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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브레인 디자이너)
게시물ID : freeboard_7691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춘화
추천 : 0
조회수 : 2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21 22:34:06
 
 요즘 책을 잘 안 읽잖아요. 그래서 단편집으로 책을 냈습니다. 70%의 책이 100권도 안팔린다는데 전 그나마 한 달만에 100권을 넘겼습니다. 그래도 제게 돌아오는 돈은 10만원밖에 안돼요. 사람들에게 그래서 광고라도 해보려고요. 한번 읽어 보시고 책 읽는 분들에게 추천 좀 해주세요, 검색하면 다 나와요.
 
커피와표지1.jpg
 
 

4. 미안하다, 사랑한다, 용서해다오.
 

<따르릉 따르릉> 이 소리는 아버지가 퇴근했다는 신호였다. 어머니께서 맨발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출발신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옷을 받아들었다.
 
식사는 했능교?”
묵었다.” 이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와 얘기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라곤 고작 <공부 잘 하나?> <엄마 말 잘 듣나?> 이런 말이 고작이었다. 내게 용돈을 준적도 나를 안아 준 것도 내 기억에는 없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 나는 커서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커서 절대 공무원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청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낡은 양복을 입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10리나 되는 군청까지 출근하는 아저씨였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무능한 아버지였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연세는 쉰여덟, 가끔씩 고향집에 들릴 때면 아버지께서 늙으셨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커갈수록 느껴지는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졌다. 대학공부를 한답시고 내 딴에는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뜩 느껴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초채하지만 위엄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당시 모든 아버지들이 갖고 있는 엄격함에서 오는 위엄으로만 생각했지 그 이상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가 무슨 약을 잡숫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슨 약인지 알아보라고 하셨지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워낙 말씀이 없으신 당신께서 말해주시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은근한 반항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자끼리의 껄끄러움인지, 엄숙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연세에도 아버지의 교통수단은 낡은 자전거 한대와 아주 낡은 자전거 한대 그것뿐이었다.
 
대학1학년을 마칠 때쯤 노동자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많은 노동관련 서적을 읽었고,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만큼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값싼 노동으로 노동착취를 당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었다.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떠오르는 아버지의 얼굴, 노동자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말이 없으신 아버지의 엄숙함, 법을 따지면 따질수록 생각나는 아버지의 자전거, 한 집안의 가장으로 버티지 않으면 생계를 잇지 못하는 절박함을 느끼게 되었다.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고작 자전거 두 대가 아버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대학1년을 다니는 동안 내 마음엔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이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83년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겨울방학 하숙집으로 전화가 왔다. 빨리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기차를 타고 출발할 땐 제발 다시 살 수 있으시길 찾지도 않던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집이 가까워질수록 <제발 내가 갈 때까지만 이라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 말 만이라도 듣고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서울과 고향집은 너무 먼 거리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내려 걸어가는 길은 왜 그렇게도 멀기 느껴지는지.
 
저만치 집이 보이기 시작 할 무렵, 우리 집 부근엔 이미 불이 밝아 있었고, 동네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사람의 직감은 나쁜 곳에만 들어맞는다고 했던가? 나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볏짚가리에 아래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 없는 눈물만 흘러내리고 저만치 어머니의 곡소리만 들렸다. 나는 이렇게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한번이라도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이제야 당신 맘을 이해하는 당신의 아들이 왔는데 그것마저 들어주지 않고 가시다니...... 또 한 번 죄를 짓게 하시는 군요.>
 
그렇게 3일 장을 지내고 군청에서 유품이 왔다. 유품이라곤 똑같이 생긴 다이어리 23권과 필기도구, 내가 용돈을 모아 선물한 손목시계 상자였다. 다이어리는 공무원 생활을 하시면서 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태우려고 마당으로 나갔다. 옷가지에 불을 붙이고 그래도 확인을 하려고 펼쳐보았더니 그것은 짤막짤막하게 쓴 일기였다. 그나마 긴 것은 사연이 있는 날이었다.
 

