다는 시설이라면 지금에서야 쓰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지하 수도에는 조명이 켜져 있었으며 그 조명들은 마치 
보는 사람으로 하게끔 이 길을 따라오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코가미는 아까처럼 자신이 앞장 서서 지하 수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도미네이터는 유사 상황이 오면 언제든지 쏠 수 있게 양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

조명이 끊긴 곳에는 녹이 슨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써진 팻말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겼으나 그럴수록 코가미는 확신에 찼다. 영리한 사냥감일수록 남들이 두려워 하는 곳으로 숨어 들어 자신을 숨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 또한 사냥감 못지 않게 지능적임에 분명하다. 철문 너머에는 카츠라 마유 혹은 오오츠카 사이토 어쩌면 그 둘 전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코가미는 쿠니즈카에게 사인을 보낸 뒤 철문의 왼쪽 벽에 바싹 붙었다. 쿠니즈카도 코가미의 지시를 알아 듣고 반대편 벽에 밀착해 기습할 준비를 했다. 코가미와 쿠니즈카의 숨소리가 같은 박자를 이루며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움직였다. 

"젠장"

코가미는 몸을 있는 힘껏 부딪혔지만 철문은 요란하게 울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발길질을 몇번 더 해봤지만 역시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쿠니즈카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다. 상당히 오래 방치되어 있었던 문인지 쇠를 긁는 소리가 여간이 아니었다. 

"으아아!!"

손잡이를 다시 돌리고 천천히 손을 떼던 쿠니즈카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손잡이를 붙잡았던 쿠니즈카의 손은 매우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코가미는 쿠니즈카의 떨리는 손을 진정시킨 다음 그 이유를
물었다. 

"방금 전엔 운이 좋았어... 전류야, 지금 이 문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어" 

쿠니즈카는 철문에 전류가 주입되려 할 때 손을 떼었던 것이다. 쿠니즈카의 우연찮은 희생이 아니었다면 둘 중 한명은 감전사한 동료를 눈 앞에서 
지켜 본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로써 이 철문 안에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 졌다. 코가미는 위험 요소가 가미된 철문에 
도미네이터를 겨누었다. 

"대상의 위협 판정이 갱신되었습니다. 집행 모드 디스트로이 디컴포저. 대상을 완전히 배제합니다. 주의해 주십시오"

문에 흐르는 전류는 치사량을 훨씬 웃도는 양이었고 그에 따라 코가미가 쥐고 있던 도미네이터는 조준점에 안에 들어오는 대상을 완전히 말소시켜 
버리는 형태로 변했다. 이내 철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커다란 원 모양의 구멍이 뻥 뚫렸다. 

그 안에는 겁에 질린 오오츠카 사이토가 있었다. 

"공안국이다"

코가미는 딱히 필요없는 대사를 내뱉은 뒤 도미네이터를 겨누었다. 이제 오오츠카 사이토의 운명은 그의 연인이 겪어야 했을 정신 치료 혹은 이 
사회에서의 배제가 될 것이었다. 

"범죄계수 103, 집행 대상이 아닙니다. 트리거를 잠급니다" 

도미네이터는 어떠한 투사체도 발사할 수 없었다. 격리 병동의 시스템을 해킹해 잠재범의 탈출을 도운 오오츠카 사이토는 시빌라 시스템이 보장하는 
이 사회의 시민이었다. 아슬아슬한 수치였지만 그는 엄연히 심판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 그가 저지른 죄는 명백했다. 코가미는 착잡한 표정으로 도미네이터를 거둔 다음 몸을 잔뜩 움츠린 
오오츠카 사이토에게 다가갔다. 

"일어서" 

오오츠카 사이토는 코가미가 내민 손을 조심히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범죄자의 즉결 처분을 모토로 삼는 시빌라의 사회에서 코가미는 
범죄자를 연행하기로 했다. 다소 파격적인 행동이었지만 다른 뾰족한 수도 없었다. 

"코가미..?!"

"범죄계수가 낮아서 도미네이터가 들지 않아. 이대로 기노 일행과 만나야겠어"

코가미는 오오츠카 사이토의 한 팔을 뒤로 꺾은 채 걸어 나왔다. 쿠니즈카는 자신의 도미네이터로 오오츠카 사이토의 범죄계수를 측정해 보려 
했으나 감전된 손의 경련이 아직도 멈추지 않아 도미네이터를 들 수가 없었다. 

