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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놀이가 불편한 것은 저 뿐인가요..?
게시물ID : history_8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화폐전쟁
추천 : 12
조회수 : 2306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3/04/01 11:35:18

진해 군항제를 필두로 각 지역마다 벚꽃 축제가 한창입니다.

아침 뉴스에서도 오늘은 어느 지역이 벚꽃이 많이 피었다, 어느 지역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는 뉴스가 빠지질 않더군요..

벚꽃놀이가 왜색(矮色)이 짙은 문화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벚꽃놀이가 원래 일본 문화의 일부이지만 왕벚꽃나무 원산지도 우리나라 제주도고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꽃놀이를 즐겼었는데 굳이 딴지걸 필요가 있느냐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 벚꽃놀이가 거슬립니다.

뭐, 개개인이 예쁜 꽃 보러가는 정도야 괜찮다지만 이맘 때만 되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벚꽃, 벚꽃 난리를 부리는 것이 싫어요.

또 벚꽃축제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마다 벚나무를 잔뜩 심어대서 온 나라를 벚꽃 천지로 만드는 것도 싫구요..


벚꽃놀이는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의 뿌리깊은 문화입니다.

위키백과에서 '벚꽃놀이'를 검색하면 '하나미'가 나오는데요,

하나미의 유래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B2%9A%EA%BD%83%EB%86%80%EC%9D%B4


하나미(일본어: 花見, はなみ)는 일본에서 벚꽃 등의 꽃을 감상하면서,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습관을 일컫는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3월에서 4월에 걸친 봄 기간에 핀 벚나무의 밑에서 벌어지는 연회, 파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하나미의 유래

하나미는 귀족이 즐기는 행사에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나라 시대에는 매화를 감상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벚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가 천황이 궁중에서 연 연회가 최초로 벚나무를 대상으로 한 하나미였다는 설이 있다. 헤이안 시대의 궁중의 하나미에 관한 기록은 '겐지모노가타리'의 '가엔'에 적혀있다. 겐지모노가카리에서는 등꽃을 감상하는 연회에 대한 기술이 남아 있으나, 이 시기의 '꽃'은 벚꽃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져, 벚꽃을 바라보며 하나미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가마쿠라 시대의 수필가인 요시다 겐고의 수필 '도연초'에는 귀족풍의 하나미와 그렇지 않은 시골 풍의 하나미의 차이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고, 무로마치 시대에는 지방의 무사계급이 하나미를 즐겼다는 사실이 전해내려온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들밖으로 나와 하나미를 했다는 사실이 그림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이 시기에 가장 대규모의 하나미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연 '다이고의 하나미'를 들 수 있다.하나미의 풍습이 널리 서민에게까지 퍼진 것은, 에도 시대, 도쿠카와 요시무네가 에도의 각 지역에 벚나무를 심게 해, 하나미를 적극 장려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에도의 유명한 하나미 장소로 아타고 산(愛宕山, 미나토 구) 등이 있다. 이 시기의 하나미를 주제로 한 라쿠고가 몇 편 전해진다.

..


반면 우리나라에는 저와 같은 형식의 꽃놀이가 없습니다. 유사한 꽃놀이로 '화전놀이'가 있습니다만 화전놀이는 산이나 계곡으로 놀러가서 주로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먹으며 노는 것으로, 벚꽃놀이와는 사뭇 다릅니다.

화전놀이에 대한 네이버 사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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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벚꽃놀이가 성행하게 됐을까요..?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벚꽃놀이'를 검색하면 '창경궁'이 뜨는데 여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창경궁에 대한 네이버 사전 링크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1909년(순종 3)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강제로 한일합병조약(韓日合倂條約)이 이루어진 이후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


그러면 유명한 '진해 군항제'의 벚꽃나무는 어디서 유래했는지 살펴볼까요..?

'진해 벛꽃놀이의 유래'에 대한 한겨레 커뮤니티 글 링크


또, 유명한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성했습니다.

'[신간] 벚꽃의 비밀.. 군국주의의 그림자' <- 끝까지 한번 읽어보세요.


다른 유명한 벚꽃축제지들 또한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1.일제 시대에 혹은 2.박정희의 제3공화국 때, 혹은 3.2000년 대 들어 전국적으로 벚꽃죽제 붐이 일면서 조성된 것들입니다.

'꼭 가봐야 될 '벚꽃 가로수길' 명소 20선'


왕벚꽃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이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다 다시 돌아온 것이므로 상관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일본의 왕벚꽃나무가 제주도가 기원이라는 것은 하나의 '학설'에 불과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도 아니며,('제주 자생 왕벚-일본 왕벚 다른 종')
설령 유전학적으로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그 놀이 문화에 담긴 문화적 맥락, 즉 '천황을 위해 사쿠라처럼 지라'는 한 마디에 담겨있는 군국주의적 메시지는 단순한 '싫다'를 넘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끝으로 
위에 링크한 '진해 벚꽃놀이의 유래' 기고글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 곳 전역에 벚꽃을 심어 그들의 장병들에게는 천황폐하를 위해 벚꽃 꽃잎처럼 죽어가라는 '야마또다마시(일본정신)'를 선양하고 조선인에게는 그들의 황국신민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해마다 축제를 벌였는데 왜 우리가 그것을 답습을 해야 할까?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무조건 벚꽃을 멀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벚꽃놀이를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아니다. 해도 좋으나 알고 해야 한다. 진해 벚꽃놀이를 하자면 왜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리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해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모여서 떠들고 놀기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도 그들의 일본정신축제를 계승하는 꼴이 되고 만다.
  
  끝으로, 작년에는 친구와 함께 여의도로 벚꽃구경하러 다녀왔다. 벚꽃구경 철이라 많은사람들로 붐볐다. 벚꽃에 담긴 의미를 알기 전 까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담고 왔지만 앞으로는 한가지 더 가슴에 담고서 돌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어 올해는 일본에서 벚꽃구경을 할 것같다. 일본인 친구에게 벚꽃은 하얗고 너무 이쁜것 같다고 얘기를 한적이 있는데, 일본인 친구는 벚꽃이 하얗지만도 않다고 얘기를 했다. 그 하얀 꽃잎에 일본인의 피가 붉게 물들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조금은 섬짓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친구 마음 한구석에 애국심이랄까?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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