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새벽 다섯 시를 향해가는 시간이겠군요. 광화문에 모인 촛불들의 행렬을 인터넷을 통해 지켜봤습니다.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클리셰가 이렇게 딱 어울리는 장면이 있을까요. 어젯밤 뉴스를 보다가 이른바 친박 세력의 집회도 지켜봤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던 카드에 써진 문구가 섬뜩하더군요. "군대는 일어나라"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계엄령이 답이다." 저 분들의 사고는 딱 거기서 멈춰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들도 그 생각을 했었겠지요. 우병우를 통한 군 사조직 알자회의 관리 설은 아마 그런 저들의 사고를 반영하는 것일테고. 지금 이렇게 저런 손팻말을 들고 나오도록 만든 그 배후엔 누가 있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나, 국민의 힘은 다시는 그런 후진적인 사태가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연인원 1천만명이 넘는 평화시위가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나고, 세계 시민 항쟁사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등장시킨 한국의 시민들. 그것은 오래 전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 발 담가 본 적이 있는 제게도 새롭고 신선한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나름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에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힘을 가진 이들이 발랄하면서도 엄숙하게 비폭력적으로 거리를 점령해 가는 과정은 지배 권력이 망쳐놓은 국격을 시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민은 익명의 존재이지만, '촛불 시민'은 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이었습니다. 타고르가 과거에 노래했던 동방의 등불 코리아는 동방 뿐 아니라 세계를 밝힌 촛불이 되어 있었습니다. 도심 공기의 온도를 올려 버린, 한 겨울에 열섬을 만들어 버린 한국인들의 시위는 세계인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얍쌀하긴 했지만,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가 촛불의 모습을 패러디했던 것은 그만큼 이 촛불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의 반증이겠지요. 이제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대한민국이 정권교체를 이루고 지금까지 꼬여 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면서 동북아 질서의 조정자, 화해자로서 민주정부 10년간 이뤘던 외교적 업적을 다시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것은 흔히 많이 들었던 "웅비하는 한국"의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정치적으로 여러분이 만들고 싶은 나라, 상식대로 시스템이 움직이는 나라,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해외동포로서 응원하고, 멀리서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보탤 것입니다. 저같은 해외 동포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선물로 안겨주신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