 

1962617일 흐림
아침부터 아내가 배가 조금씩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삭인 아내는 아기가 나올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집일이 신경 쓰인다. 삼십분마다 전화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과장님께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직장에 다니는 공무원인데 일을 두고 간다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 질 않았다.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장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했다. 다행이 아이가 나오기 전에 장모님께서 오셨다. 퇴근하여 집에 와보니 검붉은 핏덩이 같은 아기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정말 내 아이인가? 정말 내가 아빠란 말인가? 아기가 왜 까맣게 생겼지? 얼른 깨서 나를 쳐다 봐 줬으면... 한번 깨워볼까? 너무 작아 만지기가 겁난다. 그냥 두자아버지께서 오셨다. 돌림자를 딴 이름도 지어 주셨다. ‘현 민국’ ‘현명한 대한민국이라고 하신다. 장모님께서 아내와 같이 주무신다고 하기에 나는 건넌방에서 혼자 자면서 현 민국, 현 민국 ...... ’ 부르면 부를수록 내가 아버지가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 민국이 있는 방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늦은 밤이라 갈수가 없다. ‘민국아 잘 자, 내가 니 아빠야...’
 

 

1962618일 맑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안방에서 혹시 일어났는지 기웃거려 봤지만 인기척이 없다. 세수를 하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 장모님께서 나오셨다. “자네 이렇게 빨리 출근하는가?” “아닙니다. 오늘 좀 빨리 깨서 잠이 안 오네요.” “자네 애기 보고 싶어 그라지? 빨리 들 가 보게!” 그리고 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부시시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아기를 안고 싶어 아기가 갈고 있는 이불을 통째 들려고 했더니 들지 마~이소. 어무이가 한번 들면 계속 들어 줘야한다 캅디뎌!” 이불 밑으로 집어넣었던 손을 뺏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 아기가 보고 싶었다. 낡은 자전거는 왜 그렇게 안 나가던지. 집에 와보니 장모님도 안계시고 아내는 밥을 챙기러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냥 누으라고 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고픈지 몰랐다. 그런데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른 안아줬다. 우는 입이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모양이 너무 귀여웠다. 안아주니 울음을 멈추었다. 오래 안고 있으니 팔이 아파 내려놓았다.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불 밑에 가시가 있나싶어 찾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안아줬다. 그랬더니 아기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너무 귀여워서 뽀뽀를 해줬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또다시 운다.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큰일 났네, 이게 손 탄다는 말인가 봐요. 안아주지 말라카던데... 우야능교?” 밤이 늦도록 안았다 내려놨다. 자는 줄 알고 내려놓으면 큰소리로 운다. 3시 땀은 뻘뻘 흐른다. 아내는 이제 이틀째인 산모, 팔다리, 허리, 졸음 부모님이 생각났다. 나도 이랬을 것이다.
 

 

1983128일 흐림
올해가 인생의 마지막인 것 같다. 사직서를 냈더니 과장님께서 내가 자네사정 다 아는데 이게 먼 짓이야!” 하시면서 집어 던졌다. 나는 아무 말을 못했다. 아내에게 알려질까 아프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더니 그 난리셨다. 몸의 힘은 점점 빠져가고 이젠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자전거가 빵구난다고 타지 말라고 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정신이 없어진다. 몸은 왜 이렇게 불어 오르는지...... 두 아들이 보고 싶다. 가지고 다니는 책들을 보면 노동운동하는 것 같다. 내 아들이 나보다 나은지도 모른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외칠 수 있으니까. 난 아들보고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자전거 두 대뿐인 못난 아버지가 아닌가! 내가 아이들에게 정말 못난 짓을 한 것 같다. 한번이라도 안아 줬어야 하는 건데...... 한번이라도 손을 잡아 줬어야하는 건데...... 다시 한 번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내가 먼저 손을 잡아 봐야지...... 아들아 사랑한다. 내게 기회를 한번이라도 주렴......
 

 

1983219일 눈
눈이 너무 아름답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마지막엔 모든 세상이 아름답다더니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도 챙기지 못하고 둘뿐인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아들은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까? 이해 못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 못했듯이 그렇게 대를 이어가며 나중에야 알게 되겠지...... 그것이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른다. 한번쯤 아들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민국, 민성 너희들을 사랑한다. 너희들을 끓어 안아 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못하게 됐다. 너희들이 다쳤을 때도 마음이 아프면서 입에서는 남자가 그걸로 울어? , 그쳐!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단다. 그것이 아버지다운 말이었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다. 이것이 내가 쓰는 마지막 일기가 될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 민국, 민성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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