"코가미..."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코가미는 가볍게 웃으며 프로젝터를 켜 기노자에게 말했다.

"코가미다. 현재 오오츠카 사이토를 생포, 이대로 합류하겠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범죄계수가 기준에 미치지 못해.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어"

"...알겠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한 경위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알겠어"

프로젝터가 꺼졌다. 코가미는 자신이 허튼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쿠니즈카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걸을 수 있겠어?"

"아니.. 코가미, 감시관 일행과 합류하게 되면 의료용 드론 한대를 보내줄 수 있겠어?"

코가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남게 된 쿠니즈카도 도주의 우려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과거 그의 친구에게 도미네이터를 겨누었었고 
트리거를 당기기까지 했었다. 그녀가 공안국을 배신할 일은 없었다. 코가미는 쿠니즈카를 뒤로 하고 오오츠카 사이토를 무력화 시킨 채 지하 수도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조명이 점멸하기 시작했고 수도를 흐르는 오수는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코가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인거지"

"..제가 당신에게 대답할 이유는 없어요"

"공안국의 집행관으로써 묻는 게 아니야"

"그럼..?"

"생각에 맡기지" 

코가미의 마지막 말에 오오츠카 사이토는 한숨을 내뱉었다. 한숨의 길이는 짧았지만 그만큼 굵은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마유가 잠재범 판정을 받았을 때 다들 제게 말하더군요. 그런 잠재범과 만나고 있었다니 큰일 날 뻔했다고.. 그리고 시빌라에서 추천해 준 새로운 
짝을 만나라고" 

"하지만 전 납득할 수가 없었어요. 수치의 변동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라고 하는 이 사회를.." 

".."

"더 나아가서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코가미가 붙들고 있던 팔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오츠카 사이토는 도망가려 들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코가미에게 
전달하려 했다. 

"시빌라 덕분에 그 누구도 힘들이지 않고 자신의 현재상황과 맞춰진 최적의 연인을 만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무리 마음이 맞지 않는 연인이라도 사랑에서 비롯된 배려로 서로를 맞춰나가다 보면 퍼즐은 어느샌가 완성되어져 있어요. 제가 마유와 그러했듯이
말이죠.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에요"

코가미는 오으츠카 사이토의 팔이 격렬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빌라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정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당장에 느껴질 편리를 이유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부정했어요. 이젠 어느 
누구도 사랑을 진솔하게 여기지 않아요. 대체품이야 얼마든지 넘쳐 나니까요 ..시빌라가 만든 사회를 자각하고선 마음이 바뀌었어요. 전 시빌라를 
부정하기로 했어요. 사람의 아름다움을 잃은 채 살아가지 않을 거에요"
 
오오츠카 사이토의 말은 매우 은유적이었다. 그가 방금 말했던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시스템인 시빌라, 그는 그런 시빌라를 부정함과 동시에 
사람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었기에 자신의 연인을 탈출시킨 것이었다. 

"범죄계수가 고작 이 정도라는 게 신기한 걸"

코가미는 농담조로 말한 뒤 소리내어 웃었다. 비웃음의 의도는 담겨 있지 않은 순수한 의미로써의 웃음이었다. 오오츠카 사이토도 희미하지만 
미소를 지었다. 체념섞인 쓸쓸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존중 받았다는 기쁨의 비율이 더 컸다.

시대에 뒤쳐진 로맨티스트, 마사오카는 오오츠카 사이토를 꿰뚫어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 코가미가 아닌 마사오카가 있었다면 마사오카는 코가미가 
느꼈을 감정 보다 풍부한 감회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유는 어떻게 되었나요"

코가미는 오오츠카 사이토와의 대화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지만 그 감상을 내뱉지는 않았다. 발걸음의 속도를 올릴 뿐이었다. 오오츠카 사이토는 
시빌라를 거역한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기에 코가미의 태도를 원망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마유의 운명도 크게 바뀌지는 않으리라. 

"코가미다. 그 쪽의 상황은 어떻지?"

"카츠라 마유, 범죄계수 215로 처분되었다"

프로젝터 너머로 들리는 기노자의 말에 오오츠카 사이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를 붙잡고 있는 코가미의 몸이 저절로 기울어졌다. 말이 
처분일 뿐이지 사실상 도미네이터로 기절 시켰다고 보면 되었지만 기노자의 말은 오오츠카 사이토를 좌절 시키기에 충분했다. 코가미는 붙잡고 있던 
오오츠카 사이토의 팔을 놓고 뒷주머니에 꼽힌 도미네이터에 손을 뻗었다. 

귓가에 들리는 지향성 음성은 코가미에게 사용 승인을 알려주었고 이내 조준점 안의 대상에게 논리셀 패럴라이저 판정을 내렸다.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간단한 행위.. 모든 일을 끝마친 코가미는 프로젝터를 켰다. 

"오오츠카 사이토의 범죄계수가 115로 갱신, 처분했다.. 그리고 이 곳으로 의료용 드론 한대를 보내줘"

....

"도미네이터가 잠재범을 심판하지 못했다니 그게 어떻게 된 일이야?"

공안국으로 돌아가는 호송 트럭에서 집행관들은 이번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엔 처분되었어"

"..그렇군"

"그나저나 감시관 새로 온다는 얘기는 없나? 기노 선생과 일하는 것도 슬슬 지친다고"

카가리는 기노자의 아버지인 마사오카를 옆에 두고도 말에 거침이 없었다. 

"걱정 마. 조만간 새로운 감시관이 1계에 배치된다고 들었어"

분석관 시온의 목소리가 프로젝터 너머로 들렸다. 

"정말이야? 이왕이면 귀여운 여자애였으면 좋겠는데!!"

카가리는 호송 트럭이 떠나가라 즐거운 함성을 질렀다. 코가미와 마사오카는 그런 카가리를 보며 가벼운 웃음을 띄고 있었고 반대편에 있던 
니즈카는 카가리를 강제로 침묵시키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화장도구를 꽉 쥐어 던질 태세를 취했다. 

"어이 코"

카가리가 쿠니즈카가 던진 물건에 맞아 깨갱거린 후에야 호송 트럭은 본래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사색에 잠겨 있던 코가미는 마사오카의 부름에 
시선을 올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아무 것도 아니야"

코가미는 애써 웃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증명하진 못했다. 마사오카 또한 코가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아 하는 것 같았기에 더 이상 대화의 진도를 빼지는 않았다. 

"..아저씨, 아내가 있었다고 했지"

코가미와 마사오카 사이에 형성된 정적을 깬 건 코가미였다. 

"어, 그것도 옛날 얘기긴 하지만"

"결혼생활은 어땠어?" 

"뭐.. 그냥 평범했었지. 잘 지낼 때도 있었고 싸울 때도 있었고"

"..."

코가미는 더욱 깊은 사색에 잠기려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 한번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 이유는 이제와선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문제였었지"

마사오카는 코가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스스로가 제시한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결심한 코가미는 마사오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난 그녀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어. 여자들은 그렇게 작은 일에도 화를 낸다는 사실에 넌덜머리가 났었지.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었어. 일의 시작은 나의 좋지 않은 버릇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거고 그녀가 화를 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사오카의 입꼬리에선 옛냄새가 나는 미소가 걸려져 있었다. 

"난 어느샌가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고 있었고 그녀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 있었어. 편지의 필체는 거칠기 그지 없었고 선물은 참으로 
소박했었지. 그래도 그녀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기뻐했고 자기야말로 사소한 일로 화낸 것에 대한 사과를 했어. 그리고 그 일이 있은지 일주일 후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어"

코가미는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을 잠시 접고 추억에 젖은 마사오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였지만 이렇게까지 
진한 그의 웃음을 볼 기회는 좀처럼 흔하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나는 얘기가 없어서 미안하군"

"아니야, 그 정도면 될 것 같아.. 고마워 아저씨" 

코가미는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문제의 해결을 무기한으로 보류시킬 수 있는 답을 얻었다. 

호송 트럭의 문이 열렸다. 카가리, 쿠니즈카, 마사오카가 내리고 난 뒤 마지막으로 트럭에서 내려온 코가미는 양쪽으로 배열된 드론들의 중앙에 
새겨진 시빌라 시스템의 마크를 흘겨 보았다. 그러는 사이 드론 한대가 열을 이탈하여 코가미 앞에 섰다. 

"..정말이지"

코가미의 앞에 선 드론은 홀로그램으로 코가미가 버린 담뱃재에 대한 벌금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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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은 언제나 필력 향상 겸 자기만족.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등장인물의 대사에 적절히 녹여내는 작가 분들이 정말로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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